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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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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제도 완전 철폐하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쟁취하자!

이윤주 | 이주노동자투쟁본부 집행국장
김대중 정권의 외국인력 정책 변화

한국은 OECD 가입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 진출, ILO 상임 이사국 진출 등 활발한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반면, 외국인노동자에게 '연수생'이란 이름으로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 UN한국 정부 보고서에 대한 반박보고서 및 각 국제민중회의를 통해 점차 국제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ILO가 권고하는 수준에도 현저하게 못 미치는 한국내 이주노동자의 상황에 대하여 적잖이 부담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필리핀, 방글라데시, 네팔, 인도네시아 등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간 노동자들의 폭로와 한국 대사관에 대한 항의활동(심지어 반한 감정으로 인한 한국인 피습 등의 사건들 ; 페스카마호 선상 반란, 연변 기아 기술 훈련원장 피습, 한국 관광객에 대한 위협행동 등)을 통해 한국은 '인권탄압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동남 아시아의 경우 한국의 자본과 상품이 진출하는 중요한 시장인데, 이 지역에서 반한 감정이 고조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이 입을 경제적 타격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네팔 노동자들의 쇠사슬 투쟁과 외노협과 같은 지원단체들의 폭로, '산업연수생 제도 폐지'요구가 줄을 잇고, 농성을 벌여내면서 각 센터들이 줄기차게 고용주, 경찰서, 노동부, 법무부 등에 대한 항의와 권리 주장 활동을 전개했다. 이제 정부와 자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더 이상 변명과 회피로 일관할 수 없게 되었다.

고용허가제 도입은 철저하게 '국가경쟁력 강화', '세계화'라는 자본의 이해에 맞물려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연수생제도'를 존속시키는 것이 중소기업협회를 비롯한 일부 자본가들에게 단기적으로 이익이 되겠지만, 한국 전체 자본가에게는 장기적으로 불이익이 크다. 그러므로 전체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국 정부는 단기적으로 작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 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기협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는데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단지, 노동부와 타 부처간의 파워게임이 아니다)

이런 정부가 "외국인노동자 인권개선을 위하여 고용허가제를 도입"한다고 말하는 것은 낯뜨거운 위선행위이다. 결국 실제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통제 강화를 통해 이윤증식을 더욱 안정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속셈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고용허가안의 본질

아시다시피, 중소영세사업체 사장들은 극심한 인력난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 말고는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자리에 붙어나질 못해 공장을 굴리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없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주는 칼자루를 사장 자신이 쥐게 되고' '고용중지나 고용기간 연장을 이유로 쟁의도 할 수 없'도록 정부가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해고(고용중지)를 하여도 '14일 이내에 고용중지 당한 자는 출국'해야 하므로 불법해고라 하여 법원에 쫓아다닐 필요도 없으니 마음에 안들거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고용의 탄력성"이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어느 사장이 고용허가제를 반대하겠는가?

당장은 중기협이라는 외압 때문에 중소기업주의 이해가 가려져 잘 안보이고 있지만 지난 1996년에도 '소기업연합회'는 고용허가제 도입을 찬성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장측에서는 이주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부릴 수 있는 체계이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정부가 추진하는 현재 고용허가제의 그 실내용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자본가의 안정적 착취를 보장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정부에서 추진하는 노동정책이 일반적으로 노동권의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관리의 수위가 심각하다.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면 고용비용이 상승한다는 중기협의 비판에 대하여 노동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노동부는 "지금도 이미 외국인근로자의 생산성에 달하는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임금결정을 시장에 맡기면 오히려 현재 미등록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것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합법적 지위를 사장에게서 용인받아야 하는 고용허가제라면, 능히 이주노동자에 대한 평균임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월차 수당이나 퇴직금에 대하여 임금항목을 재조정하여 부담증가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힌트를 던지면서, 기숙사와 식사 무료제공 등 부대비용을 폐지한다고 부추기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노동권의 향방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갱신하고 최장 체류기간을 3년으로 제한했으니, 이주노동자들은 형식적으로 노동 3권을 보장받아도 고용해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행사할 수 없다. 이빨빠진 호랑이에 불과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비웃으면서 자본가들은 산업연수생제도 하에서와 같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살인적 노동강도, 멸시천대 등 온갖 수탈과 탄압을 자행할 것이다.
추석직후에 언론에 보도된 정부의 안, 특히 "고용연장 및 고용중지 철회를 요구하는 쟁의행위 금지"는 이주노동자들이 절대 투쟁에 나설 수 없도록 손발을 꽁꽁 묶어두겠다는 의도이다. 동시에 '노동 3권' 네글자 때문에 고용허가제에 반대하는 사장들의 가슴을 위로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해 놓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거나 '계약 갱신을 통한 고용 연장'과 같은 아주 낮은 수준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기만 해도, 불법으로 몰아붙여 탄압하는 양상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이빨빠진 호랑이임에도 불구하고 '노동 3권'을 준다고 선심쓰듯이 하며 국제사회에서 면피하려고 들 뿐, 독소조항으로 겹겹이 둘러쳐진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


고용허가제 도입 투쟁의 한계

현재 고용허가제 도입은 중기협의 이권을 건 천박한 결사반대에 가로막혀 그 자본의 본질이 폭로되지 않고 있다. 중기협은 정확하게 "산업연수제도 유지"를 주장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에 반해 연수제 폐지를 주장하는 주류진영은 '고용허가제 도입'이 곧 연수제도 폐지라는 단선적 시각에 머물러 있다. 제 사회·종교 단체들은 연수제도를 폐지하는 대안으로서, 1996년도에 고용·노동허가제를 기본으로 한 입법청원안을 낸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는 5만여명 국민의 지지서명을 받아 함께 입법안을 제출했다. 입법청원안의 주요골자는 이주노동자도 정당한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이 투쟁의 역사로 인해, 현재 정부의 고용허가안과 기존의 고용·노동허가제 도입 투쟁을 혼돈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정부는 연수생이 실질적 노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노동자로서 지위를 인정하고 연수제도가 편법적인 외국인력 도입 정책이라는 고해성사를 했다. 그러나, 고용허가안에서 다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억압하는 장치들을 만들어, 연수제도가 가지고 있던 '종속성'과 '편법적 노동력 착취성'을 그대로 온존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의 정부안을 노동자의 권리신장의 측면에서 추진하던 고용·노동허가제 도입 투쟁의 결과물로 생각하고, 그거라도 김대중 정권 하에서 통과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은 연수제도 폐지 투쟁의 목적과 고용·노동허가제 도입 투쟁의 의의를 호도하는 것이다.


부차화된 주체, 이주노동자의 요구 그리고 생존권

이런 경향은 이주노동자 운동을 자부해왔던 진영이 지속적으로 노정하였던 문제, 즉 이주노동자의 권리와 투쟁을 대리해오면서 본의 아니게 이주노동자들을 끊임없이 대상화시켜왔던 태도에서 기인한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현재 체류하는 불법 미등록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치명적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안을 적당하게 수정하여 받아들이자 말자하는 선택권은 전적으로 이주노동자에게 있다. 노동자의 투쟁은 늘 현재 진행형인 것이며 자신의 요구에 의한 자신의 행동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생명과 자유를 잠시 장롱 속에 넣어두고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이, 누구도 남의 생존권을 대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에게 고용허가제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를 말하기 전에,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주노동자와 함께 달라질 그들의 미래에 대하여 함께 논의하고 쟁취할 미래를 설계하며 주체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의 경향은 고용허가제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의 생존권과 인권을 담보로 한국인 간의 협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고용허가제가 올해 안에 도입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 내용을 개선하기 위해 문제제기하고 항의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즉 고용허가제 내용 개선을 위한 강도 높은 문제제기(행동)는 중기협의 저지활동에 일조하고 노동부에 행보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므로 스스로 위축될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부의 행보에 힘을 실어줄 수는 없는 것이며, 내용적으로 마땅치도 않다면 대안을 정리하여 로비하고 청원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올해 안에 통과되길 원한다면, 노동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제기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민간단체와의 합의"를 깃발로 내세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부와 여당의 의도는 자명한데, 정부와 '고용허가제'에 대한 환상을 사회 내에 부추기면서까지 "올해 안","고용허가제 도입"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단 한가지 걱정이 있을 뿐이다. 이주노동자의 억압과 통제를 새로운 형식으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 한계를 알면서도 지금 용인한다면, 이후 싸움은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지난 시기, 노동운동의 몇몇 지도그룹은 "대세이다,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식의 이유를 들어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근로제에 합의를 해줌으로써 정부와 자본의 노동자 통제력을 강화시켜 버렸고 노동자는 지금 최악의 고용불안의 시대를 넘고 있다. 그때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등에 대하여 계속 가열차게 싸웠다 하더라도 그 법안은 통과되었겠지만 노동자들의 투쟁력이 해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이주노동자와의 동지적 연대를 시작하자

누가 시작을 했든간에 이주노동자의 존재기반이 달라지려는 이 순간, 우리부터 원칙과 입장을 벼려내고 공유하는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 자체를 얼마나 잘 하는가는 우리의 힘을 다지고 축적하는 일이므로 성명서 한 장 더 내는 것보다 소중하다. '우리'라고 함은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는 의미로써 이주노동자 당사자의 구체적이고 주체적인 요구를 세워내고 실천하는 것에 아낌없는 노력과 지원을 하자는 의미이다. 이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는 결과보다 더 소중한 과정이다. 책임지지 않는 막연한 연대 성명을 많이 조직하는 것보다, 주변부노동자층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부와 자본의 의도에 대응하는 공동전선을 펼쳐 실물적이고 동지적인 연대를 실현하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

또한 이는 이주노동운동의 올바른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으로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1996년도 투쟁을 올바로 계승하는 것은 연수제도의 완전한 철폐, 즉 이주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실현하고 투쟁을 통해 이주노동자 스스로 권리 의식을 향상시키는 것에 있다. 고용허가제인가 아닌가, 올해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권리의 지평을 안정적으로 확대시켜내는 것, 이주노동자의 생존권과 삶의 질을 옹호하는 투쟁에 있다. 이 말은 우리의 투쟁이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후에도 지속되는 것이기에 투쟁의 요구를 '고용허가제 도입'으로 맞추어서는 그 한계를 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투쟁은 연수제도의 억압장치들을 쓸어버리는 완전한 연수제도 정책의 폐지이며, 연수생이든 아니든 불법이든 합법이든 모든 이주노동자가 안전하고 정당하게 노동하고 그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를 전취하는 것이다.

정부가 고용허가제랍시고 이주노동자를 유린해 온 '늑대의 본모습'을 감추고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개선하고 있다는 '양의 탈'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본질을 명확히 할 때만이 이주노동자와 한국 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에 대하여 투명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노동자를 더욱 옥죄어오는 쇠사슬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갖고 투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현대판 노예제도인 연수제도의 완전한 철폐와 이주노동자 노동권 완전 보장을 위한 이주노동자 운동 진영의 작은 시작에 뜨거운 연대와 지지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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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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