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11-12.79호

일반화된 부정부패와 민중운동의 고전

장진범 | 편집부장
대선이 한창이다. 한동안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BBK는 검찰 발표로 한 국면을 지나긴 했지만 한동안 불씨로 남을 듯하다. 그 뒤에는 청와대를 비롯한 개혁주의 세력, 그리고 ‘떡찰’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사법 권력 역시 자유롭지 못한 삼성 비리가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다들 입을 모아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지만, ‘1/10 대선자금’ 때문에 노무현은 ‘노란돼지’로 애써 만든 청렴한 이미지를 취임 초부터 구겨야 했고, 부정부패 척결을 자신의 정치적 존재 가치 자체로 내세우던 ‘착한 자본가’ 문국현 역시 탈세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렇듯 금융세계화 시대, 부정부패는 진화하는 한편 일상화되는 중이다. ‘펀드매니저’의 자문에 따라 ‘재테크’ 기업의 하나인 ‘절세’를 한 것이라는 문국현의 항변은, 금융화의 진전에 따라 ‘정상적’ 경제활동과 ‘비정상적’ 부정부패의 경계라는 부르주아적 기준 자체가 해체되고 있을뿐더러, 새로운 ‘성장동력’ 중 하나로 지목되는 각종 ‘생산자 서비스’가 이 해체를 지적·조직적으로 조장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재벌을 비난하고 중소기업을 노래하지만, 한 위대한 열사의 동생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게 해 준 자신의 ‘비정규직 두 딸’, 그들 앞으로 돌려놓은 주식이 다름 아닌 대재벌 포스코와 삼성 주식이었다는 사실은, 재벌 중심의 금융세계화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개혁주의자들의 한계를 웅변한다. 이명박이 BBK에 얽히게 된 것은, 재기를 위한 새로운 성공 신화를 만드는 데 금융이라는 최첨단 비즈니스가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었고, 거기서 벌어진 주가조작은 이제 금융세계화 시대 부정부패의 대표적 형태가 되었다. ‘세계 속의 일류 기업’ 삼성은 비자금을 예술 작품으로 변신시켰고, 청와대와 검찰, 정당 등 국가 권력의 핵심을 떡 주무르듯 했다.
세계적 금융시장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사회 전반을 ‘개혁’하는 신자유주의는, 노동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금융 이익을 증대시킬 뿐만이 아니다. 이와 상관적으로 사회에 대한 대중들의 정치적 통제력을 (예컨대 FTA에서 보듯) 체계적으로 무력화하고, 통제받지 않는 지배계급 안에서 각종 유착과 부정부패를 일반화함으로써, 정치를 파괴한다. 수많은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들이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것은, 한편으로 지배계급 중 누구도 자신들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차피 다 똑같다고 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되는 민중운동이 금융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세계화의 전망을 아직 제시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10년간 정권을 잡아 우리들의 삶을 파괴한 개혁주의 세력은 어떻게든 ‘심판’해야겠고, 아직 대안적인 정치적 전망이 열리지 않은 가운데 어차피 이 자본주의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면, 확실히 정권을 교체할 수 있고 IMF 10년 이후 어느덧 이 사회의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 상으로 자리 잡은 ‘능력 있는 CEO’를 지지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대중들의 비극이다.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일으키는 대선을 이번 호 특집으로 담았다. 더 일찍, 더 풍부한 고민과 입장을 담았어야 했는데 부족한 면이 많은 것 같아 죄송함을 느낀다. 특히 이번 호는 예정에 없이 11·12월 합본호로 나오게 되었다. 책이 오지 않아 애태우셨을 독자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 상황에서, 민중운동의 진전을 위한 고민과 발언, 토론의 태세를 다시 한 번 다잡겠다는 것을 독자들께 약속드린다.

87년 민주항쟁은 군사독재라는 역사의 한 국면을 중단시켰고, 자유주의자들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치적 전망을 토론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그러나 91년으로 상징되는 민중운동의 역사적 패배 이후, 민주화는 결국 ‘자유화’ 기획의 헤게모니에 종속되었다. 대중들이 민중운동을 개혁주의의 일부로 여기는 것, 개혁주의의 몰락이 민중운동의 기회가 아니라 동반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 같은 역사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자유주의자들이 시작한 ‘정치적·형식적 민주화’를 ‘경제적·실질적 민주화’로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 더 많은 민주주의의 전망과 실체를 대중들과 함께 발명하고 재건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오늘날 정치를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자본주의 착취의 현재적 형태로서 금융세계화라면, 다른 정치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치 중 하나로 자본주의 지양의 현재적 형태로 대안세계화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과의 대결 없이는 다른 정치를 시작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로두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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