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12.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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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가 노동운동의 전략적 발전을 위한 논쟁의 시작이다

송유나 | 정책기획부장
왜, 그리고 무엇이 우리의 출발점인가

2001년을 맞이하는 지금, 신자유주의 공세는 더욱 폭력적이고 파렴치한 자태로 우리의 폐부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제2의 경제위기 현실가능성! 이것은 오히려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입지를 넓혀주고, 정당화시켜내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에 맞서는 전 영역에서의 저항과 투쟁의 불씨는 여전히 뜨겁다. 하얀가운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의사들의 새빨간 머리띠, 서슴없이 팔뚝을 휘두르는 소위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모습이 이제는 전혀 생소하지 않다.

투쟁의 구체적 쟁점이 어떻든간에 구조조정의 여파는, 그것이 실행되는 전 영역에서 자발적인 거부와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각 영역에서 전파되고 있는 저항의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는 상당히 역설적인 상황이다. 자본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신자유주의의 관철, 그리고 이 속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질 수밖에 없는 대중적 저항, 그러나 이것이 전선의 집중과 강화로 이어지고 있지는 못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자본의 위력적 공세로만 돌려버리기에는, 노동운동진영의 지도력의 부재로 탓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너무도 크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노력은 노동운동진영 내의 대안 모색을 위한 논쟁으로 불거져 왔다. 특히 IMF 구조조정 이후 위기의 원인과 극복방안을 둘러싼 논쟁으로, 위기에 대한 노동운동진영의 대응 모색이라는 현실적 요구쟁점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미 시작되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진영 내의 대다수의 입장과 전술적 견해 속에 신자유주의적 경향이 이미 농후하게 배어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특히 시장과 효율성에 대한 맹신, 현존했던 사회주의의 몰락에 대한 과도한 구부림은 현실의 투쟁 과제를 설정하고, 변혁의 경로로 나아가는데 있어 상당히 왜곡된 지형을 형성해나가고 있다.

전략위원회의 결과물은 이러한 현실의 집약체와도 같다. 민주노총 내·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논쟁 구도가 통합되고 봉합되는 과정에서 전략위원회 논의의 현실적 결과물은 장시간의 진통 속에 분만되었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는 계급주의적 노선의 현실적 조건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론을 이미 예고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략위에 주목하는 것은, 잠재적으로만 진행되던 운동의 노선과 목표에 대한 논쟁이 이제서야 비로소 대중적으로 공론화할 계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화해할 수 없는 쟁점이라면 오히려 명확히 드러내고, 대중적 논쟁을 통해 검증받는 길만이 전략위의 존재가 던져줄 수 있는 긍정적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략위 초안 중 이 글은 1장과 2장을 중심으로 한 평가의 내용이다. 이 글은 그 동안 사회진보연대와 공공부문연구팀에서 주장해왔던 '사회화 투쟁'을 둘러싼 논의과정에서 제출되고 있기에 아직 많은 부분 미진하다.

특히 노동운동의 발전전망과 이념, 노선의 문제는 향후 계속 논의되어야 할 주제이며, '사회화 투쟁'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많기에 개인적인 고민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제출되는 것임을 밝혀둔다.


민주노총의 현재와 과거-성과와 한계에 대한 모순적 평가

민주노총의 건설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가 1990년 1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건설로, 1995년 11월 민주노총이라는 총연맹 건설로 이어져온 한국사회 노동운동·진보운동 발전의 역사를 보여준다. 민주노총은 '국가와 자본계급의 계급지배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계급관계 자체를 변혁함으로써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을 실현하려는 이념적 목표'를 형성해 왔으며, 민주노조운동은 구성원들을 넘어서 전체 노동계급을 위해서 투쟁'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민주노조 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전투적 대중투쟁을 통해 대중적 동원에 성공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소중히 계승해나가야 할 성과'를 쌓았다.

' 민주노조 운동의 독자적 생존과 전국적 구심의 형성,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발달, 노동계급의 권익 향상, 사회·경제민주화를 통한 사회전체의 보편이익 실현을 위해 노력했으며, 사회·경제 민주화를 일구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노총의 역사와 성과에 대한 세부적 쟁점에 관해 논쟁하기보다 민주노총의 현실에서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주목한다. 전략위는 민주노조 운동의 주체적 역량의 한계를 1) 기업별 노조하에 전투적 경제투쟁에 집중된 한계, 2) 낮은 조직율과 대표성 약화, 3) 이념적 목표와 장기적 전략의 결여, 4) 민주노총의 내적 통합 약화, 5) 노동계급 구성과 노동자문화의 변화 등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사회 운동의 지형에서 전체 전선운동의 지도적 구심의 부재, 민주노총의 건설과정 자체가 갖는 역사적 성과 등은 민주노총을 전체 전선운동의 지도체로서 위치지울 수밖에 없었다. 이는 노동조합 운동이라는 대중조직에게 상당히 부담스럽고 과도한 역할 설정이다. 또한 민주노총이 노동조합 운동 수준에서조차 포괄하지 못하는 다수의 미조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실업·여성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기업별·연맹별 계급요구의 차이와 문화적 차이는 노동조합 운동내의 지도력 발휘에도 난점으로 존재한다. 더구나 민중연대 전선에서 빈민·농민 등 운동의 다양한 주체와의 결합이 민중연대 투쟁의 상당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과 정권의 이중대로서 여론 주도층으로 일거에 떠오른 시민운동과의 '부적절한 관계'는 민주노총 운동의 운신의 폭을 제약하는 또 다른 한계지점이다. 이러한 중층적 관계 속에 민주노총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며, 이에 대한 적확한 판단 속에서 향후 과제에 대한 고민이 제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략위는 민주노총의 주체적 한계에 대해 몇 가지 모순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략위는 민주노조 운동의 전투성과 전투적 경제투쟁을 역사적 성과이자, 현실적 한계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 '경제주의적 투쟁'을 둘러싼 논쟁은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던 화두이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그리고 사회개혁투쟁은 분리되고, 역할 분담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임금·고용 등 소위 '경제주의적 투쟁'이라는 전략위논의에서 명시한 투쟁의 영역은 현재와 같이 신자유주의가 관철되고, 한국사회의 총체적 재편으로 나아가는 상황에서는 가장 급박한 정세적 요구이자, 가장 치열한 투쟁의 주제이다. 운동의 주체는 생존권 쟁취 투쟁을 경험하면서,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정치적 주체, 사회변혁의 주체로 거듭난다. 특히 현실의 투쟁 과정은 이 생존권 쟁취 투쟁의 성격을 보여준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이 고용안정과 임단투에서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이것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사유화'와 '해외매각' 저지 투쟁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사파업의 문제도 의료분야의 국가책임과 공적 의료시스템의 구축의 요구로 나아갔을 때만이 해결가능한 문제이나, 민중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한 적정한 타협이 보편적 의료서비스의 박탈과 개인부담의 증가라는 민중생존권의 후퇴로 결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금융구조조정의 경우, 금융권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사회적 조절 시스템의 형성이라는 높은 수준의 투쟁을 통해서만 저지해낼 수 있다. 대우자동차와 나아가 자동차산업 전반에 대한 위기는 사실상 국유화와 국가통제를 요구하는 투쟁이며, 이 속에서만이 관련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이 보장되며, 자동차산업의 초국적자본에의 종속을 차단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더욱이 줄줄이 워크아웃 과정에 놓여 있는 수많은 기업들은 이미 국유화 상태이며, 얼마 전 발표된 2차 기업구조조정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력을 보자. 이것은 이미 개별기업 수준의 해결책으로 가능하지 않은 전선의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각 영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이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총체적 반대 투쟁, 나아가 국가의 통제와 국가에 대한 민중적 통제라는 높은 수준의 투쟁성격을 지닌다. 몇 해 전만 해도 전술적 투쟁슬로건으로 제기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었던 '국유화'라는 슬로건이 이미 현실투쟁과정에서 서슴없이 외쳐지고 있는 사실은 무얼 말해주는가?

이미 위기적 정세 그 자체가-비록 위기적 정세에 대한 수동적 대응의 성격이 강할지라도-노동자·민중의 투쟁요구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의사파업의 문제나 금융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났듯이, 각 투쟁의 주체들이 투쟁의 성격에 대해 정확히 체득하고 있지 못하며 계급적 상황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투쟁 수위와 전선의 결집은 만만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전투적 경제투쟁'이라고 표현하는 노동자계급의 생존권 투쟁이 현실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어떠한 정세적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또한 민주노총의 전략적 발전을 고민하는 단위라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총체적 반대 투쟁을 통해 각 영역에서 고립적으로 진행되는 투쟁이 어떻게 결집되고 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그 가능성이 현실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치열히 모색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지난 몇 년간의 역사는 이 경제투쟁, 정치투쟁, 사회개혁 투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몇 가지 전형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경제투쟁에 집중하는 노동조합운동과 정치투쟁을 분담하는 외곽의 투쟁부대 혹은 정당이라는 사고에 경도되기도 했고, 때로는 경제투쟁을 낮은 수위의 것으로, 사회개혁 투쟁을 높은 수위의 것으로 사고하며 사회개혁 투쟁이라는 '사회적 안정망' 확보 수준의 투쟁에 집중하기도 했다. 때로는 사회개혁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위치짓는 과정에서 정권과의 상설적인 협상테이블을 만들고, 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투쟁을 배치하는, 결국 '사회적 합의'라는 체제 포섭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사회적 합의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협상력 고양이 관건인데, 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산별건설과 조직률 상승의 문제에 매달렸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물론 산별건설과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률 상승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조합원 수의 많고 적음이나, 덩치불리기가 아닌 실질적 지도력과 투쟁력이다. 현실 투쟁에서 지도력이 관철될 수 있다면, 실질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지도부로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면 조직의 발전은 결과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총체적 반대 전선에서 미조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실업 등 임계점에 다다른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대변하고 지도하는 '과도한' 임무를 자임해나갈 수밖에 없다. 이 속에서 민주노총에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을 끌어올려야 한다. 특히 노동자 계급내부의 분화가 진척되고 있으며, 현시기 구조조정이 시기와 쟁점을 조절하며 분리타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 내부의 내적 통합력의 약화, 노동자계급의 통합력의 약화로 귀결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구조조정의 시기를 쫓아가기에 급급한 투쟁, 선언적 총파업 투쟁은 이 노동계급의 분화와 전선의 고립·분산성을 해결해나갈 수 없다.


또한 현재와 같은 위기상황의 수세적 정세는 이념적 목표와 장기적 전략에 대한 고민을 필연적으로 끌어낸다. 그러나 이념적 목표가 없어서 현재 투쟁이 위기이고, 장기적 전략이 없기 때문에 수세적 정세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정세에 대한 오판이다. 특히 이념과 전략이, 정교한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고 한다면 현실의 투쟁의 올바른 내용이 무엇이며, 어떻게 투쟁의 주체를 형성해나갈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한국사회 구조조정의 양상과 전세계적 자본의 재편 전략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필요하며, 이 속에서 무엇을 목표로 현실 투쟁을 끌어나갈 것인가, 나아가 어떠한 변혁의 경로를 설정할 것인가가 고민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략위 논의의 맥락은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시장과 효율성에 대한 맹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노동자계급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길 밖에 없다.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양자에게 한치의 양보도 허용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렇듯 자본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후퇴시킬 뿐이다.


민주노총의 이념적 지향과 전략
-구조조정은 필연적이며, 시장과 효율은 맹신의 대상인가


민주노총이 지향하는 사회는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되어 노동하는 인간이 주인되는 평등사회'이며, 이 '평등사회'는 '평등과 효율성이 조화를 이룬 사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 평등사회의 모습을 설정하는데 있어 현존했던 국가사회주의의에 대한 평가가 선행한다. 국가사회주의는 경제적 효율성 확보에 실패했는데, 전략위는 정보수집과 자원배분의 실패, 노동자 동기화의 실패와 경영혁신의 결여 등에서 실패의 요인을 찾고 있다. 이로써 '이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어떠한 대안체제도 경제적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보이지 않으면 시민들이 외면한 것이며 노동자들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대안사회를 그리는데 있어 빈곤을 감수하겠다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투쟁의 주체들은 현실의 빈곤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 자체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이 '시장에 대한 물신화' 경향은 현존했던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신자유주의가 상정하는 시장과 효율성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장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합리적이거나 효율적이기는 한 존재인가? 현 시기 구조조정의 작동양태와 신자유주의의 실체는 시장이 그 어떤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자본주의 일반 역시도 순수한 시장적 원리도 운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의 위기는 노동자·민중에 의해 통제하고 계획해나갈 수 있다면, 자본의 이윤논리에 춤추는 허구적 시장에 대한 기대를 버리기만 한다면, 충분히 해결해나갈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업, 비정규직, 공공부문 구조조정, 금융에 대한 문제는 국가권력의 시장에 대한 통제를 통해, 이 국가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통해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대우자동차 사태를 보자. 심지어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동의서 여부로 부도선언 여부를 가늠한다는 이 웃지 못할 사태는 노동자 죽이기, 노동조합 고사정책에 다름아니다.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을 막아내기 위해서 민주노총 차원의 전국적이고 집중된 투쟁을 요구하며,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에게는 더욱더 극도로 긴장된 투쟁을 요구한다. 그래서 도입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 체제와 노동자 고통분담-임금삭감, 일정정도의 정리해고, 개인지출을 통한 우리사주 등-을 통한 국민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물론 유의미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투입될 공적자금에 대해 국민들은 문제제기할 것이며 현대나 GM은 더욱이 어떠할 것인가? 심지어 공적자금 투입을 위해 금융권을 불안하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금융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했다는 비판이 난무할 것이다.

왜 우리는 명확히 외치지 못하는가? 당장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대우자동차를 회생시킬 것, 공적자금이 투여된 기업은 분명 사회적 기업이며, 사회적 통제하에 둘 것, 나아가 국가기간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탈종속성을 위해 국가가 노력할 것, 이를 위해 노동자 민중의 광범위한 통제의 길을 당장 열여놓을 것! 등을 말이다. 또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전력산업 구조조정 저지 투쟁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에서도 국가기간산업의 해외매각 저지와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민중적 통제는 현실의 요구사항이다. 그러나 투쟁의 과정에서 효율적인 시장, 어느 정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해버린다면 투쟁의 주체는 극도로 혼란해지며, 투쟁의 여지는 축소된다. 현재 구조조정 추진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공세는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타협과 협상의 여지는 전무하며, 이 극단적 대립상황에서는 노동자계급의 입장과 목표를 더욱 명확히 해야 한다. 결국 대우자동차 사태는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의 합의서 도출로 일단락을 맺어가고 있으며, 현재 진행형인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도 노동자계급의 목표와 입장을 명확히 하지 못하여 혼란스러운 양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산별건설의 선도주자인 금속연맹, 총파업선언을 남발하던 민주노총이 과연 대우자동차 사태의 정세적 의미와 투쟁방향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던가에 대해, 다시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공세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국가라는 현실의 계급투쟁의 공간을 방기한 그 어떠한 요구도, 경쟁과 효율성의 논리만이 난무하는 시장의 무정부성에 굴복하고, 초국적 자본에게 철저히 종속된 폭력적 방안일 뿐이다. 어느 정도 현실가능한 사회주의의 길을 모색한다 할지라도 자주관리나, 개별기업의 경영참가 등은 그 수준의 의미 이상으로 나아가기에는 한계적이다.

결국 시장을 용인하는 순간, 효율성을 인정하는 순간, 어느 정도 구조조정의 여지는 필연적으로 다가오며, 노동자계급은 투쟁 성과와 무관하게 그 경쟁 시장에서 독점자본과 초국적 자본의 이윤논리에 따라 경쟁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시장의 물신성에 대한 잠재적 인정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의도하는 현실과 참혹한 미래에 그 어떠한 반기도 들 수 없다. 결국 초국적 자본의 지배력이 확장된 경쟁적인 한국시장에 대책없이 내몰리게 될 것이며, 구조조정의 효율성 담론을 수용하는 순간 어느 정도의 정리해고와 인력감축에 동의해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실업이나 비정규직은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에, 노동조합 운동은 사회적안전망 확충을 요구하는 투쟁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등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정책
-사회화·국유화의 문제와 국가권력 장악의 문제


전략위 논의는 '평등사회로의 이행'과 '사회화 투쟁'의 의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의미와 국가권력 장악의 문제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여, 사회화 투쟁의 의미의 맥락이 혼란스럽게 이해된다. 더구나 전략위 전반을 흐르는 타협주의와 합의주의의 강한 인상은 사회화 투쟁의 맥락을 적확히 이해하는데 방해물로 존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자본의 위기를 노동에 대한 전일적 지배와 착취구조 구축을 통해 해소할 수밖에 없는, 자본의 위기조절의 한계상황에서 추진되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의 경우, 국가부문·공적부문이라는 국가자본의 영역을 사적자본과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따라 반동적으로 재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반동적 재편방향은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의 '직접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 자본의 지배력이 확장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국가를 둘러싼 투쟁은 전술적 투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현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둘러싼 투쟁은 가장 수세적 측면에서 국가부문·공적부문이라는 민중의 생존권을 직접적으로 담보하는 국가영역이 해체되는 것을 저지하는 투쟁이다. 그렇다면 국가(독점)부문, 공공부문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가?

전력·통신·철도 등 공기업이나, 자동차·중공업과 같은 국가기간산업은 현실 투쟁의 과정에서 직접 언급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적극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시스템 전반, 국민건강보험·사학연금·공무원연금·국민연금 등 4대 보험과 연금, 공공의료와 공교육 전반을 사실상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이는 결코 관념적인 이해가 아니다. 현재의 구조조정이 이러한 전 영역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사적(독점)자본과 초국적 자본에게 이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전 영역에서의 투쟁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국가를 둘러싼 투쟁은 국가 혹은 공적소유권에 대한 문제, 시장과 자본에 대한 국가통제력의 문제, 그리고 이 국가에 대한 민중적 통제의 문제 전반을 포괄하는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현재의 투쟁이 이 모든 쟁점을 포괄하는 성격으로 진행되지는 못하는 한계 역시 지니고 있다.


더구나 초국적 자본의 진출과 세계시장에의 종속적 편입의 가속화는 일국의 통제력 상실을 초래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화·국유화 투쟁의 의미에 대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사회화·국유화 투쟁의 의미는 가장 정세적인 슬로건이자, 이미 높은 수준의 요구로 발전된, 정세적 요구 투쟁을 확장·연계시켜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높은 수준의 '강령'을 가지고 이를 선전·선동하자거나, 강령을 구체화하고 정교화하는 일에 집중하자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는 정세에 대한 몰이해를 반영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 시기 사회화·국유화 투쟁의 성격은 첫째, 국가부문·공공부문의 사유화 및 시장경제로의 이전이 해당 노동자들의 고용위협과 노동통제로 직결되는 철저한 생존권적 투쟁이다. 둘째, 이것이 해당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만이 아닌 민중의 생존권과 직결된 전사회적·총체적 사안이다. 셋째, 이러한 국가부문·공적부문의 해체가 노동자계급의 장기적 변혁과정에서 반드시 밟고 나가야 할 '이행의 요소'를 반동적 방식으로 재편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전술적 투쟁 수위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기에 현시기 사회화·국유화 투쟁을 통해 첫째, 국내 독점자본과 초국적 자본의 지배의 고리를 일정부문 차단해나가야 하며, 둘째, 개별 투쟁의 정치적·계급적 성격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고 확장시켜나가야 한다. 셋째, 일국 수준의 국가통제력을 강제하고 제한해나갈 수 있어야 하며 넷째, 국가의 통제와 신자유주의의 해체를 요구하는 투쟁을 국가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실질적으로 실현해나가는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회화 투쟁의 의미는 변혁의 경로를 설정할 때에만,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목표와 병행해나갈 때에만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고, 전면적 정치투쟁의 가능성을 넓혀줄 수 있는 고리가 될 수 있다.

물론 현시기 국가부문·공적부문은 철저히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규정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화·국유화 투쟁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특히 자본의 재편과정이 그 자체로 진보적일 수 없으며, 오히려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통제력 강화로 귀결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현실 전개과정이 변증법적 과정이며, '변혁'을 위한 장기적 투쟁의 길을 설정한다면, 문제는 명확해진다.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서 국가의 역할이 필연적이듯이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변혁으로의 전망 하에서 국가라는 공간은 결코 우회할 수 없는 공간이다.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고,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폐지하는 투쟁과정에서, 그리고 변혁의 그 '시점'에서조차 국가를 통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관철과 민중적 통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존했던 사회주의의 경험은 새로운 사회는 혁명적 정세 그 자체로 도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권력의 장악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국가권력의 장악은 행정부의 장악이나, 의회 진출을 통한 점진적 장악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국가권력을 장악한다는 의미는 대중투쟁·계급투쟁의 활성화를 통해 국가(독점)부문·공적부문을 장악하고,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하에 사회를 이행시켜나가는 과정-그것이 폭력적 방식이든 아니든간에-일 것이다. 사회화 투쟁의 맥락은 이러한 방향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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