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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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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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한국사회, 경찰국가로 가는가?

박주영 | 편집실
<b>몸에 밴 감시문화</b>

실생활의 수많은 감시과 규제. 범죄검거율과 신원조회의 정확성을 기한다는 명목으로 지문날인을 강요받고 경찰의 수시적인 불심검문에 응해야 하고 집회를 개최할 때, 이런저런 조건들에 눈치를 보아야 한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자기검열을 해야 하고, 인터넷에 표현물을 올릴 때는 스스로 등급을 매겨 게재하는 것이 좋다고 듣는다. 이메일 주소하나를 갖기 위해서나 웬만한 사이트의 회원이 되고 싶으면, 온갖 자기정보와 심지어는 신용카드정보까지 알려줘야 한다. 어느 새 나의 개인정보는 다른 정보와 거래되어버리는 형국이다.

유언비어 단속부터 유전자은행까지 검찰과 경찰에 의한 계획들이 속속 발표된 최근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며, 고개가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 땅에 민주주의가 있기는 한가? 이 땅의 인권은 도대체 언제쯤 이야기될 것인가? 작년 연말을 추위와 허기속에서 보내며 인권활동가들이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은 김대중이 집권하면서 오히려 국민의 존엄조차 확보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한 것이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대표적인 사상규제장치, 그리고 국가인권위를 형식화하려는 시도들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일상적인 감시와 규제가 있는 한, 이를 자각하고 철폐해나가는 싸움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B>전방위에서 진행되는 감시와 통제</B>

▶1999년 7월 '천국의신화' 음란성으로 벌금 300만원 선고
▶2000년 1월 검찰, 유전자감식법 특허획득 발표
▶2000년 5월 경찰,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개악 추진
▶2000년 상반기 주민등록증 신규발급 위한 지문날인실시, 6월 30일로 구(舊)주민등록증 시한만료
▶2000년 7월 경찰, 휴대용 전자지문감식기 도입발표
영화'거짓말' 음란성 무혐의 처분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질서확립법 발표
한국개발연구원, '정부의 연구통제 심하다' 반발
▶2000년 10월 이산가족 및 미아, 입양인을 위한 유전자데이타베이스 구축계획 발표
대법원, '내게거짓말을해봐' 음란문서제조 혐의 유죄판결
▶2000년 11월 대검찰청 공안부, 공안대책협의회 부활
경찰, 악성유언비어에 대한 일제단속
▶2000년 12월 검찰, '안티DJ사이트' 음란성여부 수사
경찰청산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자료프로필 구축' 국제학술발표회 개최
▶2001년 1월 보건복지부, 대검찰청·(주)바이오그랜드와 공동으로 유전자데이타베이스 구축, 미아찾기사업 발표


<b>최근 언론을 통해서만 공개된 도·감청건수</b>

▶감청, 우편검열, 통신자료제공, 계좌추적/신용카드조회건수 등 수사기관에 의한 월평균 감청건수 1998년 492건, 1999년 270건, 2000년 197건.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이 발신전화번호서비스를 제공한 건수 1999년 월평균 2만 7천130건, 2000년 3만 8천336건(2000년 10월 국정감사 김형오의원, '권력수사기관에 의한 사생활현주소')
▶2000년 상반기 전체감청건수 1천183건(1999년 동기대비 37%감소),
협조요청 문서에 따른 자료제공건수 1999년 상반기 9만 3천181건 2000년 상반기 7만4천451건
이메일 등 PC통신에 대한 자료제공건수 1천79건(1999년 동기대비 76.6% 증가)
(2000년 11월 14일 정보통신부, '감청 및 통신자료 제공 통계현황')
▶1998년이후 2000년 6월까지 검찰등 수사기관이 법원에 신청한 긴급감청건수 544건. 이중 97.8%인 532건에 대해 긴급감청 허가.(2000년 10월 대검찰청 국정감사자료)


<b>항상 처음은 공익이 목적이었다!</b>

유전자채취, 집시법, 유언비어, 안티DJ사이트, 사전검열, 그리고 인터넷등급제까지…. 청소년보호라는 명분 아래서 표현물에 대한 규제를 자유롭게 시행하고 언로를 막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게 지나친 상상일까? 사실 음란성과 선정성, 폭력성에 대한 기준도, 그 기준을 선정할 주체도, 명확하지 않다. 음란물이 게재되었다는 이유로 수사대상이 되었던 '안티DJ사이트'를 보자. 안티DJ사이트에서는 음란물이 게재된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경찰이 문제삼은 그 게시물마저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게재된 것이다. 오히려 사이트는 김대중 정부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자신만 잘하면 얼마든지 지지는 나오고 정직하고 당당하게 국정운영만 하면 누가 딴지를 건단 말인가"(작성자: 개아범)라며 안티DJ사이트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Dj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그 동안 개혁을 그렇게도 부르짖으며 애썼다면 각 분야의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여 결판이 났어야 옳고, 구조조정도 합리적이고 가시적인 결과가 나왔어야 했다. 정권 후반기로 들어서는 이때 케케묵은 부정을 이제서야 해결한다면 결국 그 동안 낙제정치를 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이유로 혹시 우리는 '닭 잡는 능력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소 잡으라고 칼을 주어, 소를 마구잡이로 난도질하는 꼴을 보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한다(작성자: 왜 DJ정권이 위기인가)"라며 정부에 직격탄을 날린다.

이미 딴지일보 등과 같은 매체들이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비판과 풍자를 진행해왔음에도, 음란성을 핑계삼아 국민의 귀와 입을 틀어막으려는 발상이 '국민의 정부'에서 떠올릴만한 발상인가? 모든 공권력행사는 항상 처음에 공익을 목적으로 삼았다. 집회를 개최하려는 노동자들에게 '공공질서의 안녕'을 생각하라고 했고, 유전자를 채취하고 데이터베이스화시키는 것도 이산가족찾기와 미아찾기라는 대의명분을 들이대고 있다. 도입초기에 이러한 '공익'논란을 거치면서 사회적 명분을 획득하고, 유전자데이터의 상업적 남용과 이로 인한 인권침해의 소지가능성을 제기하면 '공익'에 반하는 의견으로 묵살해버리기 십상이다.


<b>효율성을 운운하지 말라</b>

지문날인도 마찬가지이다. 경찰이 범법자 검거에 좀더 효율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동안 날인되어있은 지문을 감식해서 범죄가 해결된 경우는 통계상으로도 매우 적은 수치를 차지한다. 1998년 발표된 경찰청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문감식에 의한 검거건수는 1년간 총범죄 150만여건 중에서 오직 천여건에 불과하다. 경찰이 좀더 효율적(!)인 휴대용전자지문감식기를 도입하겠다고 기획예산처에 신청한 예산이 22억1천5백만원이다. 여기서 과연 그 '효율성'은 무엇을 근거로 나온 것인가?

작업장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CCTV, RF시스템(전자신분증)를 보자. 감시카메라 앞에서, 전자사원증으로 통과해야 할 기계 앞에서 노동자는 어떠한가? 이 기계들은 노동자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엿보거나 기록하고, 노동자는 실질적 인격체가 아니라 규범화된 가공의 인격체로 전화되어버린다. 기계에 의해 관찰되고 감시된 노동자의 정보는 여러 가지 숫자들로 표현되어 '생산능력이 얼마정도'인 노동자로 인지되며, 객관성, 명확성, 엄밀성 등의 탈을 쓴 절대적인(!) 기준치로 노동자들을 길들여버리고 만다.

최근 시설용역화저지를 위해 총파업과 농성에 돌입한 과학기술연구원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회사측이 감시카메라까지 동원해 노조활동과 노조원들의 발언을 감시하지 않았던가? 결국 기업이 효율성 높이자며 도입한 전자시스템들은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으며, 좀더 쉽게 노동자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술책에 불과했다. 지문날인과 유전자은행의 설립 또한, 국가안보라는 공익성의 명분 아래 국민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b>누구를 위한 공공질서인가</b>

그들은 효율성을 내세우며 모든 게 결국 국가안보를 위해서, 공공질서의 안녕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좀더 쉽게 경찰이 지문날인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학수사 및 강력범죄예방과 범법자 검거를 위해서는 유전자은행 설립이 필수적이다'라며 유전자감식 특허까지 획득한 경찰의 편의성을 위해, 전국민의 개인정보는 유출되어도 상관없는 것인가? 유전자정보는 개인정보의 총체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이 국가권력을 좀더 효율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하겠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그 안보는 누구를 위한 국가안보이며 누구를 위한 공공질서인가?
그들은 국가의 대내외적인 적들에 대해 영구적인 경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면서, 국내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물론, 현존하는 정치, 사회, 경제질서에 대항하는 모든 도전에 대처할 여러 가지 수단에 대해 언급한다. 결국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국가지도력, 제도, 자원 등을 동원하면서 전국민의 정치적 삶과 모든 면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는 세력은 당장 '공공질서와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 세력이 되어버리는 논리이다. 훨씬더 세련되고 지능적인 방식으로 선진국형 감시체제를 도입하고 이를 '공익'이라는 외피를 씌운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안티DJ사이트를 수사하겠다는 발상, 악성유언비어를 단속하겠다는 발상은 이런 국가안보논리에 기대어 파생한 것이다. '강력한 정부' '법체제와 원칙을 지키지 않을 시 명백히 처벌' '법치구현' 따위의 발언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b>싸우지 않고서는 지켜낼 수 없다</b>

구조조정에 따른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된 작년 노동절과 노동절대회를 기점으로, 경찰과 검찰의 집시법 개정이 추진되었으며, 공안대책협의회가 부활한 바 있다. 인터넷의 사용이 급증하면서 '통신질서확립법'을 통해 인터넷을 검열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정부에 대한 구조조정정책이 비난받자 악성유언비어를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증권사에서는 전지점에 통화내용 녹음시스템을 설치하여, 개인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까지도 녹음장치가 된 전화로 다시 받도록 강제한다. 생산공장에서는 출입구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출근, 퇴근, 지각, 조퇴, 외출 등 모든 동선을 감시하고 노동자들의 근무관리상황을 체크한다. 지문날인이 이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유전자은행 설립의 의도가 이와는 달리, 훨씬 더 공익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노동현장에서 인력관리의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진행되는 엄청한 노동통제, 감시가 남의 일로 생각되는가?

국가권력은 함부로 국민 개개인의 삶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다. 오히려 국가는 이러한 개인의 삶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방어하고 이로부터 개인을 보호해내야 한다. 국민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권리와 국민의 존엄성에 대한 효과적 보호가 뒤따라야만 한다.
유전자은행 설립, 통신질서확립법, 지문날인 등 대부분의 국가기관의 관리체계는 오히려 국민의 인권을 담보로 좀더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편리하게 국가권력을 휘두르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아무리 대비책을 마련한다 해도, 이에 따른 권력남용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개인정보의 유출은 그만큼 쉽게 국가와 자본에 의한 통제와 감시, 관리에 쉽게 인입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최근 진행되고 있는 규제와 통제의 제도화, 합법화는 이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신체, 표현, 언론, 출판, 결사, 종교, 학문의 자유권 등 국민들의 모든 자유권은 어떤 공권력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다. 법률에 의하지 않은 수사기관, 보호시설직원의 체포-감금, 압수-수색, 우편물 검열 및 전기통신감청, 사생활에 관련된 사진촬영, 비밀누설, 구금-보호시설수용자에 대한 징계, 처벌-폭행-위협-고문 등 뿐만 아니라, 수시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모든 인권침해행위에 대해 자각하고 싸워나가지 않는 한, 우리의 인권수준은 이대로 머물 수밖에, 아니 더욱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은밀하게 진행되는 개인감시에 대한 전면적인 제기, 이것은 강력한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온전히 자유권을 보장받기 위한 첫걸음일 수밖에 없다. 얻을 것은 전국민의 자유권이요, 잃을 것은 공권력의 규제·감시의 사슬일 뿐이다.
주제어
정치 민중생존권
태그
노동법개악 총파업 민주노총 비정규직 비정규노동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