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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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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정세를 조망한다

홍석만 | 편집실장
민주당 의원의 자민련 이적과 1996년 안기부의 총선자금 공방으로 문을 연 2001년. 2000년 밀레니엄의 축포와 함께 경제위기 극복의 자축이 이어지던 작년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세계경제위기를 출발로 하여 올해 한국경제의 위기가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오히려 자본과 정권은 경제위기를 볼모로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며 강력한 정부를 외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은 경제위기의 확산과 노동자 민중의 저항, 허구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의 기만성이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사건으로 폭로됨에 따라 외쳐진 비명일 뿐이다.
고조된 위기와 긴장감. 과연 2001년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의 2001년 정세전망은 세계경제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세계경제의 위기적 징후가 확산되고 나아가 한국경제의 위기감은 더 없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b>세계경제 위기극복, 세 마리 토끼를 잡아라?</b>

2001년 중 세계경제에 대한 전망은 너나 할 것없이 모두 비관적이다. IMF와 같은 초국적 기관이 내놓은 각국의 성장률과 세계교역신장세는 전년에 비해 절반가량 축소된 전망을 내오고 있다. 미국의 성장률은 2000년 5%에서 2001년 3%대로, 다시 최근 미 증시의 폭락과 구매지수의 하락으로 2%로 축소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역시 2000년 4%에서 2%대로, 유로지역은 작년 성장률 3.5%보다 더 낮게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전망마저도 미국경제의 연착륙과 유가하락, 한국과 동남아와 같은 신흥시장국의 금융, 외환시장의 안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반토막난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조차도 미국경제의 연착륙, 국제유가의 지속적 하락, 신흥시장국의 금융, 외환시장 안정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경제의 위기와 신흥시장국의 금융,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인가? 국제유가의 등락은 또 어디에서 기인하고 무엇이 문제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세 마리 토끼들은 과잉팽창된 금융자본이 투기처를 찾아 헤매면서 발생하는 현상이요 결과일뿐, 세계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진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과정에서 비록 단기적으로 이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물질적 성장 없는 금융적 팽창이 한단계 더 진척된다는 점에서, 그 성공이란 위기의 지연 즉, 더 큰 위기로의 심화라는 악순환의 연속적 고리일 뿐이다.


<b>세계경제의 위기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위기</b>

미국경제의 자본과 노동 생산성이 둔화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된 일이다. 몇 해전부터 클린턴 행정부에 의해서 주창된 신경제 역시, 미국내 지속적인 자본유입과 금융팽창의 결과로서 정보통신산업의 육성이 동반되었던 것이지, 그것이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하는 분석은 찾아 보기 힘들다. 사실상 정보통신산업 기반시설에 투자되었던 막대한 자본들을 끌어들이고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은 무역적자를 감소하면서도 강한달러 정책을 고수하였으며, 시장금리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미국내에 자본유입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관리해 왔다. (일부에서는 바이오산업의 생산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신경제론의 기반이 되는 정보통신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성장의 염원을 담은 자본의 구호일 뿐이다.)

따라서 미국경제의 연착륙을 위해 제시되고 있는 연방준비위원회(FRB)의 금리인하와 정부 재정지출의 확대 그리고, 조세감면 등의 정책 목표는 무엇보다도 증시 안정화를 통한 미국내로의 자본유입량의 유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경제의 연착륙 시도는 성공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로 세계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만약 미국경제가 연착륙에 실패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붕괴위기로까지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연착륙에 성공한다하더라도 그것이 수직하강이 아니라는 점에서 속도의 차이가 날 뿐, 경제성장규모의 축소를 야기하고 이윤율 하락경향을 더욱 부추기게 된다.

첫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제적으로 자본간 경쟁을 더욱 격화시켜 초국적 금융자본들의 대륙별, 국가별 포트폴리오 구성의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세계경제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경우, 초국적 금융자본들이 보다 안전한 투기처를 찾아 국제적인 방황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신흥시장국 경제가 더 악화되어 그 영향이 다시 미국에 파급될 것이다. 특히, 미국 자본시장에 종속된 한국과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국의 금융시장은 투자된 자본회수의 결과에 따라 상당히 동요하게 될 것이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신흥시장국의 경우 대규모 자본도피로 이어져 동남아 및 한국의 경제는 더욱 깊숙한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상존한다.

2000년 하반기부터 급속히 확산된 동아시아 국가의 금융과 외환시장 불안정의 원인에는 세계경제 특히 미국경제의 위기 징후의 확산과 동아시아 국가의 성장률 둔화에 기인하고 있다. 비록 단기외채의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금융시장 개방에 따라 외국자본의 비율이 급증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외환보유액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외환과 금융시장에 대한 방어의 노력은 거의 실익이 없어 보인다.

둘째, 초국적 금융자본은 신흥시장국에 대한 포트폴리오 구성변화와 함께, 현물시장에 상당부분 개입하여 여기서의 투기적 양상들 또한 가속화된다. 1997년 동아시아의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국제적 투기자본가인 소로스는 남미에서 밀의 투기를 시작하였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이 금융시장의 위축에 따라 현물, 선물시장도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 이와 같은 초국적 금융자본의 현물, 선물시장의 대표적인 투기 사례가 바로 국제석유시장이다.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은 1970년대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이를 불러온 OPEC 중심의 석유시장구조와 유가결정 방식을 현·선물시장중심으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OPEC은 1980년대에 들어서부터 내부분열과 시장수급에 따른 유가결정 방식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채 그 힘을 잃기 시작했다. OPEC을 중심으로 한 석유민족주의에 대한 대응으로서, 미국은 석유시장의 지배력을 초국적 금융자본의 영향력 하에 두었으나 국제유가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킨 결과를 나타냈다.

작년 하반기 유가급등 현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칙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는데, 국제석유시장의 총수요보다도 총공급이 많은 상태에서 석유가 급등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주요한 원인은 미국 등 주요국의 석유비축량 감소를 예상한 초국적 금융자본들의 석유투기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심리적 요인이 겹치면서 국제유가가 치솟았다. 미국이 유가폭등 당시 2억 3천만배럴에서 2억9천만배럴로 비축량을 증가시킴에 따라 국제유가가 안정화 국면에 돌입한 듯 보였으나, 다시 미국의 비축량 감소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등 국제석유시장의 투기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경제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따른 물질적 성장없는 자본의 금융적 팽창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또한, 이 위기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위기인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물질적 성장이 둔화되고 이윤율이 저하하면서 이루어진 금융세계화는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세계시장을 건설하였다. 결과적으로, 국제적인 수준에서 투기적 금융자본을 양산하였고, 자본간 경쟁을 격화시켰으며 이것이 다시 미국의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나아가 동아시아의 외환,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며, 국제유가와 같은 현물,선물시장의 투기화와 불안정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b>위기의 한국경제와 시장중심의 상시적 구조조정</b>

한국은행은 물론, 대부분의 재벌 연구소에서도 올해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작년의 절반수준으로 잡고 있다. 세계경제성장과 마찬가지로 한국경제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세계경제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한국으로서는 앞서 지적한 미국 경제상황, 국제유가, 동남아시아의 경제상황 등 그 어느 것 하나 전망을 밝게 해 주는 것이 없다. 여기에 반도체 가격폭락을 시발로 하여 철강, 컴퓨터, 자동차 등 수출주력 업종의 공급과잉에 따른 전반적인 수출둔화가 발생하는 등 벌써부터 불안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또한, 생산시설과 성장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생산에 대한 신규투자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금융자본의 상대적 과잉은 더욱 확산되고 투기적 양상이 지배하여 금융불안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구조조정의 결과와 관계없이 개별기업들은 신용경색으로 압박받게 된다. 현대그룹의 경우, 올해 지속적인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있고, 대우차의 처리의 여파가 확산되어 하청기업의 연쇄도산의 우려가 상존해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자본과 정권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미흡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 3년간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부실채권비율은 여전히 37%에 이르고, 상장기업의 부채비율 역시 206%에 육박하고 있으며, 노동시장은 60% 가까이 비정규직화 되었지만 OECD 가입국가 평가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경제위기가 확산될 전망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구조조정이 좌초되고 있는 원인으로서 기업가의 도덕적 헤이와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하는 김대중 정권의 민중주의적(popularism) 구조조정 그리고,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독점자본은 조속한 금융구조조정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과감한 시장중심의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를 잠재우며,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시킴으로써 투자자들에 대한 신뢰를 보여달라는 주문을 연초부터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그들의 이런 주문은 상시적 구조조정을 이룰 수 있도록 구조조정의 제도적 완성이라는 방향으로 모아졌다.

상시적 구조조정의 핵심은 (주식)시장을 통해 구조조정을 강제한다는 방식으로 기업투명성을 전제로 하여 주식시장의 참가자들이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고 이에 기반하여 구조조정을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즉, 필요한 경우 시장퇴출을 불사하는 구조조정을 감행함으로써 시장질서를 회복하고, 주식가치의 변동에 따라 끊임없이 기업에게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중심적, 상시적 구조조정의 제도화를 위해 자본과 정권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동법 개악과 연·기금을 통한 금융시장 확대방안과 2단계 외환거래 자유화 조치를 감행하고 있다. 노동법 개악의 경우, 지난 몇 년간 지속되어온 과정으로서 정리해고제 도입에 이어 유급주휴일 폐지, 생리휴가 및 월차 폐지, 변형근로시간제 등의 개악을 고려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말 연·기금의 주식시장 투자비율의 확대를 시발로 하여 40조에 달하는 연·기금 운영자금을 주식시장에 투자하도록 하는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고 올해부터 2단계 외환거래 자유화 조치로 외환시장의 문턱을 모두 없앴다.


<b>구조조정에 따른 위기의 확대 심화</b>

이러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한국경제의 위기극복의 대안과 전망을 보여주고 있는가? 앞서도 언급했듯이 현재의 구조조정은 선도산업의 재편과 같은, 성장을 고려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자본의 신규유입을 목표로 하여 이루어진다. 금융시장을 개방하여 문턱을 낮추고 기업 투명성을 강화하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공기업과 기간산업까지 (해외)시장에 내놓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여 비용 절감을 유도하는 것도 초국적 금융자본의 유입량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결국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금융세계화의 편입에 맞춰 초국적 금융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도록 그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위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국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금융세계화의 진척은 경제위기를 반복적으로 야기할 뿐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이는 마치 소화불량에 걸린 환자에게 밥을 더 많이 먹으라는 꼴과 같다. 더 이상 팔아먹을 공기업마저 없어진 남미의 비극적인 사례가 보여주듯이, 지속된 구조조정은 지속된 경제위기와 극도의 빈곤을 낳게 된다.
특히, 올해 2단계 외환거래 자유화조치에 따라 한국의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질 전망이다. (2단계 외환거래 자유화는 IMF와의 정책협의회의 결정사항으로 강제집행의 성격을 띨 뿐만 아니라 재벌들의 경제연구소에서도 2단계 외환거래 자유화조치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고 올해 경제상황에서 대단히 위험한 조치라고 경고한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한국유출입은 물론, 국내자본의 해외출입 또한 거의 제한없이 개방되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위기상황 속에서 미국경제와 동남아시아의 경제 상황에 따라, 극단적인 경우 한국 내에서의 자본도피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한국 내에 들어온 외국자본의 철수는 물론, 국내자본의 해외도피까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위기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로서 심화되어 발전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시장중심의 상시적 구조조정을 주문하는 것은, 격화되는 자본간의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국내 독점자본의 요구로서, 초국적 금융자본과의 공통된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 그 결과로 소수의 독점자본이 생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 민중의 삶은 파탄나고 한국경제의 불안정은 더욱 심화되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을 야기하게 된다.


<b>신자유주의 개혁의 위기 </b>

바야흐로 신자유주의 개혁은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IMF 3년간 김대중 정권은 금융, 공공, 기업, 노동 등 4대부문의 구조조정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단행하였다. 정치적으로도 국가보안법 개정과 국가인권기구 설치를 약속하는 등 개혁입법의 의지를 높여왔으며, 1999년말부터 본격화된 개혁공세는 2000년 총선까지 이어져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의 정치개혁 바람을 등에 업으며 정국반전의 계기를 도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공세는 3년간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가 오히려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그에 따른 민중들의 생존조건이 악화됨에 따라 민심이반 현상이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신년 초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대중에 대한 지지도는 20%를 배회하고 있다)
유가와 의보수가가 인상되고 각종 물가가 오르고 있지만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정부통계로도 실업인구는 100만명을 넘을 예정이며 구조조정의 강화에 따라 불안정 노동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비록 부침이 있지만 금융, 공기업, 중소사업장에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파업과 노동자들의 저항은 끊이지 않고 있고, 농촌경제의 파탄이 야기한 농가부채의 급증으로 급기야 농민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의사폐업사태, 금융파업, 한빛은행 완전감자 등 중산층의 이반까지 심화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개혁이 위기를 맞으면서 지배세력의 정치적 균열이 확산되고 그 과정에서 자본과 정권의 부패성 또한 낱낱이 폭로되고 있다. 한빛은행 대출외압사건, 정현준-금감원-동방금고-정치권으로 이어지는 부패 커넥션, 진승현과 정치권의 결탁이 연이어 폭로되는 등 구조조정과 금융개혁 그리고 벤처기업육성이 얼마나 부패하고 기만적이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b>계급갈등의 의제적 관리</b>

이러한 개혁주의가 위기를 맞자 김대중 정권은 다시 '강력한 정부' 운운하며, 의원 꿔주기를 통해 새로운 DJP공조를 형성하고 있다. 신DJP공조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위기와 정치적 균열의 가속화에 따른 정치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1997년 수권을 위한 DJP공조와는 의미를 달리한다. 한편으로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반이회창연대를 확산시키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힘의 논리로 제압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행하겠다는 정치적 구상인 것이다. 결국 김대중 정권은 기만적 개혁주의의 가면을 벗고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적대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개혁의 한계와 모순이 폭로되면서 계급갈등에 대한 관리방식의 변화가 예고된다. 이는 시장중심적 구조조정을 강조하는 모습에서도 그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지난 3년간의 구조조정의 역사 속에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대칭적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의 강제'라는 방식은 정권 또는 개별자본가에게 돌아오는 구조조정의 저항을 희석시키고 구조조정의 주체를 시장이라는 익명의 주주들로 분산시키게 된다. 그 결과 시장의 이름으로 구조조정에 대한 대의명분을 획득하고, 구조조정에 따른 제반 문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전가시키고 은폐하려는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의 변화와 김정일 위원장 방남에 따른 반공·반북주의자들의 준동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남-남갈등의 관리 그리고, 개혁입법을 둘러싼 보수주의와의 갈등을 조절하고 통제하면서, 체계적으로 민중들의 불만을 이러한 정치적 역학구도내로 수렴시키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지배세력은 신자유주의 재편과 이에 따른 민중들의 생존권적 위기가 계급갈등으로 표출되는 것을 체계적으로 봉쇄하기 위하여, '반공·반북' 대 '통일', '개혁' 대 '수구', 구조조정이냐 경제위기냐라는 의제적인 갈등구조를 형성하여 이의 정치적 해결로 계급갈등을 대리표출하고자 한다.


<b>통일드라이브의 형성과 남-남갈등의 관리</b>

올해 최대의 정치적 변수로 작용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방남과 남북정상회담의 개최여부는 경제위기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통일에 대한 정치적 전망과 상호대차 시키고자 할 것이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의 방남 논의에 따른 보수세력의 준동을 이용, 남-남갈등을 부추겨 신자유주의 개혁의 모순을 은폐시키고자 할 것이다.
이미 남북간의 상호교류는 1월의 남북이산가족 생사 확인, 2월 3차 남북이산가족 방문단 상호교환, 3월 이산가족 서신교환과 5차 남북 장관급 회담, 북측 한라산관광단 방남으로 이어지면서 상반기 중 김정일 위원장의 방남과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돌발적인 변수 즉,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따른 미국 부시행정부의 태도변화와 북한 핵동결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북의 태도변화 등 동북아지형 자체의 불확실성이 작년보다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클린턴 행정부하에서 이루어진 북한 핵동결조치와 미사일협상의 취약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재향군인회 등이 김정일 위원장의 방남을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가진 바 있듯이, 반공·반북주의의 기반이 작지 않은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방남은 그 이전부터 찬/반 논쟁이 정치적으로도 치열하게 전개될 조짐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남이 성사되건 그렇지 않건간에, 방남이 이야기되고 전력개발 비용과 기술 및 자원 제공에 대한 조건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이를 둘러싼 의견들이 팽팽히 대립될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정권은 반공-발전주의와의 정치적 결탁을 통해 이러한 갈등을 관리하고 조절해 나가리라 예상된다. 때문에 지금에 있어서 DJP공조는 단순히 원활한 정국운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남갈등의 관리를 위한 반공-발전주의와의 정치적 결탁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상반기에 예상되는 강력한 통일드라이브 속에서 반공-발전주의진영을 압박하고 고립시켜 나가기보다는 이들과의 정치적 거래를 통한 반동적 권력재편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 고리가 내각제 또는 정·부통령제 개헌일 수도 있고, 김정일 위원장의 방남과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후 국가연합 또는 낮은단계의 연방제안에 대한 국민투표와 함께 가장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실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b>개혁의 부차화와 동북아 패권주의의 부상 가능성</b>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이 정권은 언론개혁과 국가보안법, 국가인권기구, 부패방지법 등 개혁입법에 대한 의지를 다시 천명하고 있다. 이처럼 올해에도 계급갈등 조절의 의제적 기제로서 소위 개혁(입법)을 둘러싼 공방을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지난해 개혁입법 추진과정에서 386세력이 주축이 된 '개혁입법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과 총선시민연대의 맥을 잇는 '시민사회개혁연대'의 묵계가 형성된 점 역시, 올해 개혁입법을 둘러싼 정치지형에서 중요한 흐름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개폐와 국가인권기구 설치는 3년을 끌어오면서 어떠한 전향적 조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DJP공조 강화 속에서 개선의지조차 의심되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3년동안 노동자 민중의 지속적인 국가보안법 철폐투쟁과 국가인권기구 설치에 대한 정권과의 공방 속에서 오히려 이들의 기회주의적 성향은 가감없이 폭로되고 있다. 따라서, 몇몇 개혁 법률의 보완적 입법화와 시민단체를 동원한 개혁공방를 통해서 그 이미지를 유지하려 하겠지만, 작년같은 수준의 개혁공세라기보다는 이를 부차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한편, 개혁주의를 대신하는 것으로, 정권은 남북관계의 진전과 함께 지역주의에서 동북아주의로의 정치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고자 할 것이다. 작년 ASEM과 APEC 정상회담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의 외교적 노력에 이어, 올해 남북관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동북아 팽창주의적 정치패러다임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정권은 이미 상반기 APEC 정상회담 참가와 9월 유엔총회에서는 의장국 출마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반도 통일의 전망과 동북아 구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지역주의를 공격하는 정치적 차별화를 강화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동북아로 민족의 웅비를 위한 경제위기의 고통분담'이라는 온갖 국수주의적 구호를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b>노동자 민중운동의 과제</b>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위기이자 지배세력들의 정치적 위기이다. 때문에 강력한 정부를 외치면서도 부르조아 정치권의 내부균열은 날이 갈수록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그 속에서 부정부패로 얼룩진 민주당 정권과 한나라당의 추악한 모습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세계경제의 위기와 함께 국내적으로도 대우차 처리, 현대의 유동성 문제 등 기업의 신용경색에 따른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남북관계 또한 지뢰밭을 헤쳐나가야 할만큼 불확실성이 높다. 설혹 김정일 위원장의 방남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통일드라이브는 오히려 국민들의 무관심속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더 크다. 게다가 경제협력에 대한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고 보면, 통일드라이브의 물질적 조건 또한 대단히 취약하다. 결국 경제위기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통일공세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정권재창출의 한가닥 혈로를 찾기 위한 정권의 몸부림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지속과 노동자 민중의 저항투쟁이 거세지고, 통일공세의 무관심속에서 개헌이나 정계개편은 시도되지도 못한 채 주저앉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게다가, 소수의 독점자본과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기반한 구조조정은 심화된 경제위기를 다시 가중시켜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기보다는 오히려 공격과 수탈을 강화함으로써 정권의 반민중적인 성격을 더욱 노골화시켜 지배세력과 노동자 민중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권은 경제위기를 볼모로 노동인력에 대한 삭감과 노동권에 대한 축소를 요구하며 또 다시 고통분담을 요구해 올 것이며, 이에 따라 노동진영 내부에서도 노사정 합의와 같은 합의주의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개량화된 노동운동진영은 물론, 신자유주의 시민운동과 친정부적 통일운동세력과 연계하여 각종 의제적인 정치관리 기제를 동원하여 계급대립을 왜곡, 은폐하고 교란시켜 나가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2001년 정세 속에서 요구되는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의 과제는 우선, 경제위기극복의 대안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아님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구조조정의 가속화가 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발본적인 인식이 요구된다.

둘째, 시장중심의 상시적 구조조정을 파탄내기 위한 노동진영의 총대응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 대응은 구조조정분쇄, 노동법 개악저지로 집약되어야 한다. 앞서 밝힌 바대로 상시적 구조조정은 국내 독점자본과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해일 뿐, 민중의 이해와는 거리가 멀고 한국경제의 위기극복과도 관계가 없다. 또한, 자본과 정권은 구조조정의 상시화와 제도화를 위해 올해 상반기 중 노동법 개악을 시도할 것이다. 이것이 노동시간 단축 또는 전임자 임금지급 등과 맞교환하는 조건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만큼, 선택의 문제로 다가가서는 안되며 구조조정 반대투쟁으로서 노동법 개악저지를 위해 한치의 흔들림없이 총력 대응해야 한다.

셋째, 세계경제의 위기에 따라 강화된 제국주의적 수탈체제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요구된다. 우선, 국제무역기구(WTO)가 올해 하반기 재출범을 목표로 농업, 외무, 재무장관들의 연쇄회담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민중의 계속된 투쟁으로 좌초된 한·미/한·일/한·칠레 투자협정 체결 역시 올해에도 끊임없이 추진될 것이다. 앞서도 밝혔듯이, 현재의 세계경제 위기의 책임은 초국적 금융자본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제국주의 세력에 있다. 따라서 세계경제위기의 책임을 또다시 전세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는 이들의 책동을 분쇄하기 위해 노동자 민중의 지구적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매향리국제폭격장과 주한미군철수투쟁, 소파협정 개정 등 정치군사적인 측면에서 진행된 반제투쟁 역시, 투쟁의 수위와 국제적 연대의 범위를 한층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도 노동자 민중은 반신자유주의, 반김대중의 기치를 분명히 것이 요구된다. 이제까지 신자유주의 반대와 김대중 정권반대를 구호로만 외쳤을 뿐, 이를 조직하기 위한 주체의 불명확함과 각종 교란요인들로 인해 노동자 민중의 투쟁전선은 약화되어 왔다. 우선 올해는 투쟁의 양적, 질적 확대를 도모하고 생존권 사수투쟁을 정치전선으로 단일화하기 위한 다각도의 의식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반대, 생존권 쟁취의 전국적 대중투쟁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상설공투체 건설에 매진해야 하고 중단없는 국가보안법 철폐투쟁과 민주주의 쟁취투쟁을 통해 김대중 정권의 기만적 개혁주의와 야합으로 이루어진 DJP공조의 반민중적, 반민주적인 성격을 폭로하고 규탄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 민중이 그동안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깨달은 것은 현재의 지배세력이 한국사회의 전망을 보여줄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한국경제와 노동자 민중의 삶은 파국인가, 아니면 더 큰 위기로의 심화인가하는 기로에서, 오직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진출과 각성만이 오늘의 이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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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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