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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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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잡기 전에 눈과 귀를 열라

최근 한겨레 보도에 대한 짧은 보고서

이승철 | 회원,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편집국
<b>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b>

두 언론사의 자존심을 두고 3억의 판돈이 뿌려졌다.
동아일보사는 1월 2일자로, <한겨레21> 제333호 표지이야기 '족벌언론 황제, 브레이크가 없다'와 관련해 한겨레신문사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3억원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의 쟁점은 동아일보의 소유구조문제, 고려중앙학원 소유땅 정부 매각문제, 충정로 사옥 정부매입 청탁문제 등 그 숫자만도 여러 가지이다.

한겨레는 <한겨레21>의 보도가 "동아일보가 불편부당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훌륭한 언론이라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를 바라는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라며 "언론개혁 차원에서 본지를 포함, 전사적인 입장에서 대응하겠다"며 일전을 벼르고 있다. 한겨레의 결의결사가 담긴 '출사표'는 숙연해 보인다. "정확한 사실관계에 대해, 실제상황과 다소 다른 점이 있다하더라도 기본적인 맥락과 전체적인 흐름에는 차이가 없다'며 한겨레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했다는 논지다. 그러나 언론사간 벌어지는 이 희대의 소송에 정작 나는 관심이 없다.

이는 한겨레가 그동안 언론개혁에 투구해 온 노력과 열정을 폄하해서도 아니고, 동아일보의 족벌소유구조의 문제를 가벼이 여겨서도 아니며, '족벌'과 '국민주' 언론사 사이의 이 싸움이 나와 아무런 상관없다는 무관심의 표현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다만 한겨레에 묻고싶을 뿐이다. 족벌언론이 불러오는 여론조작의 폭력과 한겨레가 지면에서 휘두르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칼날이 경중을 따질 수 없을만큼 비등한 것임을 모르고 있는지 말이다. 타사의 '명백한 오류'에 대해 메스를 가하는만큼의 이성과 시선을, 자신의 매체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는 없는지를 말이다.


<b>신자유주의와의 전선을 명확히 하자</b>

지난해 11월 30일 채권국 일변도의 금융·통화체제를 채권-채무국 쌍방향 체제로 전환하려는 목적으로 열린 '2000 대구라운드 포럼 - 세계화 축복인가 재앙인가'에서 'IMF위기 이후 한국 구조개혁조치,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초청토론자로 나선 김성구 교수는 자신의 발제문인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아홉 테제'에서 현재의 위기와 개혁을 둘러싼 3개의 전선론을 주장했다. 김 교수는 현재 형성된 3개의 전선으로 △재벌에 대항하는 DJ 신자유주의(또는 독일 신자유주의)와 진보진영의 연대전선 △DJ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재벌과 진보진영의 연대전선 △재벌과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진보진영의 대항전선을 꼽았다.

김 교수는 이어 "물론 세번째 전선만이 진보진영의 올바른 대응방향"이라고 풀이했다.
김 교수는 또 "독일형 신자유주의 모델이 영미형 신자유주의 모델에 비해 온건하고 민주적이라 할 지라도 양자는 모두 신자유주의로서의 공통의 특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그것은 종속적 신자유주의로서의 성격을 공유할 것"이라면서 "신자유주의 모델은 국가동원적 종속적 발전모델과 비교해서 그래도 진보적인 대안이라 할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나쁜 발전모델이라고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1999년 개최됐던 첫 포럼에 비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이번 대구라운드. 그러나 진보로 포장된 신자유주의 진영과의 명확한 전선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2000 대구라운드 포럼은 의미있었다고 하겠다. 자, 이제 같은 맥락에서 다시 한번 한겨레를 읽어보자.


<b>한겨레가 보이는 경제현안 분석의 관점</b>

한겨레는 지난해 연말 '해 넘기는 경제현안' 시리즈를 게재했다. [대우차 사태]에서부터 [자금경색 해소]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연재된 이 시리즈에 대해 한겨레는 "2001년 한국경제가 제2의 외환위기라는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경제불안요인들을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면서 "올해 풀지 못해 내년에도 시련을 줄 숙제들을 정리해 본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이 시리즈의 첫번째인 [대우차 사태]에서 한겨레는 "진통 끝에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고 노사합의서 제출, 공장가동 재개로 힘겹게 일어섰지만, 노사간 불협화음, 협력업체 연쇄부도 우려, 매각작업 부진 등 곳곳에 불씨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겨레는 정부와 사측의 구조조정 방침과 매각협상자인 GM의 입장을 비롯한 해외매각 관련 내용을 서술했다.

한겨레는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사측 관계자의 '절박한 사정'을 인용하면서 판매저조, 부품업제 붕괴위기 그리고 '노조의 극렬한 반발'을 사태 해결의 어려운 조건으로 꼽았다. GM이 인수를 포기할 경우 "국내외 인수업체 물색, 독자생존, 청산 등 세갈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따뜻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노조가 전체 직원 1만9천명의 1/3 규모에 달하는 6천8백46명에 대한 정리해고 방침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도 일방적 구조조정 불가에 대한 노사합의가 있은 이후의 일인데다가, 대우차 사태의 근본적 책임이 김우중 전회장과 경영진의 부실경영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 사회적 상식이다. 협력업체의 부도까지 들먹이며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이 져야만 한다는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노조가 덮어놓고 '반대'만 외치고 있는 상황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이미 노동계의 비중있는 주장으로 자리잡은 '공기업화론'이나 조합의 주장에 대해 한겨레는 아무런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는 회피한 채 매각·자립·청산의 세가지 선택만을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이 시리즈를 통한 한겨레의 논리는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추진 미흡에 대한 비판과 규제개혁을 요구하는 전경련의 입장을 인용하며 마무리 한 [위기의 산업들]을 거쳐 여섯번째 [공기업 민영화]에서 극에 달한다.

정부의 올 한해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대한 평가와 과제, 쟁점 등을 중심으로 쓰여진 이 기사에서, 한겨레는 "1999년 현재 11개 민영화 대상 공기업 가운데 6개가 끝난 셈"이라면서 "숫자로 볼 때 올해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또 "담배인삼공사와 한국통신 등 거대 공기업들은 민영화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며 그 이유로 '노조 파업'을 지적했다. 아울러 한겨레는 "전력통신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매각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했다는 것 정도가 성과라면 성과"라고 적시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공기업 민영화 논리의 위험성과 제기되고 있는 부작용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국부유출논란' 등으로 국한해 전달했다. 국가기간산업인 공공부문 사업의 성격이 갖는 특질과 이에 대한 경제논리 적용의 위험 등에 대한 논쟁은 기실 올 한해 구조조정을 둘러싼 논의의 중심에 서 있었고, '해를 넘겨' 치러질 투쟁사안이다.

한겨레 스스로가 이야기한 바와 같이 '올해 풀지 못한, 그래서 내년에도 풀어야할 숙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한겨레는 이에 대한 찬·반보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일정을 중심에 뒀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공공연맹과 정부의 '의지성 발언'을 간략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b>한겨레는 누구를 대변하는가?</b>

지난해 말 추운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금융파업에 대한 한겨레 보도 역시, 생각할 지점을 많이 남겼다. 한겨레의 모든 기사(은행파업 양쪽 전략은 : 12월 26일 3면, 국민·주택은행 정상화 불투명 : 12월 28일 1면, 정치권 움직임/여 '흔들림 없이 추진' 대책협의 : 12월 28일자 3면, 민주 최고의원 '금융파업 3인3색 : 12월 29일자 5면, 금융노조 파업유보 안팎/은행들 동조약화 한몫 구조조정 급물살 예고 : 12월 29일 2면 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만두자. 하지만 23일자 기사 '국민주택 합병의미 전망/금융권 지각변동 신호탄'은 살펴볼 만하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두 은행의 합병으로 한미·하나은행도 본격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은행들도 자체 경쟁력 향상이나 은행간 통합을 통해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어 한겨레는 "두 은행의 합병은 투자수익을 노리는 외국계 투자가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라며 금감위 관계자의 말을 빌면서까지 긍정적 효과를 포장했고, 노조의 반발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다루면서 시너지효과를 걱정한다.

"노조의 반발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는 비용이 합병의 효과를 줄이지 않는다면, 선도은행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라는 친절한 해설도 빼놓지 않았다. 초반 도입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합병의 긍정적인 측면을 주로 다룬 4,559자에 이르는 이 장문의 기사는 김상훈 국민은행장과의 일문일답으로 마무리됐다. 노조가 주장한 '부실주범 관치금융 청산과 7.11 금융노정 합의이행' 주장은 도대체 어디로 숨었는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한미·하나은행간의 합병은 한미은행 대주주인 칼라일 컨소시엄이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 의심이 간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제출,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다.
게다가 합병 반대가 노조만(!)의 주장도 아니다. 컨설팅사인 Bain&Company의 보고에 따르면, 은행간 합병 중 성공하는 경우는 25%에 불과하다. 기업금융과 개인금융의 융합도 아니고, 국내영업과 해외(외환)영업의 융합도 아닌, 단순히 개인금융시장을 석권하는 두 공룡을 합쳐놓는 것은 외형상 정부가 구상하는 세계 100대 은행으로 구현될 수는 있겠지만 실제적인 효과측면에서는 극히 부정적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나 일련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실속'보다는 '외형'에 치우친 정리해고·성과 중심의 구조조정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 다루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22일 한겨레 지면에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한겨레는 이 날, 경제면(22면)에서 '법정노동시간 단축/중소업체 57% 시기상조'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465자의 이 기사에서 한겨레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조사 결과 중소제조업체들은 법정노동시간 단축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인건비 상승 등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를 부정적 의견표출의 이유로 꼽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같은 날 민주노총이 발표한 주5일 근무 촉구 보도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노총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노사정위가 21일 간사회의에서 노동시간 단축 논의시한을 올 2월로 미룬 것과 관련, "정부는 대통령이 공언하고, 노동부장관이 약속한 주5일 근무법안 연내 국회제출 약속을 즉시 이행하여, 노동조건 후퇴없는 주5일 근무법안을 올해 안에 국회에 제출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인권보도에 대한 후퇴도 마찬가지였다.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은 11일자 보도에서 한겨레가 △지난 5일 '재소자 편지발송 왜 막나, 법무장관 상대 1000만원 손배소'(상자기사, 17면) △지난해 12월 27일자 대법원 판결내용을 다룬 '박종철씨 고문경관 배상책임 확정판결'(1단 기사, 18면) △같은 날짜 수도권면(17면)에 실린 수원지법 항소심 판결 '불법연행 항의 몸싸움은 정당방위'(2단 기사) 등의 기사에 대해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을 볼 때 비중과 의미가 있는 내용들임에도 불구하고 소홀하게 다뤘다고 지적했다.


<b>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b>

'말'지 1월호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렸다.
'말'지에서 김성구 교수는 '한겨레신문, 신자유주의로 우향우 했다'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한겨레의 신자유주의적 편집방향과 여론조작을 비판했다. 쓰기 쉽지만은 않은 위치의, 김 교수가 쓴 기고문에 대한 한겨레 내부의 평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연찮게 지나치다 만난 한 한겨레 기자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그야말로 실망스러웠다.
'말지 김 교수 글에 대한 한겨레 내부의 분위기는 어떤가'는 질문에 대해 그 기자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이어 "'우리가 무슨 신자유주의 신문이냐'며 반박하는 분위기도 있고,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기자들도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야말로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언제부턴가 한겨레 내·외부에서 터져나오는 불만들에 대해 침묵으로 외면하거나 일정정도 무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기자들의 반응을 설문조사 해 통계자료화 한 것도 아닐뿐더러, 내부 구성원 중 한명의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다. 솔직히 그러길 바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로는 들리지 않는다.

한겨레의 창간에는 정권과 자본에 대한 저항이 새겨져 있다. 올바른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이에 대해 건강한 시각을 균등히 보도해야 하는 것은 모든 언론인의 이념이며, 한겨레의 경우, 더욱 그러해야 한다.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와 투쟁하는 민중들의 함성이 담겨있어야 하며,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정론만을 펼치겠다는 창간이념이 살아 숨쉬어야 한다.

한겨레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따뜻함 속의 냉철한 비판, 비판 속의 소통과 변화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변화된 편집과 균형잡힌 시각, 정론의 함성을 보게되리라 믿는다.
주제어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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