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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8.11-12.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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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와 동아시아

백승욱 | 공동운영위원장
세계 금융위기와 동아시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의 위기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끝이 어디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긴급한 반복적 국가 개입에 의해 일시적으로 위기가 완화될지 몰라도, 그 대가로 미국 금융위기의 효과가 전 지구적으로 파급되면서 세계경제 전체가 동요하고 있는 국면이다. 특히 달러 흡입을 위한 미국의 강력한 개입이 커지면서 미국을 제외한 여타 지역의 달러부족 사태가 심각해지고, 또 미국의 소비시장 위축과 투자 위축으로 인한 경제적 여파가 여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본격 폭발하기에 앞서 이미 경기침체 상태에 들어선 유럽지역은 달러화 대비 유로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미국 경제위기의 부담을 크게 떠안는 국면에 들어서고 있으며, 동아시아 지역 또한 미국 경기침체가 수출시장에 끼치는 효과 때문에 상당한 위기적 상황을 보이고 있다.
현재의 미국의 금융위기의 발발은 금융세계화의 조건 변화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특히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 상황과 대비되는 2000년대의 미국 중심 금융세계화는 금융위기의 폭과 심도를 더욱 확대하면서 새로운 면모를 띠고 있다. 1990년대 미국의 금융적 팽창은 주로 초국경적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유럽에서 유입되는 자본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낸 주식시장의 거대한 거품을 기반으로 하여 진행되었다. 1998년 주식시장의 거품이 극대화된 시점까지 진행된 이 과정에서 주식시장과 또한 거기에 의탁한 정보통신기술(IT)은 ‘신경제’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는 또한 급속하게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된 시기이기도 한데, 이 적자는 미국으로 계속 유입되는 달러에 의해 상쇄될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 신경제의 바탕을 이룬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주식시장이 과거와 같은 호경기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금융적 팽창은 새로운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초저금리 시대를 맞이하여, 낮은 금리에 기반을 둔 금융화한 자본은 대대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흘러들어 부동산 거품을 형성하였다. 여기에 부동산의 모기지 채권을 상품화하는 기법들이 결합해 파생상품들을 낳기 시작했고, 이는 회사채나 여타 부채를 유동화해서 판매하는 새로운 기법들과 결합해 파생상품 시장을 거대하게 팽창시켰다. 주택담보부증권(MBS), 자산담보부증권(ABS)과 이를 투자은행이 재가공한 부채담보부증권(CDO), 그리고 대출 위험에 대한 보험 장치로서 대대적으로 성장한 신용파산스왑(CDS) 등의 파생상품 시장은 위험을 분산한다는 최초 목적을 벗어나 그 자체로 금융적 위험성을 대대적으로 증폭시키고, 그에 대한 근본적 치유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금융시장을 몰아갔다. 가공자본의 위험성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현재의 미국 금융위기는 국가의 개입에 의해 그 폭발이 지연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의 미국의 국가의 개입이 아직까지 타 지역에 대한 미국 경제의 우위 그 자체를 침식하지 않고, 미국 경제를 어느 정도 유지시켜갈 수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이 세 가지 점은 미국의 헤게모니적 지위가 쇠퇴하기는 하지만 아직 종료되지는 않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첫째는 미국이 달러라는 기축통화의 발권특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은 이 특권을 활용해, 엄청난 무역적자와 대폭 증가하는 재정적자가 있음에도 통화 인플레이션 없이 경화부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데, 특히 해외로부터 달러를 대대적으로 흡수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그 주요한 메커니즘이 된다.
둘째로 여타 통화에 대한 달러의 신뢰가 근본적으로 손상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기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자본이탈이나 달러로부터 금으로의 투자 이탈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 이것이 유로에 대한 달러의 상대적 우위가 관철되고 있는 현 상황이 보여주고 있는 바이며, 미국의 국가개입을 통한 위기해소 메커니즘이 아직도 작동하게 되는 배경이다.
셋째로 특히 2000년대 들어서 미국의 이중 적자를 메워주고 있는 것으로서 동아시아 외환보유고 증가에 기반을 둔 달러환류 메커니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이 또한 미국의 경제적 부담을 타 지역으로 이전시키는 중요한 메커니즘이 되고 있다.
현재 위기는 이런 미국의 우위를 곧바로 침식시키기보다 당분간 유지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 지속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동아시아이다. 현재 금융위기의 상황에서 동아시아와 미국의 연관성에서 중요한 부분은 미국 금융위기의 부담이 어떤 방식으로 동아시아로 이전될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미국의 경제를 지탱시키기 위한 동아시아로부터의 달러환류가 지속될 것인지 문제고, 이는 결국 여타 지역의 정책적 공조-지원에 의해 유지되는 미국의 위기가 어떤 한계에 봉착할 것인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금융위기 전후의 동아시아 경제

미국의 경기침체의 효과는 여타지역에 동시에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한편에서 미국 소비시장의 위축 때문에 미국으로의 수출이 대폭 줄어드는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경제의 위기를 직접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함으로써 그 효과를 전 지구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는 대체로 1997년 금융위기를 전후로 해서 1990년 전반기에 비해 저조한 성장세를 보이다가, 이 상태가 20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후, 2005년 이후 다소의 회복세를 보인다. 우선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을 신흥공업경제(NIEs)와 ASEAN4(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로 나누어 살펴보면, 두 지역에서 경제성장률은 1991-1995년 각각 7.3%와 6.8%였다가, 1996-2000년 시기에는 급격히 하락하여 각각 4.8%와 1.9%를 기록하였고, 2001-2005년에도 크게 회복되지는 않아 각각 4.1%와 4.8% 수치를 보였다. 다만 최근 3년인 2005-2007년에는 각각 5.2%와 5.6%로 지난 10년간에서는 가장 호전된 국면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변동 자체는 미국의 경기변동과도 일정한 관련성을 보인다.
그러나 2007년 말경부터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금융위기 이후 이 지역 국가들은 경상수지 균형과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2007년 12월 한국의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되어 그 후 계속 적자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ASEAN4도 경상수지 흑자가 축소되다가 2008년 4-6월에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소폭 적자로 전환되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90년대 말 위기에서 벗어나 있던 베트남에서 무역수지 적자가 크게 늘어나는 동시에 통화가치 하락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봄부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인플레이션의 가속화와 대폭적인 대외 수지의 악화가 일반적인 추세로 관찰되는데, 이런 상황 변화의 배경에는 국제적인 자원가격 상승이 놓여 있다. 이 지역 국가들이 자원의존국들이 많고, 에너지 효율이 낮기 때문에 국제적인 자원가격의 상승은 생산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전반적인 인플레이션과 무역수지 악화를 초래했다. 특히 과거에는 자원비용 상승이 자원생산국에 대한 수출증가를 통해 어느 정도 그 효과가 상쇄되어, 무역수지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작았던 반면, 최근의 변화는 유가 인상 뿐 아니라, 광물, 농산품을 포함한 일차산품 전체로 가격인상이 확대되면서 그 파급력이 훨씬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1)
최근의 경기침체라는 흐름은 일본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 일본은 2002년 2월에 시작된 경기회복 국면이 2007년 4/4분기에 종료되고 침체국면에 들어섰다. 일본 또한 동아시아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자원가격 상승의 직접적 영향을 겪고 그 때문에 교역조건이 악화되었으며, 두 번째로 미국의 경기 악화가 대미수출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일본경기에 영향을 다시 끼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08년 10월에 일본은 무역적자를 기록하였으며, 11월 현재로 일본은 두 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거품붕괴 이후의 가장 심각한 경기침체 상태를 겪고 있으며, 2009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중국은 다소 이례적이어서 여전히 여타 국가들에 비해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성장률 추세는 최근 들어 점차 둔화되고 있다. 2008년 3분기까지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9.9%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9%보다 상당히 하락하였고, 5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내년에는 더 낮아져서, 경제성장률의 예측치는 8.6%로 이야기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는 미국의 경제위기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데다 인민폐의 지속적 절상 등의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도시-농촌 간 인구이동에도 변화가 발생하여,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농민공들이 도시의 일자리부족으로 다시 농촌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기도 하다.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과거 몇 년간 빠른 속도로 단기외채가 증가하는 문제도 관찰되는데, 특히 이는 한국에서 두드러진다. 단기외채는 2006년 중반까지는 1천억 달러 이하였지만, 2006년 후반에 1천억 달러를 돌파한 후, 2008년 들어서는 1700억 달러 수준을 넘어섰다. GDP 대비 단기외채 비율 또한 2008년 6월에 18.1%로, 1997년 금융위기 시절(1997년 6월)의 15.4%를 넘어서고 있으며, 이것이 금융에 대한 신뢰를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단기외채가 늘어난 주요한 이유는 금융기관, 특히 외국은행의 한국 지점에서의 차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었다.2)
동아시아는 여전히 세계의 제조업 중심지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는 1990년대 말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1990년대 말의 위기를 동아시아 지역이 돌파할 수 있던 주요한 이유는 미국의 소비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인데, 2000년대 들어 특히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추가해 가계적자라는 틀을 통해 여타 세계로부터 미국으로의 수출이 지속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메커니즘을 지탱해 준 미국 자체가 위기에 처한데다, 이와 결합해 자원가격 상승이라는 위기요소가 증폭되면서 동아시아 지역은 미국에 연계된 수출지향 경제라는 이전의 구도를 지속시켜 가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자원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이번에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여파 때문에 대대적으로 소비시장이 위축되어, 이 또한 수출 증가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경기침체를 더 촉발하고 있다는 난점에 봉착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기본적으로 자체 소비시장 확대보다는 미국 소비시장 확대에 기반해 경제성장을 유지해 온 지역이며, 이로 인한 무역흑자 증대-->환율절상의 압력이 발생해도, 이를 다시 임금억압을 통해 돌파하고 또 다시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을 통해 이를 해소하려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발 경제위기는 이런 한계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금융세계화 국면에 세 가지 서로 연결되지만 다소 상이한 방향의 움직임이 나타난 바 있다. 한편에서는 과거 ‘발전국가’라 지칭된 지역들이 탈발전주의 신자유주의로 진행되면서, 개방화의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던 고용의 틀이 붕괴되었다. 두 번째로 후발 공업화 지역으로 이 지역에 중요성을 갖게 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국가에 의한 금융적 보호나 산업적 보호장치도 배제된 채 금융세계화의 조건 속에 던져진 결과, 전 지구적 금융위기의 충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로 존재하게 되고, 자본의 유동성의 충격을 대대적으로 받게 되었다. 셋째로, 탈사회주의 해체의 지역들도 등장하였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금융적으로는 상대적으로 개방성의 진행도가 낮더라도, 국내에서 작동해온 여러 가지 보호장치들을 해체하면서 세계시장의 편입도를 높임에 따라, 내외적 충격의 요소들이 국내적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세 지역들은 그 자체로 금융화의 주도적 지역은 아니지만, 금융 우위의 축적구조에 적절하도록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서 세계적 금융위기에 그만큼 더 취약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런 구조조정을 불가피하게 만든 내적 요인들(자본수익성의 하락을 포함해)은 세계적 위기를 더욱 심각한 방식으로 내부화할 수 있는 요소가 되어 왔다.

달러 환류 메커니즘과 동아시아

미국이 이중의 적자에 가계부채의 증가라는 제3의 적자까지 추가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음에도, 지속적으로 달러유입이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비시장을 팽창시킬 수 있던 주요한 지지대 중 하나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통해 유출된 달러가 금융적 투자 형태로 다시 미국에 재유입되는 달러환류의 메커니즘이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이 역할을 맡아온 것은 일본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서 이 달러환류의 메커니즘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달러환류를 실행하는 주요 국가들이 동아시아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아래 <표1>에서 보면 2000년에서 2007년 사이에 미국 재무부 증권 총액의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날 정도로 미국경제에서 차지하는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여기서 차지하는 동아시아 지역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의 비중이 다소 줄어들고 있음에 비해서 중국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나 이제는 미국 재무부 증권 보유액에서 일본과 비등한 수준에 올라섰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지역에서 2000년대 들어 미국 재무부 증권 보유 형태로 미국으로 유입되는 달러환류 메커니즘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던 주요한 이유는 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가 1990년대 말 금융위기의 후과로 급격히 증가했던데 기인한다. 이런 외환보유고 증가는 무역수지 흑자 증가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 나타난 바 있듯이 정부정책상 외환보유고를 증가시키기 위해 통화안정채권이나 외평채의 발행을 통해 인위적으로 달러보유액을 늘린 데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달러의 약세 추세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대하게 늘어난 외환보유고는 집중적으로 미국 재무부 증권에 집중 투자되었던 것이다. 반면 미국의 여타 금융부문에서 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중요성은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동아시아가 이처럼 대량의 외환보유고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이를 집중적으로 미국 재무성 증권 투입에 투자하고 있는 이유는 첫째로, 이 지역 전체가 세계적 금융위기의 가능성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음에 비해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완충적 장치나 제도가 매우 취약했고, 그 대책은 공동의 차원이 아니라 개별 국가들 수준에 맡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각국은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외환보유고를 늘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두 번째로, 이렇게 형성된 외환보유고는 긴급할 때 유동성을 보장받는 형태로 보유되어야 하는 동시에, 그 자체가 위험에 과도하게 노출되어서는 안 되고, 안정적 투자처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지속적 생산은 줄곧 미국 시장의 팽창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시장의 성장지속과 동아시아의 성장지속은 서로에 대한 긍정적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따라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게 되는 주원인 중 하나는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이면서, 또한 이를 가지고 미국 경제의 소비의 지속을 지탱해주는 메커니즘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아시아의 외형적으로 성장한 금융력은 그자체로서는 초민족적인 금융적 이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고도금융과는 성격이 상이하며, 오히려 미국의 금고라는 성격을 지녀왔다.

중국이라는 변수

2008년 7월말 현재 중국의 미국 재무부 증권 보유액은 5187억 달러로, 외국인 보유액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수준은 2000년의 603억 달러에서 760% 증가한 것이다. 2007년말 미국의 대 중국 무역적자는 2562억 달러 수준이었다. 이후로도 중국의 미국 재무부 증권 보유액은 계속 늘어나서, 11월 9일 기준으로 보유총액이 5850억 달러로, 일본의 5732억 달러를 100억 달러 앞서서 최대의 채권국으로 부상하였다(한겨레 신문, 11월 21일).
이처럼 거대하게 형성된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양면적인 측면을 지닌다. 한편에서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중국의 강력한 금융적 자율성의 상징이기보다는 중국이 강하게 미국경제의 운명에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의존성의 지표이다. 동아시아의 외환보유고의 증가가 직접적으로 이 지역을 휩쓴 1990년대 말 금융위기의 교훈의 결과물인 것에서 보듯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 증가는 이 지역 전체에 걸쳐서 외부로부터의 금융적 충격에 대해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또한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그 상당부분이 대미 수출 시장 팽창에 의존하고, 이는 다시 미국 소비시장 팽창에 의존하는데, 그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 구조를 지탱시키기 위해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다시 미국에 재무부 증권과 같은 형태로 환류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 외환보유고가 대폭 늘어난 2001-2004년의 시기를 분석해 보면, 이 시기 외환보유고의 대폭 증가는 무역수지 흑자의 대폭 증가 때문이 아니라, 위완화 평가절상을 기대하고 대폭 유입된 핫머니 때문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이유 때문에 중국의 금융시장이 보수적인 구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전 지구적 금융적 충격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3)
그렇지만 다른 한편 중국의 외환보유고 증가는 중국이 미국의 경제 위기의 부담을 계속 넘겨받는 방식으로 미국을 지탱하는 것이 가능한지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85년의 플라자 협약의 정책적 환율조정을 통해 미국의 부담이 일본으로 이전된 역사에 비추어 볼 때, 현 시기 위기에도 핵심적 쟁점은 누가 미국 경제위기의 부담을 넘겨받는가에 있게 된다. 위안화는 절상되고, 경제 위기 때문에 안정적 투자처인 재무부 증권에 대한 수익률은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 더더욱 미국 경제의 향후 전망이 비관적인 데도 중국이 지속적으로 미국 국채에 대해 투자를 지속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한 손실을 감수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도 경기 둔화의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서, 이처럼 거대한 자금이 쇠락하는 지역에 묶여 있다는 것은 그 부담이 전보다 더 커지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중국의 성장은 미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축적체제의 등장이라기보다는 미국 헤게모니 하에 형성된 축적구조의 최종적 확대였던 성격이 크다. 미국 시장에 대한 전폭적 의존,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 분업구조 속의 편입과 일본에 대한 기술적 의존, 국내의 코포라티즘적 포섭 체제의 취약성 등이 모두 그런 측면들을 잘 보여준다. 중국 자체 보유 금융력의 증가와 미국 경제위기는 지금까지의 이런 중국의 구도가 지속될 수 있을지를 의문시하고 있다. 미국발 충격이 더욱 심화될 경우, 미국 축적체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동아시아의 성장구도에 심각한 타격이 초래되고, 그것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어떤 대응을 촉발할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 되고 있다.



1)みずほ硏究所, 「通貨危機の深化防止に向けた東アジア各國および地域的な取り組みの效果·意義に關する考察」, 『みずほ總硏論集』, 2008年 IV號.본문으로

2)같은 글, p. 16. 본문으로

3)백승욱,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 창비, 2008, 제6장 참고. 본문으로
주제어
경제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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