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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9.7-8.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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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파퓰리즘의 종착지

극한으로 치닫는 원한의 정치

임필수 | 정책위원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둘러싼 핵심 쟁점의 하나는 과연 검찰수사가 정당하냐, 그것이 정치보복이냐는 것이다. 조선, 중앙, 동아는 검찰수사가 기본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현재 권력구조에서는 대통령 임기 중에 대통령의 권력남용이나 부패를 감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임기 말이나 후의 사정작업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감시할 마지막 기관인 검찰 역시 대통령 인사권 아래 놓여져 대통령과 그 주변의 눈치만을 봐 왔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5년마다, 아니면 대통령 권력이 쇠퇴하기 시작하는 임기 말에야 대통령과 그 가족 그리고 그 주변이 검찰에 불려 다니면서 사법 처리되는 일이 되풀이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국민 모두가 참여해 대한민국의 부패 특히 그 가운데서도 대통령 부패에 관한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앙일보는 “분명한 근거 없이 검찰 책임론을 몰아붙이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이며 이는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는 고인의 뜻과 어긋난다고 점잖게 충고까지 하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검찰수사를 명백한 정치보복 행위라고 규정한다. 한겨레는 “박연차 씨 사건에는 이른바 3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검찰, 국세청, 국가정보원이 모두 관여했다. 먼저 국세청은 태광실업에 조사국을 투입해 넉 달 간이나 먼지털기식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중앙수사부 인원을 거의 갑절로 늘리면서 노 전 대통령 주변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다. 국정원은 노 전 대통령이 박씨로부터 억대의 고급시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흘리며 노 전 대통령 망신 주기 대열에 가담했다”고 강조한다. 또한 “촛불에 덴 정권이 그를 배후로 의심해 정치적 보복에 나섰고, 그 하수인인 검찰은 내부에서조차 범죄 성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무리한 수사를 강행했다. 보수언론은 여과 없이 혐의사실을 공표하며 그를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외국 언론의 눈에조차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증오로 비칠 정도였다”고 주장한다.

현대 파퓰리즘과 부패 스캔들

이처럼 극명하게 대립되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정치인의 부패를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는 정치인에 대한 공격은 현대 파퓰리즘 정치에서 가장 핵심적 모티브다. 즉 검찰을 통한 정치인에 대한 상호 공격이 모든 정당을 망라하는 하나의 새로운 규칙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정책이 초래한 사회위기로 인해 여야정당의 정치적 정당성은 만성적 위기에 빠져 있다. 따라서 나도 나쁘지만 상대방은 더 나쁘다는 ‘차악’의 논리가 정치를 지배하게 되었다. 상대방이 나보다 더 나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 즉 부정적 정당화의 과정은 여야 간의 극한적 대립으로 손쉽게 전환된다. 그리고 부정적 정당화의 과정에서 가장 간편하게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모티브가 바로 부패 스캔들이다. 현대 파퓰리즘 정치가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기존 정치인들과 특권집단을 제일의 적으로 설정하며 (특히 노동조합은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비난을 받으며 제일의 공격대상 리스트에 올라간다) 자신은 부패한 정치계급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세력임을 선언하곤 한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2003년 불법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불법선거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일을 넘으면 정계은퇴하겠다’고 말해 강력한 파퓰리즘 정치를 작동시켰다. 이는 여야 간에 사생결단의 대결을 촉발시켰고 대통령 탄핵사태로까지 비화되었다.

노무현 정권 파퓰리즘의 등장

노무현 정권은 DJ 개혁의 처참한 실패를 배경으로 등장했다. 2000년 총선 전까지 IMF 조기졸업과 주가 1000선 돌파가 가능해 보이고 코스닥 활황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처럼 보일 때까지는 그런 대로 신자유주의 개혁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거품이 빠진 자리에 만성 불황이 찾아왔다. 대중들의 불만은 폭발했고, ‘3홍비리’는 DJ 정권에게 사형선고였다. 이제 정권재창출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 된 듯하였다. 바로 이 순간에 나타난 것이 국민경선이고,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였고, 노무현식 정치스타일이었다. 이때부터 노무현 후보는 ‘탈권위’를 내세우며 파퓰리즘적인 정치스타일에 적극적으로 의존했다. 그러나 남미에서의 파퓰리즘이 노동조합과의 ‘사회적 합의’라는 수단에 의존했다면, 그러한 기반이 없는 노무현 후보는 철저하게 미디어와 팬클럽을 활용하는 파퓰리즘으로 나아갔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효율성을 위해 미디어의 선동주의를 동원하고, 이념도 정책도 없는 여야 대결에서 승리를 얻어내려고 개인의 카리스마를 빛내기 위해 팬클럽을 활용했다. ‘노사모’는 모든 문제를 노무현 개인에 대한 지지로 환원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노정권이 사회적 위기를 은폐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했다. 2003년 여론조사 결과는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찍은 사람들의 절반이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하반기에 부패스캔들의 뇌관을 터뜨렸다. 2002년 대선 불법선거자금에 대한 수사는 2003년 8월 SK 비자금 사건에서 시작되어 2004년 5월까지 9개월 동안 이어졌다. 2004년 5월 검찰은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해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823억 2000만 원이고 민주당은 113억 8700만 원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에서는 김영일 전 사무총장과 대선자금 모금의 주역이었던 서정우 변호사가 구속되었다. 여당 쪽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와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구속되었다.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2002년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 직접 관여한 증거가 없다면서 그들의 최측근들을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이라며 집중포화를 맞았고, 불법 대선자금을 자진 헌납하겠다는 서약까지 해야 했다.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가 한창이던 2003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파퓰리즘 정치에서 탁월한 수완을 지녔음을 재입증했다. 그는 정당 수뇌부 회동에서 “자신의 불법 선거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에서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격론을 불러 일으켰고 파퓰리즘 정서를 극대화했다. 결국 여야정당이 자신의 정당성을 선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도 나쁘지만 상대방은 나보다 더 나쁘다’는 식의 차악의 정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상대방이 더 나쁘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은 여야 세력에게 사생결단의 대결을 강요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후 여야 대립은 극단적 대결로 한걸음 더 전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검찰수사 결과 노무현 캠프의 불법자금은 한나라당의 7분의 1에 육박했다. 언론은 대통령이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추궁하고 청와대는 불범 대선자금 계산법이 다를 수 있다고 변명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이 이어지기도 했다.)
여야 정당의 극단적 대결구도는 2004년 대통령 탄핵사태를 거치며 정점으로 치닫게 되었다. 2004년 3월 12일 야당의원 193명은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조항 위반, 대선자금 및 측근비리, 실정에 따른 경제파탄을 근거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5월 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발표될 때까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다.

원한의 정치와 그 허구성

부패 스캔들을 활용하는 파퓰리즘 정치는 대중의 격정적 지지를 손쉽게 끌어오곤 한다. 기득권층, 특수이익층에 대한 공격이 대중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권층에 대한 공격은 그것을 지지하는 세력이나 반대하는 세력 모두에게 엄청난 원한이라는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정치적 몰입을 낳는다. 정치인들에 대한 공격은 부패척결이 원천적으로 정당하다는 편과 자신을 정치적 희생자로 묘사하는 편 사이의 극한적 대립을 낳는다.
그러나 파퓰리즘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여야 대립의 모티브가 실제의 사회적 위기의 원인과 효과로부터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이념, 정책은 초민족자본에게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고 한국 재벌의 초민족화라는 길을 열기 위한 금융개혁,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를 단행했다. 한국 사회의 엄청난 부가 배당, 이자의 형태로 유출되거나 한국의 자본가와 경영자에게 집중되었다. 이와 더불어 노동신축화가 강요되었고, 노동자는 고용조건의 악화나 실업의 위험에 더욱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가족의 위기, 교육체계의 붕괴로 노동자 대중이 직면한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다. 하지만 파퓰리즘 정치는 바로 이러한 현실적 쟁점과 괴리된 채 부정적 정당화를 통한 대중동원에 골몰한다.
또한 파퓰리즘 정치는 현대 정치이념이 붕괴하거나 황폐화된 토양 위에서 번성하며 본질적으로 국가의 억압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부패스캔들의 뇌관이 터지면서 정당의 정치적 정당성이 붕괴하고 강력한 행정부와 사법부라는 억압적 국가기구를 통해 신자유주의 정책 입안과 집행의 효율성과 신속성이 강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은 가히 ‘신자유주의 독재’라고 부를 수 있다.
현재 이명박정권은 국가의 억압적 기능을 훨씬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파퓰리즘은 최소한 자신이 ‘민중의 벗’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정치적 프로그램을 배치했지만 이명박 정권은 그러한 제스처마저 철회하고 있다. 특히 야당세력에 대한 정치공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위로 민중운동을 공격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되살리고 집시법을 개악하며 노골적인 공격성을 보이고 있다. 노동자운동을 주요타격대상으로 삼는 현대 파퓰리즘이라는 토양 위에서 이명박 정부의 폭력성이 꽃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이른바 ‘민주화운동’ 세력, 세대의 총체적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향후 한국 정치지형에 큰 공백이 발생할 것이다. 그 세력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원한을 불러 일으켜 그 공백을 메우려고 시도할 것이지만 방향성을 상실한 증오는 오히려 더 큰 정치 위기를 더 불러올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에 대한 폭력적 대응밖에는 다른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모든 흐름에서 민중운동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여야 간의 원한과 증오, 극한적 대결은 정치적 공간을 마비시키고 정권의 칼끝은 손쉽게 민중운동을 겨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진정한 대안은 오직 민중운동만이 지니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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