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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1-2.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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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운동과 미조직 사업 진단

조직화사업은 노동조합 재건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자

박준도 | 노동위원장
비정규직 운동의 과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축적이 확대되어도 고용은 항상 불안정하다. 자본축적으로 말미암은 노동의 수요보다 자본축적에서 유리되는 노동자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를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실업자와 취업자의 경쟁은 상시적인 상태가 되고, 그에 따른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만성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대중의 궁핍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계기는 항상적인 실업의 위험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실업의 위험은 급격히 악화되고, 이는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를 객관적으로 구성하는 요인이 된다.
신자유주의시대 지배세력은 금융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적자, 통화공급의 증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정책이나 사회보장정책을 철회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완전고용을 포기하고 실업을 조직하는 한편, 금융소득에 기반을 둔 사회보장정책으로 기존 복지정책을 대체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사회보장예산 적자와 실업위기를 무마한다. 즉 경제위기 시대 확산하는 실업을 불완전한 취업으로,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조직함으로써 노동력 재생산의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다.
한편 자본은 지급된 임금과 투입된 노동량을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노동력을 최대한 쥐어짜기 위해 노동을 전면적으로 재조직하고 있다. 이 과정은 해고나 신규채용 억제라는 인원감축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변형근로시간제의 도입에 따른 노동시간 신축화로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인데, 노동시간신축화로 인해 반(半)실업자와 취업자간의 경쟁이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부족한 생활임금을 얻어내기 위해 생산물량확보에 더욱 의존하고, 일정한 임금소득을 보장받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마다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에게서 경쟁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경제위기 시대 실업이 반실업상태로 조직되고 노동신축화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고용불안이 확산하고 동시에 노동자들 간 바닥을 향한 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 맞서는 노동조합운동의 도전은 중차대한 과제다.

<그림 1> 종사상 지위별 취업자 비중 (자료 : 통계청)

<그림 1>을 보자. 지난 20여 년 동안 상용직 규모는 등락이 있기는 하지만 34%를 전후로 진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영업자가 조금씩 감소하고 무급가족종사자 상당수가 감소하고 있다. 무급가족종사자 중 80~90%는 여성이다. 1990년대 이래 임시직 일용직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은 자영업자 일부와 무급가족종사자 상당수가 임시직에 종사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잔여적 형태로 정의할 경우, 비정규직은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와 상용직 노동자 중 고용형태가 비전형적인 노동자로 구성된다. <그림 1>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는 단지 IMF 이후 강행된 정리해고제나 파견근로제 도입의 결과만은 아니다. 반실업상태로서 비정규직은 자본주의 형성과 궤를 같이하며, 고용형태가 다른 일자리로서 비정규직은 이미 1980년대 하청구조를 확대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해고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노동자라는 의미에서 정규직은 근로기준법에나 존재했지 실제로는 (특히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1970년대는 물론이거니와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되었다 할 수 있는 1980년대 후반에도 사업장 구조조정과 해고는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제조업 사업장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라는 인식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다. 고용안정, 정규직 노동자는 사실 노동조합의 효과인 것이다.
1980년대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에서 하청구조가 광범위하게 도입 확산되었지만, 강력한 노동조합의 운동이 일정하게 이를 제어한 셈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하청구조의 확산과 제조업사업장의 구조조정을 계기로 전노협의 조직력이 하락하고,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려는 정권과 자본이 전노협을 강력히 탄압하면서 이른바 3제를 도입하려 했다. 3제란 노동신축화를 촉진하는 제도로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를 가리킨다.
한편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은 이념(노동해방)을 상실하고, 정권의 탄압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본격화한다. 민주노총은 노조합법화를 대가로 3제를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한다.

<그림 2> 실업자와 불완전 취업자 (자료: 통계청)

<그림 2>에서처럼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36시간 미만의 불완전취업자가 급격히 확대되고, 경제위기 상황이 심화되는 가운데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이해만을 방어하는 형태로 더욱 위축된다. 이 과정에서 고용과 임금을 둘러싼 반실업자와 취업자의 바닥을 향한 경쟁이 가속화되고, 이른바 ‘비정규직 문제’ 즉, 취업자와 반(半)실업자 사이의 갈등이 확산된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이상을 염두에 두고, 이른바 ‘비정규직 운동’의 과제에 대해 재론해보자.

노동조합운동 재건
고용안정과 임금인상 혹은 실질임금 하락 저지는 그 어떠한 제도적 도입에 앞서 노동조합운동의 강화와 그를 통한 노동권의 전면적인 확산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복지나 사회보장제도는 상대적 과잉인구에 의해 규정되는 임금노동제도를 절대 위협하지 않으며, 실업률과 임금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기능을 할 뿐이다. 반면 노동조합은 실질임금하락을 저지하거나 임금을 올리고, 고용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유력한 제도 곧 노동자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노동조합은 고용의 불안전성을 완충할 수 있는 제도이지만, 동시에 (자본의 지배를 위협한다는 의미에서) 노동자를 단결할 수 있게 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운동의 결과로서 노동권의 전면적인 확대만이 실업자와 취업자의 경쟁을 완화할 수 있고, 실질임금의 상승과 고용안정을 가능케 한다.
종종 노동자의 실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반실업상태를 특권화해서 노동조합운동을 상대화하거나, 노동조합운동을 이른바 ‘정규직 운동’으로 등치시켜 그 자체를 개량주의 운동으로 한정하고는 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의 이탈 혹은 우회를 주장하는 흐름도 있다. 이런 경향은 노동조합에서 임금과 고용을 둘러싼 노동자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한 것이거나, 투쟁과 단결의 무기로서 노동조합의 의미를 간과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이를 매개로 임금과 고용의제를 둘러싼 투쟁에서 실제로 그것을 쟁취하거나 방어할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노동에 대한 권리(생산에 대한 통제)를 자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임금과 고용을 둘러싼 투쟁만으로, 혹은 노동조합운동만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문제는 노동조합운동의 절대적 부족이지 (관료화 혹은 정규직 대공장 운동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하는) 노동조합운동의 과잉이 결코 아니다. 노동조합운동의 보편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재건과 민주노조운동 혁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려는 노력,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체로 하는 노동조합운동을 만들려는 노력은 여전히, 앞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공동의 요구에 근거한 노동권 쟁취 투쟁
노동조합 운동에서 공동요구를 구성하는 핵심 사안은 무엇보다도 고용과 임금이다. 공통의 임금 의제, 공통의 고용 의제에 대한 투쟁을 꾸준히 개발해내야 한다. 2008년발 경제위기 상황에서 2009년 최저임금은 물론이거니와 전체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모두 삭감되었다. 이를 만회하려는 전국적인 차원의 투쟁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2009년 손실된 임금을 1999년처럼 특별수당을 통해서 만회하려해서는 곤란하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불안정한 소득으로 말미암은 생계 위기를 폭로하면서 기본급 인상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동시에 최저임금 인상투쟁을 전 조직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기본급과 최저임금의 임금인상을 통해 임금격차를 실질적으로 축소할 수 있는 투쟁을 기획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2009년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근로기준법도,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도 노동자에 대한 광범위한 해고와 계약해지를 제어하지 못하였다. 경제위기 시기에 해고와 계약해지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방안을 공동으로 법제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투쟁을 단위 사업장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감소될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희박하다. 전 계급적인 요구로서, 민주노총 총연맹의 요구로서 투쟁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전국적 전선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총연맹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이 투쟁의 의의는 대단히 크다.
‘비정규직 운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비정규직화와 노동권 후퇴에 맞서는 투쟁으로서 일정한 역사적 지위를 획득한 것은 분명한다. 따라서 공동의 요구로서 노동재조직화, 노동신축화에 맞서는 운동, 노동강도를 완화하려는 공동의 투쟁은 계속 모색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운동의 혁신, 이념의 형성과 사회운동기관으로의 전화
‘비정규직 운동’이 그 자체로 노동자 운동의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노동자운동의 혁신은 당대 새로운 이념을 대표하는 노동자집단의 형성과 그 집단의 헤게모니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 생산의 중심에 있는 노동자가 주도한다거나 생산의 주변 혹은 더 억압받는 노동자가 주도한다고 미리 가정할 수 없다. 비정규직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있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계급성을 구현할 것이며,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중심이 될 것이라고 선험적으로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현 단계 노동자운동의 혁신군으로서 ‘비정규직 운동’이 자신의 역할을 자임하고자 한다면, 전체노동자운동의 혁신과 노동조합운동의 재건이라는 차원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이념을 발본적으로 쇄신하고, 쇄신된 이념을 노동자 대중의 이념으로 형성하는 데 있어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운동도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의 확대라는 관점아래 자신의 운동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에만 매달려 비정규직 문제를 잣대로 노동자운동을 편 가르는 식으로 토론이 진행된다면 노동자운동의 혁신 논의는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 또한 ‘비정규직 운동’은 고용문제에서 비롯하는, 결국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미시적 결과에 맞서는 투쟁이라는 점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운동’에 머무는 것 자체가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야기 확산하는 실질적인 원인에 대한 투쟁을 ‘비정규직 운동’ 스스로가 선도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는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해야 한다.

미조직 조직화 사업

1기 전략조직화 사업 평가
현 시점에서 고용형태의 다변화, 노동시장에서 반실업자와 취업자 사이의 경쟁구도 확산, 고용불안의 확산과 저임금 구조의 확대, 외주화와 간접고용 확대에 따른 노동3권의 무력화, 원하청구조의 안착화에 따른 손실전가 메커니즘의 안정화에 대해 노동조합운동은 구체적인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에 접근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미국의 조직화 사례를 모델로 삼아서 전략조직화라는 이름으로 미조직―비정규직 사업을 특화하여 조직화 사업을 확대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정치 사회적으로 쟁점화해 왔다. (미국노총은 1995년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경선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서비스노조인 SEIU 출신의 존 스위니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SEIU의 활동경험을 바탕으로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최대 과제로 내세우면서 ‘새 목소리’(New Voice)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현재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 평가는 대체로 세 축이다. 첫째, 이른바 ‘5대 부문’ (하청노동자, 서비스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지자체 비정규노동자, 건설 일용노동자)의 조직화를 추진하는 산별노조의 조직확대계획에 비추어 본 평가다. 조직활동가의 경험 미숙과 전문성 부족을 꼽거나, 반대로 조직활동가들이 미조직사업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 내부적으로 뒷받침 해주지 못한 문제들(조직관리와 투쟁조직화에 내몰리는 상황이나 정책선전역량이 뒷받침 안 되는 경우 등)을 지적하는 것이다. 둘째, 산별노조의 질적인 전환 계획에 비추어서 전략조직화 사업을 평가하는 시각이 있다. 앞서 평가가 조직의 양적 성장에 비추어본 평가라면, 이 평가는 조직의 질적 전환이라는 차원의 평가라 할 수 있는데, 전략조직화 사업을 산별노조 건설의 실질적 내용이라는 차원에서 본 것이다. 이 차원에서는 금속의 1사1노조와 거점 공단조직사업, 보건의료노조의 비정규직 처우개선 활동, 의료연대의 지역지부 재편과 조직사업의 확대, 공공노조의 지역지부 건설과 통합산별 출범 지체에 따른 조직화 사업의 곤란, 건설노조의 일상적인 조직화 사업의 의미와 그것의 성과 등을 지적한다. 셋째, 조직노선 차원에서의 문제제기가 있다. 이는 대체로 비정규직 문제가 조직문화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에 무게를 두면서, 전 사회적인 문제제기를 동반하는 미조직 비정규직 운동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이상의 평가들이 일정하게 한계적인 것은 ‘전략’이라고 이름붙일 만큼 강조했던 조직화 사업이 왜 실제로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조직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왜 혁신의 담론이 혁신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는가’라는 문제다. 그것은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하는 이념적 기반의 취약성,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하는 활동가 주체들의 절대적 부족에서 기인한다. 현재 비정규직 투쟁의 조직화를 통해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겠다는 구상이 현재로서는 답보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을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운동을 노동조합운동의 재건이라는 차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면, 전략조직화 사업을 노동조합운동의 재건이라는 시각에서 평가하고, 2기 전략조직화 사업 역시 민주노조운동의 재건이라는 차원에서 구상해야 한다.

조직화사업: 민주노조운동의 재건을 위하여
총연맹의 전략조직화 2기 사업은 대략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① 핵심 전략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중소영세노동자의 조직화, ②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문화의 혁신, ③ 중소영세 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 제도 개선투쟁과 조직화의 결합이다. 적어도 이는 1기 전략조직화처럼 조직전문가 몇몇을 산별 중앙에 맡기는 방식, 정확히 말해 산별중앙 차원에서 재정과 인력을 단순히 나눠 가지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적 차원에서 총연맹 지역본부와 산별지역지부가 전략지역을 선택하여 해당지역(본부, 지부)의 조직주체, 지역의 노동 사회운동단체들이 협력해서 실제 조직화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총연맹이 이를 주관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이상의 계획이 재정과 인력의 집중,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담대한 전략의 구상이라는 점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인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전략조직화 사업계획이 노동조합의 미조직사업 계획 수립을 촉구한 것은 명확하다. 미조직 사업이 그저 단순히 민주노총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내부적 단결을 확대하고,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민주노조운동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활동이라 할 때, 민주노조운동의 재건이라는 차원에서 다음 몇 가지를 중점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① 노조조직화 활동가 주체의 확대
미조직 사업, 전략조직화 사업을 조직 활동가 주체를 총연맹과 산별연맹 내에 미조직 담당자를 두는 문제로만 이해하는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 물론 미조직 담당자도 없는 마당에 담당자를 두는 것도 의의가 있다. 하지만 조직전문가 몇몇이 헌신적으로 활동한다 해도 이는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노조운동의 주체가 확대되지 않으면 노동조합이 또 다시 서비스 모델에 갇혀 조합원의 수동화와 조직률의 정체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의 공단조직화사업 평가과정에서도 제기되었던 것처럼 현장 주체와 조직 담당 주체 사이의 입체적인 조직화가 실제 효과를 발휘한다는 평가는 충분히 주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차원에서 활동가 주체들이 확대되어야 한다. 먼저 제 사회단체, 정당이 노동조합재건투쟁에 목적의식적으로 참여하고, 각 지역에서 이를 지지하며 뒷받침해야 하고 다음으로 노동조합운동의 결과로서 조합원이 스스로 조직 활동가로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단체와 정당이 기층대중조직의 건설, 노동조합운동의 재건이라는 차원에서 현장진출, 노동자를 상대로 하는 지역교육사업, 노동조합조직화 지원 사업 등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운동이 조합원들을 활동가로서 거듭나게 할 수 있도록 투쟁의 목표 설정을 분명히 밝혀야 하며, 노동조합과 지역 사회단체, 정당의 교육사업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노조가 스스로 활동가를 재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또한 정당,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는데 있어 대중조직을 프랙션의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종파주의, 조급함에서 기인하는 좌익맹동주의, 반대로 정세와 무관하게 지나친 대기주의로 일관하는 것에 대한 자기비판을 전제하는 것이다.

② 노동조합운동의 교육사업과 문화운동의 혁신
비정규직 운동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이념 없는 맹목적인 조직화로는 조직화사업을 궁극적으로 확대할 수가 없다.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하고, 그것에 기반을 두어 임노동제도의 철폐와 공동체의 재구성(노동해방, 여성해방)을 지향하며, 그리고 대안세계화운동의 다양한 의제(생태주의, 평화주의)와 교통하는 노동조합의 가치와 이념을 정립해야 한다. 이념 없는 조직화사업은 노동조합운동을 아래로부터 붕괴시킬 뿐이다. 이념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함께 결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자 교육사업이다. 노동조합의 조직화사업과 교육사업이 상호유기성을 확보하며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차원의 조직화 사업이 지역차원의 교육사업과 함께 서로 교차할 수 있도록 총연맹과 지역본부, 산별연맹의 지역지부가 조직화의 주체로서 활동주체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해당지역의 유관 사회단체, 정당과 함께 노동조합의 가치와 이념을 정립할 수 있는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사회운동의 다양한 의제들에 대한 토론,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토론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하나하나가 활동가로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운영, 임단협 중심의 실무교육만으로는 활동가로서 거듭날 수가 없다.
한편 노동조합운동의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문화운동의 전면적인 혁신도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연대의 기풍이 확립될 수 있도록 (여성과 남성,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할을 넘어) 활동가들 사이에서 평등한 소통을 중요시하고, 조직 내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문화운동이 필요하다. 또 정확한 정세분석 아래 임금노예가 아닌 주체적 노동자로서 스스로 투쟁을 조직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 교육과 학습이 필요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 대의원과 소의원 제도, 각종 소모임 활동, 단체협약을 통해 쟁취한 교육시간 등을 확산시켜야 한다.

③ 경제위기 시대, 정규직 비정규직의 공동투쟁: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연대고용과 연대임금, 임단협의 집중화, 단협적용 확대, 최저임금투쟁, 민주노조 사수
비정규직 미조직 조직화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비정규직 사이에서 공동의 요구에 근거한 노동권 쟁취 투쟁을 지속적으로 기획해야 한다. 노동재조직화, 노동신축화에 맞서는 운동, (물량확보가 아니라) 노동강도를 완화하려는 투쟁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간에 공동의 노동조건을 확보하려는 운동을 통해 공동투쟁의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기본급 인상을 매개하는 정규직 비정규직의 정액임금인상,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실질적으로 기획해야 한다. 또한 총고용 쟁취, 해고와 계약해지를 제한하려는 공동의 고용안정 투쟁 역시 지속적으로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처럼 분권화된 임단협투쟁을 집중화시켜야 한다. 임단협에서 노동자대중의 전국적 계급적 단결을 확대할 수 있도록 총연맹과 (핵심)산별노조 사이에서 시기집중을 비롯한 공동기획과 공동투쟁을 강화하면서 분권화된 임단협 투쟁의 집중성을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정규직 비정규직 정액임금인상투쟁을 조직하는 한편, 임단협의 포괄범위를 확대하려는 투쟁, 정규직 비정규직 공동단협쟁취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최저임금과 같은 노동조건의 하한선을 결정하는 투쟁에서 총연맹이 전체민주노조운동의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기업의 손실전가 메커니즘이 확립되면서 하청노동자의 임금인상이 억제되고, 그에 따라 임금격차가 확대되었다. 2001년부터 전개된 최저임금인상투쟁은 재벌기업들의 손실을 어느 이상 노동자에게 떠넘길 수 없는 노동표준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최저임금 미적용 사업장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를 역으로 반증한다. 이런 상황을 폭로하면서 총연맹, 산별노조의 최저임금 투쟁을 해당 지역과 산별노조의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과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사수’를 넘어 전체 노동자 민중의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관점 아래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 민주노조사수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화물연대 열사투쟁,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 철도의 공공선진화 분쇄 투쟁을 지배세력들이 고강도로 탄압한 것은 노조를 깨거나 순치시킴으로써, 헌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다. 따라서 현 시기 민주노조를 죽이려는 것은 노동자 대중의 단결권 단체행동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민주노조사수투쟁이 ‘정규직 살리기’에 불과하다는 그릇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정규직 비정규직, 나아가 전체 민중의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주제어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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