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9-10.96.호
첨부파일
96_특집_연구소.pdf

2010년 5~7월 중국 노동자 연쇄 파업의 배경과 전망

중국 노동자가 일어서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준) |
* 이 글은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준), 「2010년 5-7월 중국 노동자의 연쇄 파업과 시위 : 배경과 전망」, 이슈리포트 2010-3, 2010. 8. 19.의 내용을 요약ㆍ재구성ㆍ일부 보완 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을 참고하시오.

파업의 물결에 휩싸인 중국

파업의 물결이 중국을 휩쓸고 있다. 2010년 5월 이후 광둥성을 중심으로 시작된 파업의 물결은 이후 북상하여 장강 삼각주와 내륙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파업은 주로 수출 위주의 외국인투자기업에서 일어났고, 임금인상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이 노동자들의 주된 요구였다. 파업의 규모는 중국 정부의 언론 통제로 인해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최소 수백 건 이상으로 추측된다.
1992년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노선이 채택된 이후 사회주의 시대의 유리한 제도들이 해체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확대되면서 중국 노동자들의 처지는 점점 악화되어 왔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 집단민원과 노동쟁의조정 신청 등 각종 노동분쟁이 점점 증가해왔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는 국유기업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크게 증가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신흥 공업지역의 외국인투자기업에서 주로 농민공이 주도하는 임금체불이나 저임금 문제를 둘러싼 노동분쟁이 크게 증가해왔다. 또한 파업과 같은 집단적인 행동방식이 늘고 있고 그 양상도 전투적으로 변해 왔다. 올해 초 중국의 유일한 합법 노동조합 조직인 중화전국총공회(이하 전국총공회) 소속 기업노조위원장들의 절반 이상이 2010년을 집단적 노동분쟁이 폭발하는 해로 예상할 정도로 운동의 기세가 오르고 있었다. 이처럼 중국의 노동자운동, 특히 농민공이 주도하는 신흥 공업지역의 노동자운동은 꾸준히 성장해 왔고 그 힘이 이번 연쇄 파업으로 분명하게 표출되었다.

혼다자동차부품제조유한공사 노동자 투쟁 사례

5월 17일부터 약 2주일간 이어진 혼다자동차부품제조유한공사(이하 난하이 혼다) 노동자의 투쟁은 이번 연쇄파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난하이 혼다의 노동조건은 중소규모의 수출지향 제조업의 일반적 노동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난하이 혼다의 노동조건과 파업의 진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이번 연쇄 파업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회사는 혼다자동차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독자(獨資)기업으로 노동자 2,000여 명이 고용되어 중국 혼다공장에서 사용되는 변속기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혼다자동차는 부품공급라인을 현지화하여 생산과 운송에 있어 부품 공급가격을 낮춤으로써 경쟁업체들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혼다자동차는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막대한 이윤을 착취해왔다.
난하이 혼다의 생산직 노동자의 대부분은 농민공이다. 한 노동자가 공개한 임금명세표에 따르면 초급 노동자의 초과근무수당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합한 총 급여는 사회보장비용을 공제하면 월 1200위안(약 20만원)이다. 더구나 생산직의 약 80%를 차지하는 인턴 노동자들의 급여는 이보다도 낮은 900~1,000위안에 불과했다. 둘 다 기본급 기준으로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며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버거운 낮은 수준이다. 더구나 근속기간이 늘어도 임금이 거의 상승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가질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노동자들의 불만과 좌절감은 파업이라는 집단적인 형태로 터져 나왔다. 5월 17일 20여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호소했고 150여 명이 파업에 동참하였다. 놀란 경영진은 이후 협상을 약속하며 파업을 일단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순식간에 월 800위안 임금인상 등 108개의 요구가 수합되었다. 이날 이후 경영진은 소폭의 임금인상안을 제시하는 한편 인턴 노동자들에게 파업 참여 시 계약을 파기하는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파업을 주도한 2명의 노동자를 해고하여 노동자들의 투쟁을 꺾으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파업에 참가하는 노동자의 수는 늘기 시작했다. 24일에는 1,700명이 파업에 참가했다. 파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괜히 동참했다가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던 노동자들이 단결과 투쟁의 힘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난하이 혼다 공장의 생산은 중단되었고 혼다자동차의 4개 조립공장의 생산마저 중단되었다.
난하이 혼다에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었지만 노동조합의 대표단은 전부 회사 쪽 사람들이었다. 파업이 시작되자 노동조합 간부들은 파업을 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경영진의 이익을 대변했다. 노동자들은 파업 노동자 중심의 새로운 대표단을 선출하고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대표부 재선거 등 노동조합의 재건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완강하게 계속되자 결국 광둥성 인민대표자대회 위원이자 광저우자동차의 총경리 쩡칭홍(曾慶洪)이 중재에 나섰다. 6월 4일 결국 노동자와 경영진이 정규직 월 500위안, 인턴 634위안의 임금인상, 추가 상여금 지급, 노동조합의 재건을 위한 상호 노력 등에 합의하여 2주간의 투쟁은 노동자의 부분적 승리로 끝났다.
이상의 난하이 혼다 노동자의 투쟁에서 우리는 이후 연쇄파업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파업이라는 집단적 투쟁으로 분출되었고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둘째, 노동조합이나 주변 단체의 개입 없이 자생적으로 투쟁이 시작되었으며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단결과 단체행동의 힘과 권리를 자각하며 전면적인 파업으로 발전하였다. 셋째, 노동조합 개혁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각 기업의 투쟁 상황이 빠르게 전파되며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이 성장했다.

배경과 원인

이번 연쇄파업은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에 따라 심화되고 있는 계급 갈등이 표출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전체 국민총생산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오히려 하락해왔다. 또한 2007~2009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중국 경제침체의 피해가 저임금 노동자, 특히 농민공들에게 집중되었다. 이 과정에서 누적된 불만들이 일시적인 경기 회복기에 파업과 시위로 분출하고 있다.
또한 몇 가지 요인들이 노동자들의 협상력과 투쟁력을 높였다. 농민공 수급의 지역적 불균형으로 인해 연안지역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시장에서의 협상력이 커졌다. 신세대 농민공의 임금노동자로서의 정체성, 권리의식의 향상과 인터넷을 통한 빠른 정보소통능력도 투쟁의 전투성과 연대성이 높아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생산성 증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임금상승
이번 연쇄파업의 직접적인 원인은 낮은 임금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과잉착취에 기반하고 있는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이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중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위안화 가치절하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억제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중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주요 중진국에 비해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06년 중국 제조업 시간당 평균 임금은 0.81달러(6.43위안)로 미국의 2.7%, 한국의 5.6%, 멕시코의 1/4, 필리핀의 2/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저개발 국가에 비해서 중국의 임금은 다소 높은 수준이다.
중국의 임금이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중진국과의 격차는 줄어들고 저개발 국가와의 격차는 늘어나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서 중국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임금만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고려하면 여전히 중국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은 매우 높으며 당분간 이러한 추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95년에서 2004년 사이에 중국 제조업(향급 이상 소재 기업) 노동보수비용은 3.05배 증가했으나 노동생산성이 5.35배 증가하여 단위노동비용은 오히려 0.56배 감소했다. 이에 따라 국민총생산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 55%에서 2007년에는 45%로 하락했다.
2008년 중국의 단위노동비용은 2009년 미국의 1/4, 멕시코, 폴란드, 한국, 터키 등의 나라들과 비교해도 1/3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인도와 같이 중국보다 임금수준이 낮은 저개발 국가와 비교해도 단위노동비용은 커다란 차이가 없다(<그림1> 참조).
일본, 한국, 싱가폴 등 중국에 앞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들의 경우 경제성장의 초반에는 노동생산성 증가에 비해 임금상승이 억제되다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와 경제구조의 고도화와 함께 임금이 상승하는 경험을 한 바 있다. 중국은 아직 임금인상이 억제되어 있는 상황이고 이제 막 억눌린 임금인상의 요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2007~2009 세계 금융위기의 피해가 저임금 노동자에게 집중
이번 연쇄 파업은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의 악화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결과이기도 하다. 2009년 중국은 10%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국내 투자, 특히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시장에 대한 투자의 활성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심각해졌고 일부 자산계층은 커다란 이익을 얻었으나 대다수 노동자들은 실업과 임금상승의 둔화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했다.
수출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임금인상률이 전 년에 못 미치거나 어떤 경우에는 임금이 삭감되기도 하였다. 국가통계국의 표본 조사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 임금인상률은 전년도 보다 낮은 5.1%로 2001년 이래 최저 수준이었고 지방정부도 평균 10% 이상 인상해오던 법정 최저임금을 동결했다. 중소 수출기업에서 임금이 20-30% 삭감되기도 하였다.
실업률도 크게 증가하였다. 중국 정부에 의하면 2008년 하반기 이후 객지 농민공 1억 3천만 명 중 2,000만 명이 실직하여 귀향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2008년 12월 15일 기준 비공식 실업자를 포함한 도시 실업률이 9.4%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농민공의 2009년 평균소득은 1,417위안으로 명목상 5.7% 증가하는데 그쳤다. 2009년에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의 물가가 크게 상승했음을 감안하면 농민공의 실질소득은 제자리이거나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소득의 불평등도 크게 증가하였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상하위 각각 10%의 소득격차가 1985년 2.9배, 1995년 6.2배, 2005년 9.2배에서 2007년 23배로 확대됐으며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다시 55배로 벌어졌다.

연안지역에서의 농민공 부족 현상
연안지역에서의 농민공 부족 현상으로 인해 이 지역의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높아졌다. 전체적으로 중국의 노동력은 공급이 수요를 웃돌고 있으나 2004년부터 연안지역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중국 국가통계국 농촌사가 발표한 “2009년 농민공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중서부로 유입되는 농민공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중국의 거대한 산업지역인 장강삼각주 지역과 주강삼각주 지역의 농민공수가 각각, 7.8%, 22.5% 감소했다. 특히 이 지역 가공무역 수출업종에서 농민공의 감소폭이 매우 컸다.
연안 지역에서의 농민공 부족 현상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강도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임금으로 인해 농민공들이 더 이상 연안지역의 일자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둘째, 중국 정부의 중ㆍ서부 지역의 기초설비 건설 등의 투자확대정책으로 인해 중ㆍ서부에서의 농민공의 성내 취업이 늘어나고 있다. 셋째, 중국의 출산제한정책과 젊은 층의 의식변화로 인해 출산율이 감소하여 청년층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다수가 청년층인 타지 진출 농민공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이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유입이 줄어들면서 노동력 부족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임금이 본격적으로 오르는 ‘루이스 전환점’을 지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도시화율이 낮고 농업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농업의 기계화와 함께 잠재적인 잉여노동력층은 여전히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공급의 지역적 불균형은 농민공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전략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즉 만약 농촌 노동력 이동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면 지나친 인구부담을 수용하지 못하는 도시는 혼란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면 노동력 공급과 수요의 일시적인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 농민공의 세대적 특성
한편 연쇄 파업을 주도한 집단인 1980년 이후 출생한 신세대 농민공의 세대적 특징 역시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
전국총공회는 6월 21일 “신세대 농민공 문제에 대한 연구보고”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출생자(바링허우, 八十後)들이 전체 농민공의 61.6%를 차지한다. 이들은 예전 세대와 달리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농민이 아닌 임금노동자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임금노동을 통해 도시에서 자리를 잡고 자기를 실현하겠다는 욕구가 강하다. 신세대 농민공은 3고(높은 교육수준, 직업기대치, 삶의 질에 대한 기대치)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반면 3저(낮은 임금수준, 사회보험가입 및 노동계약 체결 비율)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어 희망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또한 이들은 평등과 권리에 대한 의식이 높아 권리침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조화사회’와 ‘균부론’의 모순적 효과
중국 정부가 이번 연쇄 파업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면서 파업이 더욱 확대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사실이나 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1980년대 파업권에 대한 조문을 헌법에서 삭제했고 파업의 절차 등을 규정하는 법률도 없다. 따라서 모든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정부는 정치사회적 안정성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 한 파업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관련 노동자들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다만 파업이 거리시위나 물리적인 폭력사태로 확대되는 경우 공권력을 동원하여 파업을 진압하였다. 이번에도 중국정부는 이러한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중국 정부는 파업 확산을 막기 위해 공권력을 공장 주변에 배치하거나 파업관련 보도를 통제했지만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처벌하거나 공권력을 투입해서 파업을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이번 파업의 확대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2년 취임한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조화사회’라는 기치를 내걸고 혁명시대와 개혁개방시대 속에 복잡하게 누적되어 온 사회적 불평등을 관리하고자 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노동계약법 제정이다. 2004년부터 초안이 논의되기 시작하여 2008년 시행된 노동계약법은 초안에 비해 기업의 이해관계가 대폭 반영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을 사회적으로 보호하는 조항들이 들어있는 동시에 노동자들을 시장적 틀 속에 내모는 조항들도 삽입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갈등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법 제정으로 인해 노동자의 권리의식은 높아졌음에도 법의 이상과 현실이 크게 괴리되어 있어 많은 노동자들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행동, 즉 ‘위권투쟁’(爲權鬪爭)에 나서고 있다.
노동계약법과 함께 중국 정부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강화하고 관리 능력을 효율화하려고 노력해왔다. 중국의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자주적인 조직이 아니라 당에 종속되어 있으며,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기보다는 생산을 독려하거나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는 역할을 해 왔다. 2000년부터 정부와 공회는 노동쟁의의 양적 증가와 독립적 노동자 조직 건설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외자기업 등 비공유제 기업을 중심으로 조직 확대를 추진했다. 그 결과 2008년 말 기준 전국총공회의 조합원은 농민공 7천 2백만 명(조직률 50% 이상)을 포함하여 2억 1천 2백만 명(조직률 73.7%)으로 지난 5년간 2배나 증가했다. 동시에 노동조합 간부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사업장 단위에서의 노동자에 대한 관리능력을 높여 왔다. 또한 단체협의(集体協商)와 단체협약 제도를 발전시켜 단체행동은 억압하되 노동자들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반영하고자 해 왔다. 하지만 단체협의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기층 노동자들의 요구와 참여는 배제되어 있다.
중국 정부는 노동조합을 보다 효율적인 노동자 관리와 통제기구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으나 그리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이 이번 파업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이번 파업에서 공회는 기층 노동자들에게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중재자 역할을 가장하여 기업의 편을 들거나 직접적으로 파업을 방해하는 활동을 하기도 해 공회 개혁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자본주의적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대응

국내외적 요인으로 인한 중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와 노동불안 요소의 증대는 중국 정부에게 어려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추진해 온 자본주의적 발전 전략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중국 정부는 경제정책의 조정과 노동불안에 대한 관리 능력을 강화하여 자본주의적 발전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자 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거품붕괴에 대한 대응
2007~2009년 세계 금융위기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선진국에서 또 한 번의 경기침체(더블 딥)가 예상되고 있다. 이 여파로 중국의 수출증가세가 둔화되었고, 경기 선행지수들이 지난 4월부터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2011년 중국경제는 또다시 경기 저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중국 내적으로는 경기부양을 위해 자산시장에 투입되었던 막대한 자금으로 인한 자산거품과 지방정부의 재정위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는 중국 정부에게 위안화 절상과 내수 확대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적정 수준의 완화된 통화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 유지’를 제창하는 한편 ‘새로운 상황에 따라 정책의 유연성을 부단히 제고할 것’과 ‘경제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금리인상, 재정정책의 점진적 긴축, 소비 진작 정책의 유지, 부동산 안정화 정책, 위완화 평가 절상 등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정책 대응은 여러 가지 면에서 딜레마에 부딪히고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수출이 둔화될 경우 내수나 투자를 통해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하지만 철강, 시멘트 등 일부 산업의 생산설비가 과잉되어 있고 부동산 거품이 심각해서 과거 같은 자산 시장 중심의 투자 확대도 어렵다. 장기적으로 보면 낮은 환율과 저임금 노동에 기반한 수출 주도형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지만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내수 주도형 성장으로 가기 위한 기반은 불충분하다.

임금협상의 제도화와 노동조합의 개혁
중국 정부는 이번 연쇄파업에서 드러난 관리제도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임금조례 제정을 올 4월부터 재차 추진하고 있다. 임금조례는 소득분배개혁과 관련된 중요한 법률규정으로, 인력자원과 사회보장부에서 현재 초안을 제정하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은 임금결정의 방식, 최저임금기준, 임금지급방법, 특수상황하의 임금지급방법, 임금의 거시적인 조정방법, 법률책임 등과 관련된 규정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지방정부 차원의 임금협상의 제도화도 시도되고 있다. 광둥성 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는 7월 21일 “광둥성기업민주관리조례(广東省企業民主管理條例)”의 개정안 토론을 상정했다. 2년 전 관련 조례가 통과되었으나 세계 금융위기로 시행이 연기되었는데 이번에 단체임금협의와 분쟁조정과 관리에 대한 내용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 조례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1/5이 단체임금협의를 요구할 경우 노조상급단체는 이를 수용하여 대표자를 선출하는 민주적 선거를 조직하고, 기업에 단체협의를 요구해야 한다. 현재는 노동조합만 단체협의 요구 권한을 가지고 있고 일반 노동자들은 권한이 없다. 또한 조례개정안은 노동자들이 상급 노조간부뿐 아니라 외부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했으며 기업이 노동자가 선출한 대표자에 대한 해고 등 어떠한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또한 법적으로 단체협의를 요청하거나 협의가 진행 중인 경우 파업과 태업을 금지하는 대신 내부 합의 도출에 실패할 경우 정부가 개입하여 중재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업경영주가 협의에 응하지 않거나 의견조정에 실패했을 경우 파업이나 태업을 이유로 노동계약을 파기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간접적으로 단체행동의 근거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어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개혁정책들은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연내에 실행될지 매우 불투명하다. 또한 노동계약법 제정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초안 토론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내용이 거듭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총공회 역시 관리능력의 강화를 위한 내부 개혁에 착수하고 있다. 전국총공회는 6월 6일 <공회조직에 관한 긴급통지>를 발송한 바 있다. 이 통지문에는 공회가 노동자의 권익보호시스템 마련, 노동자 권익 제고, 단체 임금협상 추진, 임금의 정상적인 인상, 임금체납 방지 등 추진, 경영상황 공개 및 감독 권한 부여, 다양한 문화 체육활동 조직 및 신세대 농민공과 상호교류 증대, 기업발전을 전제로 하는 노동쟁의조정시스템 정비, 노사문제 선제적 대처, 공회 간부들의 노동자 대면접촉 활성화 및 문제 해결 능력 보유 유도 등의 활동을 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또한 전국총공회는 공회 간부들이 기업이 아니라 상급 단체에서 임금을 받도록 하여 노동조합 간부의 자주성을 높이고 노동불안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며, 200명 이상 사업장에서 반드시 위원장을 민주적으로 선출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7월 31일에 발표했다.
하지만 전국총공회의 이러한 개혁은 관리능력의 효율화를 위한 것일 뿐이다. 민주적 선거를 도입한다고 해도 노동자들의 힘이 약한 상황에서 실제 선거가 민주적으로 치러질 가능성은 극히 적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남을 것이며 정부와 공산당을 비판하거나 영향력을 벗어나려는 어떠한 시도도 금지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대안적 미래는 노동자운동의 성장에 달려 있다

2010년 5~7월 연쇄 파업의 발전적 측면
2010년 5~7월의 연쇄파업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중국 노동자운동의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의 결과이다. 이번 투쟁의 발전적 측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연쇄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이전의 주요 노동분쟁은 과거 누리고 있던 권리가 줄어들거나 임금체불과 같은 법적으로 명시된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2000년대 들어 신흥 공업지역에서의 노동분쟁이 주로 민원이나 노동중재요청과 같은 법ㆍ제도적 해결 방식에 의존했던 데 비해 이번에는 파업과 거리시위라는 집단적인 투쟁 방식이 전면화되었다.
둘째, 이 투쟁은 다양하게 분할되어 있는 중국 노동자들 사이의 단결이 강화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계급적 의식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파업에서 난하이 혼다 노동자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인턴 노동자들의 단결에서 나왔다. 또한 노동자 대표단은 6월 3일, “우리의 ‘권리투쟁’은 단지 1800명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국의 노동자의 권리와 이해를 고려한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위권투쟁의 좋은 선례를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셋째, 과거의 노동자들의 파업은 중국 정부의 언론 통제에 의해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이번의 개별적인 파업의 상황이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주변의 노동자들에게 빠르게 교류되었고 이를 통해 다른 기업으로 파업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넷째, 노동조합에 대한 기층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고 노동조합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고 있다. 난하이 혼다 노동자들은 사업장의 노동조합 대표부에 대한 민주적인 선거와 자주적인 활동을 요구했으며 9월 노동조합 대표자 재선거를 앞두고 있다. 다른 몇 개의 기업에서도 노동조합 개혁에 대한 요구가 등장했다.

과제와 전망
현재 중국 노동자들이 처한 암울한 현실은 중국 사회의 전반적인 변혁을 통해서만 바뀔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급진적인 노동자운동의 성장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1989년 자유노동조합을 결성했던 주동자는 공개 처형되었으며 평화로운 조합 활동에 가담했던 사람은 폭행죄로 구속되어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중국 정부는 급진적인 노동자운동의 성장을 가장 경계하며 탄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의 개선과 같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제도적으로 수렴하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파업과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파업과 시위가 단발적인 저항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통해 계급적 단결이 확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연쇄파업에서도 개별 기업의 파업이나 시위에 지역의 다른 기업의 노동자나 혹은 실업자 등이 가세하거나 공동의 투쟁을 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기업 내에서의 노동조건의 개선이라는 경제적 이슈에 한정되어 있다. 이번 연쇄파업에서도 농민공의 사회적 처지의 개선과 같은 정치ㆍ사회적 요구는 등장하지 않았다. 경제적 요구가 정치 사회적 요구로 발전되고 기업 간, 다양한 노동자 집단 간 공동의 투쟁이 늘어 갈 때 중국 노동자들은 하나의 계급으로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이 도입되는 노동조합의 민주적 선거가 노동자운동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는 열린 문제다.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해서 이후 자주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중국 노동자운동의 성장을 위해서 지식인들이나 노동단체의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전환에 비판적인 담론은 매우 취약하다. 과거 중국에서는 당 내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아래로부터의 ‘민간’ 마르크스주의의 흐름이 이어져 왔다. 1957년의 백가쟁명, 백화제방 시대에서 시작하여, 문화대혁명의 급진파, 그리고 1970년대 말 ‘베이징의 봄’ 시대의 ‘청년 노동자 주체의 사회주의 민주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그것이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이들을 흡수하여 이론화하는 동시에 조직적으로 억압하였고, 마오쩌둥 사후 당의 실용주의적 변신과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에 대한 전면적 탄압으로 인해 비판적 전통의 토대는 약화되어 왔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이를 중심으로 이른바 ‘신좌파’라 불리는 지식인 집단이 형성되고 있지만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중국의 몇몇 지식인들은 이번 연쇄파업을 지지하고 중국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중국노동자연구네트워크(Chinese Workers Research Network)와 리민치 교수 등 6명의 지식인들은 “전국총공회가 노동자를 위해 말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최초에 중국노동자연구네트워크 웹사이트에 게시되었는데 중국정부가 성명서를 삭제하고 사이트를 폐쇄했다. 이들은 난하이 혼다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2명의 노동자에 대한 복직과 보상, 공회의 개혁 등을 요구했다. 또한 구좌파적인 입장에서 정부와 사회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는 입장도 제출되었다. 리청루이(Li Chengrui) 교수를 비롯한 5명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최근 노동자 행동의 부상에 대한 구 혁명주의자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서 언론의 자유 보장, 사회주의적 공적 소유의 재확립을 촉구했다.
이번 연쇄파업을 계기로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모순을 분석하고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논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주제어
노동 국제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