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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0.9-10.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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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기 노조 여성사업 강화를 위한 제안

<서울지역여성조합원대회>를 조직하자

이유미 | 노동자운동연구소(준) 조사통계국장
1. 들어가며

노동자 대표성이 남성을 넘어서지 못해 ‘여성’ 노동자들이 처하게 되는 특수한 현실과 반복되는 성폭력 사건은, 노동자운동 내외부에서 민주노총이 페미니즘적으로 혁신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민주노총 스스로 어렴풋이 여성의 권리를 사고하게 되었으나, 그 방향과 내용이 일관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여성위원회는 여성조합원들의 결합경로가 부재한 채 상층 사업단위로 인식되면서 여성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아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활용되는지를 투쟁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하더라도 여성 노동자의 요구를 정식화하거나 성과로 이어가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페미니즘적인 혁신을 위해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주체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여성위원회는 주체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관장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성조합원들과의 접촉면을 확대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를 정식화하여 이를 노동자 운동의 과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로 준비되고 있는 서울지역 여성조합원대회를 여성노동자 주체화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글은 페미니즘적 혁신을 위한 노동자운동의 실천 상황을 진단하고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첫째로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에 대한 비판과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적 주체화에 주력한 사례를 비교하는 것을 통해 시사점을 도출한다. 두 번째로는 현재 민주노총의 여성관련 요구안과 여성사업 진단을 바탕으로 과제를 도출하고 정세 분석을 통한 투쟁 방향을 제시한다.


2. 노조 페미니즘 현황 진단과 평가

1) 노조의 페미니즘 수용, 두 가지 길

①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
성주류화 전략은 국가 정책에 성인지적 관점을 적용하는 체계적인 전략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책의 목표와 전략, 자원 분배에 영향을 미칠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가의 정책 안에서 실행 체계와 도구가 확대되어 왔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성주류화 전략은 성별영향평가, 성인지 예산 제도화 등 일정한 실행 경로와 도구를 갖췄으며, 정당 공천 시 할당제, 공적 영역으로의 여성 진출 확대 등 일부 가시적인 성과도 낳았다. 성주류화 전략이 여성운동의 ‘성평등’을 위한 일반적인 방향으로 자리 잡고, 일정하게 체계를 갖춰감에 따라 성주류화 전략을 사회 각 분야로 확대하려는 흐름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영향 아래 노조 내에서도 성주류화 전략은 유력한 성평등 전략으로 고려되고 있다. 지금까지 노조 내에서 여성 문제 나아가 페미니즘이 다뤄지는 방식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일관된 이념이나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 활동가들이 할당제나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성 의제가 다뤄지고 여성 사업이 시행되기 시작했지만, 어떤 노선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사안에 따라 여성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취사선택되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암묵적으로 노조의 여성사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준점이 성주류화 전략이었고, 최근에는 이를 체계화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성평등미래위원회> 내 <중장기사업계획전략수립팀>의 논의는 이런 상황을 반영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성주류화 전략의 도구로는 성별영향평가, 성별통계, 성인지적 예산, 젠더 감사, 성평등 추진 기구 수립 등이 있다.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 모색은 대체로 위와 같은 도구들을 갖춰 노조 내에서 성주류화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럽노조연맹(ETUC)의 성주류화 전략>
해외의 여러 노조들은 성주류화 전략을 노조 내에서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는 유효한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로서 유럽노조연맹의 성주류화 전략을 들 수 있다. 유럽노조연맹은 가맹 조직들에서 의사결정 단위 내 여성 비율을 조사한 1994년 연구(Women in Decision Making in Trade Unions)를 시작으로 4년마다 소속 노총을 대상으로 여성의 대표성 및 성주류화 실태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평등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다음 조사 시기 전까지 이행 사항을 제시하는 메커니즘이다. 2006년 유럽노조연맹은 가입한 81개의 노총을 대상으로 ‘노동조합 내에서 남녀 격차 축소’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연구(Women in Trade Unions: Bridging the Gap)를 수행했다. 여기에는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노총이 참여했고, 이를 바탕으로 2007년 유럽노조연맹 총회에서 성주류화 헌장(ETUC Charter on Gender Mainstreaming in Trade Unions)이 채택되었다.
유럽노조연맹의 성주류화 헌장은 남녀 간의 임금격차, 여성의 직업훈련에 대한 투자 부족, 직종 분리 심화, 일ㆍ생활 양립을 위한 제도 미비, 노조 내 조직률 및 대표성에서의 여성 과소 등이 성주류화 전략이 필요한 정치적 맥락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 유럽연합 수준에서 위와 같은 문제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는 조치들을 언급하면서, 유럽 수준의 이러한 조치들이 경쟁력 있고 번영된 유럽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사업장, 노동시장, 사회 전반에 남녀의 동등한 참여가 가지는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헌장은 이런 점에 있어서 유럽노조연맹과 그 가맹 조직들이 노력과 조치들을 증대시켜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헌장에 언급된 구체적인 조치로는 유럽노조연맹과 가맹 조직들의 성주류화 실행 도구 마련, 단체교섭에서의 성주류화(교섭위원에 여성참여, 교섭위원들의 성인지적 관점 교육, 임금격차축소를 위한 직종분류 및 직무평가 개정 등), 성별영향평가 시행, 성별조사 통계(3ㆍ8 조사통계), 할당제, 젠더 감사, 여성에 대한 리더쉽 교육, 성평등 관련 기구 설치 등이 있다. 또한 유럽노조연맹은 헌장에 따라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 노조 내 여성조합원 수, 대표성, 단체교섭에서 성평등 가이드라인 준수 등의 항목에 대한 연례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평가>
우선 성주류화 전략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성평등’으로 집약된다. 이에 따라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남녀의 동등한 책임과 참여를 제기하며(일과 사적 생활의 양립), 이를 위한 제도나 조치의 마련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구조화해 온 역사적 가족 형태를 전화하기 위한 전망과 여성의 독자적 권리로서 여성권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현존하는 제도와 체계 안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위해 취하는 변화와 조치들이 여성들의 현실에 약간의 개선을 가져다줄 수도 있겠지만, 여성해방이라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경로가 되기는 어렵다.
또한 노동조합 내에서 페미니즘의 전략으로서 성주류화 전략의 근거는 무엇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당위적인 차원이 아니라면 노동조합이 성평등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흔히 여성의 과소대표성이나 여성노동자의 낮은 조직률, 여성차별적인 노조의 문화 등이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노조 내 여성노동자/여성조합원들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성주류화 전략은 노조가 이런 현실을 왜 극복해야 하는지, 왜 성주류화 전략이 노조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결국 성주류화 전략은 노조운동 전체의 노선이나 전망과 별개로 추진되어야 하는 과제가 된다.
그리고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이 제기하는 문제가 정부와 자본의 여성인력 활용방안인 일ㆍ가정 양립 정책과 맞물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성주류화 전략이 세계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이 처한 구조적인 위기를 여성에게 전가하려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라는 조건이 있었다. 이런 맥락에 대한 비판 없이 주류 여성운동은 성주류화 전략을 추구하면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여성 정책의 하위파트너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유럽노조연맹의 예처럼, 노조의 성주류화 전략은 유럽 차원의 성주류화 전략의 목적과 궤를 같이하면서 ‘사회적 유럽’구상의 한 경로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주류화 전략이 그 실행 도구와 체계를 갖추는 것을 우선 과제로 추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도 노조 내에서 체계를 갖추는 문제를 중요하게 사고한다. 여성들이 노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덜 조직되고, 덜 대표되어 있는 까닭은 성별분업 구조와 이데올로기, 이에 따른 여성들의 노동권 제약 및 여성권 부재 때문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고 운동으로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집단적 힘이 없이 체계만으로 여성들의 세력화를 이룬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② 노조 페미니즘의 다른 사례
우리가 제기하고자 하는 노조 페미니즘은 남녀 사이의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 마련만을 그 실행경로로 삼지 않는다. 성적 차이에 기반한 여성의 독자적 권리를 여성들의 집단적 힘을 통해 노조의 과제로 제기하는 것이며, 이것이 노조의 변혁지향성을 강화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제기하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그동안 많이 인용해왔던 이탈리아 사례와 남아공 노총의 사례를 살펴본다. 이탈리아나 남아공의 몇 가지 조치를 현재 한국의 노조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노조 페미니즘의 답은 아니다. 그 전반적인 맥락과 문제의식이 주는 시사점을 살피는 것이 목표다.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부재한 상태에서 1970년대 중반에 노조페미니즘이 전개되고 성적차이의 페미니즘이 발달하게 된다. 따라서 ‘남녀 사이의 (기회의) 평등’을 목표로 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는 달리 평등의 요구가 가진 딜레마에 대한 고찰과 성적 차이에 기반을 둔 요구, 분석 등이 노조 페미니즘의 특징으로 보인다. 이러한 페미니즘적 문화는 노조의 전통적인 가치와 여성노동에 대한 분석을 접목하여 새로운 분석과 조직형태, 그리고 노조활동의 새로운 형태들을 생산하였다.
1970년대 후반 여성들의 자율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구들이 노조 내에서 관철되었다. 기층에서부터 건설된 네트워크들이 확산되면서 지역과 전국 수준의 여성위원회가 형성되었다. 이런 성장을 토대로 노조 내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인정되었고, 페미니즘적 담론들이 노조의 공식적인 담론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1981년 이탈리아노총(CGIL)이 여성 직장대표 및 노조 대표들의 전국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했고, 2,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전국회의에 참가했다.
이런 노조 페미니즘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150시간’ 협정에 의한 노조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이탈리아 노총은 1972년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손실 없이 노동자들이 공교육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협약을 맺었다. 이 교육은 여성들에게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가족, 건강, 섹슈얼리티, 노동, 정치 등의 과정을 통해 여성조합원들이 여성으로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긍지를 가짐으로써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교육은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조 여성교육에서 지배적인, 기술적 전문지식이나 적극성 고취 프로그램과 같은 여성들이 남성의 세계에 더 쉽게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리더쉽 교육’과는 정반대였다. 노조 외부의 지식인, 활동가, 페미니스트들과 연계한 이런 교육을 통해 여성 그룹들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성과는 노조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강화했다.
이탈리아의 사례가 바로 차용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우선 노조 내 여성조직들의 기반에 관한 문제다. 여성위원회와 같은 노조 내 여성조직들은 여성들의 조직적인 결집과 활동이 바탕이 될 때 노조 내에서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고 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교육에 관한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여성노동자들이 여성이자 노동자로서 자신의 현실과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통해 노조 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일관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남아공>
남아공 노총의 여성위원회 활동은 대략 다음과 같은 패턴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매년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위원회가 남아공 노총의 여성정책에 대한 평가와 제안을 제출하고, 남아공 노총 전국대회에서 이런 제안을 논의하여 필요한 사항을 결의한다. 이런 패턴은 1988년 남아공 노총 여성대회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여성대회를 통해 기존 남아공 노총 및 소속 단위들에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성과를 평가하고, 노조 내에 여성 조직의 필요성과 형태를 도출했으며, 이런 여성대회의 결의에 따라 노조 내 여성위원회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1989년 전국대회에서는 매우 쟁점적인 논쟁이 진행되기도 했는데, 여성대회를 통해 제출된 ‘성별 행동 규약’ 결의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이 결의는 1988년 여성대회에서 노조 내부의 성희롱에 대한 투쟁으로 제안된 결의였는데, 조직 내 남녀 간의 성별 행동을 둘러싼 논의를 촉발했다. ‘성별 행동 규약’은 조직 내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여성의 활동과 자율성에 장애가 될 수도 있음을 제기했지만, 논란 끝에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하지만 성폭력, 성희롱의 문제를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조직 전반의 문화와 남녀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 이를 조직 전반의 규약과 문화 쇄신의 차원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남아공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여성 문제를 노조 내에서 제기하는 양태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성위원회의 활동 방식이다. 여성위원회가 여성 관련 사업을 전담하면서 소수 담당자들의 활동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반의 활동에 여성노동자들이 참여하고 발언력을 획득하는 관점에서 여성정책을 평가, 준비하고 이를 노조 전체의 결의와 과제로 만드는 과정을 밟는다는 점이다. 이런 과정을 뒷받침하는 힘은 여성조합원들의 존재와 집단적 결의다.

2) 민주노총의 현황 진단 및 평가

① 여성조합원 비율 및 분포 양상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 수 627,274명, 여성조합원 156,395명. 비율 24.9%.(2006년) 최근 전체 조직의 성별 조합원 현황이 파악되지 않은 관계로 정확한 수치는 확인할 수 없으나, 민주노총 내 여성조합원 비율은 대체로 25~30% 수준으로 추측된다. 조사 및 통계의 미비로 인해 여성조합원의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고 고용형태, 임금격차, 평균 노동시간, 여성 관련 단협안 적용 현황 등 기초적인 자료도 없다. 민주노총이 여성노동자 및 여성조합원의 현실이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식하지 못함을 평가할 수 있다.

② 여성관련 요구 및 단협 요구안

경제위기가 심각해진 2009년 단협 요구안 이래로 경제위기 시(구조조정 시) 여성우선해고 금지 조항이 포함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 계속 제출되었다. 그러나 실제 단협에서 체결되고 적용되는가에 대한 확인은 어렵다. 더불어 단협 조항으로 체결된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성의 노동 및 고용에 관한 단협 요구는 주로 차별 개선의 관점에서 접근되는데 남녀고용평등법 상 차별개선 조치가 그 근거이다.
전반적으로 단협 요구안 자체는 정부 정책이나 법령에 근거하며 그것을 상회하는 내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모성보호 조항은 그 자체로는 꽤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문제는 실제 적용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일ㆍ가정 양립 관련 조항은 여성‘만’을 그 대상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과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육아휴직 시 파파쿼터제, 배우자 출산휴가 등을 포함해야 한다는 제기가 있어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법률> 개정안에 이러한 조항들이 포함되었다. 현재는 이를 근거로 단협안에 모두 포함되었다.
산별 단협 요구안 및 지부/지회 요구안 현황은 총연맹의 단협 요구안과 큰 차이는 없다.

③ 총연맹 및 산별노조의 여성사업 현황
노조의 여성사업은 여성위원회가 하는 사업으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아래에서는 여성위원회의 사업 현황을 분석, 평가하도록 한다.
여성위원회 기본 사업은 조직사업, 정책사업, 교육사업, 연대사업 등으로 구성된다. 대체적으로 이런 사업들은 상층의 여성사업 담당자가 전담하는 실정이다. 정책사업의 경우 여성의 고용/임금 차별, 모성권, 할당제, 성폭력, 건강권 등 여성에 관한 다양한 의제를 포괄하고 있지만, 실제 사업은 연구프로젝트나 토론회, 설명회 등으로 진행된다. 이상에서 언급된 의제들이 여성조합원들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은 맞다. 하지만 정책사업이 외부 전문가나 연구자들의 작업을 통해 정리되고 실제 그 정책들을 사업화할 계기들을 잡지 못하면서, 정책과 요구가 민주노총의 노선, 투쟁방향에 적합한지 여성조합원들의 현실과 요구에 부합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교육사업으로는 민주노총 내 여성사업 현황, 여성노동 관련 법률과 쟁점, 여성학 기본 등을 다루는 여성노동교실이나 성평등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참여자를 확대하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그때그때 외부 강사를 섭외하는 일회성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교육내용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참여자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은 여전히 여성사업 담당자나 여성 간부들로 한정된다.
총연맹이나 산별연맹의 여성위원회와 여성사업을 평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위에서 언급한 사업들이 여성조합원들과의 결합 경로를 분명히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위원회는 여성조합원들의 자율적인 기구라는 위상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조합원들의 결합 경로가 매우 제한적이거나 부재한 상황에서 상층 사업단위로 인식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위상이 매우 모호하다.
덧붙여 중요한 평가 지점은, 여성사업이나 여성위원회가 제기하는 페미니즘/여성운동의 방향이 전체 노조운동의 방향이나 노선과 관계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노조 내 성주류화 전략에서 평가했듯 전체 노조운동의 이념이나 노선과 별개로 진행되는 여성사업은 여성조합원을 조직하는 데도 한계적일 뿐만 아니라, 노조운동 전체에서 그 위상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도 여성위원회 사업 담당자들이 성폭력 사건 해결을 전담하고 있는 상황도 지적되어야 한다. ‘노조 내 여성운동 = 반성폭력 운동’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기도 하고, 기층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이 산별로 접수되고, 산별이나 지역본부의 여성사업 역량이 취약해 결국 총연맹으로 접수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성폭력 사건과 그 처리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그동안 민주노총 내에서 벌여왔던 반성폭력 운동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할 필요성을 점점 더 높여주고 있다. 노조 내 여성 활동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던 반성폭력 운동이 과연 노조 내에서 성폭력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만들어내었는가, 또한 올바른 사건 처리를 중심으로 펼쳐져 왔던 반성폭력 운동이 최소한의 수준에서 사건 처리의 원칙이나 방식을 노조 내에 안착시켰는가. 그간의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성폭력을 감축하기 위한 다른 모색(여성운동의 강화)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노조 내 여성사업이 강화되기란 어렵다.
반성폭력 운동과 더불어 노조 내 여성사업의 대표적인 사례인 할당제 또한 여성위원회 및 여성사업의 확대와 강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평가가 필요하다. 할당제 시행 이후 여성임원 비율 증가 등의 가시적인 성과가 있다는 평가가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할당제를 통해 제고하려고 했던 여성 대표성의 실내용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성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주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집단적인 요구도 분명하게 조직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할당제를 통해 선출된 여성 간부는 여성조합원들을 대표한다기보다는 개인으로 인식될 뿐이다. 여성대표로 선출되었으나 대표할 여성의 요구와 집단적 주체성이 부재한 현실은 한편에서는 여성위원회, 여성대표의 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대표들의 활동이 개인의 성향, 정파 등을 근거로 진행되는 것을 제어할 수 없게 한다.


3. 정세와 쟁점

1) 경제위기를 통해 본 여성노동자의 현실

고용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2008년 1/4분기와, 고용위기가 본격화된 2009년 1/4분기, 그리고 회복기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 2010년 1/4분기로 시기를 구분하여 취업자를 성별로 비교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해 보자. 2009년 1/4분기에 전체 취업자가 14만 7천 명이 감소한 가운데 여성 노동자는 12만 4천 명이 감소했고 남성노동자는 2만 2천 명 감소했다. 전체 취업자 감소분의 84%가 여성이다. 회복기로 접어들었다는 2010년 1/4분기에 전체 취업자가 13만 3천 명이 증가했는데 남성은 11만 7천 명, 여성은 1만 5천 명으로 취업자 증가분의 88%가 남성이다. 경제위기 시기 여성 일자리가 중점적으로 사라지고 회복 속도 역시 남성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 수치 상 실업률이 2009년 1/4분기 여성 3.1%, 남성 4.3%, 2010년 1/4분기 여성 4.5%, 남성 4.7%로 여성이 낮게 측정되는데, 여성이 일자리를 잃을 경우 비경제 활동인구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실업률 통계가 여성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여성 취업자 수가 많고 비정규직이 다수인 산업에서 취업자 증감을 살펴보면 여성들의 실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제조업, 건설업,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의 취업자가 2009년 1/4분기에 전년 동기대비 32만 2천 명이 감소해 전체 취업자 감소분인 14만 6천 명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의 우선해고가 광범위하게 일어났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산업에서 성별 취업자 감소를 비교해 보면 남성은 10만 6천 명 감소하고 여성은 그 두 배인 21만 6천 명 감소하였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해고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회복 속도 역시 2010년 1/4분기 산업 전체 취업자가 증가로 돌아섰지만 이 분야는 여전히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 취업은 남성에 비해서 더욱 더딘 실정이다.
한편 2007년 월급여액 비교 남성 대비 여성임금 비율 66.3%에서 2009년 62.3%로 급격히 낮아졌다. 2009년 평균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 비율은 77.1%이고, 최저임금 미달자 중에서 여성 비율은 63.5%를 차지한다. 여성노동자의 대부분이 저임금 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남녀 임금격차가 급격히 확대된 것으로 보아 경제위기 시기에 남성에 비해 임금삭감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외환위기 당시 대규모 정리해고와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업자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특히 여성들이 우선해고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고용구조를 핵심인력 위주로 슬림화하고 아웃소싱과 비정규직 채용을 통해 고용조정이 상시적으로 가능하도록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전략을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비정규직의 규모가 지난 10년간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급증하였으며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이 70%에 육박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위기에는 상용직 중심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아도 비정규직 규모 조정과 같은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수 있었다. 여성 우선해고처럼 직접적이고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다수가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노동자가 (손쉽게 인력을 축소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의) 경제위기 완충지로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자본의 대응 전략

정부는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여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노령인구 부양 부담이 증가하는 위기가 발생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출산 장려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더불어 여성과 노령인구를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차대한 과제로 대두하였다. 그러나 고용창출이 둔화된 상황에서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일자리를 나누거나 새로운 분야에서 고용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분야로 떠오르는 것은 서비스업으로, 정부는 사회서비스 산업의 확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저임금으로 여성인력을 활용하고 있다. 일자리를 나누는 대표적인 방식은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고학력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의 문제로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것을 줄이고, 대체인력으로 단시간 근로자를 채용해 고용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여성이 육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노동시장에서 부차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발상도 문제지만, 유연근무제의 확대는 노동유연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정규직의 과보호로 고용시장이 경직되어 비정규직과의 격차가 고착되었고, 이것이 고용률 증가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던 자본이 정규직의 고용과 임금을 유연화하기 위해 여성 직무부터 치고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성의 몸에 대한 규제와 더불어 이데올로기적 통제로 낙태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낙태 단속은 실질적으로 여성들에게 위협적인 조치임과 동시에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
이처럼 자본과 정권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은폐하며 여성에게 위기를 전가하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전 방위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은 여성의제 문제로만 한정하여 산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① 유연근무제
정부는 국가고용 전략회의에서 10년 내 고용률 60%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중장기 일자리 창출 방안 중 하나로 유연근로제ㆍ단시간근로 등의 근로형태를 다양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여성 비경제활동인구 1,013만 4천 명 중 68%가 육아 가사 부담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경제활동에 쉽게 참여하도록 일ㆍ가정 양립형 유연근무제의 확산 필요성을 강조했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겠다는 전략으로, 여성인력을 활용하고 전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겠다는 것이다.
유연근무제가 여성을 일차적인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여성부에서 퍼플잡 도입을 발표했을 당시부터 남성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대상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남성 역시 가정의 책임자로서 근로시간을 조정하자는 취지라고 말하지만 노동유연화를 여성에서 시작해서 노동시장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국가고용 전략회의는 2009년 경제위기 시기에 획일적인 전일제 중심의 고용관행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 등 근무형태 다양화를 추진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대목에서도 유연근무제가 비단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의 만성적 저성장과 반복되는 위기로 고용창출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 아래, 전일제 일자리를 나눠서 고용률을 높이고 단시간 근로자를 고용함으로써 기업의 비용을 절감하여 경기순환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시범 실시되고 있는 공무원의 사례를 보더라도 유연근무제는 공무원 노동자 전체를 겨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유연근무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승진이나 평가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근무시간은 공직사회 내의 연공급적 임금 인사제도의 특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유연근무제의 도입은 임금 인사제도의 개편을 동반할 수 밖에 없고, 성과주의 임금 인사제도 개편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직무공유제를 확산함으로써 하나의 업무를 두 사람이 나누어 하게 한다는 것 역시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 제도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으로서 유연화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럼에도 유연근무제가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선전되는 이유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노동자들의 저항을 줄이기 위함이자 실제로 여성인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육아와 가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 아래 유연근무제를 우선 도입해 여성직무를 분할하고 비정규직화와 외주화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여성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학력 여성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유연화하여 비경제 활동인구 영역에 있던 경력 단절 여성들을 단시간 근로자로 고용하려는 계획이다.
따라서 유연근무제에 대한 대응이 여성 사안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자본의 전략은 전체 노동시장 유연화에 맞춰져 있는데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부적합하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접근하게 되면 유연근무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대응방향이 귀결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유연근무제가 여성 경력단절을 당연시하고 여성에 적합한 업무를 만든다는 이유로 남녀 간 성별 직업분리와 고용격차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또한 여성 고용정책의 우선순위는 질 좋은 여성 일자리 창출을 통해 여성의 비정규직화를 억제하고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이 마땅히 가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저임금 불안정노동을 강요하는 유연근무제에 대한 반대는 타당하지만 유연근무제를 여성일자리 문제로만 규정하는 것은 한계적이다. 노동자 운동은 유연근무제가 여성에 대한 공격을 시작으로 전체 노동시장 유연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② 사회서비스 일자리
국가고용 전략회의는 서비스 산업이 일자리 창출과 내수기반을 확충하는 데 핵심적인 분야라고 지적하면서 고용창출 유망 서비스 분야로 보건ㆍ사회복지서비스, 전문자격사ㆍ과학기술서비스, 교육, 콘텐츠ㆍ미디어, 관광ㆍ레저 사업을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고용창출의 유력한 분야로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며 2006년 정부가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을 발표한 다음 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회서비스 사업을 현재 이명박 정부가 이어서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지속적으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확대하는 이유는 재생산의 위기에 따라 보육, 간병, 노인 돌봄과 같은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진 것과 저출산 고령화로 여성노동력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저임금으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성 노동력은 자본의 입장으로서 매력적인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양육과 가사의 부담 때문에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끌어들이고, 이를 보조하기 위한 사회서비스를 활성화하며 그 분야의 고용 창출로 여성노동력을 노동시장으로 더 많이 유인하자는 계획이다.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포장되어 추진되고 있지만 실상은 여성이 가족 내에서 재생산 노동을 전담하는 성별분업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여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을 제약하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을 할당하고 있다. 공공노조의 2009년 워크샵 발표내용에 따르면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1인당 최소 월평균 20시간에서 최대 108시간으로 기관별 4배 이상으로 차이가 날 정도로 유동적이고,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으며, 가사 간병노동자들의 경우 일용직이 77.4%로 고용이 불안정하다. 시간급으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서비스의 요청빈도에 따라 임금수준이 결정되는 문제를 안고 있으며, 고용의 지속성과 안정성 모두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다고 보고했다. 또한 작업환경의 열악함, 과도한 초과근무, 이동시간이나 보고서 기록노동에 대한 비인정, 계약과 다른 노동 강요, 일방적인 부당해고, 인권침해 등이 주요한 노동문제로 나타났다.
가정에서 여성들이 아내 딸 며느리로서 가족을 돌봐왔기 때문에 돌봄 노동 자체가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거나 여성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져 저임금을 당연시해온 결과 노동권의 침해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고, 노동자성 인정마저 논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권과 자본의 전략은 여성들을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통해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착취하는 동시에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을 보족하는 역할과, 또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이중부담을 감내하여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여성을 위한 좋은 일자리로 만들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재생산의 위기에 대응하는 자본의 전략을 간파하지 못하고 돌봄 노동에 관한 일차적 책임이 여성이라는 구조와 인식을 바꾸지 못한다. 노동자 운동은 돌봄 노동이 여성들에게 전가되는 현실에 문제 제기하며 해당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③ 재생산에 대한 통제
저출산 고령화 위기 담론이 대두되자 낙태 단속 강화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위기가 야기한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확대가 여성의 이중부담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실질임금의 하락과 실업으로 노동자계급의 가계는 커다란 소득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여성들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를 찾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가계유지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사노동을 더욱 늘려야 했다. 이처럼 가족의 경제적 결핍이 심화될수록 여성이 감내해야 할 몫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출산ㆍ양육이 노동조건의 차별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빈곤층 여성에게 출산 기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대다수 여성에게 출산ㆍ양육이냐, 노동이냐 하는 선택이 강요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가 낙태를 범죄화하는 이유는 사회가 안정적인 재생산을 담보하지 못할 정도로 위기에 빠져서 출산율이 낮아졌음을 은폐하고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아서 국가가 위기에 처한 것처럼 호도하여 출산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출산의 의무를 강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박탈하는 것이 핵심적이다. 피임은 임신을 통제하기 위한 일차적인 수단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임신을 했을 경우 사후적으로 낙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낙태 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권리를 대립시키는데, 이 같은 주장은 낙태와 출산에서 발생하는 권력관계를 무시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지 않을 권리와 피임할 권리가 주어져 있는지, 여성이 출산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로써 주어져 있는지, 현재의 성규범과 결혼제도 속에서 미혼여성에게 출산이 가능한지, 기혼 여성일지라도 아이를 낳았을 경우 양육과 돌봄에 대해 사회적 지원은 어떠하고 자신의 삶을 구성해 갈 여건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외면하고 있다. 결국 자기 삶을 계획하는 독립적 여성이 되고 싶다면 금욕해야 하고,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려면 임신과 출산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성을 전제하지 않은 성욕을 추구하며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을 부정하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을 의무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낙태불법화를 반대하는 운동을 자기 과제로 삼아야 한다. 낙태 불법화는 살기 어렵고 힘들어도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의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여 재생산의 위기를 책임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에게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며 가정을 돌보는 일까지 책임지라는 자본의 요구에 맞서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와 노동에 대한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것은 재생산의 위기를 여성에게 전가해 위태로운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본에 맞서는 싸움이자 노동자 운동이 여성의 권리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4. 과제

1) 미조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확대

여성의 조직률이 매우 낮고 미조직 노동자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노동자 조직화는 중요한 일이다.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 대다수는 노동조건과 임금이 열악하고, 해고나 여타의 권리 침해에 대응조차 할 수 없거나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무권리 상태에 놓여있다. 민주노총이 이런 무권리 상태의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방어함으로써,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자신의 노동과 삶에 의미를 가지는 조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과정은 남성생계부양자-여성가사담당자라는 이데올로기와 현실이 여성을 어떻게 노동시장에서 배제하거나 활용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여성권과 페미니즘을 민주노총의 과제로 받아들일 필요성을 실천적으로 제기한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사회서비스, 청소미화, 전자 산업의 여성노동자의 조직화를 고려할 수 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고용 없는 성장을 하면서 인적자본 활용을 핵심으로 하는 서비스 산업이 발전했는데,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서비스영역의 다수가 여성 직종으로 구성된다. 최근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사례를 보더라도 유통 영역의 이랜드 투쟁과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투쟁 등 서비스 영역에 집중되는 현상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정권이 재생산 위기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사회서비스 시장을 창출해 여성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에 맞서기 위해 해당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쟁취하고 조직하는 것은 핵심적인 과제다.

<청소미화 노동자>
미조직 여성노동자 조직화가 꾸준히 진행되는 분야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한편 각 단위 조직화도 추진되고 있다. 양적인 확대를 넘어 여성노동자들을 활동가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 사업이 시도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더불어 운동의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과제가 중요한 만큼 향후 사업에 대한 평가를 통해 성과가 확산될 필요가 있다.

<전자산업 노동자>
전자산업 생산직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 노동자이며 노동 조건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지만 자본의 필사적인 노동탄압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간접고용이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인해 일자리를 자주 옮겨 다녀 취업기간이 3년에서 1년 사이가 대부분이다. 노동조합 조직률 역시 매우 낮은 상황인데 이마저도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산업이자 자동차 산업 보다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고 노동자 규모도 큼에도 불구하고 조직화의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원인을 분석하면서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여성조합원들의 주체화

2000년대 이후 비정규직 여성들의 투쟁이 터져 나왔고 대사회적으로도 여성 노동자의 현실이 상당한 이슈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조합 내에서 그 의미와 성과를 남길 수 있는 구조가 취약하거나 요구가 정식화되지 못해 축적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위원회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와 의미를 노동자의 투쟁과제와 대사회적 요구안 등으로 정리하여 노조가 수용할 수 있는 단초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여성억압의 문제가 제기될 때, 또 이러한 문제가 노조 내에서 표출됐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이를 전체 민주노총 운동의 과제로 제시하는 기구로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여성사업 담당 부문, 여성 간부들의 사업 단위로 인식되고 있는 여성위원회를 여성조합원의 힘을 바탕으로 한 여성들의 자율적인 조직으로 강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여성조합원과 접촉면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중요한데, 올해 하반기에 열릴 서울지역여성조합원대회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제안되고 있다. 대회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한편 기존의 여성사업 담당자들을 재조직 하고 새로운 여성주체를 발굴 양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한 공동의 과제를 도출함으로써 향후 여성노동자들이 집단적인 유의미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 처음 시도하는 것이지만 대회의 정형을 만들어 문제의식을 이어가고, 현재 역량 상 서울지역에서만 대회를 진행하지만 이후 각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하자.
주제어
노동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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