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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4.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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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동환경 실태조사

박준도 | 노동자운동연구소 기획실장
서문

지난 10년 사이 구로 공단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개명이 상징하듯 산업입지와 업종구성이 크게 변했고, 그만큼 노동시장도 바뀌었다. IT 정보통신, 시설사업지원 서비스업 등 생산자서비스업 관련 노동시장이 새롭게 형성되고, 반대로 과거 구로 공단 시절부터 존재해왔던 노동시장이 상대화된 것이다.
하지만 첨단화된 공단이라는 화려한 수사와 달리 구로공단에 새롭게 형성된 노동시장이 구로금천지역 노동자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었다는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불법파견, 저임금장시간 노동이라는 전통적인 노동시장의 흔적만이 기륭전자, 하이텍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간헐적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임금과 고용조건 등 노동시장에서 개별 노동력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의 능력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은 중심 노동시장과 주변 노동시장으로 나뉘어 있고, 분할된 시장은 성별(/인종)화된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서 이러한 성별분업은 가족 내에서 여성억압과 함께, 남성과 여성의 생계부양자보조자라는 분할선에 조응한다. (‘가족임금’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증명하는 것처럼) 가족 내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여성노동력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주변 노동시장에서 여성노동자의 저임금은 정당화된다.
성별화된 노동시장의 특징으로서 ‘노동의 여성화’는 중요한 분석의 도구를 제공한다. ‘노동의 여성화’란 노동 시장에서 여성노동력의 비중이 증가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이 저평가된 여성노동력 시장으로 하향 평준화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성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구로공단에서 가계구조와 노동시장 상호간의 상관관계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기존 노동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가늠해봐야 한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노동시장이 새롭게 형성된 때는 ‘노동의 위기’가 일반화되던 시점이기도 하다. IMF 구제금융 이후 거듭되는 노동의 패배와 함께 비전형적인 고용형태가 증가하고, 지속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고용불안이 일반화되던 시기에 공단 첨단화 과정이 진행된 것이다. 요컨대 비정규직화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점에 구로공단에 새로운 노동시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노동의 위기’가 새로운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는 구로공단의 첨단화가 구로금천지역의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따라서 공단발전을 논할 때 ‘노동에 대한 맹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의 준거점을 제공할 것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인구학적 특성

2011년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는 1,649명(55.2%)의 여성취업자와 1,339명(44.8%)의 남성취업자들이 설문조사에 응답하였다. 제조업 내에서 여성의 성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전자 제조업, 의복 제조업, 의료정밀기기 제조업의 사업장 비중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이하 서울디산)에서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로, 구로금천 사업체 조사에서 종사자수가 많은 제조업은 ① 전자 제조업 (21.7%) ② 의복 제조업 (18.0%) ③ 기타 기계 제조업 (13.8%) ④ 의료정밀기기 제조업 (11.0%) ⑤ 전기장비 제조업 (8.4%) 순이다.

[표 1] 성별 직종, 업종 분포율

구로금천지역에서 일하는 남성취업자들의 직종분포를 보면 기술직과 사무직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성취업자들은 사무직과 미숙련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 업종 분포를 보면, 남성과 여성 모두 제조업, 출판정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여성의 제조업 종사자 비율은 남성의 제조업 종사자 비율보다 높다.) 성별 업종분포에서 세 번째로 비율이 높은 것은 여성의 경우 시설사업지원업인 반면, 남성은 전문과학기술업이다.
서울디산에서 제조업과 출판정보서비스업, 시설사업지원업, 전문과학기술업 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것은 국가산업단지로서 구로공단의 성격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1997년 ‘구로단지 첨단화 계획’을 수립한 이래, 구로공단은 업종고도화를 위해 연구개발(R&D), 첨단정보지식산업을 집중 육성해왔다. 그리하여 IT산업,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시설사업지원업 등을 중심으로 생산자서비스업이 급격하게 성장한다. IT산업,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에서 직종 비중이 높은 것은 기술직과 사무직이다. 그리고 시설사업지원업에서는 미숙련직의 비중이 높다.
2011년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 출판정보서비스업(IT산업), 전문과학기술업, 시설사업지원업 비율이 높은 것이나, 남성은 기술직과 사무직 비율이 높은 반면에 여성은 사무직과 미숙련직 비율이 높은 것은 구로단지 첨단화의 결과다.

[그림 1] 세대 분포

[그림 1] 세대별 분포율을 보면, 40대 이상 노동자의 분포율이 높은 2011년 3월 경제활동 인구조사와 달리,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는 40대 미만 노동자의 분포율이 높다. 이 역시 구로공단 첨단화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경활조사에서 취업자의 평균연령이 44.3세보다 낮은 대표적인 업종이 출판정보서비스업(37.9), 전문과학기술업(40.0), 제조업(42.2) 등인데, 앞서 본대로 구로금천 사업체 조사에서는 이 업종의 사업체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림 2] 성별 세대 분포율

[그림 2] 성별 세대별 분포율을 보면, 서울디산에서는 남녀 모두 20-30대 젊은 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남성노동자들의 경우 40대는 그 비중이 매우 낮은 반면, 여성노동자들은 40대에서 비중이 여전히 높게 나타난다.
40대 남성노동자들의 비중이 낮은 것은 전통적인 남성생계부양가구 모델을 지탱시켜줄만한 노동력시장이 부족하거나, 서울디산에 새롭게 형성된 첨단지식산업이 40-50대 세대들을 끊임없이 노동시장에서 배제하는 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3] 남성과 여성의 직종별 세대 분포율
남성의 직종별 세대분포율에서는 별다른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의 직종별 세대분포율에서는 커다란 특징이 있는데, 사무기술직에서는 20대 비율이 높은 반면, 생산미숙련직에서는 40대 여성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판매서비스직은 20대와 40대 비율이 높은 M자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림 4] 전자산업에서 남성과 여성의 사업체 규모별 세대 분포율

[그림 4]는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통신장비 제조업(이하 전자산업)에서 사업체규모별 세대분포율을 살펴본 것이다. 남성의 세대분포율을 살펴보면 사업체 규모에 따른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은데, 대기업(300인 이상)과 중소기업(300인 미만)에서 세대분포율에 큰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는 20대 여성노동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 반면 중소기업에서는 40대 여성노동자의 비율이 높다.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이유는 대기업들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성노동자들을 전자산업 노동시장 내로 유입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졌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 중소기업들은 저임금 여성노동력 시장을 찾아 기혼 여성들이 집중되어 있는 노동시장으로 몰리거나, 비싼 지대를 감수하고 남아있게 된다. 반대로 20대 젊은 여성노동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데 제약이 적은데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회사로 보이는 대기업으로 진입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40대 여성노동자들은 가족의 재생산 기능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질 수 없어, 저임금을 감내하고 도심 주변에 있는 중소기업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전자산업 노동시장이 사업장규모에 따라 세대별로 양극화되는 것이다.
[그림 3] 생산미숙련직 여성노동자의 세대분포율은 [그림 4]의 전자산업 여성노동자의 중소기업 세대분포율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2009 구로금천 전국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에서는 전자업종이 제일 많았는데, 이 업종의 성별 세대 분포율이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40대 여성노동자들이 서울디산의 전통적인 생산인구 흔적을 가장 고유한 형태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 전통적인 노동시장에 지속적으로 편입되고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노동시장 특성

업종과 직종, 사업장규모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는 제조업에서 일하는 취업자 비율이 40.0%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출판 영상 및 정보서비스업이 19.9%,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업이 9.4% 였다. 직종별로 보면, 사무직이 32.4%로 가장 많았고, 전문기술직이 24.6%로 두번째로 많았다. 이들 사무기술직이 전체의 50%가 넘는 셈이다. 미숙련직은 19.7%로 세번째였으며, 보통 생산직으로 분류되는 숙련직, 반숙련직, 미숙련직을 더해보면 생산직 규모는 30%가 조금 못 미친다. 이는 서울디산이 첨단화되면서 탈생산화되고, 생산자서비스업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10인 미만인 소상공인은 19.9%로, 2011.3 경활조사와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하지만 10인 이상 50인 미만 소기업과 300미만 중소기업은 전체에서 70.5%를 차지할 만큼 2011.3 경활조사에서의 비율 38.4% 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300인 이상 중견기업대기업에서 일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2011.3 경활조사와 비교하면, 결코 낮은 것이 아님은 확인해 두자.

[표 2] 업종별 직종 및 사업장 규모 비율

업종별 직업 분포를 보면 제조업에서 생산직(숙련미숙련 포함) 비중은 56.3%이고, 사무기술직 비중은 39.4%로 나타났다.
한편 운수업과 시설사업지원업에서 역시 미숙련직 비중이 높게 나오는데, 운수업에서 미숙련직은 주로 창고물류기지에서 포장운반을 하는 경우이고, 시설·사업지원업에서 미숙련직은 콜센터 노동자들이거나 청소, 경비 등 시설용역 노동자들이거나 창고물류기지 지원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다.
사업장규모는 업종에 관계없이 유사했는데, 제조업뿐만 아니라 출판정보 서비스업 등 거의 대다수 업종의 사업장 규모가 50인 미만 소기업과 300인 미만 중소기업 종사자 규모의 사업장으로 나타났다. 50~300인 사업장은 업종에 관계없이 아파트형 공장에 적합한 규모이기도 하다.

종사상 지위와 고용형태
2011.3 경활조사와 비교했을 때, 서울디산에서 상용직 비중은 19%포인트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는 상용직에 겨우 포함되는 계약기간이 1년인 노동자비율이 상용직에서 17%(2011.3 경활부가조사에서는 12.0%)나 되는데다, 기본적으로 상용직 비중이 낮은 건설업, 숙박음식업 사업체와 종사자들이 서울디산에는 많지 않고, 상용직 비중이 높은 출판정보서비스업, 전문과학기술업관련 사업체와 종사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표 3] 종사상 지위 및 고용형태* 2011.3 경활 부가조사 비정규직 규모에 대한 추정은 한노사연의 추계방식을 따랐다. 한노사연의 비정규직 추계방식은 노동부의 한시적, 시간제, 비전형적 노동자 뿐만 아니라 임시일용직 노동자 전체를 포함한다. 장기임시직을 한노사연은 비정규직으로 간주하는 반면 정부는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셈이다.

[표 4] 주요업종별 종사상 지위 비율

[표 4]에서 보는 것처럼 서울디산에 주요하게 분포한 주요 산업에서도 상용직 비중은 2011.3 경활 부가조사보다 높게 나타난다. 그렇다고 상용직 비율이 높다고 고용안정성을 논하기는 어려운데, 상용직 내에도 기간제, 파견근로 등 한시적이면서 비전형적인 고용형태가 많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비율을 살펴봐야 한다.

서울디산의 비정규직
[표 3]을 보면 서울디산의 비정규직 비율은 52.0%로 2011.3 경활 부가조사의 비정규직 비율보다 3.3% 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서울디산의 비정규직은 장기임시근로의 비율은 매우 낮고, 한시근로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즉, 계약기간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고용이 승계되는 임시일용직 노동자 비율은 낮고, 고용이 승계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거나 계약기간이 명시되어 고용이 불안한 노동자의 비율은 높다는 의미다.

[표 5] 종사상 지위별 비정규직 비율

또 [표 5]처럼 서울디산의 비정규직을 종사상 지위별로 살펴보면, 상용직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41.9%에 이른다. 2011.3 경활부가조사에서 드러난 상용직대비 비정규직 비율이 전국적으로 17.0%라는 점과 비교하면, 24.9% 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이는 서울디산에서는 상용직이라 할지라도 고용이 불안하고 노동3권이 제약된 근로계약관계가 대단히 만연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상용직 내에서 한시근로(기간제 포함), 파견용역, 시간제의 비율은 36.0%, 10.3%, 6.3%로 이를 2011.3 경활 부가조사의 한시근로(15.2%), 파견용역(4.9%), 시간제(1.0%)와 비교해보면 각각 15.8%포인트, 5.4%포인트, 5.3%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림 5] 성별, 세대별, 업종별, 직종별 비정규직 비율

서울디산의 비정규직 비율을 성별로 살펴보면 남성은 48.2%, 여성은 54.5%로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2011.3 경활 부가조사와 비교했을 때,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낮게 관찰되는데, 이는 [표6]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성 비정규직 중 비율이 높은 장기임시 노동자 비율이 서울디산에서는 낮기 때문이다. 반면 남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높게 관찰되는데, 한시근로(기간제 포함)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세대별 비정규직 비율을 보면 30, 40, 50대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표 6] 성별 비정규직 비율

한편 서울디산에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업종인 건설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등에서의 종사자가 적고,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낮은 제조업, 운수업, 출판정보서비스업, 전문과학기술업 관련 노동자들이 많다. 전체 비정규직 규모가 크기 때문에 서울디산의 주요 5대 업종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림 5]의 업종별 비정규직 비율을 살펴보면 주요 업종에서 비정규직 비율, 특히 제조업의 비정규직 비율은 48.8%로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또 [그림 5]의 직종별 비정규직 비율에서도, 서울디산에서 많은 직종인 기술직과 사무직의 비정규직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사무직의 비정규직 비율은 41.9%로 2011.3 경활조사에 비해 2배 가까이 높다. 다만 미숙련직의 비정규직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는 임시일용직 노동자가 많은 건설업과 도소매업 비율이 서울디산에서는 낮기 때문이다.

<참고> 서울디산 비정규직 노동자의 특징

O 비정규직의 성별세대별 분포

[그림 6] 비정규직의 성별, 세대 분포율

노동환경실태조사에서 비정규직의 성별 세대별 분포는 [그림 6]처럼 전체노동자 성별분포([그림 2])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이를 2011.3 경활 부가조사의 비정규직 성별세대별 분포와 비교해보면 20-30대 비정규직 비율이 남녀 모두에게서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7]은 서울디산에서 생산자서비스업 내 20-30대 비정규직 비율과 전체 미숙련직의 20-30대 비정규직 비율을 살펴본 것이다. 서울디산의 새로운 노동시장을 대표하는 생산자서비스업에서 20-30대의 비정규직 비율은 49.0%로 전체노동시장(2011.3 경활 부가조사)에 비교했을 때 12.2% 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전통적인 노동시장에 흡수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20-30대 미숙련직에게서 비정규직 비율은 2011.3 경활에 비하면 조금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20-30대 미숙련직에서 비정규직 비율 80.6%는 그 자체로 절대치가 높은 것이다.

[그림 7] 생산자서비스업과 미숙련직에서 20-30대의 비정규직 비율

서울디산에서 20-30대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신흥노동시장을 대표하는 업종에서든, 전통적인 노동시장을 대표하는 직종에서든 20-30대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것은 구로공단의 업종고도화가 비정규직의 남용, 20-30대 젊은 세대에 대한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면서 진행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동자의 업무 특성

평균임금, 평균노동시간, 평균근속년수
서울디산의 임금노동자 전체 평균임금은 192.3만 원, 평균노동시간은 47.1시간으로 2011.3 경활 부가조사와 비교했을 때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디산의 근속개월은 36.5개월로 2011.3 경활부가조사와 비교했을 때 매우 짧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서울디산의 기술직과 사무직의 근속개월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서울디산의 산업고도화가 진행되고, 2001년을 전후로 새로운 사업장이 들어선 이유도 있겠지만, 앞서 상용직이라 할지라도 높은 비정규직 비중, 한시근로 노동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표 7] 업종별, 직종별, 사업장별 평균임금, 평균노동시간, 평균근속년수

한편, 제조업 평균임금이 서울디산 전체 평균임금과 유사한 것은 제조업 내 사무직 및 기술직이 많기 때문이다.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 직군별로 봤을 때 가장 낮은 임금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서비스직과 미숙련직이다. 특히 미숙련직은 평균임금의 61.0% 수준이다. 반대로 고위관리직은 미숙련직 임금의 3.5배를 넘는다. 한편, 숙련직의 임금은 전체 평균임금보다 상회하긴 하지만 평균노동시간 역시 상회한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를 보면 업종별 임금격차나 직종별 임금격차에 비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중소기업이든, 소기업이든 평균임금이나 근속년수든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이다. 중견기업과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대기업의 평균근속년수가 훨씬 길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임금격차가 크게 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운수업 노동자들의 경우 전체대비 평균임금이 낮은데 반해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도리어 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운수업종사자들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주당 평균노동시간을 따져보면 기술직과 숙련직의 노동시간이 전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공단지역에서 낮은 시급으로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 미숙련직보다 더 장시간 노동하는 직군이 기술직이다.

고용형태별로 봤을 때 서울디산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크게 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서울디산에서 정규직 평균임금자체가 낮기 때문이다. 2011.3 경활부가조사에서 정규직 평균임금이 272만 원인데 반해 서울디산의 정규직 평균임금은 217만 원이다.(정규직 임금의 하향평준화) 반면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비정규직 임금이 경활부가조사보다 높은 이유는 경활부가조사 비정규직 평균임금에서 가장 낮은 지위인 일용직 숫자가 서울디산에는 적기 때문이다. 또 기술직에서 비정규직 비중(41.4%)이 높은 것도 비정규직 평균임금이 상대적으로 상회하는 이유이다.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년수는 거의 모든 고용형태에서 2년이 안 된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은 임금격차보다 근속년수다. 다만 예외가 기간제인데, 기간제만 평균 근속년수가 2년을 살짝 웃돈다.

[표 8] 지위별, 고용형태별 평균임금, 평균노동시간, 평균근속년수

파트타임 시간제의 평균 임금이 높은 것은 평균 노동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 파트타임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41시간이다. 시간제로 계약하지만 사실상 전일제 형식으로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시간제 노동자를 업종별로 구별해보면 시간제 노동자 중 44.4% 가 제조업에서 종사하고 있고, 14.3%가 시설사업지원업으로 일하고 있다. 직종별로 구별해보면 미숙련직이 48.3%로 가장 많고, 사무직은 16.3%다.


임금분포, 직종별고용형태별 임금분포

[그림 8] 서울디산 임금분포

2011.3 경활부가조사의 임금분포는 151~200만 원을 중심으로 좌우대칭형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디산에서는 91~110만 원, 111~130만 원, 131~150만 원 임금구간에서 분포율이 더 높게 관찰된다. 왼쪽으로 약간 치우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분포의 무게중심이 저임금 쪽으로 쏠려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임금분포 그래프를 보면 200만 원 이상 임금소득을 올리는 비정규직은 거의 없다. 비정규직은 90~110만 원을 전후한 임금대에 분포해 있는 반면, 정규직은 150~200만 원 임금대에 분포해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임금분포 그래프를 보면 커다란 차이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비정규직 임금이 너무 저임금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규직 임금이 높아 보일 뿐이다. 정작 정규직 임금도 실제로는 151~200만 원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서울디산의 가구 수가 평균 3.2인이다. 3인 가구 표준생계비는 민주노총 397만 원, 한국노총 293만 원이다. 따라서 한 달 평균임금 300만 원 이상 임금소득이 되어야 일정한 소득 안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울디산에서 이 비율은 13.2% 밖에 안 된다. 임금이 하향 평준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림 9] 고용형태별 임금분포

[그림 10] 직종별, 업종별 임금분포

직종별 임금분포도 비슷한 모양새다. 생산미숙련직은 (91~110만 원 대 임금 분포비가 더 높다는 것 정도 말고는) 거의 비정규직 임금분포와 유사한 분포도를 띄고 있고, 사무기술직은 정규직 임금분포와 유사한 분포도를 띄고 있다.
업종별 임금분포도를 보면,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최저임금 구간이라 할 수 있는 91~110만 원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조업과 운수업 종사자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운수업과 제조업에서는 150~200만 원 구간의 임금노동자 층이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일 뿐이다.

[그림 11] 성별, 가족형태별 임금분포율

[그림11] 성별 임금분포를 살펴보면 150~200만 원 대 임금을 정점으로 여성노동자의 임금분포는 200만 원을 넘어서는 임금수준에서는 급격히 줄어든다. 반면 남성노동자는 250만 원까지 완만하게 하락하다 300만 원이 넘는 임금수준에서 다시 비중이 늘어난다. 여성노동자는 150~200만 원 이하 임금 대에서 많이 분포하고 있고, 남성노동자는 150~200만 원 이상 임금구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생계부양모델에 따른 임금분포를 살펴보면 남성생계부양 가구주는 200만 원 이상 임금소득을 올리는 비중이 높아진다. 하지만 여성생계부양 가구주의 임금소득분포는 공동생계부양 가구주의 임금소득분포와 유사하다. 여기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오늘날 가족의 위기와 함께 여성생계부양 가구주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서울디산에서는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가계를 책임질 수 있는 별다른 수단(혹은 지원)을 찾기가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12.9%에 불과한 남성생계부양 가구주의 임금분포를 사상하면, 서울디산의 노동자전체 임금분포가 여성생계부양 가구주의 임금분포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여성생계부양 가구주의 임금분포는 이미 여성의 임금분포와 유사한 형태다.) 젊은 세대든 늙은 세대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첨단화된 노동시장에 새롭게 진입한 사람이든 오래된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는 사람이든, 40대 여성노동자의 임금소득 분포를 따라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서울 디산의 구조고도화 과정에서도 ‘노동의 여성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다시 말해 전체 노동시장이 저평가된 여성노동력을 기준으로 임금과 고용조건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시간
서울디산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7.1시간이다. 이는 사업체노동력조사의 2011년 1/4분기 평균 40.8시간은 물론이거니와 2011.3 경활부가조사의 43.1시간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서울디산의 노동자들이 매우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52시간 초과 노동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20.3%에 이를 정도다.

[표 9] 52시간 초과 노동자의 성별세대별 분포율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들만 별도로 분석해보면 20-30대 젊은 세대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종별로 보면 미숙련직 뿐만 아니라, 기술직, 사무직도 52시간을 넘기는 초장시간 노동대열에 포함되어 있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이 가장 많았다. 42.0%로 거의 절반에 이르고 있다. 출판정보서비스업 노동자(IT 노동자)들도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 10] 52시간 초과 노동자의 직종별업종별 분포율

[그림 12] 노동시간 분포율

주 40시간이라는 법정노동시간이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것으로서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노동시간 분포도가 40~44시간에서 정점이 되는 종 모양을 이뤄야 한다. 하지만 서울디산은 전반적으로 오른쪽으로 치우친 모양을 띠고 있다. 56시간이 넘는 구간에서는 분포도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그림 13] 직종별, 업종별 노동시간 분포율

[그림 14] 성별, 가계형태별 노동시간 분포율

노동시간 분포는 직종별로 보거나 업종별로 보아도 비슷한 분포를 나타내고 있다. 임금분포와는 달리 노동시간은 고용형태나 성별, 가계형태, 어떤 것으로도 특징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장시간 노동체계에 대해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명은 (시간급성과급이라는 임금제도와 궁핍화저임금 구조라는 구조적 상태에서) 시간당 임금이 낮으니 법정노동시간만 일해서는 임금소득이 부족하고, 따라서 부족한 임금소득을 만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잔업특근을 마다치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는 불행히도 노동시간 연장(물량확보)을 둘러싼 노동자내부의 경쟁이라는 양태로 드러나는데 이렇게 되면 장시간 노동의 문제는 개별 노동자의 문제인 것처럼 은폐된다.

노동시간과 시간당 임금
주 40시간 이상(20인 미만 사업장은 44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의 월 소득을 시간당 임금으로 환산해서, 이를 직종별로 살펴보면, [표 11]과 같다.

[표 11] 직종별 시간당 임금

미숙련직의 평균시급은 4,600원 정도로 나타났고, 정규직은 5,011원, 비정규직은 4,398원으로 나타났다. 2011년 최저임금이 4,320원이었기 때문에 비정규직 평균 시급 4,398원이라는 의미는 서울디산의 생산직 비정규직은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가 상여금(400% 전후)이라는 몇 가지 증언을 고려하면, 정규직 시급 5,036원이라는 것의 의미는 동일한 기본시급에 상여금이 더해진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시간급이 4,000원도 안 되는 노동자 비율도 13.8%(315명)나 발견되었다.

4대 보험

[그림 15] 4대보험 가입률

4대 보험 가입율을 살펴보면, 사업장 규모에 따른 가입률 하락(5인 미만 소사업장)이 관찰된다. 2011.3 경활부가조사는 그런 경향이 뚜렷한데, 이는 자영업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울디산에서 4대 보험 가입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임금소득으로 보인다. 110만 원 이하로 임금소득이 떨어지면서부터는 4대 보험 가입률이 급격하게 하락하기 때문이다. 임금소득이 너무 낮은 경우 4대 보험 지급을 위해 임금에서 일정 금액을 제하는 것 자체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생활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결론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노동환경

① 비정규직화, 20-30대 청년 세대에게 집중
서울디산의 비정규직 비율은 52.0%이며, 상용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41.9%로 나타났다. 특히 상용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거의 최고 수준이다. 서울디산에서 상용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는 것은 비정규직을 임시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이런 비정규직화 경향은 20-30대 젊은 세대들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구로공단 첨단화, 업종고도화를 추진하면서 생산자서비스업이 급증하였다. 하지만 생산자서비스업에서 20-30대 비정규직 비율은 49.0%이고, 공단에 유입된 20-30대 미숙련직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비율은 80.4%에 이른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임금, 짧은 근속년수, 기간제 2년 정규직 전환 외면, 불법탈법 파견 등의 문제는 서울디산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 더구나 불법파견에 따른 저임금, 고용불안, 노동유연화 등등의 피해는 거의 대부분 기혼 여성노동자에게 집중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기간제 2년 정규직화 의무 역시 외면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②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서울디산 미숙련직 노동자의 평균 시간급은 4,603원이고 비정규직의 평균 시간급은 4,391원이었다. 최저임금이 기본 시급인 것이다. 또한 시간급이 4,000원도 안 되는 노동자들이 13.8%나 발견되었다. 장시간 노동관행으로 적절한 임금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디산의 정규직 평균임금은 210만 원으로 각종 통계자료에서 나타나는 정규직 임금 수준에 비교해봤을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서울디산에서, 일정한 소득 안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 한 달 평균임금 300만 원 이상 임금소득을 올리는 계층은 13.2% 밖에 안 된다. 전반적으로 임금수준이 매우 낮은 상태다.
하지만 반대로 노동시간은 매우 긴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디산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47시간으로 나타났고, 법적으로 금지되어있는 52시간 초과노동 비율도 전체 대비 20.3%를 차지할 만큼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 생산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무직과 기술직 모두가 장시간 노동이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시간급이 너무 낮아 일정한 한 달 수입을 벌려면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노동을 선택한다. 노동시간을 연장하면서 일하지만 그나마도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4,000원 미만으로 최저임금을 주는 사업장들의 대부분은 오랜 시간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사무기술직 노동자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장시간 노동을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오랜 시간 일하지만 적절한 임금 보상체계는 없으며, 52시간 초과노동 금지와 같은 사회적 규제도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다.

새로운 노동시장과 오래된 노동시장의 공존
2002년 이후부터 구조고도화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새로운 노동시장이 형성된다. 생산자서비스 기반의 산업과 함께 기술직, 사무직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된다. 생산자 서비스의 또 다른 한 축인 사업지원서비스업 역시 아파트형 공장의 집중과 함께 대거 확산된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새로운 미숙련직 노동자들이 유입된다.
세대적 기반으로 보면 20-30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술직, 사무직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지만, 절반은 비정규직으로 들어왔다. 여러 세대에 걸쳐 새로운 미숙련직 노동자 ― 콜센터, 창고물류기지, 청소경비용역 노동자들이 유입되었지만 이들은 거의 100% 비정규직 형태다.
전통적인 제조생산직 노동시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질서아래 저평가된 여성노동력 시장은 여전히 존재했고, 제조생산직 회사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구로공단과 함께 했던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계는 유지 존속되었다.
새로운 노동시장과 오래된 노동시장은 오랜 시간 공존했고, 구로공단의 업종고도화 계획은 현실화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공단의 노동시장 조건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비정규직은 계속 확대되었고, 임금소득 수준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장시간 노동 관행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을 뿐이었다.

지난 10여 년 간 공단은 커다랗게 변모하였다. 정부는 업종고도화라는 명목으로 첨단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열을 올렸고, 각종 규제완화, 세제지원, 인프라 지원 등을 통해 기업가들을 지원했다. 기업가들을 지원한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그렇게 기업가들을 지원한 결과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구로공단에는 통계로 잡히지 않는 노동자들의 삶이 있다. 국가의 통치행위, 기업의 경영행위는 이들 노동자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정규직 만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라는 현실의 일 단면을 2011년 노동환경실태조사는 아주 조금 드러냈을 뿐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제조공단 발전 방향은 노동 배제적일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를 생산하기 보다는 분배하고, 특정계층(금융투기세력)에게 부를 집중시키는데 기여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노동권과 생활권은 매우 심각하게 침해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부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과정 또한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서울디산에서 고용안정, 임금조건 및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요구는 무리한 것이 아니다. 고용안정이나, 임금복지 시설을 개선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디산 소재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에 따른 이익만 누릴 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는 흔적은 이번 실태조사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정부가 추진하고 한국산업단지공단(KICOX)이 집행한 구로공단 첨단화 계획을 이들은 찬양만 한다. 노동 배제적이며, 노동에 맹목적인 첨단화는 결국, 20-30대 젊은 세대를 비정규직이라는 늪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공단에서 젊은 세대들의 노동시간은 사정없이 늘어났고, 그만큼 임금소득수준은 낮아졌다. 또 40대 여성노동자들의 삶의 터전, 일자리를 빼앗고, 그렇게 여성들을 위기로 내몰면서 더 열악한 일자리를 선택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둘러싼 실태조사 한번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던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새롭게 공단을 더 고도화하려고 한다. 모든 논의를 원점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화려한 불빛으로 공단을 첨단화해서 공단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동하고 있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터져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노동권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의 장치도 없이 논의되는 공단 발전방향은 결국 미래세대에게는 절망과 고통, 좌절과 시련의 공단으로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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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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