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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가을.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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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야 할 때 제대로 싸운다”

엄길용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장 인터뷰

엄길용 |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장
인터뷰어: 이승하 | 서울지부 사무국장
기획/정리: 이승하 | 서울지부 사무국장,
이민영 | 정책위원
일시: 2013년 8월 23일(금)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서발 KTX 법인설립을 필두로 한 철도민영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사실 철도를 민영화하려는 정부의 정책은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시민들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공공부문 민영화가 곳곳에서 십수 년 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수록 민영화 정책도 점점 교묘해진다는 것이다. 민중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노조의 반대투쟁을 점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조건 속에서도 힘차게 민영화 반대 투쟁을 진행해온 노동조합이 있다. 바로 공공운수노조·연맹 전국철도노동조합이다. 지난 6월에는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투표를 89.7%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시키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2013년 하반기, 민영화 반대 투쟁을 앞둔 상황에서 현재 철도노조의 상황, 이후 투쟁 과제를 듣기 위해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 엄길용 본부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묘한 방식의 민영화, 결국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대응이다”

사회운동: 상반기 동안 철도노조는 박근혜 정부의 철도민영화 정책에 맞서 힘찬 투쟁을 전개해왔다. 지난 6월에는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투표가 89.7%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되기도 했다. 이번 투쟁 준비과정은 어떠했나.

엄길용 본부장(이하 엄길용): 사실 철도민영화 반대 투쟁은 이번 정권 하에서 새롭게 진행된 투쟁은 아니었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국면에서 진행되는 투쟁임은 분명했으나, 투쟁 준비 과정 등에 있어서 이전의 투쟁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 내부적으로는 조합원 교육부터 시작해서 조합원들과 충분히 소통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민영화 관련해서는 지난 10여 년 동안 교육이나 다양한 투쟁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이해가 높다. 쟁의행위 투표에서 총파업이 높은 찬성률로 가결된 것도 이러한 지난 과정들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그리고 정권이 바뀔수록 점점 민영화 추진 방식이 세련되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투쟁을 열심히 조직했고, 그 결과 압도적 찬성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은 철도민영화 저지이지만 본질은 전체 공공부문 민영화이다. 지금 진행하는 이런 투쟁을 통해서 조합원들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교육도 이런 목표 하에서 진행하고 있다. 물론 많이 더딘 측면도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이기적인 면이 존재한다는 평가들도 있는데, 철도노조도 공기업 노조로서 여기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얼마 전 진행된 지부별 파업학교에 참가했었는데, 분위기가 굉장히 좋고 모두가 열심히 참여하더라.

엄길용: 한 달에 한 번씩 본부에서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학교를 열고 순회하면서 지부별로 찾아가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분위기는 좋지만 조합원 전체 수에 비하면 참여수준이 매우 낮은 편이다. 파업학교도 지부별로 진행했는데, 총 400여 명 정도 참여했다. 전체 조합원 수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그래도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가지고 새롭게 전 조합원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지부에서 주도하면서 필요하면 간부들까지 파견해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회운동: 철도민영화와 관련해 최근 정부의 입장 변화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엄길용: 기본적으로 정부의 민영화 추진 시도 자체가 세련되어졌다. 물론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에 본질적인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이 바뀐 적은 없었던 것이다. 저들이 세련되어졌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전통적인 방식의 민영화를 우회한 경로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수서발 KTX는 민영화가 아니라며 법인설립 추진 과정에서 ‘민간자본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겠다,’ ‘연기금을 도입하겠다’며 민영화 의도를 감추려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통신 민영화 사례에서 보듯이 연기금 지분은 매각하면 그만이다. 언론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민영화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관제권 환수, 선로분배권 환수, 출자했던 자산 환수 등을 통해서 민간 사업자가 진출했을 때 이윤을 추구하기 쉽도록 그들의 입맛에 맞게 철도운영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영화 추진 방식이 훨씬 교묘하고 치밀해졌다.

사회운동: 최근 사장 선임과 관련해서 국토교통부의 개입이 있었다. 철도노조와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이에 문제제기를 하고 여론을 조직해서 정부의 낙하산 사장 선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론을 의식한 조치인 것 같은데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엄길용: 이 사안을 통해 철도민영화 문제가 언론에 부각된 것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사장 선임은 민영화 계획을 추진해나가는데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영화는 지금 정부의 수순대로 사장이 없이도 부사장 직무대행 체제로 진행이 가능하다. 파업 시기를 정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일 수는 있겠다. 어쨌든 사장 선임을 막아낸 것 자체는 투쟁의 성과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이나 전체 투쟁 대오의 자신감 형성에는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사회운동: 민영화 절차가 교묘한 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 파업 돌입 시점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 지난 쟁의대책위원회에서도 수서발 KTX 법인 설립 시 파업 돌입이라는 원안이 격론 끝에 통과되었다고 들었다. 주체들의 준비 정도나 민영화 추진 일정을 두고 판단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떠한가.

엄길용: 아직 쟁점이 있다.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이 안 되면 철도민영화도 안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 법인 설립이 결정적이라면 그에 초점을 맞춰야겠지만 민영화는 이와 상관없이 이미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폭제가 있어야 더 큰 싸움을 만드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도 기점을 하나 확보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민영화 계획은 어떤 결정적인 전환점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한 단계 진행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1월로 수서발 KTX 운영이 늦춰졌는데 법인 설립과 관련한 행정적 절차나 지분 출자는 영업개시 이전에 언제든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법인 설립 이후로 투쟁을 보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연기금 투자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보도되었는데 이 역시 당장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 어떻게 하느냐다. 이에 따라 민영화가 당겨질 수도, 미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희생의 각오로 파업투쟁 승리하자”

사회운동: ‘국민의 발을 볼모로’ 싸운다는 비난부터 정권의 탄압과 징계까지, 최고 수위의 투쟁인 파업을 감행하려면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하는데.

엄길용: 투쟁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총력투쟁, 파업뿐이다. 정치권에 청원을 하고 여론을 조직해서, 정부가 노사정 테이블로 민영화 문제를 넘기고 논의하게끔 한다는 방식도 있겠지만 지금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방식은 노동조합으로부터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방식을 통해서는 민영화 정책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사회운동: 민영화를 앞두고 공사 내부에서는 직종별 구조조정 등이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다. 화물 1인 승무, 전기 장비 외주화, 열차승무 강제순환전보가 추진 중이다. 민영화에 앞서 벌어지는 현장의 변화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엄길용: 사실 철도분야에 구조조정은 일상화 되어있다. 특히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가장 큰 문제다.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인데, 결국에는 외주와 하청 등으로 필요한 인력분을 보충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일의 양은 그대로인 것이다. 한편 업무를 외주화하지 않고 1인 승무처럼 인력 자체를 줄이는 방식도 있다. 이런 흐름들의 목적은 철도를 가장 팔기 쉽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비용절감의 목적으로 인원 자체를 줄일 뿐만 아니라 인건비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는 민간자본이 진출했을 때 가장 이익을 내기 좋은 구조다. 정부가 조금만 보조를 해주면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사회운동: 현장은 인력부족이라 아우성인데 오히려 관리자들은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관리자가 더 많은 역도 있다고 하던데.

엄길용: 철도 관련 전체 인력 규모 내에 관리자 비중이 아주 커졌다. 노동조합을 염두에 두고 배치된 인력들이다. 통상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을 때는 우선 중간관리층을 상당히 슬림화 한다. 구조조정의 일반 타겟이 바로 중간관리층인 것이다. 하지만 철도는 역으로 중간관리층을 노무관리나 노동조합의 단체행동, 파업 시 대체인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실제 필요보다 더욱 비대화시킨 측면이 있다.

사회운동: 현재 강제순환전보에 반대하여 열차 승무 조합원들이 휴일 지키기 투쟁을 하는데, 그 빈자리를 급조되고 자격 없는 이들이 대체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측에서는 파업에 대비하여 대체기관사로 쓸 인력들을 부랴부랴 추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엄길용: 날림 기관사, 자격 없는 역무원을 동원하여 철도를 움직이게 할 수는 있으되 안전을 담보할 수는 없다. 허준영 사장 시절에 3천여 명의 철도 관리자들에게 파업 등에 대비하여 약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기관사 면허를 발급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안전을 전혀 담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본 운영 자체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경부선 운전을 하던 기관사가 중앙선에 가면 선로의 특징, 신호관계 등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이전의 파업 때도 대체 인력이 움직이는 열차가 중간에 운휴되거나 상당히 지연되는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많이 발생했다. 특전사들을 훈련시켜 열차, 선박 유사시 대비 운행 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모두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회운동: 지금까지 수많은 투쟁을 경험한 만큼 관록도 쌓였지만 반대로 해고나 징계가 빈번히 벌어지는 것을 보아왔기에 파업을 앞둔 조합원들의 마음은 한편으로 두렵기도 할 것 같다. 한길회 사건 등 최근 공안탄압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현재 큰 싸움을 앞둔 철도노동자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듣고 싶다.

엄길용: 타임오프가 도입되면서 전임자 수가 반 정도로 줄었다. 이전에는 64명의 상근자가 있었는데 현재는 32명 정도로 반으로 줄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여러모로 파업투쟁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분위기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제일 좋은 상황이다. 결의대회 참여정도,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조합 지침에 의해 진행되는 선전 상황, 1인 승무 저지 투쟁 등의 객관적 상황들을 보았을 때 그렇다. 본부 지침이 100% 이행되고 있으며 집회 규모도 전례 없는 규모로 조직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전에는 더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럴 때도 투쟁에 돌입했다. 지역, 직종별 차이는 있겠지만 객관적인 상황을 봤을 때 지금은 파업에 돌입할 조건도 되고 정당성도 충분하다.

사회운동: 지난 대의원대회 때 “또 다른 희생의 각오로 파업투쟁 승리하자”는 철도노동자들의 구호를 들었다. 복직되지 못한 해고자가 상당히 많은데도 또 다시 희생을 함께 감내하자고 결의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숙연해졌다.

엄길용: 그게 철도노조의 전통이다. 그리고 좋은 전통을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것이다. 다른 공기업에 비해서 철도노조가 아직까지 민주노조 깃발을 굳건히 들고 있는 것은 싸워야 할 때 열심히, 제대로 싸웠기 때문이다. 피해를 보거나 깨진 적도 많았지만 그것들이 결코 패배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투쟁만으로 민영화를 막아왔다. 이러한 좋은 평가도 더욱 좋은 전통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철도노조가 2001년에 민주노조로 바뀌었는데, 그 이전에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시절, 노조민주화를 추진했던 시간까지 합치면 20여 년 정도가 된다. 이 20년 동안 870명 정도가 해고되었다. 그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KTX 여승무원 투쟁이었고 당시 390명이 일거에 해고되었는데 집단적인 비정규직 투쟁의 경험을 한 셈이다. 현재에도 91명의 해고자가 있지만 그동안의 투쟁을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해고자가 870명이지 좀 더 낮은 수준의 징계는 정말 몇 만 명에 달할 것이다. 그래서 철도에서는 해고자 아니면 징계 받았다고 명함을 내밀 수도 없다. 사실 공기업에서는 정직 당하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철도는 다르다. 좋은 전통이 만들어져 온 것이다.

“철도 운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갈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사회운동: 2002년 가스발전철도 3사 파업, 격렬했던 2003년 두 번의 투쟁, 2009년 투쟁 등 오랜 기간 투쟁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으로 투쟁 태세를 빠르게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 투쟁을 경험한 조합원들이 퇴사도 하고 세대구성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을 텐데.

엄길용: 철도노조 평균 연령이 만 45세이다. 직종별로 50세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는데 꽤 높은 연령대라고 볼 수 있다. 가스노조의 경우 인력이 충원되면서 젊은 조합원들도 생겨났다고 하는데, 철도는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2005년 이후에 신규입사자가 별로 없고, 그래서 세대 간의 문제나 경험의 차이 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신규입사자가 없기 때문에 평균 연령도 높은 편이다.

사회운동: 이번 투쟁을 거치면서 민영화 저지가 가장 큰 투쟁의 목표겠지만 내부적으로 조직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과제도 있을 것 같다. 내부교육 사업, 투쟁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기 위한 프로그램 등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엄길용: 현재 철도노조 내에서 간부층이 많이 얇아지고 고갈되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순환이 되어야 조직이 활성화되는데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 노동조합 자체도 많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노동조합 활동방식이 우리와 다르기는 하지만 주목할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철도에서는 청년부 등을 따로 만들어 운영하고, 그것이 활성화되어 있다. 투쟁을 앞서서 하는 조직은 아니지만 간부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실천단을 조직한 적이 있다. 젊은 조합원 중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간부로 커나가는 중간 과정 정도의 위상으로 진행했다. 지금은 따로 이런 기획을 내지는 못하고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교육, 파업학교 등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사회운동: 민영화가 되고 분사화가 이루어지면 노조가 약화되는 경우가 많다. 단체교섭이 분권화파편화되고, 고용관계가 개별화되면서 노동자들의 단결이 이완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기관사 노조’처럼 직종별 노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이 노조들은 철도노동자 전체보다는 직종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기도 한다고 들었다.

엄길용: 일본 민영화 과정에서 직종 노조인 기관사 노조가 생겼다. 처음에는 민영화를 반대하고 싸우는 듯 했으나 나중에는 타협했다. 타협을 하면서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 것에 집중했다. 반면 끝까지 반대했던 노조는 와해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있다. 직종별로 하는 일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철도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 운명을 같이하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업무 특성이 차이가 있지만 직종을 넘어 단결을 하는 것은 노조가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되느냐에 달려있다. 철도는 오히려 모든 직종이 전문화되어야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측면이 있다. 물론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조건 자체가 달라질 수는 있다. 차량, 운전과 같은 집단 사업장은 자주 모일 수 있는 반면에 역, 시설, 전기 등은 사방에 흩어져서 소수로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사회운동: 해외사례를 보면 영국처럼 민영화 이후 폐해가 드러나 재공영화하는 곳도 있고, 끊임없는 민영화 압박 속에서도 스페인이나 독일, 프랑스처럼 계속 국영철도를 아직 유지하는 사례도 있다. 참고할 만한 모범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엄길용: 스페인, 독일의 경우 사실 많이 구조조정 되었다. 반면 프랑스 철도의 경우 주목할 만한 점이 많은데 특히 서비스를 생산하는 철도노동자, 경영자, 시민, 각각의 주체들이 모여 철도 산업에 대한 계획이나 운영과 관련해 아주 긴 시간 동안 논의를 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방식이 그렇다. 공공의 영역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게 하는 모범적인 국가가 프랑스인 것 같다. 근본적인 대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현재 상황에서 제일 발전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얼마 전 한국에서 민영화를 위해 만들었던 민간검토위원회는 구색을 갖추기 위한 형식적 자리다. 위원회 자체적으로 고민된 것은 하나도 없고 정부에서 준 안을 다시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1994년 전지협 투쟁, 공동파업의 기억을 잊지말자”

사회운동: 상반기 투쟁을 경과하면서 남은 성과와 이후 과제는 무엇인가.

엄길용: 아직 투쟁이 진행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성과를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다만 다른 때보다 범국민대책위원회와 같은 연대사업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 하나의 성과다. 철도노조에서 적극적으로 연대사업을 하려고 노력한 측면도 있고 결과적으로 연대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도 자신감이 높아지고, 생각하는 바도 많이 넓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부적으로 조합원들이 결의를 높여가는 과정 중이라 아직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향후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당연히 철도민영화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하나는 민영화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이와 연동되어 있는 인력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다. 지금까지 철도노조는 인력 문제를 전면으로 쟁점화 하는 데 부족했다. 공사의 인력 감축안에 대해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정도였다. 이제는 법이나 단체협약에 근거해서라도 공세적인 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철도노조가 각 부문에 필요한 인원들을 실사하고, 이러한 자료에 근거해 구체적인 인력 충원의 요구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 요구안이 관철되지 않았을 시 쟁위행위를 배치한다거나 하는 등의 투쟁들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은 수세적으로 밀려왔다면 앞으로는 민영화 저지, 인력 감축에 맞선 사업을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공세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다양한 투쟁들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조합원들과도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사회운동: 현재 철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서 민영화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를 하나로 묶어내면서 더 큰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엄길용: 일단 지금은 상층 단위의 연대부터 모색하며 손발을 맞춰가고 있다. 각각의 민영화 사안들이 조금씩 다른 일정으로 목전에 와 있다. 사안별로 다른 정부의 민영화 추진 일정에 맞추다보면 공동투쟁은 불가능하다. 아예 주도적으로 우리가 투쟁일정을 잡고 공통의 요구안과 흐름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있기는 하다. 이전 경험을 반추해보면 철도나 궤도 쪽에서는 몇몇 아주 의미 있는 경험들이 있다. 1994년 전지협 투쟁이라고 들어보았는지. 당시 철도는 민주노조가 아니었는데 기관사 중심으로 민주노조 세력이 있었고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 등 지하철노조가 있었다. 당시 이 노조들을 중심으로 협의회가 구성되어 있었다. 이 협의회에서는 정부가 만약 한 군데라도 치고 들어오면 동맹파업을 하겠다는 결정이 있었고 실제로 집행이 됐다. 많이 연행되고 해고되었지만 그런 것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어나가고 민주노조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는 큰 경험이자 지표가 되고 있다. 2002년 3사 파업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험들을 목적의식적으로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사회운동: 현재 전국에서 지역별 대책위가 꾸려졌는데 조합원들과 정기적으로 선전전을 진행하고 여러모로 교류가 많아지면서 다른 연대단체에도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회원들도 퇴근길에 민영화 저지 선전전에 동참하고 뒤풀이 자리에서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투쟁에 대한 열의가 더 높아지는 모습이다. 계속해서 힘차게 연대해야할 이유가 많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엄길용: 민영화 저지 투쟁에서 어느 분들보다 아주 열심히 헌신적으로 같이 해주시고 계셔서 우선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철도민영화 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바꿔나가는데 함께 힘차게 투쟁했으면 좋겠다.

※ 긴 시간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엄길용 본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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