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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9.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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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Global Apartheid)

Salih Booker and William Minter | 번역: 정혜주 출처: The Nations, July 9, 2001
AIDS가 드러내는 세계적 불평등

4월 중순, 거대 제약회사들의 세계 카르텔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집회에 굴복하여 남아프리카 정부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그 소송―"Big Pharma"(거대 제약회사)가 그들의 엄청난 이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HIV/AIDS에 감염되어 살고 있는 400만명의 사람들에게 구명(求命)약물을 더욱 용이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1997년에 제정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법률이 시행되는 것을 막을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들 이전에 아파르트헤이트에 동의했던 사람들처럼, 이들 회사들도 소수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흑인 생명의 가치를 부정하는 법칙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하였다. 아프리카에서 이 행동의 결과는 특허에 의한 살인(murder by patent)으로 드러난다.
AIDS에 의한 사망의 세계적 형태―전세계 사망자 300만명 중 사하라 남부아프리카 거주자 240만명; 북아메리카에서는 2만명이며 대부분은 소수자 공동체에 속함―도 또한 옛날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 질서를 환기시킨다. 지금까지 HIV/AIDS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과 구명 약물에 대한 접근은 크게 인종, 계급, 성별, 그리고 지리적 위치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AIDS는 따라서 몇 세기에 걸쳐온 불평등의 형태를 명백히 하면서, 단일 질환에 관련된 것들보다는 더욱 근본적인 세계적 불평등성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의 세계적인 정치경제―이 체제에서 비민주적인 기구들은 체계적으로 경제적인 불평등성을 생산하고 있다―는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로 묘사되어야 한다.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는 짧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야기하는 소수에 의한 법칙의 세계적 체계이다: 근본적 인권에 대한 차별적 접근성; 인종과 장소에 의해 구조화된 부와 권력; 세계 경제 과정, 정치적 기구들과 문화적 역설(assumptions)에 각인된 구조적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위치, 조상, 인종 또는 성차에 의해 정의되는 특정한 "타자들(others)"에 대해서는 열등한 수준의 권리들만으로 족하다는 이중 잣대의 국제적인 관습.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는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은유 이상의 정의이다. 이 개념은 "신자유주의" "지구화" 혹은 심지어 "자본의 지구화(corporate globalization)"와 같은 라벨들이 빠뜨리고 있는 현시기 세계 질서의 근본적인 특징을 포착한다. 가장 중요하게, 이 개념은 현하의 세계체계에 있어서 무엇이 근본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인지를 명확히 정의한다. 그리고, 그 체계가 필연적인 것이라는 주술을 벗겨내고 이를 변화시키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것들로서 세계 정의와 민주주의를 의제에 포함시키도록 한다.
대표자들과 시위자들이 6월 25일에 있는 HIV/AIDS에 대한 UN특별총회에 참가하기 위해 모일 때, 오고갈 수백만 언어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서브텍스트는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의 미래가 될 것이다. 20년간 AIDS 재앙에 대한 세계적 반응의 미래를 바라보자면, 이제 지금까지의 잘못된 지점들과 함께 새로운 천공(穿孔)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AIDS와 관련된 논쟁들이 점점 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되는 이유이다.: 우리 공동의 인간성을 양육하는 사회가 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소수만을 위한 법칙을 보호하고 조장하는 체계가 될 것인지.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의 지도자, 미국

앞으로 다가올 몇 달 동안 AIDS, 외채, 인종주의, 그리고 세계경제의 조절이라는 주제들이 다양한 지구적 모임들에서 고민되고 논쟁될 것이다. 7월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에서 부국의 지도자들은 실패한 빈국에 대한 외채탕감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뿐만 아니라, 새로운 Global AIDS Fund에 어떻게 돈을 댈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진행할 것이다. 8월 말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번에서 있을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세계 회의에서는,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노예제도에 대한 보상과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아프리카인들과 아프리카인의 후예들의 요구에 새로이 주목하게 될 것이다. 10월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세계은행/IMF 연례 회의에서는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에 돈을 지원하는 사람들과 이에 대한 시위대들 사이에, 또다른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1월에 카타르에서 있는 시애틀에 이은 회의에서는,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에 의해 가장 많은 득을 보고 있는 나라들이 가장 그렇지 못한 나라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가능한 한 시위대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곳에서)
이 서로 다른 논쟁들 배후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가로놓여 있다.: 기본적 인권에 대한 접근성에 있어서 어느 만큼의 불평등성을 세계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미 자국에서 불평등의 챔피언인―최근에 서명된 1조3천억달러의 세금 삭감에서 충분히 보여진 바―부시 행정부는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의 지도적인 방어자이다. 그리고 USAID의 관리자인 Andrew Natsios는 최근에 아프리카인들은 "시계를 볼 줄 모르기 때문에" 구명 AIDS약물을 받을 수 없다고 함으로써 미 외교정책의 배후에 인종차별주의가 깔려 있음을 명백히 했다. 미국의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자세를 알아볼 수 있을 다음의 즉각적인 시험대는, 이 행정부가 태도를 바꾸어 아프리카에 알맞은 가격의 의약품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돕기 위해 자금조달을 증가시킬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이다.
아마도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의 다른 징후들보다 AIDS 재앙은 지구적 불평등성과 관련된 현재 고통이, 지난 5세기와 마찬가지로, 장소와 인종에 명확히 연관되어 분포되어있다는 사실을 더욱 잘 드러내준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기대여명이 50년 이하인 52개 국가들 중 44개 국가는 아프리카에 있다.(또한 기대여명은 AIDS 때문에 여전히 감소하고 있다) AIDS에 대한 세계적 반응이 이토록 냉담하고 더딘 것은 아파르트헤이트 체계의 굳건한 이중잣대적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다. UNAIDS의 Peter Piot 박사가 작년 남아공에서의 세계 AIDS 회의 직전에 언급한 바대로, "이런 일이 백인들에게 일어났다면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건강은 1946년 WHO헌장과 1948년 세계인권선언에 구현된 바대로 기본적인 인권의 하나이다. 특히, WHO 헌장은 "건강을 가능한 가장 높은 수준으로 향유하는 것은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 경제적 혹은 사회적 상황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의 근본적인 권리 중 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25조는 "모든 사람은 그 자신과 그의 가족의 건강과 행복에 충분한 수준으로 의·식·주, 그리고 의료와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심지어 주류 경제학자들까지 점점 더 인식하는 바처럼, 건강은 발전에 있어서 근본적인 전제 중 하나이다. 교육, 소득과 함께 건강은 실제로는 1인당 소득과 같은 순수히 경제적인 척도보다 더 좋은 기준은 아니더라도, 이론적으로 널리 수용되고 있는 UN의 Human Development Index의 세가지 구성요소 중의 하나이다. 사실 건강은 인종, 또는 경제적/사회적 환경을 실제 상황에서 가장 시각적으로 구별지어 나타내는 인권이다.
정부들과 국제기구들이 이 권리를 집행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전의 정권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AIDS에 대한 UN선언문 초안에 대한 3월 30일 발표에서 "법적/헌법적 이유에 의해 미국은―의식주에 대한 권리에 기반한 접근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HIV/AIDS에 대한 '권리에 기반한 접근'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4월에 있었던 인권에 관한 UN High Commission에서 미국은 "HIV/AIDS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의료에의 접근은 건강에 대한 권리의 근본적 요소 중의 하나임"을 인식한 브라질의 결의문에 대해, 단독으로 기권함으로써 만장일치를 좌절시켰다.

모든 정치경제적 논쟁들이 AIDS에 담겨있다

AIDS 재앙의 규모는 전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AIDS가 퍼져나가는 것이 의료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환경에 의해서도 가속화된다는 점에서 다른 전염병과 유사하다. 빈곤과 성차별은 아프리카에서의 전염을 가속화하고 있다. 영양실조가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감소시킨다. 이민노동의 형태(제국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로부터 아프리카에 각인된)는 감염의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AIDS 전염의 직접적인 원인은 HIV이지만, 감염에 있어서의 취약성은 행위뿐만 아니라 특히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 그리고 빈곤과 생활환경에 연관되어 있다. [Eileen Stillwaggon, "AIDS와 아프리카의 빈곤"을 보라] 빈곤은, 인종과 일국 내에서 공동체의 구조적 위치 및 세계 경제 내에서 국가의 구조적 위치와 관련된다.
따라서 AIDS에 대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논쟁은 더욱 광범위한 이슈들로 이끌어지게 된다. 여성이 성관계에 대해서 협상할 수 있는 자유를 갖지 못하는 이상, 교육수준을 높이고 콘돔사용을 증가시킨다 하더라도 그 성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근본적 자원이 없는 보건서비스는 AIDS의 치료와 예방을 위해 필요한 수준을 충족할 수 없을 것이다. 4월 나이지리아의 Abuja에서 열렸던 회의에서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은 현재 수준의 2-3배인 그들 국가예산의 최소 15%를 보건부문에 편성하겠다는 목표에 동의했다. 그러나 공공보건에 대한 투자보다 부조리한 외채를 갚는 데에 우선권을 주도록 강제되는 경우(혹은 전쟁이나 개인적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자원사용을 전환하는 경우) 이들이 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러한 요인들을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위와 일반약 경쟁(generic competition)에 반응하여 항레트로바이러스제의 가격이 하락함에도, 보건과 관련된 기간산업의 미비와 하락한 가격마저도 지불할 수 없는 정부의 상황이, 아프리카인들에게 항레트로바이러스제에 의한 치료를 부정하는 새로운 근거가 되고 있다. 4월 23일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한 국제 보건공무원이 워싱턴 포스트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운동가들의 정치적 위치를 한탄하면서 "우리는 그저 앉아서 이들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만 할 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대안적인 반응은 기간산업 미비와 지불불능의 이유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국제금융기구들에 의해 강요된 정책들, 그리고 더 긴 시야로 본다면 정책결정자들이 여전히 직면하지 않고 싶어하는 엄혹한 역사적 유산들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인정된 바, 아프리카 지도자들에 의한 부패와 정책 실수들도 역시 한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다른 개발도상지역들에서 지속불가능한 외채와 허약화된 보건 체계는 많은 부분, 지난 20년 동안 국제적 채권자들에 의해 강제된 경제 정책 상황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1차 의료에 있어서 "본인 부담금"의 강요는 많은 수의 사람들을 공공 보건서비스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성병 감염율을 증가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더욱 일반적으로 공공부문 축소는 보건전문인들을 사적 부문이나 해외로 이동시키고, 보건의료 전달체계에 대한 투자를 감소시켰다. 세계은행과 IMF에 의해 조정되는 집합적 경제적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채권자들은 더욱 더 많은 빈국의 공공 보건 및 기타 정책들에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다. 외채는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의 경제적 강권정책(diktat)이 빈자보다 부자들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지렛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발전 계획을 만들려는 노력들은 정치적 혹은 경제적 구조의 양자 모두가, 권위주의적 정권과 일차적 상품의 수출에 의한 경제적 종속성이라는 식민지시절의 유산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강하게 영향받았다. 남아공에서의 이전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 등을 포함하여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지난 수십년 사이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들이 일정한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최근 경제성장율의 온건한 회복에도 불구하고, 이 대륙은 AIDS에 대해서 엄청나게 취약하였다.


세계 모든 인류를 등급화하는 차별정책

오늘날의 불평등성은 노예제도와 제국주의라는 오래된 불평등성과, 여기에 더하여 냉전 운동의 파괴적인 영향이라는 기반 위에 이루어졌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와 같이,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에서도 부, 생활환경, 기대 여명과 효과적 권력을 가진 정부 기구에 대한 접근성에 있어서 엄청난 불평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인구집단은 삶에 있어서, 서로 다른 기대수준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하의 남아공에서는, 인종에 따라 집을 짓는 재료에서부터 교육과 보건의료의 수준까지 모든 것을 차별화하는 것이 근본적 원리였다. 세계적으로 이제 그 원리는 유럽과 아프리카에 대해 평화유지에서 인본주의적 지원까지 모든 것에 대한 재정지원을 차별화하는 방어논리로 사용되고 있다.(유럽 피난민에 대해서는 하루에 1.23 달러, 아프리카 피난민에 대해서는 11센트) 한 구조요원이 이야기한 바대로, "카푸치노와 CNN에 익숙해있는 유럽 피난민들에게 그들의 위엄과 안정성을 유지해주기 위해서 더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해야 한다."
집단에 따른 특권의 단계적 변화는 "고향"에서 더 특권적인 지리적 위치로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유입조절(influx control)과 같이, 강제성의 정도를 아무리 증가시켜도 선진국의 이민 장벽들은 유입 물결을 막아내는 데에 절대 성공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현재의 경제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세계적 행정 레짐(global governence regime)은―아파르트헤이트가 그 전성기에 그랬던 것과 같이―비민주적인 기구들에게 핵심적 결정권들을 할당한다.: "백인소수 법칙"의 세계적 버전.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세계화될 때

우리가 세계체제와 옛날 남아공의 놀라운 유사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들은 아니다. Canada에서 활동하는 국제관계학자인 Gernot Kohler는 1978년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작성한 모노그래프에서 다양한 유사성을 언급하였다: "백인 소수는 체계 내에서 지배적이며, 다인종 다수에 비해 훨씬 높은 생활수준을 갖고 있고, 몇 가지 다른 차원들에서 특권을 갖고 있다." 영국의 정치학자인 Titus Alexander는 그 개념을 1996년 그의 책 Unraveling Global Apartheid에서 연마하여 "G7 국가들은 전세계 인구의 12%를 차지하지만 그들은 현찰 수준에서 70%의 자원을 사용하고 있으며 모든 주요 결정 기구들을 지배하고 있다." 최근 이 개념을 사용한 다른 사람들을 보면 남아공 대통령인 Thabo Mbeki, 쿠바 대통령 Fidel Castro, 아프리카 학자인 Ali Mazrui 그리고 인권 학자인 Richard Falk를 들 수 있다.
이 해설자들과 같이, 우리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정확히 세계적 수준에서 복제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유사성이라는 것인 단순히 어구의 반복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하의 국제적 정치/경제 질서가 해야 할 일이 인종주의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옛날의 아파르트헤이트 또한 단순히 "인종주의만"에 대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동시에 지역적 이동과 정치적 권리에 대한 차별적 접근성을 이용하여 노동을 통제했던 극단적인 양식이었다. 인종적 억압은 착취를 더욱 용이하게 하며, 한편으로 착취는 인종 집단들 뿐만 아니라 그 내에서도 지속된다. 다른 사람들은 이전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남아공을 지배했던 것과 같이, 세계 체제를 지배하는 단일한 정부나 국제 행정 체계가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사실, 오늘날의 국제기구들―WTO로부터 세계은행, 그리고 다양한 UN기구들까지― 모두가 세계 정부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남반구에 있는 일국 정부에 대한 그들의 권력은 많은 경우 압도적이다. 그리고 이들 기구들 내의 대표성과 리더쉽은―특히 가장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국제 금융기구의 경우―인종과 강한 실질적 관련성을 갖는다.
세계적 수준에서, 이민법과 국제기구 내에서의 대표성, 그리고 공공 투자의 배치에 의한 노동 이동의 조절은 당연히도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이것이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긴 하지만)보다 훨씬 복잡하고 분화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야기되는 세계적 불평등성은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하의 남아공을 포함한 어떤 일국 내에서보다 훨씬 뚜렷하다. B. Milanovic에 의한 1999년 세계은행 소득불평등 연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의 사람들의 소득이 가장 가난한 57%의 사람들의 소득과 같다고 추정했다. 이 연구는 또한 이 차이의 3/4가, 국가 간의 불평등에서 기인하며, 나머지 만이 일국 내에서의 불평등에 의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한 차이를 보았을 때, 아파르트헤이트의 유입 조절과 남반구(그리고 동양)에서부터 북반구로의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현재의 노력들이 갖는 유사성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들을 "외부의" 서양 탓으로 돌려, 아프리카와 다른 국내적 독재자들의 국가사안에 대한 책임성을 회피하도록 하는 인식틀에 주의할 것을 주장해왔다. 우리는 세계적 맥락과 국민에 대한 그들 정부의 불투명성 사이에는 완전한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체제 자체의 작동양식은 제국주의 시대나, 혹은 냉전 시기와 다르겠지만, 공통 요소는 엘리트들에 대한 보상에 기반한 구조로 건설되었고 그들 자신이, 국민의 요구보다는 외부적 압력에 더 잘 반응한다는 점이다.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는 현재 세계 질서의 적절한 묘사일 뿐 아니라, 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지원할 수 있다. "시애틀"에서의 시위 시리즈들은 가장 흔히 인종 중립적인 언어들로 개념화되어 지구적 불평등성의 차별화된 영향을 불명료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현하의 세계체제가 건설된 기반을 정확히 검토하기 위해서, 그리고 명확히 정의된 적에 대항하는 연대의 초국적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시장의 측면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의 측면 또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를 세계적 민주주의로

우리의 성공은 남반구에서 북반구로의 자원의 출혈을 감소시키기 위해; 현하의 불평등성을 교정하기 위해, 지구적 공공재에 대한 투자를 극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한 기본적 인권이 선택적이고 시혜적 반응이 아니라 의무임을 확인하는 것을 수용하기 위해, 다자간 기구들뿐만 아니라 강대국 정부들을 얼마나 강제할 수 있는가에 의해서 측정될 것이다. 몇 가지 선행 단계들은 명확하고 즉각적이다: 치료와 예방에 대한 충분한 재원 마련, 부조리한 외채 탕감, 가난한 나라들에 대해 비극적인 경제정책 강제의 중단, 그리고 인간의 삶보다 기업의 이윤을 중시하는 무역법칙의 중단을 통해 AIDS 재앙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수불가결한 수단임과 동시에 그 자체가 목표로서, 그러한 결정을 하는 기구들을 민주화하고 인종, 성별, 그리고 HIV 감염상황에 따른 차별정책과 실행들을 제거해야 한다. 미 의회는 AIDS 재앙과 투쟁하고 관련된 세계적 보건에 관련된 요구들을 지원하기 위해 5%의 예산 초과분을 보유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워싱턴은, 세계은행과 IMF에 이들 기구에 대한 미 정부의 분담금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외채를 탕감해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 행정부는 그들 시민에게 가장 저렴한 약으로 구명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권리를―일반약의 제조를 포함하여―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브라질에 대한 미국의 WTO 제소는 이러한 권리를 훼손하려는 전략의 하나이므로 이를 취하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 더하여, 국제 기구들과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책임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특권의 방어하려는 자들이 "지구화"라는 개념을 그들 관점으로 독점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을 객관적인 과정의 대리인으로 표상하게 한다. 또 지구적 정의의 대변인들을 옹색한 국수주의자이거나 기술적 과정의 순진한 반대자들로 채색하게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지구를 내어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구화라는 단어를 포기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반지구화" 시위대들이 "세계적인 상호연관성의 확장"이나 국가간 무역 혹은 과학의 발전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지구화" 혹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점을 설명할 필요는 없어야 한다. 또한 "민중의 지구화" 혹은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라는 제안으로 대항하는 것도 충분치 않다.
오히려, 우리는 진정한 지구화는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를 세계적 민주주의로 대치하는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수많은 쟁점들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바로 세계적 정의를 위해 새로이 부상하는 운동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적 자율성에 대한 과거의 상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증하는 상호 연관성이 지속적인 불평등과 차별보다는 정의와 다양성을 의미하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지난 몇해동안 우리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목도해왔다.―Seattle에서 Johannesburg, 그리고 Quebec에 이르는 시위들에서, 그리고 국제 지뢰협정의 경과와 빈국의 외채에 대한 논쟁이 "용서"에서 "취소" 그리고 "배상"으로 이동하는 논쟁에서―
AIDS는 이들을 명백하게 한다. 세계적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하는 싸움은 대다수 인류에게 있어서 생사의 문제이며, 우리의 공동적 인간성의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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