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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10.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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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소한 것

장귀연 | 편집위원
잡초, 소, 바퀴벌레, 고양이

나는 가끔 사소한 것에 슬퍼한다.
화단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풀포기를 외면한다. 풀포기의 끝은 아직도 촉촉히 젖어 있고 뿌리는 가늘지만 길다. 살아보겠다고, 저 실같은 뿌리를 얼기설기 길게 뻗어갔을 것이다. 잡초를 뽑는 거침없는 손에 영문 모르고 뽑힐 때까지. 제 몸의 힘을 다해 뻗어나갔던 뿌리는 무심한 손아귀 힘 하나 당해내기에도 어설프기만 했을 것이고, 잡초라는 이름은 그저 열심히 살아온 그 풀포기에게는 정말 영문 모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잡초 뽑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화려한 꽃, 사람에게 유용한 작물, 귀빈취급 받는 잔디에 못지 않게, 그 잡초들 역시, 씨앗에서 싹을 틔우는 아픔과 뿌리를 키워나가는 어려움과 파랗게 풀잎을 피우는 환희를 겪었을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잡초를 뽑아야 하는 경우, 나는 속으로 속삭인다. 미안해, 미안해.....
동물을 좋아하는 나, 거리를 배회하는 개만 보면 쓰다듬고, 밤길 도둑고양이마다 쯧쯧거리며 헛되이 불러보고, 어쩌다 시골길이라도 가다 소나 염소가 눈에 띄면 무조건 쫓아 달려가는 나는, 또한 고기를 매우 좋아하는 식성을 가졌다. 어떤 때 나는 그게 슬퍼진다. 내가 얌냠거리고 먹고 있는 이 고기가 큰 눈 껌벅거리던 소의 누렇고 넉넉한 등판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채식주의자가 아닌 것이 참 슬프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풀 역시 생명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생명인 나,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까, 그냥 먹는다. 풀도 고기도. 남의 생명을 취해서 살 수 밖에 없는 생명의 업보라는 게 슬프지만, 딱 그만큼만 남의 생명을 취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그게 안될 때가 많다. 바퀴벌레 출몰 같은 경우. 대부분은 내가 도망치는 쪽이지만,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살충제나 두꺼운 책 같은 것을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때도 있다. 바퀴벌레 녀석, 낌새를 알아챈다. 바르르바르르 도망간다. 구석에 몰린다. 촉수를 치켜들고 살려줘, 살려줘 한다. 그 순간 나는 책을 내리친다. 미안해, 미안해, 말하면서...... 그리고 참 슬퍼진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내가 가증스럽다.
공기가 새하얗게 얼어붙었던 지난 겨울 어느 밤, 골목길을 지나다가 야옹야옹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두리번거리다가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버릇처럼 쯧쯧 불러보았더니 이 녀석이 슬금슬금 따라온다. 그런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대개는 본척만척 유연한 몸을 움직여 사라지기 마련인데. 가까이 다가가면 주차된 차 뒤쪽으로 숨어 버리고, 거리를 두고 돌아보면서 부르면 조금씩 따라오고, 그렇게 해서 집 앞까지 왔다.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눈 얼은 길바닥에 내버려 둘 수 없어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집 앞 2미터 앞에서 고집을 피우며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한동안 서로 눈치를 보며 실갱이를 하다가 할 수 없이 집안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가서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유통기한 지난 맛살 몇 조각. 들고 뛰어나와 녀석을 찾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야옹야옹 울고 있었다. 손바닥에 맛살을 얹어주니 슬그머니 다가와 내 손에 얼굴을 묻는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숨어버렸다가 다시 나오고, 잡으려고 하면 슬쩍 몸을 피하면서 차가운 맛살 조각을 먹는, 겨울 밤 골목의 고양이. 맛살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여러 사람들이 우르르 길을 지나갔고, 고양이는 또 몸을 숨겼다. 쪼그리고 앉아 있던 나도 멋적게 일어나서 서성거리다가 사람들 무리가 지나간 다음 다시 불러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가 버린 것일까. 집에 들어와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소한 일이었다. 슬픔이 우물처럼 고여 올라왔다. 너, 얼어붙은 담 위에 살풋한 발바닥을 디디고 몸을 웅크린 보드라운 생명체. 이 혹한의 계절, 씩씩하게 살아라. 낯선 사람에게 구걸하고 쓰레기봉투를 뒤져 언 생선대가리를 주워 먹더라도. 꼬리를 세우고 짝을 찾는 화사한 춘정의 봄밤이 올 때까지. 그것이 네가 가진 생명의 가능성, 슬프도록 찬란한 꽃.

사람

나는 가끔 사소한 것에 슬퍼한다.
사소한 일상, 평범한 삶, 가끔 슬퍼진다.
제멋대로 촘촘히 누벼져 있는 신림동 골목들, 조금 과장해서 양팔을 벌리면 담벼락에 닿을 듯이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자매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 둘이 골목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경쾌하게 날아가는 셔틀콕 움직임에 따라 옷깃이 팔랑거렸다. 그 좁은 골목길에도 차가 다니고 그때마다 어린 소녀들은 배드민턴을 중단하고 담벼락에 몸을 붙여야 했다. 내가 지나갈 때 마침 배드민턴을 그만두기로 했는지, 어린 소녀들은 까르르 상기된 웃음을 남긴 채 집으로 들어갔다. 골목에 면한 쪽문, 몇 발자국 내려서면 바로 싱크대, 몸 돌리기 어려울 만큼 좁은 부엌, 그리고 신발 벗고 들어가는 방 한 칸, TV 올려놓은 낮은 옷장과 방을 가로지른 빨랫줄. 배드민턴 치던 소녀들이 들어간 반지하방의 구조는 잠깐 열린 문을 통해 길에서 환히 들여다보였다. 나는 문득 멈춰 서서 가만히 숨을 골랐다. 하나도 안 슬픈 일. 그러나, 투명한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아직 길 위에 남아 있다가, 내 속으로 슬프고 맑은 물방울이 되어 방울방울 떨어졌다.
동문 체육대회에 아내와 두달된 아기를 데리고 온 선배를 만났다. 그는 아들을 보여주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우리 아들내미 대단하지? 대단하지?" '예쁘지'도 아니라, '대단하지'라는 말에 뭐가 대단한 건지 모른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계속 반복해서 그렇게 말하니까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이후 뒤풀이 때의 직장 얘기, 주식 얘기. 금융권에서 근무해서인지 그는 여러 투자 방법에 대해서 빠삭했는데, 나는 절반도 못 알아들었다. 그의 눈꼬리에는 부드러운 주름살이 퍼져 있었다. 그의 눈매가 칼같이 빳빳하던 시절이 있었다. 겨우 한 학번 차이면서도 범접하기 어려운 선배였다. 아크로 교내 집회장소까지 후배들을 인솔해 가면서 쳐든 주먹에 얇은 힘줄이 새파랗게 솟곤 했다. 지금 그는 동글동글해졌다. 운전 때문에 술도 안 마시고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떠나는 그의 승용차 뒷모습이 슬펐다. 아니, 정말 분노도 아니었고 허망함도 아니었고, 슬픔이었다. 습습한 안개가 어리는 가슴속에서, 나는 그가 행복하기를, 행복하다고 믿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의 승용차 뒷모습은 그만큼 쓸쓸해 보였다. 가끔 사소한 것에 슬퍼하는 내게는.

미나리아제비꽃줄기 위의 사랑

나는 가끔 잘 울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울고, 소설을 보고 운다. <빌리 엘리어트>를 같이 본 친구는 "클라이맥스에서 한 번만 울어야지,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울면 어떡하냐"라고 내게 핀잔을 주었다. 신파조의 얘기에도 울다가 나중에 쪽팔려 하고, 가끔은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몇번이고 나를 울게 만들었던 구절이 있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기줄도 잘라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제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조세희,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크루즈 미사일의 사소한 슬픔

나는 가끔 사소한 것에 슬퍼한다.
미국에서 테러가 발생했고 그 후 일련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역사적 체제로서의 미국 헤게모니체제의 균열 신호일 수도 있으며, 전세계적 대공황의 시작일 수도 있다. 이것들은 거대 담론 속에 위치지어진다. 미국 대외정책의 한계 또는 자업자득, 군산복합체의 부추김, 이슬람 세계의 반발, 그런 와중에서의 미국 정책의 보수화 또는 온건화에 대한 조심스러운 예측, 주식시장과 세계경제에 대한 전망 등등. 이러한 것들은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중요한 일들을 따라가고 분석하기 위해, 나는 열심히 신문기사와 각종 문서들을 찾아 한 구절이라도 빠뜨릴세라 꼼꼼히 읽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울었다. 언뜻 빠뜨리고 지나갈 뻔한 한 문장의 말 때문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크루즈 미사일 한 발 가치와 맞먹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2001년 9월 13일. 탈레반 대변인 무트마이)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 삶, 아이들의 맨발, 젖은 머리카락, 초생달 모양의 흰 손톱, 모든 생명이 품고 있는 씨앗 같은 가능성. 이 모든 것들을 합쳐도 크루즈 미사일 하나의 가격만 못하다. 이 세상에서, 이 모든 것들은 사소하다.
나는 악몽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크루즈 미사일이다. 나는 발사대에서 발사되어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날아간다. 푸른 허공을 가른다. 발갛게 상기된 웃음을 웃을 줄 아는 어린 소녀들이 있고 대단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고 몸을 도사린 고양이가 있고 바퀴벌레와 소와 풀꽃이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날아간다. 푸른 슬픔을 가른다. 역사적 체제와 세계정치와 세계경제로부터 발사된 나는 내가 영원히 파괴해 버릴 사소한 것들을 내려다보며, 미안해, 미안해, 속삭인다. 슬퍼한다. 크루즈 미사일의 사소한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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