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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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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전쟁,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이공순 | 미국 뉴스쿨 정치학 박사과정
2001년 9월은 1990년 2월을 뒤집어 놓았다. 마치 영화 필름을 역(逆)시간 순서로 돌리는 것처럼 9월의 단 하루는 11년전의 영광을, 그리고 11년째 이어져온 영광의 후광을 차례로 붕괴시켰다. 사막의 폭풍으로 명명된 이라크전의 승리는 펜타곤과 월드트레이드센터의 도괴로 되돌아 왔다. 미국의 공중폭격은 인간미사일로(적어도 미국의 극우 칼럼니스트 윌리엄 사파이어의 표현을 빌린다면 인간미사일이다), 크루즈 미사일은 보잉 757로, 중동의 굴복은 중동의 보복으로, 하이테크는 로우테크로, 전쟁은 테러로, 국제 금융자본의 안정은 균열로, 원격 생방송은 현지 생방송으로, 가상의 전쟁은 실제의 전쟁으로 그리고 기술의 승리는 인간의지의 승리로 대치되었다. 뉴욕과 워싱턴에서의 테러는 국가가 할 수 없는 것을 해냈다. 이 사건의 효과는 수 천명의 사상자를 낳았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더 나아가 자본주의 국제사회 시스템의 일부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데 있다. 따라서 남은 문제는 미국은 과연 이 전도된 시간들을 다시 앞으로 되돌릴 수 있는가, 미국이 동원가능한 수단들은 어떤 것인가, 미국 사회내부는 어떠한 변화를 겪을 것인가 등등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궁극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원인은 조장한 채 결과만을 통제할 수 있는가.

전쟁 vs 테러리즘Ⅰ

이 사건이 일어난 뒤 부시의 첫 번째 발언은 "적들이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왔다. 이것은 21세기의 첫 번째 전쟁이다"라는 선전포고였다. 이 선언은 미국 쪽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 사건은 전쟁 수준의 행위이며, 21세기의 새로운 성격을 보여준다는 함의가 거기에는 담겨져 있다. 그러나 미국이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빈 라덴에게는 이 엄숙한 포고는 사실이 아니거나 뒤늦은 것이다. 빈 라덴이 미국을 상대로 성전을 선언한 것은 지난 90년대 초반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21세기의 첫 번째 전쟁이 아니라 20세기 후반부터 이미 10여년째 지속되고 있는 전쟁이다. 또 이슬람이 미국에 전쟁을 건 것이 아니라, 전쟁을 걸어온 상대에 대한 방어행위이다('지하드'- 성전-는 흔히 이해되는 것과는 달리 '방어, 수호'의 개념이지 공격의 의미는 아니다). 누가 누구에게 먼저 싸움을 걸었는가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사건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살피는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양자는, 부시의 미국이나 빈 라덴으로 대표되는 회교원리주의자들 모두 한가지 사실에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이 사건은 테러리즘 이상의 행위이며, 따라서 전쟁으로 발전하거나 또는 이미 전쟁 수준의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전쟁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것이 성공적인 대규모 작전이었다는 규모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각각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다. 빈 라덴쪽으로서는 이 사건이 소규모 정치결사의 투쟁이 아니라 전 이슬람을 포괄하고 대표하는, 따라서 두 개의 대립되는 세계를 만들어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반대로 미국으로서는,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실추된 권위에 대한 변호로서 적이 사소한 일당이 아니라 막강한 위력을 가진(적어도 국가 수준의) 집단이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국가들을 이 싸움에 동원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수준에까지 이 사건의 성격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유달리 성공적이었을 뿐인 테러행위가 갑자기 전쟁, 그것도 세계적 규모의 전쟁으로 격상되었다.
전쟁과 테러리즘의 경계선을 가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포괄적으로 말해 전쟁이란 국가간의, 또는 국가 내부라 할지라도 국가의 주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투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정치공동체가 전쟁의 주체가 된다. 이에 반해 테러리즘은 비록 정치결사라고 할지라도 주권을 공인받지 못한 주체들의 행위이다. 따라서 테러리스트는 비정규전투원이라는 애매한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공식적인 전쟁의 경우에는 전투원, 즉 병사들은 비록 죽고 다칠망정 일정한 국제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포로는 죽이지 않거나, 범죄자로 처벌하지는 않는다)를 받는다. 그러나 비정규전투원에 대한 규정은 애매하기 짝이 없다. 첫째로 이들을 다른 민간인들과 구별하기 힘들다. 모두가 잠재적인 적이다. 또 전투는 존재하지만 전선은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행위와 범죄행위 사이의 구별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군인이 잠재적 적인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도 테러리스트가 정규군을 살해하는 것도 모두 범죄로 처리된다. 갑자기 전쟁이 형법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빈 라덴이 (만일 그가 정말 이 사건의 배후자라고 한다면) 추구하는 것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지지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의 정치권력 획득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파르티잔 전쟁과는 구별된다. 그들은 개별국가를 수립하고 주권을 획득하려는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범이슬람권이라는 포괄적 공동체를 수립하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의 전투는 기존의 국가적 행위의 수준의 바깥에 존재한다. 그들이 대립선으로 갖는 것은 이슬람과 서방이라는 구별과 차이이다. 미국이 추구하는 것은 다른 대립선이다. 그들은, 비록 미국 내부에서의 주된 여론이 아무리 이슬람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슬람과 테러리스트를 구별하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문명과 야만(전혀 동의하지는 않지만, '문명의 충돌'이라고 현재의 세계를 규정한 미국의 정치학자-전 CIA요원이기도 하다-인 헌팅톤이 이번 사건을 문명의 충돌이 아닌 문명 대 야만이라고 말한 것은 시사적이다), 또는 인류와 비인류, 선과 악의 대립으로 사태를 몰고 가려고 한다. 인류의 이름으로 테러리스트를 규탄할 수 있을 때만이 모든 국가를 자신과 한편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빈 라덴의 이분법이나 부시의 이분법은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지구상을 피로 물들였던 적과 아군이라는 틀 안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찌는 이 이름으로 수천만을 죽였고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그만큼을 학살했다. 그들이 인류와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인류와 정의일 뿐이다. 부시의 '21세기 첫 번째 전쟁'은 이 오래된 정식을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때로 연대기와 시대정신은 다른 속도로 나아간다. 20세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전쟁 vs 테러리즘Ⅱ - 부대적 피해 (Collateral Damage) ; 왜 민간인을 공격하는가

이번 사건의 특징 중의 하나는 테러행위로서는 놀랄만큼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테러리즘의 주 목표였던 정치적, 상징적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 같은 작전이 가능했을까.
어느 전쟁에서나 전투원 이외의 사상자나 피해는 발생한다. 그러나 전투원 이외의 인간 집단 -곧 민간인-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모든 전쟁에서 공통적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서구의 중세 이후의 전쟁 개념에서는 전쟁이란 순수하게 전투원들의 교전 행위였다. (물론 십자군 전쟁은 예외이다. 여기에서도 서구가 이미 일찍부터 '그들 내부의 전쟁'과 '그들 외부와의 전쟁'을 구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나폴레옹의 '국민군'과 같은 혁명적인 전환도 이 개념을 바꿔놓지는 못했었다. 국가를 점령하고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그 정권이나 군대가 아니라 그것들을 키워내고 있는 사회에 주목한 것은 처음으로 공중전이 이뤄졌던 1차대전 말기에 이르러서였다. 1차대전 종전 직전 이탈리아 공군에 의해 후방 비군사지역에 대한 폭격을 통한 사회적 혼란 유도, 전쟁승리라는 개념이 최초로 제기된 뒤에 이 개념을 본격적으로 이어받아 연구한 것은 영국과 미국이었다. 다음 전쟁, 제 2차 세계대전은 이 같은 사회파괴 개념의 실험장이 되었다. 종전 말기 미국과 영국의 함부르크 폭격, 동경대공습과 같은 무차별 폭격은 단 하룻밤 사이에 각기 1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 사상자들을 냈다. 비행기는 눈이 없다는 기술적 이유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정당화되었다. 이 전쟁은 국가와 국민, 정권과 시민을 구별하지 않았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군사기술적, 상징적 이유이외에도 적을 완전히 절멸시켜한다는 논리, 그리고 이 '적'은 국가와 국민, 군대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논리로 가능해졌다. 이 같은 상황은 독일의 소련점령 지역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났다. 점령군에 대한 무차별 저항의 논리, 이른바 빨치산(파르티잔) 투쟁은 공식적인 전쟁 하에서도 극히 효과적임이 드러났다. 소련의 파르티잔은 적어도 40개 사단이상의 독일군의 발을 묶어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비정규 전투원인 파르티잔은 평시에는 민간인들과 구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보이지 않는 적이었다. 극도의 군사적 곤란에 처한 독일군은 사실상 소련 점령지역내의 모든 민간인들을 잠재적 적으로 규정하고 간주하고 '소탕'했지만 이 같은 극단적 대응은 오히려 다른 순종적 민간인들의 저항과 파르티잔에 대한 협력을 불러일으켰다. 2차 대전 때 소련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난 것도(2천여만명이 죽었다), 소련 파르티잔의 영웅신화도 바로 여기서 생겨났다. 파르티잔이 정규군과 국가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완벽한 사례는 베트남(중국과 알제리도 포함시킬 수 있다)이었다. 전쟁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없다는 조건은 국제법상의 몇몇 조항들(설사 지켜지지 않더라도 장군들에게는 대단한 제약이다)과 자국 내에서의 '인도적' 비난 여론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지극히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파르티잔은 아무리 성공적인 경우에도 피점령지역의 경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것은 점령당한 주민들의 저항수단일 뿐이다. 직접적인 군사적 점령을 택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지배나, 제 3자를 통한 지배의 경우에는 파르티잔은 주적에 대해서는 공격하기 힘들다. 이 같은 조건 하에서 생겨난 것이 테러리즘이다. 현대적 의미의 테러리즘은 천년 전에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어새신(암살, 저격)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동양의 역사는 훨씬 오래됐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자객열전을 보라). 테러리즘은 좁은 영토적 한계를 뛰어넘은 파르티잔이다. 또는 국외 파르티잔이다. 파르티잔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자신에게 우호적인, 그리고 평시에는 자신들과 구분되지 않는 은신처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국가나 주권의 개념을 가진 집단이라기 보다는 의지와 이념을 공유하는 광범위한 공동체이다. 미국이 분리시키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공동체와 파르티잔들이다. 적들이 가시화될 때 비로소 효과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편 아니면 적'을 가르는 부시의 협박은 바로 주민과 파르티잔을 구별할 수 없다는 오래된 공리를 표현한다. 이렇게 해서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 이후 20년만에 세계는 새로운, 너무 기묘해서 어처구니없기까지 한 진영테제의 시기에 돌입했다. 미국의 체제와 테러리즘의 체제.
다른 한편 국외파르티잔, 즉 테러리스트들에게는 이 전쟁은 국가와 국민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공리를 표현한다. 따라서 펜타곤과 월드트레이드 건물을 붕괴시켰을 때 테러리스트들이 노린 것은 단지 기술적 조건 하에서의 상징적, 정치적 효과의 최대화인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동시에 실제적인 적을 처단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 사건에서 새로운 점이 있다면 바로 이 것이다. 과거의 파르티잔은 국가간의 전쟁의 논리를 채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규군대와 전투를 했을 뿐이었다. 아마도 이 같은 '절대적 적'이라는 세계대전의 논리를 그들이 갖게 된 것은 70년대 이후, 극단적인 힘의 불균형과 점령이 아닌 봉쇄와 통제로 자신들을 무장해제시키려는 전략에 대한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전쟁기술의 진보 때문에 적은 존재하되 투쟁거리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전의 '영웅'인 미국의 슈와츠코프 장군이 이라크에 대한 폭격에서 민간인 사상자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부대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대답한 것은 '인간들의 죽음은 불가피한 수단의 일부'라는 논리였지만 이번 사건에서 죽은 사람들은 '불가피한 목적의 일부'였던 셈이다. 점령자와 피점령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전쟁의 논리는 서로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이유 아래 민간인들은 죽어갈 수 있다.

미국의 대외 전략Ⅰ - 신고립주의도 신개입주의도 아니다

이번 사건은 미국에게는 '국내적인 동시에 국제적인' 것이었지만 그 해결책으로 '범세계적인 전쟁'을 논하는 미국의 정치인들에게서 기존의 국제기구, 특히 유엔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힘들다(부시 대통령은 사건 이후 2주 동안 단 한번 '유엔'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을 뿐이다). 국제적인 공조를 얘기하면서도 국제기구를 통한 활동에는 별 관심이 없거나 아예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는 테러행위를 다룰 만한 마땅한 국제기구가 없거나 국제기구들을 통한 활동이 단지 비효율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부시 정권 출범이래 미국과 국제기구와의 관계는 원활하지 않았다. 각종 국제적 의정서에 대한 미국의 거부의사, 그에 따른 관련국들의 반발, 인권위 이사국 선출에서의 탈락이라는 유엔에서의 미국의 수모, 그리고 유럽 및 중국 등과의 불편한 관계 등등은 이른바 미국의 '신고립주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유엔이나 다른 국제기구를 활용하지 않는 이유는 보다 깊은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부시 행정부에서 처음 이루어진 일조차도 아니다. 80년대 후반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고 그 과정에서 각종 지역분쟁들이 터져나왔을 때, 국제사회의 반응은 이라크전에서 보이듯, 그 전략적 목표가 '국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정권, 또는 정치세력의 파괴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라크전은 10년이 넘은 지금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결국 전쟁을 통해 타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것이 이 전쟁의 목표이다. 전쟁의 승리는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외부의 압력을 통해 내부로부터 붕괴시켜 자신들이 '외교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사회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80년대까지의 미국의 제3세계 전략은 자신들이 목표로 삼는 국가의 정권에 맞춰져 있던 것과는 변화된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할 수 있는 대리정권을 해당국가에 수립하고 이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남미와 아시아, 중동의 '추악한 독재자'는 바로 이 같은 외교정책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대리정권을 통한 국내적 탄압은 단지 '민주화'운동만이 아니라 '반미'운동 까지도 함께 불러왔다(한국의 예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80년대 중반 레이건 정권 하에서부터 이 같은 전략은 서서히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지난 84년 대통령 직속 국가안전보장회의 내에 제 3세계의 민주화와 시민사회화를 지원하는 기구가 들어선 뒤 민관합동으로 미국식 시민사회화를 전파하는 동은 점차로 미국의 주요한 전략목표로 자리잡아오고 있다. 이제는 정권이 아니라 사회를 길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미국은 자신의 영향력, 더 넓게는 미국주의의 영향력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것은 단지 정치만이 아니라, 문화, 오락, 기술, 인적자원들 그리고 세계관이다. 이런 점에서 멀티컬츄러리즘은 단지 미국 내부의 논리가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미국화를 전세계에 전파하는 이데올로기의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라크에서 10년 넘게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을 코소보전에서 6개월도 채 안돼서 달성한 것은 바로 미국의 이 같은 전략에 대한 두 사회의 반응의 차이들, 즉 이라크에서는 그 같은 자유주의화, 시민사회화가 오히려 반발의 근거인데 반해, 유고는 그 같은 기초 위에 세워진, 또는 그런 사회를 향해 나아가려는 집단이었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결국 양자의 차이는 경제력, 군사력, 정치적 결속 또는 종교적 차이에 있지 않다. 사회의 형태 그리고 구성원의 의지와 의식, 논리의 차이였던 것이다.

미국의 대외전략Ⅱ - 군사적 접근

사건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잠시 시간을 10여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라크전은 몇 가지 의미에서 새로운 전쟁이었다. 첫째 미국은 이 전쟁으로 월남전 이후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제 3세계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서 안전하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따라서 냉전 이후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지배를 확실하게 해준 전시장이었다. 20세기 후반 마지막 10년간의 미국의 경제발전은 바로 그 같은 힘의 압도적 우위, 그리고 그 힘의 우위가 가져다주는 국제질서의 안정성에 바탕을 둔 국제금융자본의 덕분이었다. 이 같은 승리의 요인은 바로 두 번째 이유, 이 전쟁이야말로 미국에게 가장 호조건인 전쟁이었다는 점이다. 군사적으로 이라크전은 미국에게 가장 손쉬운 전쟁이었다. 미국의 기본 군사전략은 해양전략이었고 공군전략은 이 같은 해양전략의 일환으로 수립되어왔다. 이라크의 사막은 바로 바다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월남의 정글도, 아프간의 산악도 거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제 3세계의 주요한 저항수단이었던 파르티잔전투의 가능성도 거의 없다. 또 하나는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도 이 같은 성공을 확실하게 해준 요인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영토를 공중으로부터 분할하여 끊임없이 압박을 가해오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군사적 이점은 10여년동안 이라크에게만 막대한 타격을 준 채 미국에게 손쉬운 승리를 계속해서 안겨줄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세 번째는 미국이 연합군, 즉 다국적군의 형성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다국적군의 국제법적 근거는 사실 불분명하다. 국제 사회으 공식기구인 유엔의 이름으로 전쟁을 수행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과 이라크라는 국가대 국가의 전쟁도 아닌 미국 주도하의 동조국이라는 새로운 국제전쟁 수행 주체를 만들어 낸 것은 미국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무한정한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가져다 주었다. 따라서 미국은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이라크에 대해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기묘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물론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단 한번도 외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적이 없다. 5만명이 넘는 미국인 사상자를 낸 월남전도 미국은 전쟁의 이름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다. 한국전은 유엔의 이름으로 치렀고 그라나다와 파나마 침공 때는 아예 명칭조차 불분명했다. 그저 군사적 행동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전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에서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의 절반밖에는 이루어내지 못했다. 미국은 중동에서의 영향력은 확실히 했지만, 이라크 사회를 내부로부터 붕괴시켜 새로운, 미국의 영향력 하에 둘 수 있는 정권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수백발의 미사일과 수십만명의 희생자(경제재제로 인한 간접적 피해자까지 합치면 지난 10년 동안의 사상자가 2백만이 넘는다는 민간단체의 주장도 있다)를 내고서도 후세인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따라서 적어도 이라크와 같은 사회에 대해서는 군사적 승리는 정치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한계를 결정적으로 뛰어넘은 것은 지난해의 코소보전쟁이었다. 코소보 전쟁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 하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은 전쟁이라는 이름에는 어울리지 않게, 그리고 아마도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전쟁 당사자 중의 하나인 다국적군에서는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지 않았다. 유고인들은 단지 비행기와 폭탄만을 보았을 뿐이다. 이것은 공군만으로 가능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유고는 손을 들었다. 유고는 적을 대면하여 싸워 패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싸워볼 수조차 없어서 패배했다. 미국이 무너뜨린 것은 밀로셰비치 정권이 아니라 유고 사회 바로 그 자체였다. 따라서 전통적인 전쟁이 한 사회의 정치세력을 군사적으로 전복시키는 것이었다면, 코소보전은 군사적 경제적 위협을 통해 한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삶의 조건, 행위방식, 논리를 전복시켜 승리한 전쟁이었다. 동일한 전략이 각기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은 폭격의 강도가 아니라 유고와 이라크 사회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아프간 공격은 이라크와 다른 결과를 낳기 어렵다. 미국은 아프간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무력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지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구적 승리를 논하는 것은 영구적 전쟁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월남전의 악몽이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이 같은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군사적 방식은 핵심적이기는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미국의 대외전략Ⅲ - 테러의 범죄화

테러는 과거에도 대체로 범죄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점령군의 권한이 미치는 영토한계 내에서의 일이었을 뿐, 타국의 주권하에 있는 파르티잔이나 테러리스트를 처단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이번에 세계적인 반테러리즘 전선을 구축하겠다며 제시한 방안 정치기술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이 같은 논리는 전쟁의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술적 방식의 일환으로 개발된 것이기도 하다. 지난 80년대 미국에서 마약문제가 심각해지자 미국 정부는 '마약 권하는 사회'를 개선하기보다는 처벌 쪽으로, 그것도 주로 공급원을 차단하는 치안논리로 대응했다. 레이건 정권의 마약과의 전쟁은 이렇게 해서 출발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주 마약공급원인 남미 국가들, 특히 콜롬비아와 볼리비아, 멕시코 등에서 이른바 좌익반군들이 마약생산, 거래를 통해 물적기반을 마련하고 있으며 중남미 정치질서에 주요한 골치거리라는 점과 맞물려 미국의 개입명분을 정당화했다. 미국은 중남미 정권에 대한 지지보장의 한 조건으로서 마약거래를 차단하도록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해왔다. 그러나 이 '지원'은 사실상 보조 이상의 역할이었다. 미국으로서는 좌익게릴라 소탕과 마약 차단이라는 꿩먹고 알먹고식의 이득을 위해 군사적으로는 특수요원 훈련 및 장비제공, 정보공유, 경제적으로는 국토재개발사업에까지 참여했다. 지난해에야 비로소 공개된 사실이지만 볼리비아의 경우 미국의 정찰기가 마약거래 경비행기들을 감시하기 위해 볼리비아 영공을 '합법적'으로 비행하고 있었다(법률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들을 피하기 위해 미국은 이를 위한 민간회사를 내세웠다). 무엇보다도 중남미 국가들은 자국민 마약사범들에 대해 미국이 요구할 경우 이들을 미국으로 인도하는데 동의했다. 즉, 미국에서 벌어진 범죄행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미국의 '사회방어' 권리 앞에 자신들의 주권을 양도한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대(對)마약 전략이 중남미 마약카르텔을 약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전통적으로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사실이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동안 지난 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 차량폭탄 사건의 범인들은 각기 현지에서 체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사건으로 미국인이 10여명 죽은데 비해 두 국가의 국민은 2천여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것은 범인 송환에 별 고려거리가 되지 못했다. 이것은 미주지역이외에서 최초로 형사범에 대한 미국의 주권이 영토적 한계를 벗어나 관철된 사건이었다. 미국이 이번에 전세계를 향해 외친 '내편, 네편' 논리는 이 같은 방식의 처리를 범세계적으로 보편화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5, 26일 이틀간에 걸친 CIA, FBI에서의 연설에서 '마약사범, 조직범죄를 다루는 방식으로 테러리즘을 다루겠다'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즉 전세계가 모두 미국의 뒷마당이며 미국 형법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정치적, 도덕적으로만 '무한정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전세계 모든 인민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형법을 적용하겠다는, 인류가 미국의 사법심판의 대상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 같은 치안유지적 접근방식은 '전쟁'이라는 엄숙한 선언과는 대조적이다. 이 희극적 대비는 그러나 엄중한 경고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간다면, 만일 당신이 타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면 그 재판권은 미국이 가질 것이고, 미국 시민이 해외에서 살해당한다면 미국이 가서 그 범인을 잡아 데려 올 것이라는 위협이 들어있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그 같은 일을 사전에 막지 못한, 또는 사후에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해당국가는 테러리스트와 동일한 처우를 감수해야 한다는 경고도 함께 하고 있다.

가상의 전쟁과 실제의 전쟁

코소보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은 전통적 의미의 전쟁이 아니었다. 군사적 힘의 비례가 어땠든, 어느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죽는 전쟁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수용소에 가둬놓은 채 끊임없이 학살실험을 하는 아우슈비츠에 가깝다. 유태인이 유태인이 아닐 때 살아남을 수 있듯이 이슬람이 아니기를 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그것은 달성될 수 없는 목표이다(유일하게 후세인이 자연사하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대한 폭격이 10년 넘게 이루어져 온 이유는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진지한 기대라기 보다는 '본보기' 효과 때문이다. 한 두달에 한번씩 잊혀질만 하면 미국은 이라크 폭격을 작은 뉴스로 내보낸다. 이 힘의 과시가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한, 잠재적 적들은 숨을 죽이고 금융자본은 세계질서의 안정성에 환호를 보낸다. 이 전쟁은 비용은 들지만 실제로 우리편의 살과 피가 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기에 아까움이 없다(그나마도 이제는 너무 진부해져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이 전쟁은 실제의 전쟁이라기 보다는 가상의 전쟁, 전쟁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그러나 이 가상전쟁은 실재하는 적을 만들어냈다. 뉴욕과 워싱턴의 테러는 갑자기 이 가상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테러사건 직후 미국인들의 공포는 자신들이 죽을 수 있다는 위험보다는 영화가 사실로, 악몽이 실제로, 가상이 현실로 돌아선데 대한 불신과 경악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 실재하는 적은 60년대 월남전 이후에는 본 적이 없었고(국내산 테러리스트인 티모시 맥베이의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는 미국을 둘러싼 테러리즘이었지 미국을 대상으로 한 테러리즘은 아니었다), 미국 역사 200년 동안 아무도 직접 미국 본토에 대해 공격을 가해온 실제의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투원조차도 다치지 않는 가상의 전쟁에서 민간인들도 사상자가 될 수 있는 실제의 전쟁으로의 급전환은 미국 사회가 과연 이 같은 실제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야기한다. 이것은 미국이 다른 주권국가로부터 선전포고를 받고 공격을 당하는 것과는 다른 성격의 사건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피점령과 피지배의 위험이 존재하지만, 테러리즘과의 전쟁-부시의 표현처럼 적이 분명하지 않은 전쟁-은 그 같은 위험은 전무한 대신 예고 없는 죽음과 파괴의 공포가 남는다. 국가간의 전쟁은 예측가능한 것이지만, 테러리즘은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것이다(국제 금융자본이 가장 꺼리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 계산불가능성이다. IMF가 원조의 첫 번째 조건으로 경제의 투명성을 요구한 것은 지나가는 말이 아니다). 이 불확실성은 통제에 의해서만 감소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통제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힘의 원천이라고 그리고 국가의 기초라고 믿고 있는 '자유'와 때때로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 테러 직후 미국에서 핵심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주제가 '어떻게 테러리스트에 대한 전쟁과 미국의 자유의 보존을 양립시킬 수 있는가'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미국은 희생자가 나더라도 테러리스트에 대한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대답이 90% 가까이 되는 것은 이 희생자가 해외에서의 전투를 염두에 둔 군인 사상자일 뿐인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만일에 그 희생자가 본토의 자신들까지도 포함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에는, 미국의 반응이 어떨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원자탄'을 이미 언급한 바 있고, 체니 부통령은 '더러운 손'(테러에는 테러로 맞선다. 미국의 60년대 반체제 운동인 블랙팬더파티나 푸에토리코 독립운동 단체였던 영 로드 파티는 바로 이 방법으로 궤멸당했다. 70년대까지는 일상화된 대외정책수단으로 특히 중남미에서 빛을 발휘했다. 칠레의 전 독재자 피노체트 체포사건 이후 당시 닉슨 대통령 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죽어도 미국 땅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전쟁이 무차별적인 열전이 된다면 미국내의 미묘한 힘의 균형이 깨어질 위험도 존재한다. 부시의 정치적 기반인 기독교, 백인(남성), 남부, 전통적 산업자본과 그에 대비되는 소수민족, 동·서부, 이른바 '신경제' 부문의 차이는 이미 지난 대선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장기화된 열전은 이 차이를 더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 당장 테러사건 직후 미국인들이 애국심에 불타 성조기를 집 안팎을 도배할 때, 외모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터번을 쓴 중동인들은 아예 길거리에 나다니기를 기피했다) 공격을 당한 인도인이나 시크교도들은 성조기가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희망에서 국기를 내걸었다. 당분간 이 사건만으로도 백인 주류사회의 반동이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여 '국가적 위기' 속에 잠복해있는 인종문제가 장래에는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또 미국의 해외에서의 지상군 투입을 포함한 대규모 전쟁은 내부의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다. 어떠한 정치가도 대중이 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안정된 국제질서를 바라는 금융자본에게는 바라는 바가 아니다. 설사 전쟁으로 인해 중기적으로 미국이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올지라도 그것은 아직 계산 가능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이 아무리 분노에 차 있더라도 아직은 더 큰 규모의 가상전쟁 이외의 전쟁을 수행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처음 '본때'를 보여주는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이후에는 조용한, 그리고 기술적으로 섬세한 통제와 감시가 그 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아마 이라크전에 '더러운 손'을 합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벌써 그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하나는 부시가 말한 '장기적 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이 같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부서(Office of Homeland Security-우리말로 조국보위부정도에 해당한다)를 창설했다. CIA와 FBI를 통괄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 부서는 아마도 조국 땅에 머물지 않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조용한, 그렇지만 '더러운 손'을 가진 보안기구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접근은 이 전쟁을 궁극적으로는 '군사적' 전쟁이 아닌 '보안차원'으로, 따라서 '물리력을 수반한 행정적 차원'으로 해결할 것이다. 그러나 그 '행정'은 미국의 영토내에 제한되지 않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미국의 승리는 아프간에서의 전투의 승리, 빈 라덴의 체포 처형, 또는 친미정권의 수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과정, 지구상의 다른 주권국가들로부터 '동의'를 얻어 얼마든지 그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는 권리를 합법적으로 양도받아 언제든지 군사적, 정치적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2000년 전에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했다. 지금 여기에서는 모든 길은 미국으로 통한다. 그렇지만 미국 밖에서도 미국 법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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