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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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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제정, 무엇이 문제인가?

김도형 | 사무처장
테러방지법, 졸속으로 국회에 상정하다.

지난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의 여파가 드디어 국내에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테러의 예방․방지 및 범인색출 등 전 과정을 규정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테러에 효율적․체계적으로 대처하여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테러방지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원(국가정보원)은 11월 12일 갑작스레 국정원의 홈페이지에 테러방지법(안)을 입법예고 하였다. 그런데 이 테러방지법안은 테러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인권침해의 소지가 다분한데다가, 국정원의 지나친 권한 확대 등 가히 제2의 국가보안법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 내용이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에 인권운동사랑방과 민변 등 5개 인권․사회단체들은 11월 20일 ‘국정원의 테러방지법안 국회 상정 저지를 위한 긴급토론회’를 개최하여 테러방지법 제정과 관련된 국정원의 음모를 폭로한 후, 입법 반대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전개하는 등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를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국정원은 자체적으로 임의로 정한 입법예고기간 10일이 끝나기 하루 전인 11월 20일 밤에 홈페이지에 아무런 공지도 없이 이미 입법예고 한 법안을 일부 손질해서 새로운 법안을 갑작스레 올려놓았다. 새 법안의 내용에서는 그 날 낮에 있었던 긴급토론회에서 자의적인 법 해석에 따른 인권침해의 소지가 많다고 집중 비판된 조항을 수정하였다. 참고인 구인․유치 조항과 구속기간 연장 조항을 삭제하고 불고지죄 조항도 완화하였으며, 국정원의 테러수사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부분도 삭제하였다.
입법예고기간이 끝난 후 정부는 11월 22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친 차관회의에서 법안의 상당한 부분을 다시 손질하였다(애초의 입법예고안에서 총 15개 조문에 대한 수정과 삭제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11월 27일 국무회의에 상정하여 전격적으로 테러방지법안을 의결하고, 정부입법으로 국회에 상정하였다. 현재 테러방지법안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회부되어 심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바, 이 번 정기국회에 이어 12월중에 다시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하는 것이 별반 문제없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테러를 예방하고 테러범죄를 강력히 처벌하는 과정에서 그에 따른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의 제한은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보장의 견지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정함에 있어서는 어느 법안보다도 심도 있고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 테러방지법의 제정은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 안에 졸속으로 입법화될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인 바, 첫 번째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안)의 실제 무엇이 문제인가?

11월 27일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테러방지법안의 내용은 어느 것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두 문제가 있지만 그 중 주요한 부분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1. 테러의 정의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테러”라 함은 정치적․종교적․이념적 또는 민족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그 목적을 추구하거나 그 주의․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행하는 다음 각목의 행위로서 국가안보 또는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중대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국가요인․각계 주요인사․외국요인과 주한 외교사설에 대한 폭행․상해․약취․체포․감금․살인
나. 국가중요시설, 대한민국의 재외공관, 주한 외국정부시설 및 다중이용시설의 방화․폭파
다. 항공기․선박․차량 등 교통수단의 납치․폭파
라. 폭발물․총기류․그 밖의 무기에 의한 무차별한 인명살상 또는 이를 이용한 위협
마. 대량으로 사람과 동물을 살상하기 위한 유해성 생화학물질 또는 방사능물질의 누출․살포 또는 이를 이용한 위협
2. “테러단체”라 함은 설립목적의 여하를 불문하고 그 구성원이 지속적으로 테러를 행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을 말한다.
3. “테러자금”이라 함은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가. 테러단체가 보유한 모든 종류의 자산과 그 자산에 관한 권리
나. 테러에 사용하기 위한 자산과 테러를 통하여 얻거나 얻기로 한 수익
4. “대테러활동”이라 함은 국내외에서의 테러의 예방․방지, 테러의 진압, 테러사건현장에서의 인명구조․구급조치 등 주민보호 등을 위한 제반 활동을 말한다.

한 마디로 테러의 정의가 너무 모호하다. 국가안 보, 외교관계, 사회적 불안 등 불확정한 법 개념을 마구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법규정 방식은 국가보안법상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어서, 테러범죄 또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수사기관의 마구잡이 연행이 생겨날 공산이 농후한 것이다. 심지어 국정원의 입법예고안에는 정치적․종교적․이념적․민족적 목적 이외에도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에도 테러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었고, 국가중요시설 등 대하여 폭파나 방화 등의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단순한 점거까지도 테러행위로 간주하고 있었다.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은 삭제가 이루어지기는 하였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의 수단으로 회사 건물을 점거하게 되는 경우 국가중요시설의 점거라는 테러행위로 규정될 수 있는 소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테러단체의 개념에 있어서도 그 구성원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테러를 행하여만 테러단체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인지, 테러자금도 테러에 사용하기 위한 자산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를 짚어볼 때 불명확한 정의 규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2. 테러대책기구

제4조(국가대테러대책회의) ①대테러정책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국가대테러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라 한다)를 둔다.
②대책회의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1. 국가대테러정책의 수립방향
2. 테러사건에 대한 대응대책
3. 각종 대테러대책의 수립 및 시행에 관한 평가
4. 그밖에 테러의 예방․방지에 관한 정부의 시책
③대책회의의 의장은 국무총리가 되며, 그 위원은 다음 각 호의 자가 된다.
1. 재정경제부장관․통일부장관․외교통상부장관․법무부장관․국방부장관․행정자치부장관․과학기술부장관․정보통신부장관․보건복지부장관․환경부장관․건설교통부장관․해양수산부장관․기획예산처장관 및 국무조정실장
2. 국가정보원장
3. 그밖에 의장이 지명하는 자
④대책회의에서 위임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대책회의에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⑤상임위원회의 위원은 외교통상부장관․법무부장관․국방부장관․행정자치부장관․국무조정실장 및 국가정보원장이 괴며,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대책회의의 의장이 지명하는 자가 된다.
⑥대책회의 및 상임위원회의 구성․운영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5조(대테러센터) ①대테러활동과 관련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가정보원에 관계기관의 공무원으로 구성되는 대테러센터(이하 “대테러센터”라 한다)를 둔다.
1. 테러징후의 탐지 및 경보
2. 테러관련 국내외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3. 대테러활동의 기획․지도 및 조정
4. 분야별 테러사건대책본부에 대한 지원
5. 외국의 정보기관과의 테러관련 정보협력
6. 그밖에 대책회의 및 상임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 사항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관계기관 및 그 소속공무원의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③대테러센터의 조직은 대책회의의 의장을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국가정보원장이 정한다.
④대테러센터의 정원은 예산의 범위 안에서 대책회의의 의장을 거쳐 새통령의 승인을 얻어 국가정보원장이 정한다. 이 경우 파견공무원의 정원에 관하여는 미리 당해 파견공무원이 소속된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야 한다.
⑤대테러센터의 조직 및 정원은 이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위와 같이 테러대책기구 구성은 대테러정책의 수립, 테러사건에 대한 대책 등 대테러대책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국무총리를 의장으로 하고 주요 부처의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등을 위원으로 하는 ‘국가대테러대책회의’를 두고, 위 대책회의에서 위임한 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대책회의에 ‘상임위원회’를 두며, 국정원 산하에 테러징후의 탐지, 테러 관련 국내외 정보 수집, 대테러활동의 기획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대테러센터’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문제는 대테러대책의 일상적인 책임기구가 국정원으로 상정되어 있고, 그 결과 대테러활동의 주도권을 국정원이 장악하게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애초의 국정원이 입법예고한 법안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국가대테러대책회의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국정원장이 당연직으로 맡고, 국정원 내에 설치하는 대테러센터가 테러사건의 수사권을 가지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었으며, 국정원법도 개정하여 국정원에 테러방지법에 규정된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국정원의 지나친 권한 확대를 초래하여 자칫 국정원이 과거와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구로 회귀할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자,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치는 과정에서 법안에서 이 부분을 삭제하였다. 그러나 국정원장이 국가대테러대책회의의 상임위원장이 되는 것이 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실제 운용 과정에서 상임위원장의 1순위는 국정원장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국정원의 테러수사권을 삭제하였다고는 하지만 국회에 상정된 테러방지법안 제16조에서는 국정원 내에 설치되는 대테러센터의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고 있는바, 사법경찰권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범죄에 대한 수사권이므로 사실상 테러수사권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법에 ‘국정원은 테러사건의 수사권을 갖지 않는다’라는 명시적인 규정이 들어있지 않는 한, 실제 운용 과정에서 국정원이 사실상 테러사건 수사의 전권을 쥐고 주도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3. 군병력의 동원

제15조(군병력 등의 지원) ①대책회의 또는 상임위원회는 경찰만으로는 국가중요시설․다중이용시설 등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시설의 보호 및 경비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군병력 또는 향토예비군(이하 “군병력 등”이라 한다)의 지원을 대통령에게 건의 할 수 있다.
②대통령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건의에 따라 군병력 등을 지원하고자 하는 때에는 미리 국회에 통보하여야 하며, 군병력 등을 지원할 후 국회가 군병력 등의 철수를 요청한 때에는 이에 응하여야 한다.
③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지원된 군병력 등은 시설의 보호 및 경비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불심검문․보호조치․위험발생방지 또는 범죄의 예방과 제지를 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④제3항의 규정에 의한 불심검문․보호조치․위험발생방지조치 및 범죄의 예방과 제지를 위한 조처에 관하여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 내지 제6조, 제10조 및 제 10조의2 내지 제10조의4의 규정을 준용한다.

우리 헌법은 계엄 상황을 제외하고는 군의 출동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법안에서 군병력 동원의 절차를 계엄 발동과 동일하게 대통령이 국회에 통보하고 국회가 군병력의 철수를 요청할 때에는 이에 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테러 예방을 위한 군병력의 동원은 위헌 규정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원래 국정원의 입법예고안에는 국방부장관의 국회 통보만으로 군병력의 동원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명백한 위헌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가중요시설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동원된 군병력에게 경찰관 직무집행법상의 경찰권을 부여하고 있는바, 우리 헌법은 군대가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로 계엄을 예정하고 있을 뿐이므로 이 또한 위헌임을 면할 수 없는 규정이다. 한편 테러방지법안 제7조에서는 테러에 대한 무력진압을 위한 특수부대의 설치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데 특수부대의 설치권자 중에 국방부장관이 포함되어 있어 군병력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므로 이것 역시 위헌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이대로 테러방지법이 입법화된다면 테러 예방이라는 명분 아래 군과 경찰의 경계는 허물어지게 되고, 계엄 선언 없는 계엄 상황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위험성 아래 우리 사회는 놓이게 될 것이다.

4. 테러단체 구성 죄

제19조(테러단체의 구성 등) ① 테러단체를 구성하거나 구성원으로 가입한 자는 다음의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수괴는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2. 간부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3. 그 밖의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
② 테러단체의 가입을 지원하거나 타인에게 가입할 것을 권유 또는 선동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④ 제 1항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테러단체의 구성에 대한 처벌은 형법상의 범죄단체조직 죄로도 충분히 가능하므로 테러방지법에서 별도로 테러단체 구성 죄를 신설할 필요성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법안 제2조의 테러단체의 정의에 따르면 단체 자체의 성격으로는 테러단체임을 식별할 수 있는 기준이 없고 단지 구성원이 테러를 행하는 행동 여하에 따라서 테러단체인지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안의 규정대로라면 테러단체 구성 죄라는 것은 성립할 여지가 없게 된다. 테러단체 가입 죄의 경우에도 기존 구성원의 테러행위에 의하여 테러단체로 규정된 이후라면 몰라도 그 이전에 가입한 자에 대한 처벌은 있을 수 없게 된다. 테러단체의 가입을 타인에게 권유하거나 선동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도 도대체 무엇을 권유와 선동으로 볼 것인지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5. 테러범죄 미신고 죄 및 허위신고 죄

제21조(테러범죄의 미신고) ①테러의 계획 또는 실행에 관한 사실을 알고 이를 관계기관에 신고함으로써 테러를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고하지 아니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다만, 교통․통신의 두절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이 법에 규정된 죄에 관하여는 형법 제317조(업무상 비밀누설)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제22조(허위신고 등) 전화․서신 그 밖의 방법으로 테러와 관련된 허위 사실을 신고 또는 유포하거나, 이를 이용하여 협박을 하거나 협박을 가장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국정원의 원래 입법예고안에는 ‘불고지죄’라고 하여 테러를 범한 자 또는 범할 계획을 가진 자를 알면서도 관계기관에 지체 없이 고지하지 아니한 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범죄의 실행을 저지할 수 있는지를 묻지 안고 불지를 처벌한다는 점에서 남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신고함으로써 테러를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라는 부분을 추가로 삽입하였다. 그러나 테러의 실행저지 가능성을 구성요건에 포함시켰다고 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할 것이다.
허위신고 죄의 경우에도 허위사실의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 인정될지 의문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바, 단순한 장난 전화에 대해서까지도 처벌하지 못하란 법이 없게 되는 등 문제의 소지가 농후한 규정이다.

6.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

부칙 제2조(다른 법률의 개정) ③ 통신비밀보호법 중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5조 제1항에 제7호를 다음과 같이 신설한다.
7. 테러방지법에 규정된 죄
제8조제1항 후단 및 제2항 후단 중 “48시간”을 각각 “48시간(제5조 제1항 제7호의 죄를 범한 혐의가 있는 외국인의 경우에는 7일간)”으로 한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 대상이 되는 범죄를 너무 넓게 설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청에 대한 통제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인권침해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문제가 많은 법률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에서 테러방지법에 규정된 죄를 새로이 감청 대상에 포함시키게 된다면 인권침해의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의 경우에는 법관의 허가 없이 긴급감청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현행 48시간에서 7일간으로 연장하는 것으로 개정하게끔 되어 있는데, 외국인이 내국인과 통신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이는 외국인에만 국한되는 것이 결코 아니고 내국인도 사실상 적용대상이 되는 것이다.


입법과정의 졸속성, 그러나 신속한 입법화를 치밀한 준비가 있었다.

법률의 제정 과정에서 정부입법안의 입법예고기간, 즉 법안에 대한 국민여론의 수렴기간이 통상적으로 적어도 20일 이상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에 대한 입법예고기간이 단 10일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입법과정의 졸속성은 명백하게 인정되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입법제안자의 공청회가 한 번도 열리지도 않았으며, 더군다나 입법예고기간이 끝나기 하루 전에 아무런 공지도 없이 일부 조항을 수정하는 변칙마저 자행하였다. 그리고 11월 22일 차관회의의 1차 법안 검토를 거쳐 26일 차관회의를 통과한 테러방지법안은 바로 그 다음날인 27일 국무회의에서 전격적으로 의결되어 곧바로 국회에 상정되었는바, 그 신속성은 가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여기엔 12월 8일 정기국회가 끝나기 이전에 테러방지법을 제정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표명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는 법안이 회부된 지 1주일이 지나도록 어떻게 논의가 진행되는지에 대해서조차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있고, 검찰총장 탄핵 문제로 야기된 여야 간의 대립으로 국회 자체의 정상적인 가동이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테러방지법의 연내 입법화가 과연 가능할 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국회가 충분한 의견수렴절차 없이 서둘러서 법안을 처리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전문가와 인권․사회단체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후 테러방지법의 제정 여부부터 다시 검토해야 함이 국회가 해야할 당연한 의무일 터이지만, 평소 국민의 대변자라고 입에는 개 거품을 물면서 행동은 전혀 딴 판으로 하는 국회의원들의 실 꼬락서니를 볼 때에는 순진한 희망 사항일 따름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있어서 존재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애초 법안에 대한 국정원의 자체 수정과 차관회의의 수정 등 2차례의 법안 수정의 내용을 검토해 볼 때, 졸속적인 입법 처리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은 신속한 입법화를 위한 치밀한 준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테러 행위의 개념 정의에서 사회적 목적과 시설의 점거 행위를 삭제하였고, 국가대테러대책회의의 상임위원장직을 국정원장이 하는 것에서 대책회의 의장이 지명하는 것으로 변경하였으며, 테러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권을 법에 명문화한 것을 없앴다. 테러 예방을 위한 외국인에 대한 불심검문 규정도 삭제하였다. 위헌 규정임이 명백한 군병력의 동원 절차를 대폭 바꾸고, 군병력의 무기 사용을 명시한 규정을 삭제하였다. 대표적인 인권침해 조항인 불고지죄도 미신고 죄로 그 구성요건을 손질하였고, 참고인의 구인․유치 조항과 구속기간의 연장 조항 및 정보자료의 증거능력 조항도 모두 삭제하였다.
겉으로 보기엔 테러방지법 제정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인권․사회단체들의 의견이 대부분 수렴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다음과 같이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입법예고기간 중에 전 언론이 테러방지법 제정의 필요성은 인정되나 테러 개념이 모호하고 인권침해 소지가 있고 국정원이 미국의 테러사건을 계기로 이 법을 통해 권한을 강화할 의도를 갖고 있다는 등의 논조로 보도하였고, 67개 시민․인권단체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 토론회 및 기자회견을 통해 제2의 국가보안법이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하여 각계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테러 개념 등을 더욱 명확히 하고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조항은 삭제한 후 당정협의를 거쳐 국무회의에 상정․의결된 것이라고 하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문제된다고 한 부분은 다 고쳤는데도 계속 반대할 것이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대한다는 것은 테러 방지를 하지말고 테러 범죄를 처벌하지 말자는 이야기라면서 역공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설 때 당연히 발생하게 될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하여 정부는 치밀한 계산 속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는 소리가 당연히 나올 정도로 허무맹랑한 법안을 내놓는다. 그리고 비판을 수용한답시고 법안에서 문제되는 부분을 다 삭제한다. 그러나 법안에서 명시적으로 삭제는 되었다고 하더라도 법안이 통과되기만 하면 시행 과정에서의 부활은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문제될 것은 없다. 저항이 더욱 커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입법화시키는 것이 문제일 따름이다. 국민을 호도 하는 정부의 언론플레이와 보수언론의 왜곡보도로 장단맞추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테러방지법의 그것은 정말 혀를 내두르는 감탄마저 나오게 하고 있다.


현행법으로도 테러의 예방과 처벌은 충분히 가능하다.

테러방지법이라는 것은 테러라는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비상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형태의 입법이 없다고 하서 테러사태를 방지할 수 없고 테러범죄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불가능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법체계로도 테러에 대한 예방과 처벌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찰력, 특히 경찰의 정보력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서 있다. 그리고 우리 경찰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군대와 다름없는 전투경찰대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찰특공대라는 대테러 특수부대가 경찰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일상적인 불심검문과 통신매체의 감청 등을 통한 광범위한 정보수집은 기존의 법 시스템 아래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테러예방을 위한 방어시스템은 경찰 자체적으로 이미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경우에 있어서도 현행법 아래에서 국정원은 이미 광범위한 테러정보 수집활동을 시행하고 있다. 국가정보원법에는 국정원의 직무의 하나로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규정하고 있으며, 국정원은 현역군인 등 필요한 공무원을 파견공무원으로 데려다가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음으로 테러방지법에서 처벌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현행 형법 및 특별형법에 거의 대부분이 다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즉, 테러 단체구성 죄와 테러범죄 미신고 죄 및 허위신고 죄를 제외하고는 범죄의 구성요건을 새로이 신설한 것은 없고 기존 형법 및 특별형법상의 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테러단체구성 죄라는 것도 형법상의 범죄 단체조직 죄로 충분히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결국 현행법으로도 테러범 처벌에 있어서 어떠한 결함이나 공백도 존재하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테러방지법이라는 입법 조치가 없다고 해서 테러를 방지하지 못하고 테러에 대한 처벌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현행법체계 내에 흠이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테러방지법이 겉으로 내세우고 있는 명분인 테러예방과 대책이 그와 같이 특별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실제로 효과를 가져오게 될 지가 의문시되는 바라고 할 것이다.


본질은 테러예방을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상시적인 대국민 감시체계의 확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국정원의 과도한 권한 확대가 이루어질 소지가 농후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국정원은 말 그대로 정보기관으로서 정보기관은 정보수집활동에만 그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과거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시절의 우리나라 정보기관은 광범위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었고 수사권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 남용이 매우 심각하였다. 그리하여 현재의 국정원은 국가보안법상의 범죄 등에만 한정적인 수사권을 가지고 정보기관 본연의 모습을 갖추도록 국가정보원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용호 게이트와 같은 사건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국정원의 권한 남용에 대한 의혹은 여전한 실정이다. 결국 테러예방을 명분으로 테러에 대한 수사권을 확보함으로써 실추되어가고 있는 국정원의 입지강화라는 노림 수가 그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테러방지법에 의해 국정원 내에 설치되는 대테러센터가 매우 광범위하고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전히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자행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을 테러방지법 제정을 계기로 정식으로 합법화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을 것이다. 국정원의 애초 입법예고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테러자금의 거래정지와 외국인 동향관리와 같은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 이다.

한편으로 정부가 테러방지법의 입법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숨겨져 있는 또 하나의 목적은 변화된 시대 상황 아래 사실상 더이상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운 국가보안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강력한 국민통제수단의 창출에 있다고 할 것이다. 테러예방을 명분으로 상시적인 대국민 감시체계를 확립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군병력까지 동원하여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엄청난 법률이 테러방지법이다. 테러가 실제 발생하지 않더라도 테러 발생이 예상되기만 하면 테러사건대책본부의 설치․운영이 가능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 황당하게 당하게 될지 모르는 테러라는 끔직한 공포(빨갱이이게 나라를 빼앗길 공포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속으로 국민을 몰아넣고 그로부터의 안전보장이라는 대가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상시적인 감시체계를 합법적으로 이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테러 대책의 수립이라는 미명 아래 이루어지는 새로운 대국민 감시체계의 확립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어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다. 뉴욕 테러참사의 직접 당사국인 미국은 물론 독일, 일본 등 세계 각 국에서 이미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이 전세계적으로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에는 분명한바, 그 틈바구니를 각 국의 국가권력은 절묘하게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세계무역센터 테러에 대한 기억이 시간의 망각 속에서 퇴색되고 잊혀지기 전에, 즉 국민이 충격과 공포를 벗어나 냉철한 이성을 되찾아 테러방지법안이 예정하고 있는 테러대책들이 인권과 자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자리잡기 이전에 하루 빨리 입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추운 겨울의 한파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우리 목전에 다가와 있는 테러방지법의 실체이고 본질인 것이다.



※ 이 글을 씀에 있어서는 지난 11월 20일의 긴급토론회에서 발표된 울산대 이계수 교수님의 「국정원의 가칭 테러방지법 제정(안)에 대한 의견서」의 내용의 많은 부분을 참조하였음을 밝히면서, 인권․사회단체들이 테러방지법 제정반대 운동을 펼치는 데에 정치된 논리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신 이계수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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