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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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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박준도 | 편집부장
내가 처음 '대학로'를 간 적이 언제인가 하면, 92년 12월이다. 오늘처럼 무척 추웠던 데다 손을 내내 밖으로 내놓아서인지, 훨씬 추위를 탔다. 무슨 내용이 씌어져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바탕에 머리띠를 휘날리며 오른 손을 들고 있는 노동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깃발이었다. 아주 빨간 깃발이었는데, 그걸 내가 들고 있었다. 민중후보 백기완의 첫 대규모 유세가 있는 날이었다. 대학로를 좌우로 하고 서울대 의대쪽으로 연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날이 추워서였는지 대학로 양끝으로는 사람이 한가한 편이었다. 그래도 어림잡아 2만은 되는 사람이 모였을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당시의 광경을 찍은 사진은 이후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표상으로 남았다.

87년 대선 당시 나의 동아리 선배들은 전국 순회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죽창으로 하늘을 가르는 춤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데, 무대를 감싸는 비장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오늘 죽창을 들고 춤을 출 수는 없겠지......"
미묘한 여운을 남기는 그 말을 뒤로하고 난 수많은 사람들과 문예 선동 판을 함께 했다. 우리는 곳곳에서 게릴라 무대를 만들고 선전선동을 일삼는 불법 선거운동을 했고, 노래도 부르고, 도망도 쳐야 했다. 공식적인 유세 때는 20-30명씩 올라가 합창을 했다. "인터네셔날가"를 부를 때는 무척 긴장했어야 했는데, 경찰 때문이 아니라, 임의로 노래를 선택했다고 누군가 항의할까 싶어서였다. 표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추위에 떨며 귤을 판 것이었다. 당시 우리는 선거자금이 부족하다는 절박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87년 당시 2학년이었던 그 선배가 기억하는 대선은 '죽창'이었지만, 92년 당시 2학년이었던 내가 기억하는 대선은 '귤'이었다. 그도 선거 자금을 모았고, 나도 분명히 선동공연을 함께 했다.

97년 대선, 난 선동공연을 하지는 않았다. 노래도 못하는 고학번을 끼워줄 리 만무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난 아예 선동공연을 본 기억이 없다. 전문 문예패들의 공연은 선동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침착했고, 지나치게 세련되었다. 96년 총파업 당시 똑같은 문예패가 명동성당에서 공연할 때 난 격정을 감출 수 없었는데, 97년 겨울 난 지루해서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가장 많이 본 것은 "일어나라 코리아"가 선명하게 찍혀 있는 카셋트 테잎이었다. "일어나라 코리아"가 민중운동의 정치적 선동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선거는 끝났다. 득표율이 조금 더 올랐다고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국민승리21"이라는 당명을 놓고 백기완씨가 호되게 꾸짖는 장면이다. "우리가 유신시대에 살아? 우리가 장개석이야? 그런데 무슨 국민 승리야" 대학로에서 조금 내려와서 어느 술집에서였다.

2000년 이곳 대학로에서 난 정말 의아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는데, 저쪽에서는 스케이트보드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고, 이쪽에서는 자전거를 탄 캠페인 부대가 돌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쪽은 일부 청소년들이 테크노 춤을 추는 곳이었다. 난데없이 사회자가 외쳐댄다. 드디어 꿈을 이루었노라고, 테크노에 맞춰 춤추는 시위 군중을 보았다고 말이다. 손에 노란 카드를 들며, 테크노 춤을 추는 청소년. 그들에게는 잘 어울리는 모양이었다. 시위가 즐거워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이건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라는 코미디 프로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얼마 전, 니카라과의 대통령 선거에서 산디니스타의 오르테가는 56대 43으로 또다시 패배하고 말았는데, 내리 세 번 선거에 지면서 그는 이번에는 매우 파격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과격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군복 대신 분홍색 셔츠를 입었고, 심지어 미국의 대 테러 정책을 지지하는 친미 유화정책마저 표방했다. 그리고 다시 아슬아슬하게 졌다. 그가 다음 대통령 선거 때 무엇을 할 지 모르겠으나, 집권을 위해서라면 더욱 물러선 정책대안으로 나설 것이다. 집권 정당이 되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은 훨씬 더 곤란한 법이다.

그럼, 우리는 "테크노"에서 얼마나 더 물러나야 하는가?

선거를 통한 집권이 목표인 정치에서 예술의 실종도 문제지만, 더 두려운 것은 정치의 실종이다. 선동이 없어지는 것은 정치가 없어서이다. 대중의 정치의식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세와 상관없이 진행하는, 집권을 향한 선거, 선거 정치는 대중의 정치의식을 후퇴시킨다. 이제 무엇으로 상황을 뒤집을 것인가? 무엇으로 거리를 가득 메우는 선동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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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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