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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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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박준형 | 사회진보연대 기자
정치 팜플렛은 당시의 정세적 요구에 따라 쓰여지기 마련이다. 최근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된 로자의 이 작은 팜플렛도 당연히 구체적인 정세적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베른슈타인의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당의 과제>로 본격적으로 역사 속에 자신을 드러낸 수정주의와 논쟁이었다. 로자는 100년의 시간을 넘어서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100년을 건너 번역, 출간된 이 책도 여전히 '정세적'일 수 있을까?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당의 과제>가 발표된 것은 1899년이었지만, 베른슈타인은 그 이전부터 독일 사민당의 주요 이론지인 <새시대 Die Neue Zeit>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였다. 엥겔스가 1895년 사망한 직후인 1896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베른슈타인은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여전히 강조했지만 그것은 '수정된' 마르크스주의였다. 에어푸르트 강령(1891)에서 봉합된 이론과 실천의 긴장 속에서 개량주의적 실천을 우위로 이론을 수정하고자한 시도였다. 그러나 그가 수정주의를 이론화된 형태로 정리해내기 이전에도 그러한 경향은 이미 존재하였다. 베른슈타인의 작업은 그것에 명징한 이론적 언어를 부여했을 뿐이다. 사민당의 공식적 입장인 에어푸르트 강령에도 이미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견하는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수사 뒤에는 '혁명적 대기주의'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자는 수정주의, 기회주의가 '이론'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반이론주의 입장을 가진다고 비판한다. 이것은 혁명적 이론으로 개량적 실천을 정당화할 수 없을 때 기회주의가 흔히 취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로자는 수정주의가 전제하는 경제적 관점과 그 정치적 결론,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 등을 꼼꼼하게 비판하고 있다. 로자는 우선 베른슈타인이 말하는 자본주의 전망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신용의 팽창과 카르텔로 인한 시장의 무정부성의 지양이라는 베른슈타인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붕괴는 불가능하며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정치적 결론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자본주의 붕괴에 대한 부정에 근거하여 주식회사의 증가에 따른 주주의 증가가 곧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을 의미 없게 만드는 자본의 해체라는 주장, 노동조합의 일상적 투쟁을 통한 '사회 개혁'이 운동의 모든 것이라는 입장 등이 제시된다. 매우 익숙한 주장들이다.

로자는 이에 대해서 신용과 카르텔이 시장의 무정부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지 못함은 물론, 자본주의의 붕괴를 더욱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또한 권력장악의 과제를 포기한 노동자 운동은 그 방어적 성격 때문에 최종적인 승리는커녕 항상적인 후퇴를 경험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아직 이 팜플렛에서는 로자 자신의 '붕괴이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과소소비설'의 입장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1913년, <자본축적>에서이다.)

베른슈타인의 그러한 주장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말 당시에 장기간 지속된 호황국면 때문이었다. 10년 단위로 반복되던 경기순환도 20년째 사라진 것으로 보였고, 독점과 금융자본의 팽창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수정주의자들은 이를 두고 자본주의가 '시장의 무정부성'이라는 내적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는 것으로 판단했다. 금융화 속에서 자본의 이윤율이 회복되는, 이른바 '벨 에포크' 시대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제시된 수정주의에 대한 로자의 비판은, 또 다시 '금융화'의 시기인 현재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당시에 장기간의 호황이 자본주의 붕괴 경향을 실증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보였다는 점만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의 '세계화'와 '금융화'를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로자는 경기순환의 완화가 자본주의 붕괴 경향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부차적인 요인에 의한 경기순환 양상의 변화를 본질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는 '신경제론'과 같은 주장으로 현재에도 유행하고 있다.

이런 점을 제외하고도 이 책은 제목 자체가 던지는 하나의 질문에 답변할 것을 독자들에게 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달리 말하면 사회개혁은 수단이며 사회혁명은 목적이라는 명제를 승인할 것인가란 질문에 답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는 문제에 대한 답은 이미 '사회개혁'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또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개혁'이란 재벌소유구조 개혁, 금융시장 개혁, 공기업 개혁, 노동시장 개혁 등과 같이 신자유주의적 사회 개혁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오히려 로자의 100년 전의 질문에 다시 답변할 것을 요구한다.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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