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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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장애운동의 쟁점과 과제

김도현 | 노들장애인야간학교 사무국장
1. 들어가며

2001년은 한국 사회 장애운동에 있어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작년 1월 발생한 오이도역 장애인 수직형 리프트 추락참사를 계기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한국 사회 전반에 그리고 민중운동 진영에 장애인 문제를 하나의 과제로 제기하였으며, 정부와 공권력의 탄압에 정면으로 맞선 비타협적 투쟁의 모습은, 진보진영 내의 많은 단체들이 장애인 문제를 운동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연대하는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활동의 표면적 성과로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시민운동가 선정 올해 최고의 시민단체(?) 2위에 오르고,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가 OhmyNews가 뽑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그리고 우리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듯, 장애운동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을 뿐이다. 80년대 말 전반적인 민중운동의 고양 속에서 태동되었던 변혁적 장애운동은, 그 자립적/조직적 기반을 튼실히 하지 못한 채 민중운동의 경계선에서 90년대를 힘겹게 버텨왔으며, 이제 다시금 처참한 장애인 민중의 현실을 부둥켜안고 그러나 여전히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역량에 조금은 숨 가빠하며, 이 사회의 모순을 가로질러 새로운 질주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2002년은 이러한 새로운 출발이 어떻게 방향을 잡아가는가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우리 스스로에게 주어진 많은 과제들이 무엇이든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건강하고 투쟁적인 지금의 모습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래에 제시되는 투쟁의 쟁점들은 엄밀한 정세적 분석과 계획이 전제 되었다기 보다는, 이러한 우리의 자세로 받아 안고 투쟁해야 할 사안들을 서술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장애인 문제를 고민하고 투쟁하고자 하는 여러 단위들과의 소통과 논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일정과 투쟁의 방향들이 보다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이다.


2. 2002년 장애운동의 쟁점


2-1. 장애인 이동권 투쟁

작년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장애인이동권투쟁은 올해도 가장 중심적인 투쟁으로 자리 매김 될 것이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장애인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핵심적으로 저상버스의 도입과 모든 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은 매우 장기적인 투쟁을 요구해왔다. 이것은 '대중교통'이 한 사회 전체의 공공적 투자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이야기하듯이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국가권력 및 자본과 아주 직접적인 전선을 형성하며 그것을 돌파해야만 일정한 결과물을 쟁취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8·29 버스 점거 농성 이후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지속적인 100만인 서명운동의 전개와 함께 매달 1번씩 정기적인 버스탑승 투쟁을 배치하며, 장기적인 투쟁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여기에서 단기적으로는 지자체 선거와 대선 일정들과 월드컵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일정 정도 활용할 수 있는 시기가 있겠지만, 어떤 결정적인 전환을 섣불리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동권연대를 구성하고 있는 단위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의지를 굳건히 하고 내부적인 자기혁신을 이루어 낼 수 있는가이며, 이러한 힘들이 모아질 때만이 올 한해 굳건한 이동권 투쟁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2-2. 에바다 투쟁의 완전한 승리와 장애인수용(복지)시설의 민주화를 위한 정책적 대안의 모색

96년 겨울, 에바다 농아원 학생들의 피맺힌 절규로 시작된 에바다 투쟁.
유령직원과 주민등록증 이중발급 등을 동원한 수억 원에 이르는 국고 및 후원금 횡령, 3명의 장애아동 의문사, 작업장에서의 강제노역과 임금착취, 입양사업을 명목으로 한 해외로 인신매매 등 수 없는 비리와 인권유린의 온상이었던 에바다 복지회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 여름 에바다 투쟁은 재단의 이사회를 에바다 연대회의가 추천하는 이사들이 과반수를 장악하며 일정한 해결을 맞이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사회의 권한으로 교장 및 농아원장까지 민주적 인사가 임명되었음에도,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부 구 재단 인사들의 마지막 발악과 이를 방기하고 있는 지방 토호세력(평택시청과 평택경찰)의 커넥션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정상적인 운영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일정한 기반이 마련된 상태에서 에바다 복지회의 완전한 민주화를 어느 정도 희망적으로 바라보고는 있지만, 이러한 현실은 에바다 투쟁을 전개하며 우리가 가졌던 문제의식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상식화된 시설비리'라는 현실, 그리고 '에바다 투쟁이 전체 장애인 수용시설의 민주화에 있어 선례와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희망.
그러나 그 수많은 투쟁과 끊임없는 노력에도 에바다 복지회의 완전한 민주화는 또 다시 해를 넘겨 지연되고 있다. 또한 장애인 복지시설의 전근대적이고 폐쇄적인 운영 구조 속에서 에바다 투쟁은 다른 장애인수용시설의 민주화 투쟁과 개혁을 촉발시키는데 있어서는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의 교두보로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장애'라는 모순으로 단일하게 소급될 수 없는 '장애인수용시설'을 둘러싼 복잡한 비리와 권력관계는, 우리에게 장애인수용시설의 민주화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정책과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2-3.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혁신과 장애인 수급권자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라는 허구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탄생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그 시행 첫해, 그야말로 이름뿐인 앙상한 모습 속에서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으며,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더욱 늘어나고 있는 한국사회의 저소득 빈곤계층의 생존권을 짓밟고 있다. 그 속에서 수급권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애인 계층은 더더욱 생존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 연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자인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옥란씨의 결의 속에서 전개된 '생존권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단'의 활동은 이러한 상황에서 전개된 투쟁의 작은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올 한해 실업운동 단위 및 민중복지관련 단위와의 연계 속에서, 보다 실물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들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2-4. 공주 정명학교 도경만 교사 복직 투쟁

작년 7월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가 주관하는 통합캠프(장애아동과 일반아동이 함께 참여하는 캠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12월 24일 충남도교육청이 공주 정명학교 도경만 교사를 해임하고 같은 학교 유정옥 교사를 견책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유는 국가공무원법 제57조(명령 불복종) 및 동법 제 58조(근무지 무단 이탈) 위반이었다. 즉 두 교사가 교장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그리고 복귀명령에도 불구하고 캠프에 참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 이유일 뿐 사태의 본질은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들의 전교조 활동을 억압하려는 보수 교육관료 집단의 만행에 불과했다. 도경만 교사는 전교조 특수교육위원회 이전에 구성된 전국특수교사협의회 2기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전교조 특수교육위원회 구성 이후에는 유정옥 교사와 함께 전교조 충남지부 간부로 일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진실은 캠프에 참여했던 인원이 15명이었음에도, 도경만 교사와 유정옥 교사가 담임으로 있는 학급의 10명만이 참여했던 것으로 허위 보고함으로써, 같이 캠프에 참여했던 다른 3명의 교사는 징계위원회에 회부조차 되지 않은 사실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징계위원회 회부 이후 도경만·유정옥 교사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과 함께 충남 도교육청 앞 천막농성 등을 전개하며 자신의 통합교육에 대한 소신과 교권의 사수를 위해 투쟁해 왔다. 그리고 해임 결정 이후 교육부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이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교조와 장애인계를 중심으로 공동대책위원회 구성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2-5. 이희원씨 제천시 보건소장 임용 거부 파문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충북 제천시 보건소장 임용에서 탈락한 이희원씨(39세, 지체장애 3급)의 사례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라는 조건이 갖는 다양한 차별들을 아프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조건이 현 재천시장의 시장 재선을 위한 선거활동에 '장애'가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임용에서 거부된 이희원씨는 현재 춘천소년원 의무과장으로 일하면서 자신과 장애인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상징적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사례 1호를 기록하기도 했다.
작년 말 범 장애인 단체들이 함께 '제천시장 장애인차별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보건소장 재임용을 위한 투쟁을 전개 중이다.



3. 나가며

작년 한해 장애인 투쟁은 장애운동 주체들의 처절한 노력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쳐지면서, 정세적 폭발력을 발휘하였다. 그것은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우리의 요구가 대중의 상식과 이데올로기 안에서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으며, 여타 계층에 비해서도 비동시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삶의 현실이 민중운동 진영 내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울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진보운동 내부의 자기반성과 고민 속에서, 그 의제적 중요성과 가치에도 불구하고 변방에 위치해 있던 여러 운동적 과제들을 상승시키려 했던 좌파 운동단위및 학생운동의 노력 또한 이러한 폭발력을 더해 주었다.
그러나 장기적인 운동의 발전과 자기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포염을 걷어내고 냉정하게 바라본 장애운동의 현실은 아직까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면들을 많다. 따라서 숨가쁜 현장 투쟁의 일정 속에서도, 변혁적 장애운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이론적 '입장'의 발전, 그리고 장애인 활동가의 재생산을 위한 구조의 마련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운동이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또 다른 과제일 것이다. 그리고 작년 장애인노동권쟁취를위한연대(준)의 구성과 장애인노동조합건설추진위원회의 추진 속에서 준비되었던 장애인 노동권 관련 투쟁은 현실적인 역량의 한계 속에서 아직 실질적인 논의를 가져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올 한해 어떤 식으로든 그 수위와 일정에 대한 구체화가 요구된다.
작년 한해, 현장 투쟁의 공간에서 연대할 수 있었던 많은 단위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또한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자신의 영역 내에서 '장애'라는 사회적 모순과 맞닿은 투쟁의 과제를 찾아내고 투쟁하는 보다 상승된 차원의 연대 또한 가능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2002년 한해도 힘차게 전진, 그리고 투쟁이다.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태그
파업 학교비정규직 전회련 학비노조 급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