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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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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통해서 본 2002년 민중복지 운동의 과제

한진 | 민중복지연대
1. 들어가며

2001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민중복지에 대한 요구가 구체화되고 투쟁으로 형성된 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러한 사실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공세로 인해 민중들의 삶이 더욱 황폐해지고 있음을, 그리고 생산적 복지라는 허상 속에 오히려 매우 기본적인 복지조차도 수탈되어 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이러한 정세에서 민중들의 투쟁은 규모는 거대해져가면서도 노동조건 및 생활수준은 점점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통신·이랜드와 같은 비정규직의 투쟁, 기업의 해외매각 및 정리해고에 맞선 대우노동자들의 투쟁, 이미 한국사회 노동력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사회적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인간으로서 아주 기본적인 권리인 이동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장애인 이동권 투쟁, 그리고 연말에 있었던 최저생계 보장을 요구하는 수급권자의 투쟁 등 정말 눈물나고 처절한 투쟁의 연속이었다고 하겠다.
그런 와중에 10월 말에 열렸던 '민중의 복지, 노동권·생활권 쟁취를 위한 연대한마당'은 그 동안의 투쟁들이 각개 격파하는 투쟁 위주였다면,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라는 맥락에서 서로가 갖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이후의 공동투쟁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자리였다.
12월 초에 진행된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이하 농성)'은 이러한 한마당의 직접적인 결실이었다. 이전 투쟁의 경험으로 보건대, 아마도 한마당이 아니었다면 이번 농성도 장애인 이동권 투쟁처럼 장애인 단체 차원에서 문제제기하고 다른 단위는 그야말로 '지원'하는 수준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마당에서의 공동투쟁의 경험이 있었기에 장애인이며, 실업자이고,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생활을 해나가는 수급권자의 문제에 있어서 장애단체, 보건복지단체, 실업단체가 농성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실제로 농성을 진행하는 과정까지 직접적 주체로서 연대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이번 농성의 배경, 요구사항을 살펴본 뒤 현 정세에서 농성이 가졌던 의의와 한계를 짚어보고 밝아오는 2002년, 칼바람과 같은 자본의 공세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투쟁으로 상승시켜야 할 민중복지운동의 과제에 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2. 농성의 배경과 요구사항

이번 농성은 36세 여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최옥란씨의 제기로 시작되었다. 청계천에서 노점을 하며 살아가던 그녀는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면서 모든 국민이 최저생활을 보장받는다는 말에 노점을 반납하고 수급권자가 되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국가에서 주는 돈으로 최옥란씨는 최저생계는커녕 생존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형편에 이르게 되었고, 이러한 현실이 단지 최옥란씨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것을 투쟁으로 묶어내고자 하는 주체들이 결합하여 추운 겨울날 2001년 12월 3일부터 8일까지 명동성당 농성은 시작되었다.
농성단의 요구는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최저생계비 산출 시 지역별·가구유형별 차이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수급권자 선정에 있어서나 생계급여 산출에 있어서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 산출은 현재 중소도시 4인 표준가구를 기준으로 책정되어 있다. 지역적으로는 도시의 경우 농어촌, 중소도시에 비해 생활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고, 가구유형별로는 특히 장애가구의 경우 15만 8천 원의 추가 생계비가 지출됨에도 이러한 차이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두 번째는 추정소득과 부양비 간주제를 폐지하고 생계급여를 현실화하라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생계급여는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모든 국민에게 모자라는 만큼을 보충하여 주도록 되어있다. 그러면 신고한 소득에 의거하여 모자라는 만큼을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소득과 상관없이 근로능력이 있을 경우 소득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소득이 있는 자식이 있을 경우 일정비율 부양비를 준다고 간주하여 소득을 높게 잡아 아예 수급권자가 될 수 없거나, 생계급여가 상당부분 깎이게 된다.

세 번째는 교육·의료·주거급여를 현실화하라는 것이다.
교육의 경우 대학등록금은 당연히 급여가 안되거니와 이를 벌기 위한 행위는 곧 소득으로 잡혀 수급권자가 될 수 없거나 생계급여가 깎이게 된다. 의료의 경우 의료보호제도가 있어서 무상으로 치료받는다고 하지만, CT촬영과 같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은 의료보호환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비급여이기 때문에 실제 본인 부담금은 50% 가까이에 이르고 있다. 주거 급여 또한 한 달에 2만 3천 원으로 실제 주거가 불가능한 액수이다.

3. 농성의 의의와 한계

농성의 의의를 정리해 보자면, 생산적 복지의 구체적·법적 구현체라 할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대한 수급자 차원에서의 최초의 직접적인 문제제기였다는 점, 연대한마당의 직접적인 성과물이었다는 점, 각 단체·진보정당·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점 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특히 사회적 관심 집중의 경우는 인간이라면 노동능력과 상관없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 명제에 대한 동의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한계라면 수급권 문제를 둘러싼 최초의 투쟁인 만큼 준비과정 자체도 미약했거니와 총괄적인 투쟁을 이끌어 가는데 부족함이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투쟁이 장기적인 계획 속에 배치되지 못하고 하루하루 일정을 채워나가는데 급급했던 측면이 있었고, 이는 농성 후 즉각 이후 계획을 내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농성자체의 파급력으로만 보자면 1주일의 농성으로 제한하기보다 시기적으로 유연하게 농성을 진행할 필요가 제기되었으나, 농성의 계기를 제공한 최옥란씨의 건강악화와 농성주체들의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아쉽게도 1주일의 농성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한계가 나타난 원인은 단지 준비기간의 부족이나 농성인원수의 부족에 원인이 있다는 것 보다는 주요하게는 수급권 투쟁주체의 미성숙을 들 수 있겠다. 아무리 쥐꼬리만한 급여라고 하더라도 국가로부터 돈을 받는다는 위치 때문에 당사자인 수급자의 조직이 어렵다는 점, 수급자 투쟁을 끝까지 책임지고 담보할 수 있는 운동단위가 부재하다는 점이 지금까지 투쟁주체가 온전히 서지 못한 이유이다.
요구사항에 있어서도 한계가 존재하였다. 이번 농성의 요구사항을 보면 생산적 복지 자체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타격보다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그 중에서도 생계급여와 관련한 독소조항을 없애는데 중심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는 생존권 투쟁 차원에서 충분히 유효했지만,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전선 속에서 주체적인 투쟁으로 배치하기 위한 구체적이되 보다 상승된 요구가 필요하다.

4. 2002년 민중복지운동의 과제

김대중 대통령은 연두회견을 통해 "기다리는 복지가 아니라 찾아가서 도와주는 복지"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기초생활 보장을 위해 155만 명에게 4인 가족 기준으로 99만원을 지원하며 1700명의 사회복지요원을 추가지원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부정 수급자를 막고 사각지대를 좁히기 위하여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다 정교히 다듬어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밖에 중산층 서민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전세자금을 70%까지 장기 저리로 융자해서 내 집 마련을 돕고, 소비자 물가를 3% 내외로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실업률도 3%대로 억제하며 약 5000억 원 예산을 가지고 30만 명 대상의 적극적인 실업대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복지정책의 경우 새로운 계획을 제시했다기 보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대표되는 성과를 강조하며 보다 안정적이고 정교한 운영을 위한 사회복지요원의 추가를 통해 '찾아가는 복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내용을 보면 최저생계비가 3% 인상되어 4인 가족 기준, 99만원으로 인상되었다고는 하나 2002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작년 예산대비 162억 원 정도가 삭감된 금액이다. 여기에 작년 생계급여 예비비 450억을 포함시키면 올해는 610억 원이 삭감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생계급여 인상이라는 허울 속에 농성단 요구에서 독소조항이라 지적되었던 추정소득이나 부양자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이데올로기적 우위성을 선점하면서 실제 시행과정에서 딴지를 거는 논리는 소득공제제도를 둘러싼 공방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실상 올해 우리 민중들의 삶을 조망해보면 몹시 암울한 상황이다. 지속적인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은 계속 거리로 내몰릴 것이고,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등의 공적사회보험은 효율성이라는 논리로 언제 민영화가 될지 모른다. 장애인 정책은 이동권투쟁 등 지속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시행정에 그치고 있으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날로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이 점차 거세어지는 지금, 여타의 정치·경제적 압박과 정권 말기의 레임덕에 시달리고 있는 김대중 정부에게 생산적 복지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의탁할 마지막 보루나 다름이 없다. 올해 예정되어 있는 두 번의 선거에서도 생산적 복지가 휘두르는 칼날은 뒤로 숨긴 채 민중들의 삶을 안정화한다는 이데올로기 공세는 강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생산적 복지는 민중들의 삶을 안정화하는데 기여하기보다는 그야말로 정권과 자본에 있어 신자유주의 개혁을 가속화하는데 '크게 기여'했을 뿐이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생산적 복지와 그 법적 구현체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대한 효과적인 타격은 반신자유주의 투쟁형성에 있어 주요한 매개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앞서 한계에서 지적되었듯 투쟁주체의 형성을 들 수 있겠다. 이를 위해 농성에 주체적으로 참여했던 단위들이 모인 평가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독소조항 폐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하는데 합의하였다. 구체적인 공투본의 활동은 지속적으로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이후 투쟁에서는 최옥란씨 뿐 아닌 보다 폭넓게 수급자가 조직되어야 할 것이고, 투쟁을 끝까지 끌어나갈 수 있는 운동주체의 안정화가 필수적이다.
두 번째는 정확한 정세분석에 따른 요구조건의 구체화와 그에 걸맞는 전술의 채택이다. 우선 지난 농성의 요구를 유지, 강화 할 필요가 있다. 앞서 서술하였듯 한계가 있는 요구사항인 것은 사실이지만, 생산적 복지가 마치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하는 듯 하면서 실제로는 복지를 수탈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현재 국가와 자본의 가용량이 자신들이 표방한 복지정책에 은밀한 독소조항을 숨겨놓아야 할 만큼 복지에 대한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정부가 복지에 대한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주면서 노동자계급과의 타협지점을 찾고자하는 정세라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현재와 같은 정세에서는 이 정도의 요구조차 생산적 복지의 허울을 벗겨내는데 효과적인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요구사항을 농성 때처럼 생계급여에만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 정세에서 유효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운동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활사업, 더 넓게는 민중적 복지까지를 포괄하는 요구로 상승이 필요하다.

5. 나오며

2002년은 정세적으로나 주체적으로 민중복지운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우리는 지금, 발빠른 정세인식과 튼실한 주체형성을 통해 더 이상 민중의 삶과 복지가 자본과 정권의 의도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그리하여 진정한 민중의 복지를 쟁취하는 투쟁의 출발선에 대기중이다.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태그
노동자대회 민주노조 통합지도부 진보적 정권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