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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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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로 달려가는 우리의 미래를 구출하라!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교훈

이상훈 | 정책부장
일찍이 멕시코의 독재자 뽀르피리오 디아스는 '멕시코의 비극은 멕시코가 하나님으로부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미국과는 너무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최악의 경제위기 사태에 빠진 아르헨티나 역시 하나님과는 너무 멀고 미국과는 너무 가까운 '라틴의 비극'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아르헨티나와 지구 반대편 있는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비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는 비록 우리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이지만, 긴 군사독재기와 경제위기, 민선정부로의 이양, 경제위기의 지속, 반복된 구조조정 끝에 만성화-심화-구조화 된 민생파탄, 민주압살, 정치실종, 사회적 증오와 해체 및 노동패배의 현실은 두 나라간의 거리를 잊게 하는 데 충분하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한국은 IMF와 워싱턴의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젝트가 전사회적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결정적인 공통점을 가진다. 이것만 보더라도 오늘날 아르헨티나가 직면한 현실은 곧 우리의 미래이다. 게다가 우리의 IMF와 워싱턴은 아르헨티나의 IMF/워싱턴보다 지리(군사)정치적 목적이 더해진 훨씬 더 탐욕스럽고 강력한 존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라틴의 비극이 미국과 너무 가까운 정도라면, 우리의 비극은 아예 미국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아르헨티나로 달려가는 우리의 미래, 우리의 미래를 구출하기 위하여 우리는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IMF와 워싱턴을 거부해야 한다 :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교훈 1

아르헨티나의 현 경제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통화가치안정과 물가안정을 최우선시하는 정책기조아래 화폐주권을 포기하고 미국에 양도해버린 사실상의 달러공용화제도인 통화위원회 제도(currency board system)와 이 제도아래 미 달러화에 대해 1:1로 고정되어 있던 페소화가치의 고평가에 있다. 최대교역국인 브라질 등 인접국들이 금융위기로 인해 연이은 평가절하를 단행하는 동안에도 페소화는 달러화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특히 9/11 테러이후 미 달러화가 초강세를 보이자 이와 같은 고평가 추세는 그 정도를 넘어서 버린 것이다. 페소화 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는 상황에서 아르헨티나는 수출이 줄고, 때마침 최대 수출품목인 농축산물의 국제가격 마저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된 상황이 겹쳐짐으로써 아르헨티나 경제는 오늘의 파국에 이르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자국화폐 발행량을 미 달러화 보유량에 맞추어서만 조절할 수 있는 통화위원회제도는 아르헨티나의 중앙은행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펴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고, 정부재정운영에 의한 경기부양책 역시 불가능한 상태였다. 때문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IMF의 재정긴축요구를(냄비혁명의 가장 직접적인 발화점이 된) 받아들여 그대로 실행하는 것 이외에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렇듯 아르헨티나의 경제파탄은 명백하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되었던 바, 이미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지난해 중반 이후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상황을 확정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왔다.
그럼에도 막상 2001년 12월23일 아르헨티나가 대외채무에 대한 지불유예를 선언했을 때 세계는 1320억 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고 액수에 한번 놀라고, 이후 10여일 만에 무려 5번이나 반복하여 줄줄이 이어진 대통령들의 퇴진, 사퇴, 대통령직 거부 소식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러나 정작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그 어느 지도자도, 어떤 기구도 이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이나 해결책에 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9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를 신자유주의 개혁의 세계적 모범으로 칭송했던 이들의 입은 그들 자신이 저질러 놓은 범행의 현장 검증이 이루어진 12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몸바친 자본주의가 도착하게 될 비극적인 결말의 거대한 전시장이 되어버린 아르헨티나를 앞에 두고 스스로 봉해지고만 것이다. 인구 3명당 1명 꼴로 치솟아버린 실업률, 국민의 50%를 넘겨버린 거대한 빈곤화.... 수시로 자행되는 경찰폭력에 의한 살인과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식료품 강탈(?), 모든 공권력 및 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증오의 분출.... 신자유주의 지배자들의 범행 현장 검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범죄자들은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가 최종 폭발할 기미가 뚜렷해진 2001년 겨울까지도 IMF와 워싱턴은 아르헨티나 경제위기가 자신들이 이 나라에 도입한 통화정책과 신자유주의적 개혁 개방정책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하기보다는, 위기를 정부의 재정적자 탓으로 돌려 보다 강력한 긴축재정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막상 2001년 11월에 들어서면서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사태를 막을 길이 없음이 보다 명백해지자, 이들은 통화위원회제의 이러저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월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에는 말을 바꿔 전면적인 변동환율제 도입과 페소화 평가절하를 주저하는 아르헨티나 페론당의 비시장주의적(?) 정책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그러나 통화위원회 제도는 지난 1991년 페론당 메넴정권과 IMF, 워싱턴에 의해 도입된 제도였고, 당시 IMF와 워싱턴은 자국의 화폐주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물가를 잡고 통화가치 안정을 최우선시하고자 안간힘을 쓴 메넴의 신페론주의와 까바요 경제장관의 단호한 신자유주의적 사영화, 대외개방정책을 세계의 모범이라 치켜세우기에 바빳음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1980년대 내내 라틴아메리카를 그늘 지웠던 외채 금융위기를 1989년 5000%, 90년 1200%에 달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형태로 경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워싱턴은 단순 외채 상환 연기 프로그램이었던 베이커 플랜의 실패에 뒤이어 1989년 '외채의 자본화'를 추구하는 브래디 플랜과 1990년 남미 외채-금융위기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결책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워싱턴 컨센서스 10개항]을 막 내놓았던 차였다. 브래디 플랜은 기존의 외채를 일부 탕감된 새외채로 전환한 뒤에 이를 다시 제2금융시장에서 미국과 국제금융기구들의 보증으로 거래할 수 있게 하는 계획이다(debt-equity swap: 부채 주식전환). 이것은 한편으로는 상환 불능상태에 빠진 남미 외채위기를 진정시켜 세계적인 금융적 불안정요소를 조절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망 직전에 이른 남미 시장을 새로운 주식 금융투기 시장 즉 신흥시장(emerging market)으로 되살리기 위한 계획이었다. 이때 이 플랜에 참가한 해당 채무국가들은 신흥시장에 걸맞는(브래디 본드가 활발히 거래될만한) 금융환경을 갖추기 위한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해야하는 의무가 주어졌는데, 바로 이러한 '경제의 금융화'의 제도적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제가 바로 [워싱턴 콘센서스 10개항]인 것이다.
전임 알폰신 정권이 도저히 잡을 수 없었던 인플레이션, 자본가집단과 노동조합의 연합공격에 의해 물러난 뒤에 신페론주의를 주창하면서 등장한 메넴 정권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재정적자에 대한 대폭적인 감축을 강요하면서 '외채의 자본화'와 경제의 금융 세계화를 추진하는 브래디 플랜과 워싱턴 컨센서스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본격적이고 전면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우선 그간 아르헨티나의 경제발전 모델이었던 수입대체형 공업화 모델과 내수시장 노선이 포기되면서 수출주도형 경제 모델이 도입되었다. 둘째 국영부문의 대대적인 민영화와 외채의 (민간)기업 주식으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셋째 노동보호입법의 해체와 노동의 유연화, 불안정화가 추진되었다. 이와 같은 메넴 정권의 대대적이고 성공적인(?) 구조개혁의 결과는 항공, 통신, 전력, 철도, 상수도를 비롯한 거의 모든 공공분야의 시설과 자산을 초민족 자본에게 팔아치웠고,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대량해고와 노동의 불안정화를 반복함으로써 아르헨티나는 결국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라가 되고 말았다. 물론 메넴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근간은 이번 12월 냄비혁명으로 권좌를 떠난 델라루아 정권에서도 변함 없이 지속되었고, 델라루아는 그의 집권 마지막 순간까지 IMF로부터 빌린 구제금융을 받아쓰면서 IMF의 긴축재정요구를 수행하는 것 이외에 도무지 다른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와과 같은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약사를 살펴본 우리는 이쯤에서 애초에 그렇게도 분명하고 명백한 듯 보이는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해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현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이 진정으로 페소화 가격을 현실화하지 못한 고정환율제 때문이라면 이제야 완전 변동환율제 도입과 대폭적인 페소화 평가절하 단행을 위기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IMF와 워싱턴의 입장은 올바른 것인가? 또 만약 그렇다면, 과거 메넴 정권의 통화위원회제도를 지지하고 그와 같은 통화정책에 입각하여 진행된 구조개혁과 긴축재정정책을 요구했던 과거의 IMF/워싱턴은 변화한 것인가? 이 두 물음에 대한 우리의 답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IMF와 워싱턴이 이제야 사리를 분별하게된 것도 아니며, 아르헨티나 경제위기가 단지 고정환율제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통화위원회제도 자체만 놓고 본다면, 통화위원회제도는 페소화의 가치가 달러화에 대해 고정된 일종의 고정환율제이지만, 달러화 가치의 시장가격에 의해 페소화 가치가 즉각 변동 결정되기 때문에 이는 워싱턴 콘센서스의 '경쟁력 있고 시장 원리적인 환율정책'이라는 정책과제와 전혀 어긋나지 않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통화위원회제도는 절대적이고 엄격한 통화정책의 우위성을 견지하고 물가안정과 통화가치 안정을 여타의 재정 경제 사회정책의 상위에 놓는다는 점에서, 자국의 화폐주권을 포기한다는 이단성을 차치한다면, 역시 물가안정과 통화정책의 상대적 우위성을 전제하는 정통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기본정신에 전적으로 충실하다할 것이다. 문제는 통화위원회제도에서는 환율 변동에 따른 대외 불균형 해소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재정 균형 달성이 보다 중요한 사활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그리고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조절 정책 구사 가능성이 사전에 봉쇄되는 특징을 지닌다는 점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워싱턴 컨센서스의 정책개혁 과제 목표를 사전에 제도화시켜놓았다는 점에서만 이단적이라 할만한 요소이다. 때문에 90년대 초반 IMF와 워싱턴이 메넴과 까바요에게 쏟아 부은 찬사와 애정이 사라진 오늘날, IMF와 워싱턴이 그들의 신념과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뒤바꾼 것이라 볼 수는 없으며, 같은 맥락에서 많은 차이점에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변동환율제인가 고정환율제인가라는 쟁점에서 찾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거꾸로 우리는 이제야 완전 변동환율제와 대대적이고 즉각적인 페소화 평가 절하를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제시하고있는 IMF와 IMF에 대한 비판?(개혁론)자들(포스트-워싱턴컨센서스주의자들)에게 급격한 페소화 평가절하로 인한 높은 인플레이션과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빈곤 심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되묻고 싶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80년대 외채위기를 경제의 금융화,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으로 지연 분산시키고(외채위기 해결이 아니라 지속적인 외채상환능력의 확보), 그 비용을 아르헨티나 노동자 민중들에게 철저히 전가시킨 미국과 IMF, 아르헨티나의 집권 엘리트들이 지난 10여 년 간 저질러온 기만적인 신자유주의적 범행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페론주의와 '꼬르포라시온 정치'의 철저한 기만과 무능

수많은 정당과 당파가 존재하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에서 지금에서야 페론주의냐 반페론주의냐, 혹은 신페론주의냐라는 구분 혹은 누가 친노동적이고 누가 친자본가적이냐는 물음은 아무런 의미도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할 하나마나한 소리이다. 반군사정권, 비페론주의의 기치로 군정을 끝내고 들어선 알폰신 정권도, 신페론주의를 내세우며 화려하게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며 등장한 메넴 정권도, 메넴의 부정부패를 비난하며 정권을 잡았으나 메넴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바톤을 이어 받았음은 물론 그의 부정부패 또한 승계한 델라루아 정권도 모두가 서로를 비판했지만 서로 어떤 단절도 이루지 않았고 누구나 똑같았으며 어떤 차이도 발견할 수 없다. 아르헨티나의 정치에 남긴 것은 모든 정치와 공권력에 대한 불신, 그들의 한결같은 무능과 해결되지 않는(기소되거나 처벌받지 않는) 부패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두 번째 교훈은 아르헨티나의 정치, 사회적 실세를 형성하고 있는 페론주의와 '꼬르포라시온 정치'에 대한 비판적 회고를 통해 얻어진다.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 사태를 소개하는 우리나라 보수언론과 각 경제연구소들이 내지른 것은 '노동조합의 이해에 영합한 민중주의적 경제정책과 노정유착, 이에 따른 미진한 경제개혁과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정부패'였다. 또 그들은 신임 두알데 대통령의 비상 경제정책을 페론주의 복귀라고 분석하면서 '자유시장경제 포기'와 '80년대 보호주의 체제로의 회귀'가 재개된 것이 아니냐며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아르헨티나의 지난 역사와 현실은 이들의 이와 같은 우려와 진단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의 과거와 현재를 지배하고있는 페론주의는 1943년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페론이 이후 노동조합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엎고 집권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성립하는데, 집권에 성공한 페론은 자신을 지지해 준 산업자본가와 군부, 노동자, 중간층 일부를 연합하여, 외국자본과 수출 과두제 부문을 공격함으로써 아르헨티나식 포퓰리즘(민중주의, 혹은 대중인기영합주의)의 특수한 형태인 페론주의를 오늘에 전하였다. 당시 페론은 자신이 참여한 43년 군사쿠데타의 민족주의적 군부가 주창한 자립적 중공화 안과 구분되는 사회경제적 재분배 모델을 도입하였다. 페론 정권이 내세운 전략은 수출산업화 전략도 아니었고, 내수시장중심의 발전전략도 아닌 어중간한 타협책이었다. 이러한 노선은 비록 가장 비중이 높고 경쟁력 있는 농업에 대한 국내시장 보호정책을 취했지만, 그렇다고 어떤 생산적인 산업의 육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다만 국가를 '잉여의 재분배자'로 놓고, 꼬르포라시온들 사이의 이해를 중재, 협상하는 행위자로 규정할 뿐이었다. 그래서 페론주의는 언제나 페론의 부인 에바 페론(에비타)에 대한 전혀 상반된 평가(아르헨티나 빈민의 어머니라는 극찬과 국부를 낭비한 창부라는 비난)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뚜렷한 자신의 철학적 과학적 기반과 근거를 가지고 발전한 것이 아니라 시기마다 대내외적 정치경제상황에 맞추어 이리저리 동요하고 해체 변형되어왔다.
특히 페론주의의 상징성이기도 한 노동친화성의 경우, 페론은 그 특유의 인기주의적 정책을 통해 당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었던 노동자계급(노조로 조직된)을 국가에 통합해내는데 성공했지만, 지금의 페론당과 페론주의자들에게 그 어떤 노동 친화적인 사회 경제정책상의 연속성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강력한 노조와 끈끈한 국가-노조간의 유대관계로 특징지어지는 비자유시장주의적(?) 외관을 가지는 페론주의는 때때로 특유의 돌출적 언어와 행동으로 IMF와 워싱턴을 경악(?)시키기도 했지만, 페론주의의 친노동적 성격은 애초부터 사회변혁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에 대한 자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출발했다. 오히려 페론주의적 국가와 페론주의적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을 아르헨티나를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기구로 만든 반면, 정작 변혁의 주체로서의 노동자 계급대중운동은 때로는 국가와 때로는 자본가 집단과 연합하면서, 제도화된 기득권을 유지, 확대, 방어해 내는데 급급한 나머지 스스로 해체되는 역사를 걸어왔다. 실제로 페론주의적 노동운동의 메카이자 아르헨티나 최대의 (공식) 노동조합인 노동 총연합 CGT는 1980년대 초 오랜 군정이 물러나고 민간정부가 들어선 이후 군정 시절 하락한 실질임금을 회복하기 위한 수차례의 총파업을 벌이며 알폰신 정권(라디깔당)과의 전면적 대결에 돌입했는데, 이때 CGT는 정권과 대결을 위해 자본가 단체들과 연합을 주저하지 않았다. CGT는 1980년대 아르헨티나를 강타한 혹독한 외채위기의 상황에서 각종 사업분야의 통제권을 노동조합 대표들이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재정적자 감소라든가 기업가적 국가의 조직화를 시도하는 자본가 단체들의 주장을 수용하였고, 결과적으로 노조와 기업이 동시에 자신들의 부분적인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가의 축소'라는 동일 슬로건을 들고 공동전선을 펼쳤던 것이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공식 노조운동은 메넴 정권의(페론당)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델라루아 정권의(라디깔당) IMF 구제금융정책이 강요한 재정긴축, 정리해고, 실업,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해 몇 번의 총파업과 대규모 시위로 맞섰지만, 이들의 액션은 언제나 신자유주의 개혁의 하위파트너에 걸맞게 절제되고 점잖은 행동이었고, 예정된 항복의 사전 행사였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페론주의는 남미 특유의 뿌리깊은 보스 중심 정치형태인 까우디요주의와 정당정치의 대체물로 내세운 꼬르포라시온 정치의 제도화라는 변하지 않는 유산을 후대에 남김으로써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 사회발전과 민주화에 지속적이고 뿌리깊은 부정적 영향을 끼쳐왔다.(실제로 페론주의의 기원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에 있다고 볼 여지가 많다) 그리고 이점에 관해 아르헨티나의 현 정치세력들 중 이와 같은 페론주의의 부정적 영향에서 자유로운 세력은 없다. 비페론주의는 비페론주의적 방식으로, 신페론주의는 신페론주의적 방식으로 초민족 자본과 워싱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며 스스로 부패해갔고 언제나 독재적이었던 것이다.


누가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책임질 것인가 :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교훈2

그러나 아르헨티나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의 희망은 지난 12월 델라루아 정권을 몰아내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운동과 그 운동의 가능성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지난 12월 아르헨티나의 '냄비혁명'을 무정부주의적 폭도들의 약탈 행위, 혹은 몰락한 중산층의 대안 없는 분풀이 정도로 묘사했으나, 거리에서 냄비를 두드리며 싸웠던 이들의 중심에는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운동의 중심인 MTD(실업운동연합, Movimiento de Trabajadores Desocupados)와 새롭게 일어서고 있는 이 실업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많은 아르헨티나 사회운동 세력들이 있었다.(최근 미국은 아예 MTD를 테러단체라 칭하기도 했다.) 인구 3명당 1명이 실업노동자인 나라에서 실업노동자운동이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하고 새삼 놀라는 바는 이들 실업노동자 운동이 기존의 운동과 운동세력들에 대해 가지는 독창적 활동방식과 비판적 성격에 있다.
이들 실업노동자들의 운동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지난해 8월 델라루아 정부의 살인적인 긴축재정정책과 노동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약10만 여명의 실업노동자들이 참여한 전국적인 고속도로 폐쇄 점거투쟁을 통해서이다. 이들은 최소한의 임금과 일자리 그리고 식량을 요구하며 전국의 300여 개 고속도로를 몸으로 막아섰다. 연방경찰은 이들의 투쟁을 폭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5명의 시위자를 죽였고 3000여명을 폭력 연행했지만, 그 해 9월에 이들은 다시 한번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통하는 모든 고속도로를 점거했고, 동시에 주요 관공서와 사기업의 출입문을 점거했다. 자본의 생산수단과 생산현장에서 쫒겨난 이들이 다시 한번 생산현장이 아닌 곳에서 온 사회의 생산을 멈추어버린 것이었다. 이들은 이때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책임지고 미래를 개척할 자신들의 5대 요구를 내놓았고 이는 1> 불법적이고 부정한 외채를 거부할 것 2> 연기금의 공적 관리 3> 민영화된 은행과 전략적인 기간산업의 재국유화 4> 소농의 부채탕감과 생산 가격보조금 지급 5> 빈곤을 유발한 정권의 추방, 전면적인 내각개편이었다. 이들의 이처럼 단호하고 분명한 투쟁과 요구는 지속된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에 지친 학생, (공식)노조반대세력, 공공부문 노동자들(공공부문 노조 CTA의 일부), 연금수급자, 교사, 인권그룹, 지역상인, 소규모 좌파정당(선거정당이 아닌) 그리고 중요하게는 아르헨티나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상징인 5월 광장 어머니회(Madres dela Plaza de Mayo)와 같은 다양한 사회계층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냈고, 12월 냄비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공장과 회사에서 쫒겨난 이들이 공동의 요구를 모으고 나아가 전국적인 공동행동을 조직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인데, 여기에는 이들이 주로 고속도로 부근의 빈민거주지역(barnos)에 살고 있다는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 청년실업자와 여성의 비중이 높은 이들의 구성 또한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며, 모든 활동 회원들이 참여하는 (해당지역 지구별) 총회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탈집중화된 활동 방식 또한 독특하다.
모든 정책과 요구, 도로 점거투쟁과 같은 투쟁의 조직화는 모든 활동회원들이 참여하는 총회에서 집단적으로 결정된다. 점거투쟁을 벌일 고속도로 혹은 주요 간선도로가 정해지면, 총회는 곧바로 투쟁의 후속 지원사업을 조직하며, 투쟁에 참여코자하는 여성, 남성, 어린이 참가자들은 텐트를 세우고 주방을 길가에 만든다. 경찰의 위협이 있으면 곧바로 주변에 있는 빈민가의 원조가 쏟아지고, 정부가 협상에 나서기로 결정하면, 점거에 참여한 모든 시위대들이 함께 협상에 참여한다. 이들은 협상대표단을 꾸리고 대표단만이 참여하여 진행되는 협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반복된 배신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운동을 통해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교훈과 희망을 발견하고자하는 우리의 의도와 부합되는 이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정권과 제휴한 (공식)노동조합과 선거정당 등의 기존 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격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아르헨티나의 공식노조 특히 노동총연맹 CGT는 페론주의적 코르포라시온 연합의 일원으로서 메넴 정권과 제휴한 타락한 노동귀족 집단이며, 델라루아 정권 혹은 그의 억압적인 정책에 대해 도무지 대항할 의지가 없는 집단이다. 그들은 때때로 부패한 정치인과 명명백백한 반노동자적 정책을 시행한 관료들의 퇴진을 요구하며 고발장을 접수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총파업을 벌이지만 그것은 복종에 앞선 의례적인 사전행사 일 뿐이었다. 또 이른바 몇몇 진보적 노조라 불리는 전투적 성향의 노조들의 경우(대표적으로 공공부문 노조인 CTA), CGT의 이와 같은 행태에 반대하며 실업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연대를 위한 주요하고 활동적인 시도를 벌였다. 그렇지만 이들의 노력은 매번 실업노동자들을 하루 시위의 외부보조 참가자로 들러리 세우는 한계를 보였으며 결과적으론 자조직의(공공부문) 조합원들만을 위한 실용적 이해에 매몰되거나 여타의 노동자들에 대한 립서비스만을(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촉구하는) 남기고 자신들은 국가와의 협상으로 챙길 것을 챙겨 (투쟁 현장을) 떠나는 행태를 반복하였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 피해 당하고 배제 당한 모든 이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표해내도록 노력한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전체 피착취 근로대중의 이해를 대표할 보편적 존재조건하에서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책임질 운동을 벌여낼 의지를 내보인 집단은 MTD를 중심으로 단결한 실업노동자 운동집단이었다. 그들은 아직 뚜렷한 정치적 전망과 온전히 전국적인 조직적 실천과 논의력을 보유하지 못한 신생운동 집단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미래와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대안이 누구이며 무엇인지에 관해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고속도로와 시내 거리에 선 그들이 아르헨티나의 주인이며 대안이라 믿는다.


아르헨티나로 달려가는 우리의 미래를 구출하라

양김 문민정권의 등장과 교체, 뒤이은 한결같은 배신과 정치에 대한 환멸, 지속 심화되는 경제위기와 반복되는 구조조정, 깊어만 가는 노동자계급의 성적, 계급적 분할과 노동패배의 긴수렁....... 어느 누가 이 나라의 미래를 아르헨티나와 다르다 할 것이며, 아르헨티나의 위기를 아르헨티나만의 문제로 보고 말아 버릴 배짱을 자랑하겠는가! 민생파탄/민주압살로 요약되고, 대량의 빈곤과 실업, 폭력탄압과 금융투기로 대표되는 일련의 사회적 현상들은 아르헨티나와 이 땅을 가로지르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의 반민중성을 증명한다. 우리는 우리보다 앞선 고통에 신음하는 아르헨티나로 달려가는 우리의 미래를 구출해야 한다.
이 나라의 신이 되어버린 미국과 IMF, 그들이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단호히 거부해야 하며, 전민중 앞에 명명백백히 드러난 지배세력의 정치적 무능과 배신을 폭로해야 한다. 그러나 전사회적인 위기를 가져온 자본의 위기는 자못 명백해 보였던 계급적대에 짙은 안개를 드린 듯 흐리고 있는 현실을 분명하게 직시해야 한다. 위기는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의 통치불가능성, 국제관계의 불안정성, 그 자신의 포퓰리즘적 모순들에 봉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동시에 노동자운동의 제도적 형태 즉 조직화한 계급투쟁의 해체와 탈정당화(正當化)라는 부정적 성공을 내포한다. 경제위기는 노동자계급의 재구성이나 계급투쟁전선의 복구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지리적 장벽뿐 아니라 인종적, 세대적, 성적 장벽들로써 프롤레타리아화의 차별적 측면을 더욱 근원적으로 분리하는 것으로 귀착한다. 이와 같은 사정은 아르헨티나에서나 우리에게나 마찬가지이며, 누구나 지배세력의 무능과 배신을 한탄하지만 어떤 대안도 찾을 길 없는, 우리의 미래일지 모르는 '비극'을 아르헨티나는(구조조정의 20년 선배로서) 단지 몇 년 앞서 겪고 있는 것뿐이다.
유일한 희망은 이러저러한 지배계급의 변명과 웅얼거림이 아니라 위기를 불러들인 지배자들을 응징하고 실타래처럼 얽힌 사태를 빗질해낼 새로운 역사의 힘을 마련해 낼 피지배계급의 단결이며, 이는 마땅히 주어진 사태의 묘사와 분석을 통해 얻어지는 '예정의 효과'가 아니라 '정세의 효과이자 처절한 계급투쟁의 결과'라는 엄연한 역사의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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