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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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중운동의 잃어버린 10년과 전선재편의 과제

사회진보연대 정세분석팀 |
90년 민자당 창당과 보수대연합의 형성

'독재타도'와 '민주쟁취'로 압축되는 87년 6월 항쟁은 재야로 통칭되던 학생과 지식인 주도의 운동세력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전두환 군사독재의 종식을 위한 항쟁은 보수야당을 포함한 많은 세력의 연합으로 형성되었고 공동의 적, 군사독재에 항거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87년 6월 항쟁은 조직된 계급대중의 힘에 의한 투쟁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록 이념지향적인 학생운동이 강력한 대중적 물리력을 동원하였지만 항쟁의 주도권은 보수야당과 재야세력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6월 항쟁은 곧바로 노동 계급의 7,8,9월의 대투쟁으로 이어졌고, 87년의 이완된 정치지형 속에서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대중적인 흐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보수야당에 대한 기대, 계급대중운동의 미성숙으로 인해 87년 말 대선 투쟁은 극도의 혼란 속에 노태우 군사파쇼가 당선된다.
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대중적 에네르기는 여전히 남아있어, 8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형성, 지배계급 내부의 혼란은 확산된다. 89년 들어서도 전교조의 노조건설 투쟁과 이철규 열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중 투쟁이 전개되고, 농민과 노동자 등 기층대중조직의 투쟁은 계속 확대되었다. 급기야 가중되는 통치의 위기 속에서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 정국을 뒤집고 분출하는 민중진영의 투쟁을 잠재우기 위한 계획에 착수한다. 소위 '범죄와의 전쟁선포'를 명분으로 대대적인 공안정국을 형성한 정권은 이를 바탕으로 계급지배의 안정적인 구조 창출을 목표로 민자당을 창당한다. 이른바, 보수대연합이 전면에 등장한다.

국민연합에서 전국연합으로

한편, 87년 대선투쟁에서 분열된 민중운동진영은 88년에 접어들어 비판적 지지세력의 일부가 김대중의 평민당으로 투항해 갔고, 일부는 합법공간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한겨레 당과 민중의 당 창당으로 나타났으나 곧 소멸되었다. 그러나, 88년 들어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대중운동은 비록 초보적이지만 전국적인 수준의 대중조직을 건설하게 된다. 80년 광주항쟁 이후 실로 8년여만에 이루어진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노동자, 농민, 철거민, 학생 등 기층 대중조직은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서 반노태우 정권투쟁을 힘있게 전개해 왔다. 그 결과 민중운동진영은 더 집중적인 반노태우정권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상설 공동투쟁체 건설논의를 본격적으로 제기한다. 이 논의의 성과로 전민협을 만들고, 이듬해 89년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결성한다.
그러나, 전민련은 계급대중조직이 이제 막 형성된 조건에서 비록 과거 보수야당까지 함께 했던 국민운동본부(국본)의 한계를 어느 정도 딛고 일어섰으나 아직까지 운동적 발전을 담보할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곧장 내부 논쟁에 휩싸이게 된다. 전민련은 크게 두 가지 노선 논쟁을 겪게 되는데, 첫째로 전선운동에서 노동계급의 중심성 강화에 대한 요구, 이는 통칭 재야세력과 대중적으로 진출한 노동운동진영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두 번째, 전민련과 민중정당 건설 논쟁 즉, 전선강화와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논쟁들은 합일점에 이르거나 성과 있게 정리되지 못하고 지루한 논쟁을 지속하게 된다. 그에 따라서 전민련은 전국적인 통일전선체로서 대중정치투쟁과 민중생존권 투쟁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나, 내부의 한계로 인하여 투쟁을 실질적으로 지도하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90년 새해 벽두, 3당 합당 소식을 접하게 된다.
민자당 창당과 동시에 민중운동 진영은 내부논쟁 보다도 우선 반민자당 투쟁 즉, 보수연합 분쇄투쟁에 당장 돌입해야 할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반민자당 투쟁을 주도하고 실질적인 민중생존권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한시적인 공동투쟁체 건설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90년 4월, 전민련과 주요 대중조직을 망라한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를 위한 국민연합'을 건설하고 반민자당 투쟁의 전국적 구심을 형성해 나아갔다. 국민연합을 중심으로 반민자당 투쟁은 매우 활발히 전개되었다. 각계각층이 국민연합을 중심으로 반민자당 투쟁을 진행하였고 '보수대연합 분쇄'를 기치로 하여 광범위한 민중연대전선이 형성된다. 이처럼 90년 국민연합의 탄생은 전민련과는 달리, 90년 1월 전노협의 건설로 추동 되었고, 4월 전농의 출범으로 더욱 큰 힘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층 대중조직의 기본동력에 의해서 유지, 확장되었다. 이미 국민연합을 중심으로 한 전선운동체의 재편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91년 들어 전선운동체의 재편 논의는 결실을 보게 된다. 91년 강경대 열사 사건으로 형성된 대중투쟁과 5월 박창수 열사사건으로 인한 노동진영의 투쟁을 거치면서 한시적 공동투쟁체인 국민연합을 넘어 보다 강력한 대정부 정치투쟁으로 상승시키기 위한 전선운동체 건설이 현실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91년 12월 주요 대중조직과 정치, 사회단체를 망라한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이 건설된다.
그러나, 전국연합 내부의 정치적인 통합력은 매우 낮은 상태였고 전민련 당시 내부의 논쟁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특히, 92년 대통령 선거 대응과 관련하여 전국연합은 내부의 정치적 이견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정치적 결정을 하게 된다. 또한, 통일운동과 관련하여 범민련과의 관계에서 여러 차례 부침을 거듭하면서 전선체로서의 위상에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된다. 결국, 연합적 질서는 해체되고 전선운동체로서 전국연합의 위상은 이후 꾸준히 하락하는 과정을 겪는다.

김영삼의 문민정부 ; 전선의 해체

92년 대선 대응은 운동진영의 이러한 주체적 상황을 반영한 결과이다. 독자후보 진영과 민주당과의 정책연합을 선언한 전국연합과의 분리는 90년과 91년의 반민자당 투쟁의 성과를 92년까지 이어갈 수 없었던 가장 큰 한계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민중운동진영의 주체적 상황보다도 김영삼 정권의 등장 자체가 전선운동에서 큰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 김영삼 정권의 등장은 계급투쟁에 대한 관리방식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를 가능케 한 정치적 토대를 형성하였다. 이는 보수대연합의 안착 즉, 전선의 해체를 의미한다. 김영삼 정권은 기존의 재야-야당-지배정당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 붕괴의 과정과 이후의 양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낳았다.
첫째, 민중운동진영의 노선적 분화를 가속화 시켰다. 군사독재에서 문민독재로의 이행, 보수대연합의 안착에 따라 '독재타도 민주쟁취' 라는 구호 속에 통일되어 있던 민중운동진영은 큰 틀에서 분화가 이루어진다. 먼저 민주개혁을 목표로 보수연합으로의 대거 투항(민자당 또는 민주당)하는 세력이 형성되었고, 문민정부의 등장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법적, 제도적 완성으로 보고 합법공간에 대한 강조와 공개적 활동을 지향하는 정당추진 세력과 계급대중운동의 발전을 강조하며 기존의 틀을 유지하고자 했던 흐름으로 분화된다.
둘째, 경실련과 같은 체제내적 시민운동의 출현으로 운동진영과 정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전선의 해체를 한층 가속시켰다.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한 경실련의 등장은 그동안의 반체제적, 반정부적 투쟁지향의 활동보다는 합법적, 정책대안적, 실리적 경향을 강조하는 흐름을 강력하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시민운동이 하나의 독자적인 운동세력으로 성장해 나가는 기반을 제공했다. 또한, 시민운동에 대한 전략적 지원과 동시에 민중운동 진영 특히, 전투적 민중운동진영에 대한 고사와 계급운동진영에 대한 개량화 정책이 동시에 구사되었다.
셋째, 계급적 구성의 다변화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형성되었다. 이는 한편에서는 전선의 해체와 지배세력의 정치적 확장에 따른 대중운동 차원에서 개별적 대응력을 강화시켜 온 결과로 기존 계급대중운동과 다른 형태의 대중운동을 발생시켰다. 예를 들어, 인권, 교육, 환경 등 다양한 사회운동은 일종의 대중운동의 효과로서 발생해 왔다. 다른 한편 이 경향은 사회주의권 몰락과 이념적 퇴조에 따른 이념적 분화의 효과로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농,빈,학 등 계급대중운동은 조직적인 외형을 키워 나갔지만 고립적인 양상으로 그리고 계급의 내적분할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나아갔다. 우선, 노동운동의 경우 전노협과 전노대에 이어 민주노총으로 성장해 갔지만 노동운동의 중심이 중소사업장(전노협)에서 독점부문 대공장(민주노총)으로 전화되었고, 노동운동의 전투적 조직화 모델에서 교섭력 확보 중심의 조직화 모델로 전환됨으로써 대공장이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구조화되었다.
또한, 농민운동도 90년 전농 결성과 동시에 우르과이라운드 반대투쟁 등 농민의 대중투쟁을 조직하지만 그 이후 급속하게 이완되고, 자본과 정권의 농촌해체 전략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농촌의 자활적 토대가 붕괴되는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학생운동 역시도 노동자, 농민 등 계급대중운동의 외형적 성장과 사회주의 몰락에 따른 이념적 후퇴 속에서 부문운동으로 전락, 학생사회의 내부적인 과제에 집중하게 된다. 이 과정은 한편에서 학생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재구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학생운동 고유의 사회적, 정치적 선도성이 해체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처럼 김영삼 집권기간 동안 각 계급대중운동은 고립되었고, 정치적 퇴조 속에서 전선의 급속한 해체를 가져오게 되었다.

전선 해체에서 계급 해체로 : DJ의 계급 분할/해체 전략

김영삼 정권이 반보수연합전선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하였다면, 김대중 정권은 해체된 전선을 더욱 교란하며 개혁이데올로기를 통한 중간계급의 포섭과 적극적인 계급 해체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구조조정의 집행과 금융(세계)화 및 금융적 팽창을 통해 관철시켜 나갔다.
구조조정의 전략적 목표이기도 한 산업의 금융적 재편과 주식시장 육성 등 금융팽창을 통해 신흥재벌인 '골든칼라'을 형성하고 350만에 달하는 개미군단을 양산하였다. 특히, 벤처 기업과 코스닥의 육성은 386세대라는 새로운 개혁주체의 형성에 물리적 기반을 제공하였고, 동시에 강력한 신경제 이데올로기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하여 중간계급을 금융적 재편을 위한 구조조정에 동참시켜 나감으로써 신자유주의 정책의 안정적인 지지세력을 대중적으로 확보하게 된다.
한편 노동계급의 분절화는 보다 다이나믹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구조조정 초기, 이른바 '시차적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장별, 부문별로 노동자를 고립시키는 전략으로 구조조정을 집행하였다. 이런 전략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구사된다. 예를 들어, 동일사업장에 근무하는 부부는 당연히 한쪽(여성)이 정리해고 되어야 하고, 정규직이 정리해고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정리해고 해야 한다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소폭 보장하면서 노동시장 내 위계화된 구조에서 노동자의 이해를 서로 대립하게 하여, 산업별, 정규직/비정규직 뿐 아니라 남성/여성, 대공장/중소·하청공장으로 노동계급의 이해를 분할하였다. 또한, 우리사주의 확대, 여성관련 근로기준법의 개악, 주5일제의 법제화 시도에서 나타나듯이 노동계급 상층에 대한 포섭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계급 분할 전략은 근본적으로 노동유연화의 확산을 목적으로 했다. 98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 이후 여성관련 근로기준법 개악과 기업연금제 그리고, 노동시간단축을 빌미로 한 총체적인 노동유연화 공세에서 노동자들의 이해는 분할되었으며, 이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통한 불안정 노동이 일반화되었으며, 수백만의 실업자군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였고, 대다수 여성 노동자를 가사노동과 불안정 노동의 이중적 착취구조로 내몰았다.
한편, 농업의 경우는 농촌말살 정책으로 일관했다. 과거 김영삼 정권시절, 사실상 농촌말살책에 다름없지만 신농정이라는 정책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은 집권 기간동안 허울좋은 농업대책조차 제시되지 않았다. 오로지 수입개방을 통해 농촌을 말살시키는 것만 일관되게 밀고 나왔으며, 협동조합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농·축협 중앙회를 통합하여 금융기관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농협 개혁과 수입개방을 중심으로 농, 축산, 어민의 이해를 분할하여 서로간에 갈등을 조장하였고 여성 농민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까지 일삼아 왔다.
또한, NGO를 통해 실업 및 복지의 조직과 관리도 동시에 구사된다. 정리해고에 따른 대량의 실업자군이 양산되고, 사회복지의 시장화에 따라 교육과 의료 등 복지에 대한 개인부담 증가와 최소한의 복지 혜택조차 받지 못함에 따라 사회적 불만이 점차로 고조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NGO를 동원하여 실업을 조직하고 관리하였다.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로 절대적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안정 노동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실업자들을 자활사업으로 동원하였다. 소위 생산적 복지는 실업의 문제를 개인능력의 문제로 돌리고 실업자를 재활용품으로 전락시켜 실업자의 정치적 조직화를 분쇄하였다.
이처럼 김대중 정권의 계급 분할/해체 전략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효과적으로 작동하였고, 노동자, 농민 등 계급대중 내부의 실리주의적 경향은 더욱 팽배해졌다. 그리고, 연대주의는 해체되었다. 그 과정은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운동의 대응과정을 살펴본다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노동운동의 위기 대응의 문제

YS 집권 동안 정치전선의 점진적인 해체 위기에 놓여 있던 노동자 민중운동은 IMF 구제금융협약 및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한 대응방향을 놓고 다시금 심각한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히,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 정책에 큰 변수가 될 수 있었던 노동운동의 경우, 민주노총이 1997년 12월 '노사정위원회' 설치를 정부에 먼저 요구하고, 2월경에는 정리해고제 및 근로자파견법을 주요골자로 하는 노사정합의를 전격 수용함으로써, 초기에 그 운명이 판가름났다. 노동운동의 노선은 내부의 경합하는 경향들 중 하나였던 '자기중심적 실리주의'로 손쉽게 경도하였다(단지 실리를 취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대중의 특정부문의 이해관계를 전체 대중의 요구와 맞바꿈으로써 공동의 연대투쟁과 요구의 실현을 파괴하는 노선이 '자기중심적 실리주의'이다). 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오히려 실리주의 흐름이 전면에 부각하였다는 사실은 1990년대 노동운동의 대중적 토대가 어떻게 잠식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대목이었다.
IMF 초기국면에서의 노동운동의 핵심적 투쟁고리를 모두 포기한 이후 노동운동의 공동투쟁전선의 대응 폭은 매우 협소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미 주요 합의를 얻은 김대중 정권은 노사정위원회의 존재를 다목적으로 이용했다. 한편으로는 노동운동 내부의 실리주의 세력에게는 계속해서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이를 거부하는 세력을 '국민적 합의'를 거부하는 맹동주의 세력으로 몰아가는데 노사정위원회는 수년간 적합한 역할을 했다.
IMF 초기 공동투쟁전선의 정치적 기반이 조기에 붕괴한 이후, 이미 엎질러진 물을 되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각 부문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각개격파 당하는 사태에 직면하였다. 더군다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따라 급격하게 증가한 불안정노동층(半실업, 비정규직, 도시빈민 등)은 저항을 표출할 정치적·조직적 토대마저 매우 취약했다. 게다가, 일부 '노동귀족'은 주식투기와 우리사주 등 금융화 국면에 포섭되었으나, 노동자대중 전반은 불안정화의 매우 장기적 국면으로 진입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대중의 상황 역시 양극화한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집권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노동운동 내부의 위기의식이 더욱 팽배해졌다. 민주노총의 거듭된 '총파업' 선언에도 불구하고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하는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상황도 그 배경을 이루었다. 이 시점에서 노동운동은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고, 따라서 자신의 운동을 재평가하려 했다. 민주노총의 '노동운동발전전략위'(2000년) 논의는 그 단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당시 대응방향을 논의하는 방식 역시 실리주의적 경향이 노선을 생산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리주의 경향은 정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며 대적 전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주요 투쟁고리를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의 문제를 엄격하게 제시하지 않는 가운데에도 막연한 희망사항들을 조합하여 어렵지 않게 '노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시 어느 평가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초기 대응의 혼란,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조직율의 하락, 국민적 지지의 취약 등을 민주노조운동의 문제로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문제의 원인과 그 결과 드러난 현상을 혼동한 것이었다. 이 평가에 따른 새로운 조직화 모델의 개발, 시민운동과의 연대 강화 등의 실용주의적 대안은 그 출발점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가 모호했다.
정치적 투쟁과제와 결합하지 않는다면 조직화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주도하는 지배분파를 정치적으로 타격하지 않는다면 이미 신자유주의 개혁정책 지지로 기운 시민운동 세력을 견인한다는 목표 역시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처럼 엄밀한 정세인식을 제시하지 못하는 평가는 수세적 현실인식을 불러오며 나아가 노동운동 내부의 다양한 조직보전심리와 결합하기 쉬울 수밖에 없다. 또한 조직보전심리에 의해 지배되는 생존권 투쟁은 연대를 지향하는 투쟁으로 발전하는데 한계를 내포하였다.

연대의 해체와 파괴

문제는 구조적 위기 혹은 만성적 불황으로 현재의 신자유주의 지배분파는 중간계급과 노동자의 실리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때문에 이들은 피지배세력을 분할하고 기존의 지지세력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취약한 물질적 양보를 둘러싸고 피지배세력들 내부의 경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투쟁은 기본적으로 정권에 대해 공평한 양보를 요구하는 투쟁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이들의 투쟁은 행동 면에서는 전투적일 수 있지만, 이념적인 면에서는 보수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생존권 투쟁의 경우도 연대지향적인 틀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각각의 투쟁이 개별화되고 고립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세력의 계급분할 전략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노동자의 실리주의에 바탕을 둔 투쟁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98년 현대자동차 노조와 만도기계 노조의 파업투쟁과 연대투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단사차원의 투쟁은 대부분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2001년에도 대우차 노조, 한통계약직 노조, 울산 화섬 3사 노조의 투쟁은 영웅적이었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총파업 투쟁으로, 그리고 강력한 정권퇴진 투쟁으로 상승발전 시켜 나갈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사실상 연대투쟁은 소멸되다시피 했고, 해당지역은 물론 관련 업종에서조차 동조파업은 거의 확산되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거점 투쟁을 통해 총파업으로의 확산한다는 것은 말 자체는 옳을 수 있으나, 총파업이 이루어질 현실적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관념적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총파업은 의지나 결의의 문제도, 투쟁일정을 조율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아니다. 노동운동진영의 국회, 정부, 자본의 일정따라가기식 대응, 순차적 구조조정에 대한 순차적 대응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동일 사업장의 구조조정의 문제로 동조파업이나 연대투쟁을 전개 할 상황은 아니다. 비정규직과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한 양보교섭을 수용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리적 이기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현재 상황에서 단순히 총파업해야 한다는 당위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환상에 가까운 일이다. 즉, 총파업은 당위일 수 있으나, 노동분할과 계급해체의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총파업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이러한 노동대중의 상황을 이유로 노동자 대중투쟁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즉, 현 상황에서 총파업은 조직해도 안된다, 그러니까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보호입법 등 실현 가능한 것을 중심으로 투쟁하자고 주장한다. 이것이 대표적인 자기중심적 실리주의인 것이다)

다시 부각되는 전선재편의 중요성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은 다른 방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01년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정권퇴진투쟁은 이러한 난관과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실행되었다. 김대중 정권 집권 중반기에 이르러 교육·의료·사회복지 등 기존 사회제도 전반의 기업화-금융화의 영향이 민중생존권을 위협하는 요소로 다면적으로 드러났고, 각계에서 대중적 투쟁을 조직하려는 흐름들이 수면위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점차 민중운동 진영의 공동투쟁의 요구가 확산되었고, 각종 공동투쟁체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한편, 민중대회(및 전국민중연대)를 통한 정치적 결집과 일상적인 정치투쟁을 기획하려는 시도들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2001년 정권퇴진투쟁은 노동운동과 김대중 정권의 출범 이후 양적인 측면에서 점진적으로 성장한 민중운동진영이 적극적으로 결합점을 찾으려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할수록 또다시 운동진영의 쟁점은 2002년 선거에 대한 대응방침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정권퇴진투쟁이 남긴 구체적 과제와 본격적으로 대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민중운동 진영의 정치적 이완을 의미한다. 이에 조응하여 노동운동의 주요투쟁 방향도 '주5일제도입', '비정규직 보호입법' 등 일부 정책적 요구를 중심으로 한 대정부 요구투쟁으로 선회하고 있다. 다시금 총연맹의 기존 정치적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현상유지책으로 복귀하고 있는 셈이다.
김대중 정권 집권 말기에 이르러, 만성적 불황은 심화하고 있으며, 노동자대중에 대한 타협의 물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타협의 '정치적' 토대마저 붕괴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대중 전반이 장기적인 불안정화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노동자대중의 동질화를 의미하지 않으며, 따라서 정권과 자본측이 일부 경향을 포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전혀 아니다. 다시 말해, 노동자대중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분절화 속에서, 노동운동 내부의 정치-이데올로기적 분화 곧 운동노선의 분화의 경향성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민중운동의 정치적 이완은 그 위험성을 제공한다.
결국, 노동운동진영이 정권퇴진투쟁을 통해 결정적인 국면으로 나아가지 못한 상황은 투쟁의 성과와 함께 복합적인 과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의 총력투쟁 계획이 '총파업'으로 발전하는데 계속적으로 장애가 되는 요인이 무엇인가? 이미 심각한 분절화를 경험하고 있는 노동대중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대중운동의 급진화와 이를 뒷받침할 대중적 토대의 창출로 일보전진 할 것인가? 또한 민주노조운동이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계급대중을 대중운동-대중조직으로 포괄할 것이며, 정치전선의 주체로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더욱이 이러한 과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는 없는 것들뿐이다. 따라서, 이는 향후 민중운동이 대중운동-대중조직의 재편을 포괄하는 전선재편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과거로 퇴행할 것인가의 갈림길을 의미하였다.

계급형성을 위한 과제 : 새로운 연대와 새로운 노조운동

현재의 상황은 계급형성과 전선재편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좇아야 하는 상황이다. 대중운동 차원에서 여전히 실리주의적 대응을 강화한다면 어떠한 전망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개별화된 채, 단일한 정치 전선을 형성시키지 못한다면 패퇴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 연대의 복원을 통한 계급 형성, 이를 바탕으로 계급 대중을 전선의 주체로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첫째, 노동계급의 계급적, 보편적 요구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연대 형성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것과 결합되지 않은 총파업 가령, '주5일제 쟁취 총파업'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가능하다 하더라도 일부 정규직의 이해에 기반을 둔 이와 같은 총파업으로는 노동계급의 연대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가령, 주5일제 쟁취 총파업 또는 총력투쟁은 노동계급의 실리적 대응을 강화하거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를 확장하는 투쟁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새로운 연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다 엄밀하고 보편적인 반대투쟁으로부터 형성될 수 있다. 이제까지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일자리 지키기의 투쟁에 가까웠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대중의 의식은 다른 사업장이 문을 닫아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조직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가 보장되면, 정규직이 정리해고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을 정규직 노동자가 가로막고 나서는 일까지 발생해 왔다. 결국, 노동운동진영은 과연 구조조정은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해야 하는가, 구조조정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보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발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대중은 일자리 지키기 중심의 투쟁이 아니라 불안정 노동 철폐를 중심으로 투쟁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종국적으로 기업과 경제체제를 금융적 구조로 재편하는 자본의 전략이다. 이 때문에 부실기업 퇴출을 감행하고, 정리해고와 함께 각종의 노동법 개악, 노동유연화 정책을 통해 노동시장을 유연화시켜 나간다. 사실상 지금 현재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어떠한 계층의 노동자이건 현장의 노동조건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다. 산업재해는 2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고, 3교대 근무에서 2교대 근무로 노동강도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현실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이처럼 구조조정 사업장, 공기업 사유화 대상 사업장, 각종 비정규직 사업장, 공무원, 교사, 교수 등 어떤 직종을 망라하고 구조조정의 여파는 정리해고라는 특수한 국면을 넘어서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악화로 치닫고 있다. 또한, 정규직 축소, 비정규직의 확산을 통해 불안정 노동을 일반화시킬 뿐 아니라 노동법 개악을 통해 노동권에 대한 침탈을 일상적으로 감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불안정 노동철폐를 기치로 노동유연화 분쇄/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현실화하기 위한 적극적 계획이 필요하다. 투쟁 동력이 당장에 정리해고, 구조조정, 사유화 대상 사업장에서 형성된다고 하더라도, 노동진영의 핵심적인 과제는 이를 어떻게 노동유연화 분쇄/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한, 금융적 팽창 국면에 대항한 노동대중은 투쟁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업연금제, 우리사주제, 각종의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 등에 대한 단호한 반대투쟁을 통해서 더 이상 노동진영이 금융적 포섭의 대상이 아님을 선포해야 한다.
오늘날 민주노조란 불안정 노동철폐를 중심으로 노동유연화 분쇄/노동법 개악저지 그리고 금융화 반대를 자기의 과제로 삼고 투쟁하는가 아닌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결국, 불안정 노동을 거부하고 현장에서부터 노동유연화를 분쇄해 나가고자 할 때, 금융(세계)화에 포로가 된 노동을 거부하는 투쟁을 전개해 나갈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그리고 대공장과 하청 노동자의 연대가 다시 복원될 것이다. 이 과제를 중심으로 총연맹과 단위사업장에 이르기까지 기조를 통일하고 하나의 개별투쟁이라도 이를 지지하고 엄호해 나가고자 한다면 총파업은 그 속에서 가능성을 엿 볼 수 있다.
둘째, 이를 전제로 노동자 대중운동의 새로운 조직적 전략이 요구된다. 기존의 노조주의가 더 이상 노동자 계급 대중 전체의 요구를 효과적으로 포괄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우경적인 상황에서 그것을 뛰어넘는 노조주의 전략, 정책, 조직형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구체적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또한, 보다 공세적이고 급진적이며 보편적 요구를 주장하는 노조주의의 형성 속에서 급진적 이념과 노동운동의 재결합을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가 역시 과제로 제시할 있다. 결국, 전통적 노조주의의 변형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조직되지 않았거나 조직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의 새로운 노조를 어떻게 탄생시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인 고민을 해 나가야 할 시점인 것이다. 그 출발은 보다 급진적이고 연대지향적인, 따라서 보다 보편적인 요구, 계급 대중 공동의 요구를 제기하는 계급 대중운동을 이념적, 조직적, 정치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선진 활동가들이 어떤 조직형태를 통해서 주도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 구체적 양상을 선험적으로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기존의 노조주의 및 그와 관련된 관행의 상대화와 역사화, 그리고 노조의 이념과 정책, 조직형태의 혁신, 극단적으로 단체교섭조직으로서 노조가 아니라 진정한 노동자/인민 대중의 운동조직으로서 노조, 조합원 자격 문제 등 배타적 관행의 소멸을 포함하는 '새로운 노조주의'를 동반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실리주의적 경향이 팽배해 있는 현재의 조건에서 노동계급의 단결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중적 저항전선의 회복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전방위적 공세에 따라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교사 할 것 없이 모든 계급계층이 투쟁에 나서고 있는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이 투쟁들 역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개별화되어 있고 정치적으로 통일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처럼 정치적 전망 없이, 전선운동의 복원과 정세의 고양 없이 노동자 민중이 연대하고 단결해 나간다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앞서 계급적 과제를 중심으로 노동계급의 새로운 연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주장도 전선운동의 일반적 상승과 고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만약, 노동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이슈를 중심으로 투쟁을 선도하고 각계각층과 연대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반신자유주의 연대투쟁전선의 복원과 이를 통한 전선재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노동계급을 비롯한 모든 계급계층의 고립적인 투쟁 양상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면, 전선운동의 고양을 통해 거꾸로 현장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이것이 다시 노동계급 단결과 노동계급을 위시한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전망에 큰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러한 전략들은 기존 대중운동이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자, 민중운동의 활성화와 기존 대중운동의 좌익적 강화로 수렴되어야 한다. 이는 한편에서는 전선조직의 확대, 강화와 결합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전선조직은 대중적 토대를 가지지 못할 것이고, 대중조직들은 정치·조직적으로 통일성을 획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설공동투쟁체 건설의 중요성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은 현재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다. 당연하게도 신자유주의 개혁에 동원하기 위한 국민동원전략은 지속된 경제위기와 노동자 민중 생존권의 위기 속에서 파탄 나고, 개혁이미지는 금융비리의 속출과 민중 기만적 대응 속에서 허구의 가면이 벗겨지고 있다. 나아가 권력재편을 앞둔 상황에서 지배세력의 정치적 불안정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회창 대세론이 보여주듯이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 위기의 심화가 곧바로 민중적인 전망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따라서 민중운동진영의 시급한 과제로서, 계급적 이슈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의 새로운 연대의 형성과 반신자유주의/반정권 정치전선의 강화를 목표로 한 전선재편에 적극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그 출발은 지난해 정권퇴진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국민중연대(준)를 중심으로 각 계급대중조직이 단일한 정치전선으로 확대발전 할 수 있는 조직적, 대중운동적 토대를 구축해 나아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전국민중연대(준)는 사안별 공동대책기구인 '고용실업 대책과 재벌개혁 및 IMF 대응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와 '민중대회위원회'를 거쳐, 지난 2001년 3월 상설공동투쟁기구를 준비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전국민중연대(준)의 결성은 그동안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에 저항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됨으로 인해 투쟁의 집중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대부분의 민중투쟁이 실패로 돌아갔던 반성에서부터 출발하였다. 또한, 각종 공대위의 투쟁을 상호 연계하여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궁극적으로는 강력한 정치투쟁으로 형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전국민중연대(준)의 발족에도 불구하고 노, 농, 빈의 투쟁은 여전히 고립분산적이다. 또한,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기승을 더해감에 따라 많은 사회적, 민중적 사안들이 발생하고 있고, 이에 대응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그 사안의 숫자만큼이나 생겨나고 있다. 문제는 공대위가 많이 생겨서가 아니라 사안별 대응을 넘어 단일한 정치전선을 형성시켜야 하는 공동의 과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연대로 정치적, 조직적 수렴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국민중연대(준)는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반신자유주의/반정권 투쟁으로 확산시켜 낼 계기를 적극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민주노총의 정권퇴진 투쟁의 의의를 적극 살리지 못하고 혼란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결정적으로 노동대중에 대한 정치적 신뢰에 손상을 주었다. 또한, 운동진영의 전선운동에 대한 몰이해 및 민중연대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이 여전히 광범위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국민중연대(준)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노, 농, 빈, 학 등 주요 대중조직이 참여하고 있으며, 반신자유주의를 기치로 상설적 공동투쟁을 전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당장 전국민중연대가 본조직으로 출범하더라도 정치적 대표성을 갖는 전선운동체를 자임할 수 없는 상황이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문제는 전국민중연대가 상설적 공동투쟁체로서 각각의 대중투쟁을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으로 상승시켜 나가도록 하는데 있다. 오직 전국민중연대의 역할은 그것에 있으며, 현실적으로 전선운동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연대운동체라는 점에서 정세적 중요성을 갖는다.

2002년 하반기, 전국민중연대를 건설하자

현재 전국민중연대(준)은 본조직 건설을 위해 논의를 모아 가는 과정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본조직 건설은 대중조직의 심도 깊은 결의를 끌어내고, 전국민중연대(준)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통합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전국민중연대(준) 내부에는 진보정당을 추진하는 세력 뿐 아니라, 계급정당 건설 흐름, 전선운동체의 강화를 통한 전선재편을 추진하는 세력도 함께 하고 있다. 이런 다양성으로 인해 올해 정세와 투쟁계획과 관련해서도 시민운동 및 개혁세력을 바라보는 입장, 선거에 대한 방침들에서 광범위한 견해차이가 존재한다. 그런 만큼 민중연대의 정치적 통일은 쉽지 않은 과제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지자체와 대통령 선거가 눈앞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과거 선거라는 기제가 민중운동진영의 단결투쟁의 계기로 작용하기보다는 오히려 분열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던 경험을 상기해 본다면, 민중연대로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연대의 역할 및 위상과 관련하여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진보정당과 전선체의 상호보족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그 속에 전선체의 맹아로서 전국민중연대(준)를 사고하는 편향이다. 이렇게 할 경우, 현실적으로 민중연대의 역할은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과의 전략적 구도 속에서 파악되고 선거시기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선거지원을 하는 것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본조직 건설이 대중조직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조직의 발목을 붙잡고 대중조직의 정치적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조건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설공동투쟁체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거국면에서 대중투쟁은 정치투쟁으로 자연스럽게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거일정에 눌려 대중투쟁이 압살 당할 수도 있다. 그런 만큼 기층계급대중조직을 중심으로 상설공동투쟁체를 지향하는 민중연대는 무엇보다도 대중투쟁에 충실히 임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전국민중연대는 연대의 조건으로 내부의 정치적 이견에도 불구하고 계급대중조직을 중심으로 이를 강화하여 투쟁의 조건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해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전국민중연대(준)가 본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설공동투쟁체로서 자기 위상을 세워나가기 위한 계획, 기층계급대중운동과 긴밀하게 결합하기 위한 과제, 민중생존권 투쟁을 단일한 정치전선으로 형성하기 위한 민중연대의 조직전망을 세우는 것을 중심으로 본조직 결성을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논의를 통해 전국민중연대 본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적, 조직적 준비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주요대중조직의 상층결합을 넘어 지역과 연맹의 결합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지역 및 부문조직의 결합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각계각층의 투쟁을 반신자유주의 투쟁으로 이끌면서, 이 성과를 바탕으로 하반기 본조직 건설 전망을 열어나가야 한다.

마치며

YS 등장 이후 10년의 기간동안 저항전선은 해체되었고, 나아가 노동의 분절화와 계급의 해체에까지 이르면서 대중운동은 전반적으로 퇴조하고 있다. 얼핏보기에 대중조직은 외형적으로 성장했지만 그 급진성은 나날이 쇠퇴해 갔다. 그러나, 운동진영의 대응은 전선의 복원과 연대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실리주의적 경향에 편승하면서 신자유주의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노동운동 내부에 실리주의는 더욱 만연해졌고 연대는 해체되었다. 투쟁은 고립되어 각개격파 당하고 있다.
잃어버린 노동자 민중운동의 10년. 이를 되찾기 위한 대중운동-대중조직을 포괄하는 전선재편은 하나의 가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당면한 운동진영의 임무이다. 새로운 계급적 연대를 바탕으로 대중운동의 급진화를 이루는 것, 상설공동투쟁체를 중심으로 각각의 대중투쟁을 정치적으로 상승시켜 나가는 속에서 계급대중을 전선의 주체로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역사의 발전은 이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주제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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