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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1-2.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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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적 고찰

사회진보연대 정세분석팀 |
정치세력화 논의의 특수성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해명하는 데 있어 정치세력화는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정치세력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구의 정치세력화인가? 왜 해야하는가? 그리고 왜 '지금'해야 하는가?"
사실 정치세력화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모호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언제나 '대통령선 선거'나 '총선'을 계기로 제기되어 왔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언제나 부르주아 정당들과 '구별되는'(이 또한 얼마만큼, 어떻게)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대변자 혹은 지도력을 대중적으로 구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 형태는 언제나 운동의 전국적인 지도부 혹은 정치·조직적 구심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혹은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정당'을 만들 것인가로 모아졌다.
만약 우리가 정치세력화=정당건설이나 독자후보로 이해한다면 정치세력화는 (진보)정당의 문제로 수렴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정치세력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에서 정치세력화는 언제나 선거라는 정치일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고 정당이나 후보 전술과 밀접히 결합되어 논의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선거와 선거정당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인가? 왜? 선거가 다가왔기 때문에? 만약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하다. 현재의 선거가 정세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인가, 현재의 정세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계획에서 선거에 대한 개입은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면 그만이다(문제1).
하지만 선거와 선거 정당에 대한 문제가 '선거'라는 특수한 계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또 다른 차원에서 제기될 수도 있다. 예컨대 특정한 의회정당이 일정한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고 있어서 그 내에서, 혹은 그들과의 제휴와 연합이 요청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태가 이러하다면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재조직되어야 한다. 특정한 의회정당이 대중운동 혹은 보다 구체적으로 (계급)대중조직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의 효과는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대중(조직)들이 그들을 지지하는 이유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인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것인가? 당은 대중들에 대한 '적극적' 정당화를 성공하고 있는가, 아니면 '소극적', '부정적'(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정당화에 머무르고 있는가?(문제2) 이러한 질문은 앞의 문제 즉, 선거라는 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것과는 구분되는 문제이지만, 최종적으로는 구체적 상황에 대한 분석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 문제 ― 사실상 동일한 문제로 귀결되는 ― 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운동의 장기적인 전략적 구심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것이다. 앞의 두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는 결코 단순한 조직 형식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운동의 이념, 노선, 나아가 궁극적으로 '운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특정한 '관념들'을 동반한다. 특히 현재와 같이 100여 년 동안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전략으로 승인되어온 정치-조직형태 및 그와 필연적으로 연루된 정치적 실천들이 실패로 판명된 상황에서 정치-조직 문제에 대한 보다 강인한 이론적, 실천적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전략 또한 개별 국가들의(그리고 세계적 조건의) 구체적인 역사적 국면 혹은 정세 속에서 구상되고 실행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정치세력화'와 관련된 문제는 이중적이다. 첫째, 지금 현재 '민중운동 진영'은 무엇을 할 것인가. 둘째, 운동의 장기적인 전망 혹은 전략적 구심의 형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물론 현실에서 양자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질문은 언제나 상호 침투한다.


한국에서의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

해방 이후 한국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시도'로서 정당운동은 독자적으로 존재해왔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면서 사회민주주의의 불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존재했다. 즉, '종속적 발전'이라는 한국사회의 특수한 모순은 사회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하지 못하며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변혁의 계획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독자적인 (비합법) '전위 정당건설'의 필요성이 다양한 방식―산개전에서 지역노동자동맹, 나아가 위로부터 전국적 전위조직의 건설(전국적 정치신문과 조직통합)―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사실상 실패하고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이른바 '신노선'이 등장한다. 신노선은 애초에 특정 정치세력의 노선전환을 의미했지만 사실상 1991년 이후 다양한 정치세력들의 일반적인 노선전환을 선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노선전환은 1992년 대선 이후 다양한 형태로 분열과 해체를 거듭한 이후 사실상 실패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결국 상이한 운동의 사민주의적 정당운동으로의 수렴은 새롭고 보다 포괄적인 형태로 재출현한다. 여기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 진보정당 운동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주장했던 세력들이 독자적인 사민주의적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적인 사민주의적 운동과 1980년대 전위 조직운동의 수렴을 강제한 역사적 조건은 무엇인가? 매우 역설적이지만 그것은 급진적 대중운동의 쇠퇴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이다. 즉, 정당운동은 대중운동의 쇠퇴에 대한 대응 혹은 그것의 결과로서 제기되어 왔고 또 현재도 그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1987년에도, 1991년에도 제기되지 않았다. 즉, (투쟁의 고양기에서) 급진적인 대중투쟁의 조직적 성과로 건설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도 이러한 미묘한 시간적 불일치는 정당운동을 괴롭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대중투쟁의 소멸 이후, 대중투쟁 전략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는 '새로운 운동'으로, 대중적인 지지 기반을 가지지 못한 채(현재는 계급대중조직 자체가 대중적 토대를 상실하고 있다), 차선 혹은 차악으로 제기된 것이다.
이 과정은 또한 대중운동의 (정치적) 지도부와 대중운동의 괴리 과정이기도 했다. 1987~92년까지는 80년대 노동자 대중운동이 상층의 연대틀을 형성하면서, 이론적, 정치적, 이념적 분화를 거듭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한국 사회에서 "전국적 운동"의 역량에 대한 요구가 대중적으로 분출했고, 그 결과 상층 정치역량들이 형성되었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 이들 상층 정치역량(일부는 대중운동의 지도부에 일부는 전위 분파로)들은 이데올로기적 전술적 동요 속에서 대중운동에 대한 지도력을 상실했다. 게다가 대중운동 자체가 "사태에 대한 적합한 인식"을 포기하고, 내적으로 분화/붕괴를 경험했다(대중운동 그 자체의 우경화, 개량화, 부문적 요구로의 후퇴). 바로 이러한 특수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상층 정치역량들의 차선으로 '사민주의적' 진보정당으로의 수렴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대중운동의 우경화라는 조건 속에서 그것에 조응해서 상층정치역량이 (상대적으로 실현가능 한 것처럼 보이는) 사민주의적 요구들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고자 하는 운동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수렴의 과정에서 '정치세력화'라는 슬로건의 의미는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사실 이는 애초에 정치세력화라는 정치적 과제의 내포와 외연이 모호했던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정치세력화'라는 슬로건은 1987년 대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 때 핵심은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로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넘어서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당시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분명한 정세적, 전술적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즉, 그것은 1987년 민중의 투쟁을 어떤 정치적, 조직적 성과로 수렴해낼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하나의 계획이자 입장(그것의 구체적 형태는 후보전술과 결합된 이후의 민중운동 지도부 구축이었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 정치세력화는 어떤 구체적 의미를 띠게 되었는가?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슬로건은 YS집권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었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1987년의 구체적인 전술적 함의는 사라졌다. 대신 그것은 '보수야당'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매우 모호한 이념적 표명―이 때문에 '독자적'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민중운동 진영 일각에 존재해온 'DJ추종' 세력과의 분리선을 분명하게 한다는 운동 진영 내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예컨대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어떤 조직적 구심력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투쟁의 계획을 가져야 하는지는 모호한 채로 남아 있었다. 예컨대, 전국연합을 (사실상 독자적인 정치적, 조직적 역량을 가지고 있던 시기에도)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의 조직적 구심력으로 이해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사실상 독자후보를 통한 선거참여 전술을 의미하게 되었다.
DJ의 집권 이후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슬로건으로 변형되었는데, 이제 더 이상 '정치세력화'라는 말 앞에 '독자적'이라는 말이 붙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실천적'으로 분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되었다. 즉,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보다 노골적인 자유주의적 개혁주의로 전환되거나, 아니면 DJ와 야당세력의 집권이 한국 사회를 사실상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점, DJ식 개혁의 내재적 불가능성이 자명해졌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중운동 진영은 이제는 사민주의적 정치세력화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때 정치세력화는 사실상 '진보정당'의 건설과 선거참여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정치세력화'의 이러한 의미변화와 정치운동의 사민주의적 수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애초에 1987년의 구체적 정세 속에서 일정한 계획으로 제출되었던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적 계획이 아니라 막연한 지향을 의미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보수야당'(사실 우리는 이러한 규정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과거 DJ의 정당과 동일한 보수야당인가?)에 대한 추종의 반대를 의미한다는 면에서 분명한 지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구체적 형태를 결여한 경향적인 지향성에 불과했고, 따라서 선거라는 정치일정을 계기로 정당건설이나 선거참여 등으로 손쉽게 축소되곤 했다.
둘째, 1987년 대선 이후 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 과정은 결코 단선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나 선거를 계기로 등장/재등장하고 사라졌다. 이러한 역사적 굴곡의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운동 내부로 부르주아적 정치관행이 단절적이지만 끊이지 않고 이식되었다. 그러한 관행은 기본적으로 "정치=의회정치"라는 협소한 자유주의적 시각을 담고 있으며, 정치에 대한 개입을 세의 규합이라는 실용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현재처럼) 모든 운동진영이 공통적으로 '정치세력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운동의 분열이 심화되는 것은 일견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이러한 실용주의적 관행이 낳은 자기중심적 결집이나 세 규합 노력의 또 다른 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셋째, 이러한 과정은 지속적으로 노동자, 민중 내부의 분절화의 과정이자 정치적 전선이 모호해지는 과정이었다.(이는 최종적으로 지배세력의 동맹 확장의 결과이다)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운동을 주도하는 조직된 노동운동 집단―이들은 주로 대기업과 사무직 노동자 집단에 속하며, 한국사회의 예외적 팽창국면에서 일정한 경제적 향상을 경험했고, 그 결과 소위 '중산층적 생활양식'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과 집착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들이 대기업이나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양식의 유지를 위해서 극도의 실리적이고 방어적이며, 종종 퇴행적인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는 점이다―이 노동자 운동 전체를 힘있게 대변하지 못하게 되고, 대다수의 불안정 노동자(실업노동자들을 포함하여)들의 이해는 배제되었다. 게다가 노동운동과 여타 계급대중운동 사이의 분절(연대운동의 와해)도 심화되었다. 그리고 몇몇의 경우 운동조직들은 적극적으로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단기적인 수혜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사실상 정권의 안전판이자 대중동원기구로의 전환).
이러한 분절화의 또 다른 면이 바로 정권에 대한 단일한 전선의 와해이다. 즉, 정치세력화를 말하면서도 현정부와 여타 정당들에 대한 민중운동의 평가는 매우 모호해진 것이다. 타도 혹은 퇴진을 목표로 하는 정부 혹은 정당과 의회에서 경쟁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모순적 행동에 다름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선거에는 무조건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 곧바로 지지될 수도 없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협소한 의미의 정치세력화는 언제나 개별 정책에 대한 반대와 정책 대안의 제시라는 틀로 전환되었다.
넷째, '독자후보'라는 '전술'의 의미가 점차적으로 변화했다. 과거―DJ의 집권이전―에는 독자후보를 출마시킨다는 것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독자후보 그 자체의 유의미성을 부정하는 세력은 사실상 없다. 후보를 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운동 주·객관적 상황에 대한 판단에 따른 것이지, 어떤 기존정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위해서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독자후보 출마의 전술적 목표나 의의도 변화했다. 즉, 독자후보는 이제 어떤 또 다른 정치적 목표를 위해 물리력을 동원해서 적극적인 정치적 선전이나 선동을 수행한다는 목표보다는 상당한 재정적 자원을 동원하여 '당선'을 최대한의 목표로 출마한다. 물론 '당선' 그 자체가 실재 목표인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중요한 것은 선거운동의 과정 전체가 선전이나 선동보다는 '당선'이라는 목표에 의해 다시 규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선거 개입이나 선거 '투쟁'의 의의 자체가 완전히 변화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보정당 운동을 둘러싼 논쟁점: 한계와 내적 모순

진보정당 운동에 대해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왜 한국에서 '진보정당' 혹은 '사회민주당'은 지속적으로 실패해왔는가 라는 질문이다. 최근의 재보궐선거를 포함하여 왜 대중들은 '선거'라는 형태에서는 이들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는가? 왜 한국의 노동자 대중들은 진보정당 혹은 노동자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가? 왜 10년 이상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을 답보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역량부족론"식의 대답은 문제에 대한 실용적 답변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식의 답변은 언제나 정당의 활동을 지속시키는 이데올로기적 답변의 성격을 띠었고, 그것은 처음에는 지역기반 강화론으로 다음에는 조직통합론(혹은 결집론)으로, 최종적으로는 부르주아 정당과의 제휴/통합으로 귀결되었다. 문제는 어떤 역량이 왜 부족했는가,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진보정당운동의 구조적 한계
사민주의 정당은 기본적으로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을 자신의 전제로 한다. 만약 그것이 미발달된 국가라면, 사민주의는 언제나 그러한 자유민주주의적 과제를 동시에 자신의 과제로 만들어야 하며, 또 실제로 만들어 왔다. 예컨대, 자유민주주의적 제도가 제한된 국가에서 다양한 사민주의 정당들은 언제나 '정치개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자유주의 정당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해왔던 것이다(현재의 한국도 마찬가지, 일종의 제3의 세력론).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의회민주주의'가 일정한 궤도에 오르고 안정적인 재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구조적 조건을 필요로 한다. 사실 양당체제가 발전되지 않은 곳에서 의회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고, 양당체제가 발전된 곳에서 보통 사민주의는 그러한 양당체제의 경쟁정당으로 자유주의정당을 대체해왔다.(영국. 그렇지 못한 경우는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노동자(Lib-Lab) 연합을 형성하였다). 예컨대 영국의 노동당은 자유당을 대체한 보수당의 핵심적 경쟁세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양당제적 구조는 사실 헤게모니적 국가 혹은 양보를 하더라도 중심부적 국가형태에서만 유일하게 안정화될 수 있다. 이는 자본축적의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즉, 안정적인 '개량' 혹은 '개혁'의 토대 위에서만 양당간 경쟁체계가 확립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조건의 부재는 권위주의적 국가 혹은 (준)파시즘적 군사독재의 장기지속한 지배질서의 존재근거를 설명해준다. 즉, 한국의 종속적 자본주의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외자의 동원과 내부 자원의 동원, 국내 자본에 대한 일정한 보호,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 대한 억압 등을 위해 강력한 (준군사적, 경찰적) 국가기구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경찰기구와의 인맥형성이 중요한 이유).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정당'이 정당성의 안정적 생산과 재생산 기제로 활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정권의 정당성은 주로 '국가' 혹은 '준-국가적 기구'를 통해서 획득되었던 것이다(그 결과 한국에서는 언제나 관료기구의 지배가 문제가 되며, 관료기구와의 인맥 형성이 핵심적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정치 과정 그 자체 내에 '정치의 과소결정요인'이 존재했고, 선거 과정 그 자체는 국가의 전반적 전망에 대한 합의의 과정이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서로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극도의 실리적 (거래) 과정이었다.
게다가 현재의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특수한 지배질서를 부분적으로 온존시키면서, 동시에 의회체제의 역사적 제한성을 더욱 제약하고 있다. 즉,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본축적 경로의 상실과 이에 따른 재정적 기반의 상실은 의회정치의 물질적 조건을 또 다른 형태로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위기관리와 갈등관리에 주력하게 되고, 정당은 대체로 뚜렷한 이념적 지향보다는 모든 쟁점들에 대해 미봉적인 '정책'(?)―정책이라고 모두 같은 정책은 아니다―에 주력하는 이른바 켓취-올 정당(catch-all party)로 전환된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은 정치인과 정당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대중조작적' 민주주의에 주력하게 만들며, 이 과정에서 대변자와 피대변자의 구조적 괴리, 이익집단의 집단행동, 위기관리적 NGO 등이 출현하게 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사민주의적 운동이 가지는 딜레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노동자 운동 내에 이식된 자유주의 이념으로서 사민주의는 기본적으로 계급적 대립의 지점에서 계급적 쟁점을 자유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회에서 계급적 대립 지점에 대한 정책적 토론이 진행되어야 하며, 국가는 그러한 토론의 결과를 집행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물질적, 재정적 제도를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종속적 축적과정은 이러한 물질적 토대를 결코 제공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 점증하고 위기관리 자체의 위기가 표출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사민주의적 이념은 의회라는 형태를 유지한 속에서 의회적 실천을 통해 실현가능한 계급적, 정책적 대안을 결코 제시할 수 없다. 즉, 이념적 과제와 정치적 실천 사이에 구조적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IMF 구제금융 신청과 만성적 불황 속에서 정권과 자본은 공격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려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리해고와 실업은 노동자 계급으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생존권의 문제를 낳고 있다. 만약 자신이 신심 있는 사민주의자라면 이를 즉각적으로 정치쟁점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쟁점화 되는 순간 그것은 사실상 비의회적인 실천, 즉각적인 대중적 투쟁을 동반해야만 한다. 이는 '의회적 정치'를 뛰어넘는 정치적 실천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의 사민주의적 이념을 초과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사민주의적 운동의 구조적 취약성과 지속적 동요의 필연성을 발견할 수 있다. 요컨대 투쟁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투쟁을 조직할 수는 없는 구조적 제약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국민대중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 결과 한국에서 사민주의 정당의 주장은 국민대중들에게 어떤 현실성도 없게 이해된다. 현재의 한국식 자본주의적 질서를 유지한 속에서 이들의 주장한 마디로 '공약(空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현가능성'은 언제나 특정한 세력관계를 전제로 하며 따라서 실현가능성만을 핵심적 전망으로 할 경우 대중들은 당연히 현실정치세력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 따라서 국민대중은 여전히 실현 가능한 부르주아적 정당들을 선택한다. 이는 선거 때에만 기승을 부리는 단순한 '사표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민주의적 운동에 대한 현실적인 구조적 제약 조건의 문제다.

진보정당이 처한 정세 조건
정세적 조건은 단순한 주관적 판단이나 대중들의 의식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구조적 요인들 위에서 상이한 세력들 사이의 객관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객관적 세력관계가 변화하면 정세적 조건은 변화한다). 사실 대중운동의 우경화는 그 자체로 객관적 정세를 반영하며, 동시에 그 정세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는 대체로 1987-92년 반동적 부르주아지와 매우 취약한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수렴과 긴장, 1992-2001에 이르는 시기에 취약한 자유주의의 취약한 주도력 하에서 범부르주아지 연합이 형성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는 현재의 정세적 조건들에 집중해보자.
현재의 범부르주아 연합의 구체적 형태는 '신자유주의 지지연합'의 형태를 띤다. 이는 매우 불안정한 지배-지지연합으로써 YS정권의 실패와 IMF 구제금융, 폭발적인 경제위기에 대한 반동적 부르주아의 '정치적' 위축(이는 그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치적 표현형태에서 그들의 위축과 주저가 문제인 것이다), 국민적 동원과 위기관리의 필요성 등으로 인해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DJ정부의 출현은 성공적인 구조조정―그것은 곧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서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를 통해 위기의 폭발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을 위한 정치적, 사회적 조건의 창출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연합은 어떻게 그러한 조건들을 창출해왔는가? 그것의 핵심에는 노동자 민중의 일부에 대한 성공적인 견인, 무력화 전략이 놓여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범국민적인 구조조정 및 정부 지지 캠페인을 활용하고(일종의 포퓰리즘),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시민사회 내의 자발적 지지운동'을 동원해 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점에서 현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몇몇 NGO들은 사실상 정치운동의 성격을 가졌다)와 함께 사회적 위기와 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NGO의 득세와 노동자 운동의 부분적 포섭이 중요한 기제로 활용되었다.
결국 노동자 민중의 관점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 연합 하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대중운동의 위기 관리 기구로의 포섭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정치적 지배체제 내에 대중운동의 우경화를 심화시키는 물질적 기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중들을 끊임없이 분할하고 특정집단에게만 수혜를 제공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자기중심적이고 실리적인 생존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노동자, 민중이 이러한 지배기제에 매우 취약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 사회에서 기존의 노동자 운동 내 헤게모니 집단과 소위 민주화 세대(혹은 386세대)가 기존의 민주화와 관련된 담론을 뒤집어쓰고 상대적으로 상승한(혹은 안정된)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생활양식―이는 대부분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된 것이다―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중심적이고 실리주의적인 요구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투쟁은 사실상 조직된 노동의 무기인 노동조합을 이익집단으로 전화시키면서 방어적인 양상을 띤다. 문제는 현재의 정세에서 노동조합 운동 내 일부의 이러한 경향이 어떤 정치적 표현형태를 띠는가 라는 것이다. 노동자 대중의 많은 부분―그들이 1980년대에 대학을 나온 사무직이건, 1980년대 후반에 노조를 경험한 생산직이건―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DJ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의 정치적 힘은 근본적으로 '부정적', '소극적'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시킬 힘이 없는 '사민주의 정당'을 지지하지 않으며, 사민주의 정당의 부분적 성공 속에서 그들을 지지한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당을 우경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제약과 현재의 정세적 제약 요인들은 끊임없이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을 제약해왔고 또 현재도 제약하고 있다. 이러한 제약 요인들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에서 사민주의적 정당은 사실상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물론 구조적인 제약 요인과 정세적 제약요인이 반드시 일치하라는 법은 없다. 즉, 구조적 제약 요인들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예외적인 정세적 고양기가 도래할 수도 있고, 그 속에서 전반적인 대중운동의 활성화 속에서 정당운동이 자기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일 뿐 아니라, 그러한 정세는 결코 '정당운동' 그 자체에 의해 도래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민주의적) '정당운동'에 내재한 주체적, 조직적 모순과 딜레마를 보다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선거정당 혹은 수권정당의 내적 모순
앞에서 살펴본 구조적 요인과 정세적 요인이 운동의 객관적 조건과 관련된 문제라면, 운동의 주체적, 조직적 형태 또한 특정한 운동에 한계를 부과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당 조직의 기본적인 원리는 중앙위원회의 결정을 중심으로 기층을 지도하는 상-하의 위계적 관계이며, 특히 분파형성권이 진지하게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혹은 강력한" 등의 수식어가 이러한 위계적 관계를 강화한다. 이는 단순히 지도부의 관료적 성격이나, 기회주의적 특성 등과는 구분되는 구조적 조건이다.("우리당"이라는 조직 이데올로기는 대중운동과의 결합을 구조적으로 제약한다) 특히 선거정당은 선거일정에 따라 정당의 활동이 체계적으로 배치되며, 또 그렇게 배치되어야 한다. (사실 모호한 절충은 정당운동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그것이 제한된 역량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 '진보정당'의 고전적 딜레마가 부각된다. 대중적 투쟁계획의 부재 속에서 객관적 정세의 변화와 그것을 반영하는 당의 대중적 토대의 취약성은 결과적으로 언제나 당의 우경화를 낳는다. 그러나 그러한 우경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사민주의 운동의 고유한 한계와 모순으로 인해 선거에서의 패배는 자명한 사실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명한 사실 앞에서 문제를 회피하는 고유한 방식이 존재하는 데 그것은 바로 "운동주체의 실력"이라는 문제로 선거운동의 한계를 실용적으로 은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통합 및 결집을 통한 실력 배가"라는 대안이 제시된다. 하지만 대중운동의 전화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안은 결코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고, 그 결과 극단적으로는 기존 정당에 (조직적 혹은 개인적으로) 통합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이 '진보정당운동' 10년 역사 속에서 반복된 경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적 경향 속에서 대중적 논쟁과 정세적 개입 계획, 당의 대중적 기초를 형성하려는 공세적 계획의 문제는 체계적으로 누락되는 경향이 있었다. (당원 배가운동이나 후보선출 이벤트를 벌인다고 진보정당의 대중적 토대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과 대중조직, 전선체 사이의 모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서구에서 정당과 대중조직 사이의 관계는 끊임없는 경쟁관계에 노출되어 왔다. 게다가 정당, 대중조직, 전선체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역사를 볼 때, 이념지향적 정당과 실리지향적 대중조직 사이의 갈등은 서구에서 자본주의의 장기적 성장기에 후자의 지배력 확장으로 종결되었다. 즉, 대중조직은 특정한 이념에 관계없이 다양한 정당들과의 연계(제휴는 아니라 할지라도)를 통해 자신들의 실리적 요구를 획득해왔고(당과 노조의 경쟁),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정당 내부로 들어가 정당을 장악했다(사회경제적 노동자운동). 즉, 애초에 노동자 대중은 자기중심적 요구와 경제적 지위향상 혹은 보호를 위해 사민주의적 정당을 지지하고, 사민주의 정당이 부분적인 성공을 거둘 때까지 지지를 유보하다가, 부분적인 성공이후 그 속으로 진출하여 정당 자체를 노조의 요구에 대한 방어 기구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변화와 성장이 없었다면 이루어지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조건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형태의 당-노조 관계는 당분간 성립되기 힘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갈등을 낳을 것이다. 당연하게, 대중적 투쟁에 근거를 둔 전선운동은 이러한 당과 노조의 협상지향적 활동(그것이 정치적 협상이건, 경제적 협상이건)과 대립을 낳을 수 있다. 적어도 대중들의 요구나 투쟁이 자유민주주의와 민족자유주의를 뛰어넘을 경우, 혹은 그러한 요구나 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야만 할 경우 당-노조-전선체의 갈등을 불가피하다.(민족민주정당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정당, 가령 간디와 네루의 인도형이 아닐까?)


진보정당을 넘어: 전선재편을 향하여

'진보정당'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구체적인 정치적 계획의 문제이자 전략적 판단의 문제의 특수한 결합의 양상을 띤다. 먼저 비교적 분명한 정치적 실천과 이념·전략의 결합형태로 진보정당운동으로의 결집을 주창하는 경우, 그것을 둘러싼 논쟁은 기본적으로 전략적이고 이념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혹은 오늘날 세계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이념적 대안일 수 있는가? 그것은 과연 실현가능(혹은 실행가능)한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는가? 사회민주주의의 고유한 '자유주의적 정치'는 오늘날의 (그리고 자유주의의 물질적 토대가 취약한 한국사회의) '정치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즉, 현재의 실천들이 과연 진보정당의 약속된 전략적 단계들을 통과하는 형태로 수렴될 수 있는가? 진보정당은 수권정당이 되어 정책개혁을 행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는가? 선거 이외의 다른 물리력은 전혀 필요 없는가? 역사는 과연 그러한 형태로 진화해왔는가?
사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이나 현재의 구조적 위기를 고려할 때 제3의 길은(적어도 의회 형태로는) 사실상 실현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조조정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정치적 쟁점이 된다면, (전사회적: 특정기업이 아니라) 구조조정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이 행할 수 있는 의회적 실천의 선택지는 매우 협소한 것이다. 만약 현실적인 성과를 따지자면, 가장 현실적인 것은 민주당과의 제휴일 것이다. 즉, 한국 사회에서는 '계급정치'의 쟁점을 의회적으로 다룰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 사실상 부재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이념적·전략적 대안일 수 없다면, 사민주의 정당에 대한 논의는 찬성이나 반대냐가 아니라 그것과 어떻게 제휴할 것인가, 혹은 그 내에서 당의 급진화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유의미한가 등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바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여기서 문제는 결국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대중운동의 공간은 어디이며, 그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것이 된다. 물론 사민주의 정당이 대중적 토대를 강력하게 확보하고 있다면 그 때 우리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민주의 정당의 대중적 토대는 취약하다는 점이 판명되었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것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대중적 역동성을 확보할 매개 고리는 무엇인가를 재발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과제, 혹은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전화(19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져서 20세기 중후반에 소멸한 기존 역사적 사이클의 전화)를 독자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비교적 분명해진다. "현재의 객관적인 상황 혹은 정세와 그 속에서 민중운동의 과제(들)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과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각계각층에 존재하는 양심적 시민들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어떤 행동들을 해야하는가? 무엇이 민중운동 진영의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고 있는가? 사실 모든 문제는 이에 대해 답하지 못하는 민중운동 진영의 이론적, 정치적, 조직적, 제도적 무능력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민중운동 내에 만연한 종파주의적 태도나 무정부주의적 거부의 정서는 이러한 무능력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현재 어떤 운동 진영도 '민족적-민중적 집합의지'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조직된 운동들로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조직된 계급운동 집단의 고립적 요구들―그것은 종종 자기중심적 실리주의의 형태를 띤다―은 조직되지 못한 대중들, 화이트칼라, 룸펜 PT, 학생, 빈민 집단의 불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불만과 '이유 없는'(사실은 언제나 이유가 있지만 이들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원한을 품은 집단들의 반동화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 문제이다.
문제는 불만들을 어떻게 전국적 차원에서 하나의 응집력 있는 질서로 조직해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의 가장 기본적 단위 혹은 조직의 세포들을 어떤 형태로 구성할 것인가? 전국적 차원의 응집력이 곧바로 어떤 단일한 조직 혹은 정당의 건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고립분산적인 투쟁을 조정해내고, 그것을 보다 보편적인 요구들로 상승시켜내는 일련의 조직적 실천을 의미할 뿐이다. 이와 동시에 지역 차원에서 어떻게 안정적인 세포를 구성할 것인가는 매우 관건적인 문제이다. 그것의 구체적 형태는 매우 다양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팽팽한 이론적, 실천적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지역적 차원에서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할' 수 있는 자기완결적인 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중운동과 과학적 인식을 결합시킬 필요성과 이러한 인식이 있을 때에만 대중운동은 고립적/개별적 방향이 아니라 공동의 연대투쟁 지점을 발견하고 그 지점에서 투쟁을 조직할 수 있다. 즉, 현재의 만성적 불황의 국면에서 '중산층적' 생활양식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결코 실행될 수 없거나 상당한 연대의 파괴와 끊임없는 심리적 고통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인식할 때에만, 지배세력의 관리기구로의 견인이나 왜곡된 정치적 지향을 극복하고 연대지향적 운동을 재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전국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모두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이러한 구상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대중운동의 특수한 상황, 대중 조직 그 자체의 응집력과 정치적 지향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사실 대중 조직 그 자체가 물신화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양면성은 언제나 대중조직의 양면성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대중운동이 보다 과학적인 인식과 결합되고 급진화될 때, 대중조직은 보다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전선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반면, 대중운동이 자기중심적 실리주의에 경도될 때 대중조직은 위기관리 기구에 포섭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중조직이기 때문에 '비정치적'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자기중심적 실리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이거나 보수주의적 성격을 띠며, 반대로 보다 보편적인 요구로의 정치화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대중조직들이 자신들의 요구와 다른 대중조직의 요구의 공통점을 인식하고 공통의 전선을 구축할 때 대중운동은 보다 보편적 요구로 '정치화'될 수 있다.
현재의 문제는 특정한 형태로 제도화된 대중조직 그 자체가 상당 부분 우경적인 정치적 경향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하나는 기존의 대중조직이 스스로의 계급적, 대중적 기반을 확장하는 데 조직적 한계에 처했고, 다른 하나는 대중들 자체가 개별적인 자기이익의 고수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사실 동일한 생존권적 요구라 하더라도 여타의 계급대중조직들과의 연대의 면을 증가시킬 수 있는 상호확장적 요구가 있는 반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상호경쟁적 요구가 존재한다) 이 양자는 결정적으로 대중운동과 대중조직 내 기존의 헤게모니 분파 혹은 세력이 더 이상 계급대중운동 내에서 계급적 통일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기존의 헤게모니 세력이 자신의 요구를 계급 전체의 요구로 상승시켜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진단은 각각의 대중조직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예컨대 노동자 대중조직과 농민 대중조직, 학생 대중조직의 구체적 상황들이나 근본적인 요구는 상이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농민이나 노동자들의 요구는 계급적, 물질적 토대를 가진 것인 반면, 학생들의 요구는 정치적인 것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중조직 그 자체가 정치적 수동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적 중앙조직이나 여타의 대중운동 중앙조직을 장악하고 그것을 기존의 정치적 투쟁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는 상당한 난점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이 더 이상 전국적 연대질서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전국적 연대질서의 활동 중심이 훨씬 현장이나 기층의 활동, 대중들의 자생적 의식과의 투쟁에 적합한 형태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정치세력화의 애초의 의미도 정세적으로 분출하는 대중운동의 급진적 요구를 정치적으로 조직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대중운동의 차원에서 후퇴하고 있고 계급적인 단결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면, 현재 모든 단위의 활동가들은 기존 대중운동 내부에 포괄되지 못했던 요구나 집단들의 요구를 보다 급진적 관점에서 포괄해내면서 기존 대중운동의 장을 확장시키고 계급적 대중운동의 연대질서를 구축하는 과제에 복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난 87년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의미했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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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 청소 서경지부 경비 연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