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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3.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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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

박준도 | 편집부장
87년 6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은 노래운동사로 보아도 중요한 시기다. 노래운동 역시 이 투쟁이 열어 놓은 정치공간에서 합법공간으로 진출하고자 했다. 그 결실이 바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이다. 10월호에 소개했던 '새벽'이 음악운동에서 노동자의 음악을 고민했다면, '노찾사'는 민중가요의 대중화를 지향했다. 1984년 몇몇 사람들이 이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로 합법 앨범(노찾사 1집)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노찾사'는 이를 계승하였다. 그래서 오늘 소개하는 앨범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2집이다.
87년 결성이후 89년 10월 사이 대규모 공연만 8차례 가까이 하는데, 날마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그만큼 열려진 공간에서 민중가요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요구는 대단했던 것인데, 이것만으로도 2집의 성공은 이미 보장되어 있었다. 89년 10월, 그간의 민중가요를 모아 2집 앨범을 발매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 50만장을 판매하는 경이적인 성과를 이룬다. 일설에 따르면, 91년 가을 3집이 나오기 전에 100만장이 팔렸다고 하니, 2집은 민중가요 최초 그리고 유일한 밀리언 셀러인 셈이다. 그리고 이 즈음에 김광석, 안치환, 권진원이 노찾사에서 독립한다.
이 앨범이 이렇게 성공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애초에 선곡할 때, '새벽'의 공연 성과로 많이 불렸던 것, 그리고 소시민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를 먼저 고려했다. 그래서인지 가수 배치도 눈에 두드러지는데, 안치환이 "광야에서",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권진원이 "저 평등의 땅에"를, 김삼연이 "이 산하에",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른다. 전태일 열사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노래극 [불꽃]의 주제곡인 "그날이 오면"과 노래극 [부설학교]의 주제곡인 "사계"는 극에서 그랬듯 2집에서도 합창을 한다.
문승현이 총지휘하고 나동민이 깊이 참여했다고 하는데, 더 많은 대중이 친숙하게 접근하도록 의도적으로 편곡한 흔적이 역력하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코드(증·감 3화음, 4화음 등)와 전자악기를 유난히 많이 사용한 것이다. "오월의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마른 잎 다시 살아나"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는데, 본 곡의 의도는 물론이거니와 부르는 이의 감성조차 훼손시키고 말았다. 선곡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편곡까지 무원칙한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밀리온 셀러임에도 감상주의와 기교주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정작 노찾사 자신은 이 비판에 크게 개의치 않은 듯 하다. 이런 경향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노찾사의 결성 목적이 곳곳의 민중가요와 그 성과를 모아서 대중화하는 것인 한, 한계 역시 자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곡과 편곡에서 보이는 편의적이고 실리적인 경향은 민중가요가 쌓아놓은 예술적 성과는 물론 정치적 성과마저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지 노찾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역시 대중가요의 둘레 안으로 진입한 안치환에게서도 이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심지어 그는 자신이 창작한 곡마저 가사를 순화시켜 합법앨범으로 발표한다. 대중가요를 부르던 정태춘, 박은옥에 비해 이들이 사전 심의나 국가검열에 무심했던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은 이로부터 10년 후 활동을 중단한다.
임옥상의 "6.25이후 김씨 일가"라는 작품이 연상되는 2집 앨범 표지를 보면, 한가운데 시골 초등학교의 졸업사진이 그려져 있다(LP 표지는 이 사진이 전면을 차지한다). 군데군데 사라진 얼굴로 시선이 머무는 것은 누구나 민주화투쟁의 고난과 아픔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2집 앨범이 선곡하지 않은 곡과 이들이 선택하지 않은 편곡에 더 많은 시선을 주는데, 같은 이유에서다. 아이러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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