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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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6.26호

끝나지 않는 싸움, 에바다

이소형 | 조직부장
2000일간의 투쟁,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96년 강제노역, 구타, 인신매매, 성폭행, 피살 따위의 비리재단 일가의 모진 인권유린에 견디다 못해 시작한 에바다 농아원생들의 절규 어린 농성으로 장애 시설비리의 참상에 대한 충격을 던진 에바다 사태는 지금 6년, 그리고 2000일을 맞이하고 있다.
이 싸움의 참담함이 우리에게 던진 충격만큼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은 알고 있었으나, 투쟁이 이처럼 길어지면서 점점 그 처음의 충격과 분노가 삭혀져 가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96년 11월 26일, 배가 고파 개밥그릇에 담긴 라면을 주워먹던 농아원생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난방조차 되지 않는 농아원 찬 바닥에서 겨울을 나다 결국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시작된 에바다 어린 농아원생들의 절규를 우리는 잊지 못한다. 또한 그렇게 처참히 시작된 농아원생들의 울부짖음을 권총과 군화발로 짓이기고, 강제 연행한 이 사회의 잔인함 또한 기억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세상에 알려진 에바다 농아원사태 이후 어린 농아원생, 최미선이 가슴에 멍 자국을 입은 채 변사체로 발견되었음에도 이를 ‘자살’로 처리해 시신을 화장시켜 은폐해버린 평택경찰서와 검찰에 대한 분노 역시 아직 생생하다.
장애인 인권유린과 온갖 부패비리의 현장 에바다, 6억 7천여 만원의 국고 지원금 횡령과 근무하지 않고 봉급만 챙긴 13명의 친인척 유령직원, 이들에게 장애인은 놀아도 먹여 주는 도구였다. 주민등록증을 2중으로 발급하고 국고를 2중으로 횡령했으며 후원금, 후원 품을 모두 빼돌렸다. 어린 농아학생들은 제본 공장에서 새벽 1시까지 강제노역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했고, 농아 어린이 70여명의 인신매매가 미군에 의한 성추행을 방치했다. 이뿐인가? 농아원생들의 잇단 구타 사망 의혹․실종․변사체 발견되었고 이러한 사태의 폭로 이후 학생들의 양심선언을 막으려는 극악한 폭력들은 여러 명의 원생들의 손목에 담뱃불로 지진 자국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토록 상상조차 끔찍한 사건이 대체 2000일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왜인가?
이는 비리재단을 옹호하는 어처구니없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를 탓해야 하는 것 같다. 비리재단 최씨 일가가 저지른 온갖 추악한 비리들은 지도 감독 관청인 평택시의 관련 공무원들과 깊이 결탁되어 있다. 평택시는 94년과 96년 각각 정기 행정 감사에서 횡령사실을 적발하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었고 96년 폭로와 투쟁이 시작된 뒤로 김선기 평택 시장과 평택시 측은 끊임없이 거짓말과 허위보고를 일삼아 왔다. 결국 김선기 시장과 비리재단이 97년 국정 감사 이후 작성한 ‘비리재단을 인정하고 존속시키는 비밀 합의문’이 발견되었다. 이 합의문에는 지금까지의 평택시와 재단의 결탁의혹을 입증하는 자료 뿐 아니라, 이러한 모든 사실들은 김선기 시장과 관련 공무원들이 비리재단과 연루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민주적 이사진 개편,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에바다의 시설비리 척결을 위한 투쟁에 학생과 사회단체가 공대위를 구성하였고, 그로부터 눈물겨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공대위의 평택시청 앞 천막농성과 단식농성, 이순신 장군상 고공시위 등과 같은 치열한 싸움 끝에 2001년에는 비로소 에바다 복지회 이사회의 민주적 이사진 개편이라는 소중한 투쟁의 성과물을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에바다 구 비리세력, 즉 최씨 일가는 농아원에 대한 기득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해 12월부터 지금까지 농아원생들 일부와 농아원과 학교 직원들을 사주하여 농아원을 폐쇄하고 권오일 교사 폭행사건, 해아래집 피습사건 등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심지어 최성창 비리주범이 목사로 있는 서울의 한 농아인 교회의 교인들까지 불러모아 농아원에 상주시키면서까지 농아원을 불법 점거하고 있다. 농아원생들은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비리재단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벌이는 에바다복지회 민주적 이사 규탄 집회에 강제로 동원되고, 자신의 교사와 친구를 무참히 폭행하는 등 폭력 기계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어린 농아원생들을 폭력으로 무장시키고 온갖 흑색선전으로 민주적 이사들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도록 세뇌를 하는 최씨 비리일가의 인간 이하의 작태들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이러한 작태를 또다시 비호하고 있는 평택시청과 평택경찰서이다. 이들은 에바다 농아원을 불법적으로 폐쇄하고 테러와 다름없는 폭력을 휘두르는 만행을 일삼아온 최씨 비리일가와 그들의 측근들에 대한 농아원 출입금지 가처분 소송 결과를 이행하기는커녕, ‘대화로 풀어라, 민주적 이사들도 잘못이 있다’는 양비론으로 문제를 호도하며 농아원 폐쇄 및 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심지어는 ‘현재 이사회 구도가 편중되어 있으니 5:5로 다시 구성해라’라는 최씨 일가와 입을 맞춘 듯 똑같은 주장을 펴고 있어 그들과 최씨 일가 측의 결탁 의혹이 결코 심증만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폭력사태가 남발하고 그 주범들의 신원이 파악되었음에도 가해자에 대한 구속 수사와 처벌을 제대로 하지 않아 왔던 평택경찰서와 평택시청, 대체 이들을 어떻게 엄단해야 하는가?

결코 한치도 물러설 수 싸움,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싸움!

시설비리철폐 투쟁이 승리했던 선례가 없었기에 에바다 투쟁은 더욱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수용시설비리철폐투쟁’의 해방구이다. 2002년 지금까지 300여 차례 언론에 보도되며, 98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에바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으나 6년이 지난 지금에도 에바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재 국가는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장애인 개인의 문제로 전가하고 있다. 결국 장애인을 죄인으로 몰아가며 신체적 장애로 인해 박탈된 생존을 위한 기본적 권리를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하기에 국가는 에바다 농아원과 같은 장애인수용시설조차도 민간 자본에게 전적으로 위탁시킴으로써 장애인수용시설을 온갖 인권 탄압과 비리의 온상으로 만들고 있다. 복지를 비롯한 사회적 공공영역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포기하고 민간에 전가시켜 민간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약간의 보조금과 권한 그리고 ‘책임’까지 함께 민간복지법인재단에게 넘겨주고, 처벌 등 책임 부분에 있어서 국가는 법적 규제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러한 민간복지법인자본은 공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덜어 주는 대신 장애인수용시설을 운영하며 장애인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고 심지어는 국가의 묵인 하에 국가 보조금을 횡령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이윤을 보장받고 있다.
물론 정부는 공적 영역의 축소를 통한 사회적 부(富)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확산되어 간다는 환상을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교육, 의료, 환경 등 모든 사회적 공공 영역은 이익 산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에 자신을 희생할 리 만무한 민간자본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익을 내야 하기에 그 피해는 결국 힘없는 민중에게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에바다 농아원생들은 바로 그 고통받는 민중이다. 에바다 복지회 법인자본의 인권유린과 온갖 비리에도 김대중 정권이 근본적으로 에바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에바다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선 국가가 책임 있게 공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때문에 에바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싸움은 전체 장애인수용시설비리에 대한 철폐투쟁인 동시에 사회적 공공 영역의 확보를 위한 투쟁인 것이다.
에바다 투쟁 2000일을 맞이하며, 우리는 다시 이 투쟁의 불씨를 지펴야한다. 지난 6년여간의 기나긴 투쟁의 성과가 온전히 결실을 맺기 위해서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에바다 비리세력의 완전축출과 국가 책임 하의 새로운 운영체계의 도입과 집행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재편 속에 탈각되어 온 사회 공공성의 해체에 맞서 장애인의 건강권, 노동권, 교육권을 온전히 보장받기 위한 장애해방의 기나긴 투쟁은 투쟁 2000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PSSP
주제어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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