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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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6.26호

흑묘백묘 : 외국인 직접투자와 대외개방

백승욱 | 한신대 교수, 편집자문위원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의 배경에는 외부의 충격을 유도해 국유기업의 구조조정의 속도를 가속화하겠다는 중국정부의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은 많이 지적되고 있다. 외부의 충격이란 해외 자본의 유입을 말하며, 이들 해외에서 유입되는 자본이 국내 기업과 경쟁을 촉발함으로써 국유기업의 구조조정을 강제하고, 선별적으로 국유기업을 인수합병할 수 있는 토대도 만들며, 또한 이를 통해 비국유기업의 외연을 확장하고, 경제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 중국 정부의 예측인 듯 보인다. 물론 이는 많은 국유부문의 민영화, 외국자본에 의한 핵심산업의 장악, 특정 산업에서 실업자의 대량 배출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널리 관측되는 문제를 낳겠지만, 중국 정부가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이런 예상되는 사회문제보다는 외부의 힘에 의존한 빠른 구조조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외국인 직접투자는 중국을 빠른 속도로 세계경제로 편입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외국 자본은 중국 무역의 성장을 주도하여 무역 총액 중 외국인 투자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6년의 4.0%에서 1992년에는 26.4%로, 1999년에는 50.8%로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의 무역의존도 또한 1980년의 14.4%에서 2000년에는 43.9%로 높아졌다. 외국인 투자기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빠르게 증가하여, 1999년 전체 광공업 기업 중 외국인 투자기업이 총자산의 29%, 총매출액의 50%, 이윤총액의 76%를 차지하기에 이르렀고, 특히 중국이 해외 수출에서 경쟁력을 보이는 노동집약적인 섬유․전자 산업과 새롭게 부각되는 선도산업에서 외국인 자본의 장악률은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
중국에 외국인 투자가 많고, 1990년대 초까지는 중화학공업 중심의 중국 산업구조와 중복되지 않는 분야와 지역에 투자가 많았다는 사실은 그간 중국에서 국유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개혁개방 이래 동남아시아 인근지역에서 화교자본의 투자가 많았다는 점은 중국이 걸어온 지난 20여 년의 대외개방의 과정의 특이성과 1990년대 말 동아시아 금융위기 상황에서 중국이 처해있던 예외성을 설명해주는 하나의 요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조건들은 1990년대 말들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중국에서 외국자본의 영향력 또한 이전과 다른 형태로 커지고 있다.
외국에서 유입되는 자본은 크게 차관과 직접투자로 나눌 수 있는데, 중국의 경우 차관보다는 직접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1990년대 들어 두드러져 1992년경부터는 중국이 흡수한 전체 외국자본 유치액 중 외국인직접투자가 차관보다 많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차관이 주로 사회기간설비에 투자되어온 반면, 외국인 직접투자는 기업의 영역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였다.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 기업은 보통 ‘삼자기업’(三資企業)이라고 부르며, 여기에는 세 가지 상이한 투자형태가 포함되는데, 중국 측과 외국파트너가 함께 투자하고 공동경영하며 계약기간이 만료 된 후 설비가 중국 측에 귀속되는 합작기업(合作企業), 중국 측과 외국 측이 투자지분에 따라 이윤을 배분하는 합자기업(合資企業), 그리고 외국 측이 100% 투자하여 기업을 자체적으로 경영하는 독자기업(獨資企業)이 있다. 초기에는 합작기업이 많다가, 이후 합자기업이 다수를 이루었으며, 최근 들어 독자기업의 비중이 늘어난다는 것이 중국의 외국인투자기업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이다.
중국은 세계적으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집중되는 대표적 국가여서, 1990년대에 대체로 미국에 이어 세계의 두 번째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국의 지위를 차지해 왔고, 발전도상국 중에서는 선두주자의 지위를 차지해 왔다. 발전도상국 사이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국으로서의 위상은 1985년과 2000년의 발전도상국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순위를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1985년 발전도상국 중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액이 많은 국가를 살펴보면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브라질에 이어 4위로 발전도상국 외국인 직접투자액의 7.0%를 차지하였는데, 2000년에는 발전도상국 외국인 직접투자액의 19.2%를 차지하는 1위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 뿐 아니라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의 간접통로가 되는 홍콩의 지위 또한 상승하여, 같은 순위표에서 1985년의 9위에서 2000년에는 2위(16.0%)로 높아졌다. 중국에 외국인 직접투자가 집중되면서 동남아시아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광뚱성과 푸젠성 등 남쪽 지역의 성들 및 이들 성으로부터 상하이와 텐진을 거쳐 따렌까지 이어지는 동부연해 지역에 집중되어 왔다. 중국의 경제성장의 지역적 격차가 심각한 것도 외국인 직접투자의 지역적 불균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흰고양이던 검은 고양이던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떵샤오핑의 ‘黑猫白猫’론의 직접적 후원을 받으며 성장한 외국인 투자기업은 이제 중국 경제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경제를 세계경제에 연결시키는 핵심고리가 되었으며, 중국이 세계자본주의의 요구를 빠른 속도로 수용하게 되는 중요한 채널이 되고 있다.

중화경제권 -- 1980년대 화교자본의 대량 유입

중국에 유입되는 외국인 직접투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동남아시아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화교자본에 의한 투자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홍콩과 타이완을 필두로, 싱가폴 외에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화교의 투자도 계속되고 있다. 1980년대 이래 현재까지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중 이들 화교자본의 비중은 전체 투자액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비중은 1990년대 들어 다소 줄어들었지만,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 중심부 자본유입이 줄어들면서 1999년에는 다시 82%선으로 높아졌다. 중국이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었던 이유로서 중국의 자본시장이 외국자본에 개방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중국에 투자된 외국 자본의 핵심이 이런 화교자본이었고, 이들 자본이 실물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중소규모의 제조업 자본이어서 경기변화에 따라 신속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도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
이처럼 중국에 화교자본이 집중적으로 투자된 것은 처음부터 중국정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들어서 중국이 대외개방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투자 유치정책을 펴나가면서 처음 의도한 것은 중심부 국가의 기술집약적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투자에 대한 위험이 적지 않았고, 투자를 위한 하부구조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투자를 할 마땅한 분야도 적었기 때문에 중심부 자본의 유입은 많지 않았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 들어 중국정부는 화교자본 유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고, 이에 따라 화교자본 유치를 위한 적극적 정책을 전개하였는데, 외국자본 투자지역으로서 동부 연해지역을 점차적으로 전면 개방한 것이 그런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에 가장 먼저 적극적 반응을 보인 것은 홍콩이었고, 그 뒤를 이은 것이 싱가폴, 타이완과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의 화교자본이었다. 이런 변화는 동아시아 경제구조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국의 경제적 지원과 미국 시장의 개방, 그리고 일본과 국제분업적 구조를 통해 선별적인 동아시아의 반주변 국가들이 냉전기 쇼윈도우로서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빠르게 성장하였다. 두 개의 분단국가와 두 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신흥공업국(또는 신흥공업경제)이 그것으로, 보통 ‘네 마리 작은 용’이라 부르는 한국, 타이완, 싱가폴, 홍콩이 일본을 이어서 동아시아 내에서 새로운 성장의 축으로 부각되었다. 이들 네 국가(지역)는 차관이나 외국인 직접투자에 자금을 의존하고, 일본을 정점으로 하는 동아시아 내의 ‘다층적 하청체계’에 편입되어 저임금을 기반으로 노동집약적인 제조업 제품을 생산하여 이를 미국시장에 판매하는 수출지향적 경제를 형성함으로써 빠른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이를 가능케 했던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서 이들 국가의 위상이 불안정해졌다. 냉전의 틀이 깨어지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경제적 지원과 미국시장의 개방이라는 조건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1985년 플라자 협약을 계기로 일본의 동남아시아 투자가 늘면서 동남아시아의 후발주자들이 경쟁을 격화시켰고, 세계경제의 전반적 침체에 따라 수출시장의 팽창이 둔화되었다는 점이 이들 국가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위기의 조짐은 1980년대 들어서도 개선되기 어려웠으며, 이에 따라 이들 ‘네 마리 용’ 사이에서는 변화된 조건에 맞추어 전체 경제의 구조를 전환하려는 대대적 구조조정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조정의 방향은 네 가지 정도였다.
첫 번째 시도는 일본을 모델 삼아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것이었다.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삼던 구조를 탈각해 고부가가치의 기술집약적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한다는 계획이 세워졌고, 한국, 타이완, 싱가폴 모두 이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적 시도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높은 기술종속도와 낮은 자체 연구개발 수준, 전환을 위한 금융력의 부족 등 여러 한계점들 때문에 이 목표는 실현되지 못했고, 다만 몇몇 업종에 한정해 최첨단은 아니지만 선도산업이라 할 수 있는 분야의 수출시장을 부분적으로 장악할 수 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시도는 내수시장의 확대였다. 수출시장 확대의 부진으로 쌓인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내수시장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려는 시도가 등장하였고, 국내 시장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남한의 경우 이 방향의 전환이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여타 세 지역의 경우 내수시장의 규모의 한계 때문에 내수시장 확대라는 방향의 전환은 한계가 있었으며, 한국의 경우도 내수시장의 확대는 국내산업에 대한 중복과잉 투자를 낳고, 특히 금융자유화와 연결되어 이를 자유로운 해외차입이 부추키면서 1990년대 말 금융위기를 낳는 요인이 되었다.
세 번째 시도는 자국의 제조업 생산기지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축소시키면서 금융․정보중심지로 탈바꿈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세계경제 침체와 맞물린 금융화의 진전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금융시장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과 맞물리는 것이었다. 싱가폴과 홍콩은 전통적으로 지녀온 무역중개항의 이점을 이용해 이런 금융중심지로 전환을 빠르게 서둘렀다. 타이완 또한 국내의 제조업 기반이 빠르게 해외에 유출되면서 이런 변화에 동참하려 하였으나, 이미 인근지역에 경쟁상대가 많은 상황이어서 변화의 속도는 빠르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
마지막 네 번째 시도는 제조업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것은 홍콩이었다. 홍콩은 동아시아의 다른 NIEs(신흥공업경제) 세나라와는 상황이 다소 달랐는데, 이들 세나라에서 권위주의적 정부를 중심으로 선별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산업정책이 시행되었던 반면, 홍콩의 식민지 정부는 자유개방형 정책을 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산업구조를 정책적으로 전환하기 어려운데다가, 홍콩은 중국대륙과 동남아시아 인근 지역으로부터 계속 낮은 임금의 노동력이 계속 충원되었기 때문에 노동집약적 제조업으로부터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방향의 변화가 나타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홍콩을 염두에 두고 선전, 주하이, 산토우 등에 경제특구를 설치한 중국의 정책과 맞물려 홍콩의 생산거점을 대륙으로 이전하고, 홍콩은 그 생산거점에서 생산된 상품의 판매지이자 금융중심지로 전환하는 것이 상당히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홍콩의 제조업 공장들은 빠른 속도로 배후지역인 광뚱성으로 이전되었다. 1990년대 중반이 되면, 홍콩 제조업 자본이 광뚱성에서 고용한 노동자수가 300만 명인데 비해, 홍콩의 제조업 노동자수가 70만 명으로 줄어들 정도로 홍콩의 제조업 기반은 축소되어, 홍콩 제조업의 공동화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홍콩 노동자중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였다. 홍콩에 이어 타이완에서도 경제의 골간을 이루는 중소자본의 중국유출이 진행되었다. 이들은 주로 타이완 토착민의 원적지인 푸젠성에 집중투자를 하였고, 중국정부 또한 이를 유치하기 위해 푸젠성의 샤먼을 경제특구로 지정하였다. 타이완의 중국투자는 정치적 요인 때문에 제한되어 있어, 상당히 많은 투자가 홍콩을 경유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타이완 정부는 1980년대 말 타이완 자본의 해외투자의 통로를 동남아로 유인하기 위한 남진정책을 펴고, 중국본토에 대한 투자에 대해서는 투자규모의 제한이나 핵심 기술분야의 투자제한 등의 조치를 시행했으나, 실효성이 적었고, 중국으로 진출하는 타이완 자본의 흐름을 막지는 못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타이완 자본이 제 3국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중국에 투자하는 액수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들 화교자본은 주로 섬유와 전자 등의 노동집약적 산업부문에 투자되었으며, 투자 지역도 광뚱성과 푸젠성에 집중되었다. 광뚱과 푸젠은 중국의 전통적인 산업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 화교자본이 이 지역에 투자할 때 합자기업 형태를 취하더라도 중국의 현지공장과 합자하는 경우 외에 많은 사례에서는 파트너인 현지 정부나 중국기업이 토지나 공장건물 등을 제공하는 동시에 현지 농촌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할 책임을 지는 반면, 화교파트너 측이 필요한 설비와 원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분담하는 형태의 합자가 많았다. 이들 화교자본은 원료공급과 제품판매의 통로를 모두 해외에 두고서 중국현지는 가공생산을 맡는 중간기지로 활용하였다. 이 때문에 화교자본이 투자한 중국의 남쪽 두 성은 중국전체 경제구조와는 단절된 상태로, 화교자본이 이미 편입되어 있던 동아시아 내의 분업구조에 빠르게 편입되어 갔다.

개방정책의 심화와 중심부 자본 진출의 증가

화교자본 중심의 외국인 직접투자에 변화가 생긴 계기는 1992년이었다. 이 해에 떵샤오핑의 ‘남순강화’를 통해 대외개방 정책의 심화가 천명되고, 중국의 경제구조가 더욱 자본주의적으로 전환되면서 화교자본 이외의 중심부의 초국적 자본의 진출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투자분야도 변화했다. 화교자본의 투자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와 더불어 중심부 국가중 일본과 미국의 투자가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유럽국가의 투자도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상하이와 따렌이 새로운 투자의 중심지로 중요성이 커지기 시작한 것도 이런 변화와 맞물린다. 외국자본의 진출 분야에도 변화가 생겨 과거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여 가공공업에 초점을 맞추던 섬유와 전자분야를 벗어나 중국의 내수시장을 목표로 한 투자가 늘어나고, 선도산업 분야의 진출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90년대 말이 되면, 일례로 승용차의 68%, 엘리베이터의 70%, 컬러브라운관의 65%, 이동통신설비의 100%를 중심부 국가의 초국적기업이 지배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 중국에 투자를 확대한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과 미국으로, 양국이 대체로 각각 중국내 외국인 직접투자의 8-1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런데 그 이면의 다양한 측면을 함께 고려하여 1995년 정도까지의 추세를 살펴보면 일본자본의 중국진출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이면은 일본자본의 동남아시아 진출의 과정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일본자본의 중국진출의 전체상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려면 공식적 투자 액수 이외의 여러 조건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첫째 원조와 차관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단일국가로서 중국에 대한 최대의 차관공여국이다. 이 차관은 ODA 같은 원조와 상업차관이라는 형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여되고 있고, 주로 하부구조 건설에 투자되고 있는데, 동아시아 다른 자본주의국가들의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일본차관의 공여는 이후 경제구조를 일본의존적으로 만드는데 상당히 기여하게 된다. 일본이 제공한 차관을 합하게 되면 중국이 사용한 외자액중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17%로 늘어나게 된다. 둘째 홍콩을 통한 간접투자를 살펴보아야 한다. 홍콩의 제조업 공동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홍콩에 대한 제조업 직접투자의 대부분은 중국을 목표로 한 간접투자로 볼 수 있는데, 1990년대 들어 홍콩에 대한 제조업 투자에서 일본은 1위 자리를 차지하였다. 중국을 겨냥한 홍콩 지역본부 개설에서도 1990년대 들어 일본 지역본부의 성장속도는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홍콩의 무역구조에서도 이런 특징은 잘 드러난다. 셋째는 일본 종합상사와 은행의 역할을 고려할 수 있다. 중소규모의 일본자본의 해외진출에서 해외 투자선을 확보하고 현지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종합상사와 일본은행이 수행한 역할은 동남아의 경우 잘 알려져 있다. 같은 방식의 역할이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종합상사와 일본은행의 중국 진출 속도는 매우 빠르게 나타난다. 네 번째는 다층적 하청체계와 무역구조의 문제이다. 일본 자본이 진출하면서 투자상대국과 일본 사이에는 수직적인 하청구조가 형성되는데, 이는 중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일본으로부터 정밀기계류의 수입이 크게 증가하는 반면, 중국으로부터 일반기계와 중간재 및 의류의 위탁생산에 의한 수입이 증가하는 구조가 등장하고 있고, 이에 따라 일본은 중국의 가장 비중이 큰 무역상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중심부 국가 자본의 중국투자의 특징을 살펴보면 미국이나 유럽의 중국투자의 경우 초대형 초국적 기업이 중국시장을 겨냥해 자회사를 설립하는 형태로 진출하는 것이 주요한 형태를 이루는 반면, 일본의 경우 초대형 기업부터 소형기업까지 고르게 진출하고 있고, 제조업 생산에 투자하는 형태로 투자의 방향이 집중되고 있으며, 이들 기업 대부분이 기업내 거래나 산업내 거래 형태로 동아시아 전체에 걸친 국제적 분업 구조 속에서 생산의 한 고리로서 중국을 이용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세계자본의 동향의 변화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세계의 외국인직접투자의 흐름에는 두 가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외국인 직접투자의 방향이 중심부로 집중되는 반면, 발전도상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고, 둘째는 외국인직접투자의 형태가 초국경적 인수․합병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금융자본의 투자형태가 증권투자나 은행대출보다 위험성이 적고 안전한 투자로서 인수․합병의 방향으로 전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요한 투자처는 미국이며, 주요 투자자는 EU로, 미국은 세계 인수․합병 시장의 32%를 차지하였고, 이 투자의 35.3%는 EU에 의한 투자였다. 주요 투자 영역은 IT 관련 정보통신 분야와 금융분야이며, 이는 TNC 순위에도 변화를 유발하여 2000년의 상위 초국적 기업 25개중 10개가 IT 산업으로 전년보다 5개가 더 증가하였다.
1998년 세계적인 인수합병 시장의 규모는 2조 4천억 달러였는데, 1999년 이는 3조 5천억 달러로 증가하였으며, 그중 초국적기업에 의한 인수합병액은 75% 증가하였다. 1999년 중심부 국가 사이의 외국인직접투자는 그 전년도의 4810억 달러에서 6360억 달러로 증가한 반면, 발전도상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는 1790억 달러에서 2080억 달러로 그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다. 1996년에 발전도상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의 증가가 34%였던 것에 비하면 이는 투자가 상대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인 외국인 직접투자 중 발전도상국에 대한 투자의 비중은 1994년의 41%에서 1999년에는 21%로, 2000년에는 19%로 줄어들었으며, 이 수치는 발전도상국이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낮은 것이다.
발전도상국 중 외국인 직접투자의 감소의 타격을 가장 크게 입은 것은 동남아시아 국가로, 특히 이들 국가에 대한 일본자본의 투자가 정체하거나 감소하면서, 아시아 발전도상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중 동남아시아 국가의 비중이 1990년대 중반의 30%에서 2000년에는 10%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동아시아 발전도상국에서 외국인직접투자는 중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초국경적 인수․합병의 형태로 전환되어, 금융위기를 겪은 5개국이 아시아 발전도상국 인수합병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6년의 19%에서 1998년에는 68%로 증가하였으며, 아시아 발전도상국의 인수․합병액은 1994-96년 연평균 70억 달러 수준에서 1997-99년에는 연평균 200억 달러 수준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중국에 대한 투자 동향의 변화

이처럼 세계적으로, 그리고 동아시아 내에서 인수합병이 새로운 투자의 형태로 전환되면서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의 추세도 둔화하고 있다. 중국의 WTO 가입은 이런 변화된 조건에 따라 둔화한 외국인 투자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대외개방의 수준을 더욱 높이려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중국은 이를 위해 국내 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와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 기간투자자의 진입의 허용 등 자본시장의 자유화를 위한 단계적 조치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의 형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중국 측과 외국자본 사이의 합자 형태의 투자가 줄어드는 반면 외국자본의 100% 지분에 의한 독자(獨資) 형태의 투자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한 측면이다. 1980년대에 독자기업의 비중은 매우 낮아 1986년에는 투자액의 1.2%였고, 1990년에는 늘어났지만 아직 1/4 선인 25.6%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1999년에는 독자기업 투자액의 비중이 48.5%까지 늘어났다. 이와 더불어 기존에 합자형태로 투자한 외국 기업들의 경우도 증자를 통해 지분을 확대하여 경영권을 장악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P&G나 지멘스는 최근 경영권 장악을 위한 지분확대 투자를 시행하였는데, 2000년 이후 중국에 대한 신규 외국인 직접투자 중 경영권 확보를 위한 기존 합자기업의 증자의 비중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런 변화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2000년과 2001년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에는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는데, 타이완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투자가 증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타이완의 경우 타이완으로부터 직접투자가 늘어나는 외에 카리브해의 버진아일랜드를 우회하는 투자가 대대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의 경우 1995년 이후 달러강세의 ‘역플라자’와 아시아 금융위기로 일본의 대중국 투자가 대폭 줄어든 바 있는데, 일본의 전체적인 해외투자가 정체상태임에도 불구하고 2001년부터 중국에 대한 투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이미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져 있고, 이를 매개로 세계경제의 전반적 부침으로부터 상당히 민감한 영향을 받는 구조로 전환되었다. 기업의 투자자금원이 기업내 축적분 외에 국유기업의 경우는 전적으로 국가은행의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비국유기업의 경우는 은행차입이 어렵기 때문에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 때문에 외국인 직접투자의 증감은 중국경제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대외적인 기술의존도가 상당히 높은데다 첨단부문에 대한 외국기업의 지배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외국인 직접투자의 유치를 위해 자본시장을 점차 개방하지 않은 수 없는 상황은 향후 중국의 경제․사회구조에 적지 않은 불안정성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겉보기에 고양이가 쥐는 잘 잡았는지 모르지만 이제 안방을 호령하게 될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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