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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6.26호

근골격계 직업병이 발병하는 원인은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다

배영희 | 민중의료연합 노동자건강사업단
“248명이 근골격계 직업병 유소견자로 판명! 이중 78명이 집단 산재요양중이다.”

남쪽의 거제 대우조선에서 배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2001년에 급증하는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검진결과 248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직업병 유소견자라는 판정을 받았다. 도대체 248명이나 되는 집단적인 직업병, 근골격계 라는 이름도 어려운 직업병의 위험수준은 어떠한 것인가? 온 몸이 당기는 어깨, 허리, 팔의 통증을 펴 볼 여유 없이 몸이 딸린다는 동료의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안되었는데 특정한 외상도 없이 어느 날 쓰러져 비명횡사하였다면 그것이 바로 겉으로는 멀쩡한 듯 보이지만 속으로 골병드는 근골격계 직업병이다. 이것은 특정한 업종, 특정한 작업 자세, 특정한 작업 환경에서만 발병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업종, 어떠한 작업환경에서도 발병할 수 있는 직업병이다.
거대한 배를 만드는 대우조선 노동자들 사이에서 근골격계 직업병이 급작스럽게 늘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거기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게 아니다. 대우조선은 이제 구조조정이후 더 이상 정규직을 뽑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2인 1조 작업을 1인 1조로 일하게 되었고, 그 덕에 80% 이상이 근골격계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 셋이 하던 작업을 둘이서 마치려면 그야말로 ‘씨게’ 몸을 놀려야 한다. 기계도 무리하게 가동하면 반드시 고장난다. 높은 노동강도에 반복적인 몸놀림이라면 당연히 사람 몸에 무리가 오고, 쉬거나 치료하지 않으면 골병이 날 것은 뻔한 일이다. 대우조선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바로 그 ‘골병’에 걸렸다.
죽지 않으려면 당연히 쉬어야 하고 치료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회사측의 반응은 놀랍다. 노동조합 실태조사부터 집단요양신청까지 온갖 회유와 협박에 폭력까지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나섰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해있는 노동자의 일일동향까지 조사하여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는지 통제하려 들고 있다. 뿐만 아니다. 근골격계 직업병에 단호히 대처하려고 나선 노동조합 간부를 폭행하더니만, 그것도 모자라 급기야 구속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이를 무산하려고 한다.

대우자본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이나 하청문제, 노동강도강화, 저임금 장시간으로 확보해온 조선수주능력, 이것이 수년 째 계속된 사망재해로 위태위태한 상태임을. 근골격계 직업병은 다른 직업병처럼 개별적인 보상수준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인력을 충원하고 노동강도를 완급하지 않고서는 계속 양산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근골격계로 드러나듯, 바로 노동자들의 삶과 목숨을 빼앗는 산재 직업병이 급증하는 근본원인이 구조조정과 노동강도강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우조선노동조합의 248명의 집단적 요양신청(원진레이온 이후 최대규모임)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 되는 것이다.
대우자본은 노동조합의 이번 투쟁으로 인력감축, 노동시간증대, 작업량증가, 휴식시간감축, 비정규직이나 하청증대 따위를 앞세운 현장통제의 고삐를 놓치지 않으려고 총공격하고 있다. 대우조선노동조합을 위시한 금속산업연맹과 노동․사회단체들은 이번 투쟁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벌써부터 대우조선을 포함한 조선공업협회에서는 수억의 비용을 들여가며 연구조사용역을 산업의학회에 의뢰했다. 근골격계 직업병의 원인과 규정을 엄격히 해서 근골격계 직업병 문제를 축소하고 대우조선만의 단발적인 문제로 일축하려는 것이다.

지금도 노동자들의 몸뚱이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대우조선노동조합은 근골격계 직업병 판정을 받은 나머지 172명의 건강 요양을 보장하고, 사업장에서 강제역학조사를 실시할 것이며, 노조탄압에 앞장선 책임자를 처벌하고, 지도부를 석방할 것이며,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불법파견 저지까지 내세우고 있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구조조정을 저지해서 노동강도 강화를 저지하고,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한다. 어느 것 하나 물러설 수 없는 당면한 과제다. 우리는 이번 대우조선 투쟁을 계기로 현장통제력을 획득하여 노동강도강화를 저지하고 근골격계 직업병을 근절하는 새로운 투쟁전선을 형성시켜야 한다.
집단요양신청과 4월4일 회사측의 폭력 만행으로 비롯한 이번 투쟁이 거제라는 먼 지역의 투쟁으로 그치지 않도록 대우조선노동조합은 5월 9일부터 을지로 대우조선해양(주) 본사 앞으로 상경농성투쟁 하였다. 지금은 대우조선에서 한 분의 노동자가 상경투쟁하고 있지만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다. 이번 투쟁을 계기로 노동자를 죽이는데 혈안이 된 자본의 만행을 중단시키고, 비명횡사의 슬픔이 노동자의 현실이 되지 않도록 쉼 없이 투쟁에 나서야 할 것이다. PSSP


※ 근골격계 질환이란 특정 신체 부위 및 근육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근육, 관절, 혈관, 신경 등에 미세한 손상이 발생하여 만성적인 건강장해를 말한다. 목, 어깨, 팔, 손목 및 손가락 등 상지(上肢)에 나타나는데,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 연구원(NIOSH)은 누적 외상성 장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적어도 1주일 이상 또는 과거 1년 간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이상 2)상지의 관절 부위(목, 어깨, 팔꿈치 및 손목)에서 지속되는 하나 이상의 증상들(통증, 쑤시는 느낌, 뻣뻣함, 화끈거리는 느낌, 무감각 또는 찌릿찌릿함)이 존재하고, 3) 동일한 신체부위에 유사 질병과 사고 병력이 없어야 하고, 증상은 현재의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발병 처음에는 작업 도중 통증과 피로감을 느끼는 정도지만, 병이 진행되면 휴식시간에도 통증이 지속되고, 결국 자다가도 잠이 깰 정도로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린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근육장해, 관절부위 조직 장해, 신경장해 및 혈관 장해 등 급속하게 복합적인 질병으로 진전된다.
작업형태로 보면 작업이 별 위험해 보이지도 않고, 크게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 비교적 단순 반복작업이나 움직임이 없는 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산재환자의 질환 관리비용 대부분이 이것이며, 40% 이상의 노동자가 이 질환 때문에 고통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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