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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7-8.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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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시장 개방, 무엇이 문제인가

박주영 | 사회진보연대 기자,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의료시장 개방, 무엇이 문제인가?

박주영(사회진보연대 기자,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작년 11월 열린 제4차 WTO각료회의에서는 뉴라운드 출범과 관련하여 농업, 서비스, UR 합의사항 이행문제, 반덤핑협정 개정문제 등 9개 분야별 협상을 거치기로 합의했다. ‘도하개발의제(Doha Development Agenda)'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협상은 2005년 1월1일 완료, 2006년 본격 시행을 목표로 한다. 이에 대비하여, 우리나라 의료계 역시 지난 6개월 동안 정말 분주히 움직였다. 각 의료 관련단체별로 간담회와 토론회를 진행하여 의료시장 개방에 대한 대응책 마련과 생존 방안을 고민했다.
WTO도하개발의제 협상이 지난 7월 15일부터 26일까지 제네바에서 열렸다. 정부협상단을 비롯하여 각 분야의 대책위와 비공식대표들을 현지로 보내 각 국의 협상동향을 탐색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 쟁점마다 관련단체별로 이해관계를 달리하고 있다. 심지어는 같은 병원조차 병원 규모 별로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반응은 의료시장 개방을 전제로, 개방에 따른 생존전략 모색의 과정에만 국한된다는 것이 문제다. 정작, 의료시장 개방 자체가 몰고 올 사회적 영향과 파장은 분석하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남을지 호들갑스레 떠드는 것보다, 의료시장 개방 자체의 사회적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WTO DDA 출범, 보건의료부문에 대한 개방 확대

도하개발의제에서 진행되는 협상의제 중 하나인 서비스협정(이하 GATS)은 기설정의제(Built-in Agenda)로서 2000년 2월부터 후속협상이 시작되었다. 지난 2001년 3월에 끝난 1차 협상에서는 협상의 범위와 방식, 일정에 대한 가이드라인 작성, 협상준비작업이 중점 논의되었으며, 서비스 협상은 어떤 분야도 사전에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세워졌다. 이번 제4차 WTO 각료회의에서도 각 국은 별다른 이견 없이 1차 협상의 내용에 만족을 나타냈다. 이와 함께, 2002년 6월 30일까지 서비스분야 개방 요구사항을 제출하고, 2003년 3월 31일까지 양허안을 마련하는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서비스협상에서 다루는 주요대상은 12개 분야에 이른다. 과거에 서비스는 비교역재로 간주되어 이에 대한 다자간 무역규범이 존재하지 않았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서비스분야의 국제교역을 다루는 최초의 구속적 다자간 규범인 GATS가 제정됨에 따라 1995년 WTO출범이후부터 정식 협상의제로 채택된 것이다.
사실 도하개발의제의 출범이 갖는 의미는 WTO체제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서 탄생한 세계무역기구(WTO)는 공산품만의 교역을 다뤘던 GATT와 다르게, 농업 및 지적재산권 같은 새로운 영역까지 규제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뿐 아니라, 자유무역의 규칙을 위반하는 국가에 대해 곧바로 ‘무역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명실상부한 세계화체제의 지휘자로 자임하고 나섰다.
이번 4차 WTO각료회의에서, 미국은 우루과이라운드의 성과를 그대로 유지하고 농업, 서비스분야의 개방 폭을 확대하기 위한 추가적인 협상을 진척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미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해 값싼 철강, 자동차등의 공산품이 대량으로 수입되는 것을 제어할 수 있는 반덤핑법과 제3세계의 주요 수출 품목인 섬유․의류에 대한 수입할당제 유지 등 자국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입지를 상당수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도하개발의제의 출범으로 공공부문에 대한 개방 폭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2002년 6월 30일까지 확정한 각국의 양허안을 놓고, ‘우리는 이만큼 개방할 테니 너희도 이만큼 개방하라’는 협상뿐이다.







뿐만 아니다. ‘다자무역체제와 함께 지역무역협정이 전세계 무역자유화의 토대로서 중요하다’는 내용이 선언문에 포함되면서 양자간 혹은 지역무역협정 체결은 더욱 가속할 전망이다. 결국 미국은 자신이 취할 것을 대부분 관철시킨 셈이 되었다. 반면, 개도국을 비롯한 남반구 국가들에게 돌아간 혜택은 고작 선언문에 들어간 문구(‘자유무역의 혜택이 개도국과 최빈국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몇 줄뿐이었다.

누구를 위한 의료시장 개방인가

WTO는 교육과 보건의료, 상수도를 포함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공격을 강화해 왔다. 미국 서비스산업연맹은 해외시장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 운운하며 GATS협상에 보건의료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한 미국 공공교육에 개입한 거대기업들은 교육시장의 자유화가 서비스협정 후속협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무역기구들이 협상의제에 보건의료를 포함시키자는 주장은 공공서비스인 보건의료 자체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면서 확대되고 있다. 즉, ‘낮은 질의 공적 서비스’로는 더 이상 각 국 국민의 수요와 욕구를 해소할 수 없으며 이를 뒷받침할 만큼의 국가적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건의료라는 공공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민영화하여 경쟁을 통해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가의 공적 재정지출을 감소시키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World Bank는 보건의료분야의 민영화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예들을 제시한다.
▷ 보건의료비는 급증하는데 반하여 정부의 가용자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
▷ 생산적 분야에 대한 투자 압력의 증대로 보건의료에 대한 정부투자가 불가피하게 축소될 수밖에 없는 현실
▷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간의료비지출이 정부가 담당하는 보건의료비 지출을 능가하는데, 특히 이러한 현상은 저개발국에서 두드러짐
▷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공공의료보다는 비용을 지불하는 민간의료를 사람들이 선호하는 현실
▷ 민간분야는 정치적․행정적 제약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
▷ 보건의료 민영화의 확대는 정부지출을 감소시키며, 그로 인하여 정부는 빈민들에 대한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됨
▷ 경쟁과 유인과 같은 시장기제의 도입은 서비스 질의 향상을 초래할 수 있을 것임

보건의료서비스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민영화는 역사적으로 서구복지국가모델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실패’에 의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부정하는 형태로, 즉, 재원마련과 서비스 제공을 정부가 직접 담당하는 것은 부당하며, 정부는 민간이 적절하게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제한적인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해졌다. 민영화의 논리가 적극적으로 지지 받자, 보건의료 분야는 자연스럽게 경쟁체제 구축을 거쳐 ‘세계 시장’에 편입되어 버린다.
흔히 공공부문이라고 하면, 통신, 교통 등의 기간산업 등 생산의 일반 조건을 담당하는 공공부문 뿐만 아니라, 교육, 보건의료, 복지부문을 비롯한 노동력의 재생산도 포함한다. 따라서 공공부문을 매개로 하는 노동력의 재생산이란 공공부문 일반의 기능과 다르지 않다. 즉, 궁극적으로는 독점자본의 이윤증식에 복무하면서도, 그 형태는 이윤원리에 의한 지배형식을 벗어나서 보편적 서비스의 급여형태를 취한다. 이로써 자본의 전일적 지배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독점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윤요구에 부응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배원리가 직접 적용될 수 없는 영역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이 독점자본이 공공부문을 거부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그런데 이제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함께 공공부문을 공격하는 것은 결국 이들 영역을 사적 이윤원리의 직접적인 지배 하에 돌려놓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공공부문에 대한 자본의 공세는 공기업의 민영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교육, 의료, 연금 등 사회보장과 공공서비스를 재편해 온 역사였다. 이제 서비스 시장개방을 통해 이들의 공세는 더욱 본격화되면서,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 논리는 국내 독점자본들뿐만 아니라, 더 넓은 시장을 개척하는 데 혈안이 된 초국적 자본과 WTO에게 새로운 시장 영역을 확장하는 무기가 되었다.
교육과 보건의료 부문에 대한 지출 규모만 봐도 그렇다. 재정 규모면에서 우리나라는 1997년 기준으로 GDP의 6.7%만을 보건의료부문에 지출하지만, 이 취약한 공적 의료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쏟아지는 국민의료비 규모는 약 3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향후 6년간 보험재정안정을 위한 제도조정비용(transition costs)으로만 약 25조원에 이르는 국가재정이 투입될 전망이라고 하니, 그 자본의 규모와 시장의 크기 면에서도 의료분야는 단연 군침 도는 대상이다.

의료시장 개방을 위한 핵심적 조치

의료시장 개방과 맞물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제반 규제완화 조치들은 영리법인 인정, 건강보험시장 개방, 요양기관 강제지정 철폐 등의 내용을 핵심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일련의 이 제도개정에 대한 압력의 증가는 보건의료체계의 전면적 상업화와, 사회보험으로 존재하는 건강보험체계를 민영화시키는 강력한 동인이 되면서, 의료체계 자체를 금융화시키는 양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1. 의료법 개정 : 의료기관 비영리법인→영리법인화

의료서비스 시장개방과 관련해서는 가장 먼저 대두되고 있는 것이 의료기관에 대한 비영리법인 문제이다. 지난 7월 10일 조선일보에는 “복지부 추진, 병․의원도 ‘營利법인’된다 - 이르면 내년부터 민간자본으로 의료기관설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병․의원 등 의료기관을 ‘영리(營利)법인’으로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추진돼 이르면 내년부터 개인의 의료기관 투자와 ‘주식회사형(型) 의료기관’설립이 자유화될 전망이라는 내용이었다.
의료시장 개방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외국의료기관과 인력의 국내진출에 따른 의료법인 설립조건 완화 및 영업이익의 해외송금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상은 당연한 것이다. 초기단계에서 외국의료기관의 국내 진입은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는 국내병원이 선진국의 자본, 의료정보, 병원경영기법 등을 끌어들이는 합작투자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때, 문제는 의료법 30조에 규정된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 불허 조항이다.
의료법상 의료기관의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외국병원자본들은 한국 내 병원에 투자한 이윤을 본국으로 송환할 수 없는데, 이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외국자본에 대한 투자자산의 송금 보장은 투자협정에서 가장 대표적인 요구사항 중 하나다. 그들에게 회수되지 못하는 투자는 당연히 무가치한 셈이다 보니, 외자유치를 목놓아 외치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연스레 '의료기관 비영리법인' 규정에 손을 댄다.
의료서비스 분야의 대외송금이 허용될 경우, 외국자본의 진입이 가장 먼저 예상되는 분야는 성형외과, 치열교정 등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다. 의료보험이 적용된 분야는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돼 보험수가가 차별적이 되고 난 다음일 것이다. 그래야 가격경쟁력에서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2. 국민건강보험법 개정 :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계약제도

외국의료기관의 국내 진입방식은 중장기적으로 외국유명병원의 분원형태, 미국병원기업의 체인병원 형태로 국내 의료인을 고용해 진료와 병원경영까지 떠맡는 방식이 유력하다. 이와 함께 외국자본이 병원을 구입해 국내의료인에게 사용료를 받고 대여하는 방안도 예상된다. 이때, 외국의료기관의 주요 투자 및 진입분야는 각종 건강검진 및 증진시설, 장기요양시설, 암․심혈관, 장기이식․시험관아기센터와 아동․여성․안과․치과병원 등 주로 고도의 의료기술이 필요하고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분야일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 자본들은 비보험기관으로 일반수가를 받아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민간의보 활성화를 통해 매출을 더욱 늘리려 할 것이다. 이렇게 외국자본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도 현행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역시 문제가 된다. 건강보험 제도에서 요양기관 확보는 건강보험 운영에 필수적인 조건으로, 당연지정제도가 계약제로 바뀌기 위해서는 국가가 직영하거나 국가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공공의료기관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급여율이 높아 민간의료기관이 굳이 건강보험 밖으로 나갈 동인(動因)이 없어야 한다.
이상은 말하자면, 이미 수익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마음대로 이윤을 뽑아낼 수 없었던 걸림돌이었던 셈이다. 모든 의료기관이 공보험 적용기관인 마당에,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현재, 이 조항은 이미 대한의사협회가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 헌법 11조 평등권, 헌법 15조 직업의 자유, 헌법 제22조 학문의 자유, 헌법 제23조 재산권의 보장, 헌법 제119조 경제질서의 기본 등 헌법이 정하는 기본권을 침해하였다며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 제1항은 헌법에 위배된다”라는 위헌심판소송을 걸어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이다. 최근 들어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이 공공연히 거론되면서,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 스스로 이 조항을 수정할 뜻을 보이고 있다. “올해부터 시작될 DDA협상이 3년 과정을 거쳐 타결될 경우, 이미 이루어진 보험시장 개방과 함께 의료시장 개방 확대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국내에 진출할 외국 의료법인 등을 국내 의료체계 내에 끌어들이려면 거기에 맞는 의료보험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재경부의 입장이다. 즉 자국 내 민간보험사와 의료보험 계약을 맺고 있는 미국 의료법인이 국내에 들어오면 건강보험(공보험)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므로, 우리도 미국처럼 민간의료보험 체제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주간동아 2002.4.11)는 것이다. 공보험의 요양기관 계약제도가 시행될 경우 병원들은 당연히 수가 낮은 건강보험(공보험)을 계약하지 않으려 할테고, 민간의료보험과 계약하면서 보험적용이 안 되는 수가 높은 의료서비스만을 제공하려 할 것이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계약지정제도로 바뀌게 되면, 이것이 민간보험 활성화의 전환점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3. 보험업법 개정: 민간의료보험의 제도적 기반 구축

6월 16일, 재정경제부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표하여,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슬그머니 내비쳤다. 그러나 이것은 갑작스레 발표된 것은 아니었으며 작년 말부터 꾸준히 그 흐름을 이어온 것이다. 2001년 12월 14일 보건복지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업무전담(Task Force)팀은 <국민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협력을 통한 의료보장체계의 개선방안>이라는 안을 발표했다가 시민사회단체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자 유보입장으로 선회했다. 그러다 다시 올해 3월17일, 이번에는 재정경부가 갑자기 민간의료보험의 조기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그 후 OECD가 지난 5월 9일 보건복지부에 대해, 국내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16개 권고사항을 통해 비급여 부분에 대한 민간보험과 의료저축계정을 도입해 의료비 지출을 억제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이다. 더불어, OECD는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선 외부평가와 의료기관 자발적 규제 등을 통해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밝혀, 과도한 규제를 정비할 것도 권고한 바 있다.
건강부문 민간보험 시장은 1980년대 초에 개발된 암보험을 중심으로 발달해오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보충보험성격의 의료비보장보험이 도입되는 추세다. 시장 규모만 해도 보험료를 기준으로 2000년 현재 3조 816억원을 기록했을 정도다. 보험업계는 기존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민간보험 활성화를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을 기대하면서 상품 개발을 위한 각종 정보와 민간보험 가입시 세제상 소득공제 혜택을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은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공적 연금체계를 축소하고 퇴직금제도를 철폐하며, 기업연금과 개인연금보험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경쟁촉진과 자율성 확대, 보험제도의 선진화라는 명목하에 정부가 노골적으로 이들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입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에서 밝히고 있는 방카슈랑스의 도입과 재벌의 금융업 진출, 기업연금제 도입 및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은 자본에게 새로운 경쟁체제를 예고하는 것이다. 그 결과 탓에 소수 금융복합기업으로의 자본집중, 시장지배력의 확대가 발생하게 된다. 보험업법 개정안에 담긴 민간의료보험 도입은 이러한 금융화 전략의 일부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의료시장 개방이 가져올 사회적 문제점

1. 의료시스템의 금융화, 투기화

민간의료기관이 모든 의료기관에서 90%를 차지하는, 철저하게 이윤 중심의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서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국민건강 자체를 아예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 한편, 의료기관 자체가 기업형으로 전환되고 운영 자체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심화될 것이다. 특히나 의료기관 영리법인화는 곧 외국투자자의 해외송금을 허용한다는 것인데,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 투자 유치 및 해외송금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외국인 투자 자산의 송금을 자유로이 보장함으로써 금융․주식시장에서의 단기적인 투기를 통해서건, 인수․합병을 통한 기업 이윤이건 투자자산의 국경간 이동이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주식회사형 의료기관’의 등장을 예고한다. 투기성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국내 경제의 불안정성은 가중되는 반면, 해외 자본의 재투자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의료기관이 전면적인 영리목적으로 운영될 때, 주식회사형 의료기관의 등장은 불가피하며 그 자체로 의료시스템 자체의 금융화, 단기적 투기로 인해 보건의료산업의 불안정성이 가속화된다는 것은 상상만이 아니다. 특히나 이것이 전 국민의 기초생활과 생존에 직결된 보건의료 분야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 민간의료보험 도입으로 인한 사회보험체계 붕괴


작년 12월 보건복지부 안에 따르면,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은 비용효과성을 기준으로 건강보험 급여범위의 대폭적인 축소를 바탕에 깔고 있다. ‘비용효과성’을 기준으로 공보험과 민간보험의 범위 여부를 판단한다면, 중증질환의 경우 ‘비용효과성’이 높은 서비스의 범위는 매우 축소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중증 만성질환은 현대의학에서 완치할 수 있는, 즉 비용에 따른 치료 효과가 높은 질환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실제로 제공되는 서비스는 생명을 연장하거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보조적 서비스일 뿐이다. 또한, 이러한 서비스의 대부분이 첨단장비와 숙련된 인력이 필수인 고가의 서비스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민간 의보 지지자들은 기본적 의료서비스는 건강보험을 통해 제공하고 효과가 높은 질환의 경우 민간의료보험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한다. 자연스럽게 건강보험의 급여범위가 축소되며 건강보험의 급여영역은 예방접종, 공중보건서비스, 급성전염성 질환치료 등의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 결국, 건강보험은 그저 명목만 남게된다. 대신 민간의료보험이 붕괴된 사회보험을 대신하려 들 것이다.

3. 의료비 부담증가, 의료접근권의 양극화

사회보험이나 조세방식 등 어떠한 의료제도를 운용하건 간에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국민의료비의 73%를 공적재정으로 부담하고 있다. 즉, 병이 나면 총 진료비의 3/4 정도를 사회보험이 부담하거나 조세로 운영되는 공공의료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머지 1/4만 환자본인이 비용을 직접 지불하면 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에 대한 공적재정 부담비율은 OECD 국가 중 최저수준으로 진료비의 37.8%만 공적재정을 통하여 부담될 뿐, 나머지 60% 이상은 환자본인이 부담(민간보험 19.3%, 개인직접지불 43.0%)해야 한다.
보험이란, 의료서비스가 갖는 사건발생의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예측하지 못한 질병치료에 드는 비싼 의료서비스 비용 부담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적 파국을 예방하기 위한 위험분담(risk-pooling) 방식이다. 그 중 위험분담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사회보험체계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는 방식으로는 사회보험 급여범위에서 재난성 질환들이 제외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료보장체계의 위험분담 기능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동일한 급여 수준을 제공받으려면 더 많은 보험료(공보험료와 민간보험료 이중으로 부담)를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돈이 없는 자는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보니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거나 사망하게 되는 불행이 속출하고 만다.

4. 개인병력 관리를 통한 계층화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10일 <국민건강 증진 종합계획>에서, 우선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 실태조사를 거쳐 질환별 등록체계(D/B)를 구축하고 보건소를 통한 방문보건서비스를 대폭 강화할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은 민간에서 이미 추진되고 있었다.
지난 5월 9일 삼성SDS와 (주)엠네트워크코리아가 상호제휴, 병의원을 대상으로 한 건강검진 및 솔루션 사업과 제반시스템구축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추진하는 건강검진 및 검사정보 시스템은 전국 병의원에서 혈액, 소변, 체액, 생체조직 등의 각종 검체를 수거해 중앙의 검사전문시설(검사센터)에서 검사 실시, 그 결과를 전국 해당 병의원에 통보해주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의료 데이터센터에서 환자의 검사 또는 검진자료를 DB관리함으로써 전국 어느 병원에서나 환자병력을 손쉽게 파악하고 불필요한 검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험자본에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가!
이처럼 정확한 개인정보(의료정보까지)가 보험금융자본에게는 더욱 세련된 위험관리체계의 운용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이는 수익률을 최대한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반면, 개인적으로라도 자신과 가족의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려는 노동자․민중들에게 이것이 보험료인상, 보험가입 제한 등의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수익이 되지 않는 고비용의 질환자들은 아예 보험대상에서 제외시키거나 아니면 적용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만들테니 말이다.
결국 경제력을 못 갖춘 자는, 고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자신의 수명을 재촉할 수밖에 없고, 경제력을 갖춘 자라도 민간의료보험자본과 상업화된 의료기관에게 끊임없이 이윤을 가져다주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자본은 계속적인 정보화 작업을 통해 이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면서 계급화, 분절화 할 것이다.

앞서 말한 의료접근의 양극화와 개인정보의 통제관리는 결국 노동력 재생산의 전반적 과정에서 분절화 경향으로 드러난다. 노동력 재생산은 가장 포괄적으로 의식주 전반에 걸친 ‘생활의 재생산’을 의미하는데, 국민건강과 직접 관련된 보건의료체계의 시장화는 ‘소비의 양극화’와 정치적 ‘두 국민전략’의 영속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노동력 재생산을 담당하는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분절화 속에서 배제와 관리의 이중적 논리가 전면화되고, 이들에게 제공되는 몇몇 공적인 관리는 대부분의 경우, 노동력 재생산의 불안정을 제거하기보다 그것을 영속화하면서 저항에 대한 효과적 관리와 분할을 목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5. 의료기관 노동자들의 불안정화

오늘날 노동과정 재편 핵심은 ‘조직적 혁신’이며, 이를 통해 노동과정을 불안정하게 하고 노동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노사관계 안정은 금융팽창에 필수조건이며, 동시에 생산부문의 이윤율 하락은 끊임없는 노동시장 압박요인이 된다.
전근대적인 경영방식과 주먹구구식의 병원운영을 일삼아왔던 중소병원들의 경우, 의료시장 개방으로 합리적인 경영, 투명한 선진경영기법 따위의 도입 압박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이 할 것이다. 반면 외국자본이 투자했거나 이들과 합작한 의료기관의 경우, 소유와 경영의 분리, 병원구조의 수직적 통합을 거쳐, 법인구조의 기본적 틀을 유지하게 된다. 이들은 결국, 금융 형태를 띠는 자본가, 혹은 금리생활자의 이해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생산관계를 변형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 역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관리 및 조직혁명이 진행될 것이다. 기계화 및 자동화 등과 같은 기술적 혁신을 통해 모든 부문에 미숙련노동을 배치하게 될 것이고, 총괄적 품질관리/팀작업/배치전환 등을 통한 각종 조직적 혁신으로 모든 부문에서 미숙련 노동의 불안정화가 심화될 것이다.
지금도 근거 없는 병원위기설을 빌미로,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 탄압과 임금/ 고용조건에 대한 구조조정을 일삼는 상황에서, 의료시장 개방으로 인한 선진경영기법 도입 등은 또 다른 방식으로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무엇으로 싸울 것인가

이미 재정경제부는 수도권 지역에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지역 본부 유치를 위한 여건조성의 일환으로 외국인을 위한 교육, 주거, 의료, 문화를 포괄하는 생활환경 개선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를 위해 경제특구 지역에 외국병원 및 외국약국의 진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동북아 지역의 물류, 기업, 금융의 중심거점으로 발전시킨다는 기본청사진인 셈인데, 이에는 모든 외국인 투자유치 전략이 포함되어 있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단계별 개발 및 재원조달 방식 등 하드웨어적 요소와 외국인에게 우호적인 경영환경과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요소까지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병원의 국내의료시장 진입은 국내 병원들과의 접촉을 통해 제휴를 맺거나 지사를 세우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는데, 그 이전에는 초국적 의료자본의 진입과 이를 자유롭게 보장할 수 있도록 모든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료시장 개방이 갖는 정치, 경제적 맥락을 파악하고, 이를 저지하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민간의료보험 도입이나 이를 위한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 등은 각기 개별적으로 논의되거나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 아니다. 또한, 의료시장 개방으로 인한 국내 중소병원의 위기와 이를 완화시킬 정부의 병원 활성화방안 등은 개별 사업장이나 개별 노동조합에서 대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1980년대에 미국 자본주의가 전세계적인 금융적 팽창을 촉발시켰고 당시 이러한 금융적 팽창은 이른바 초국적 금융자본이 주도한 것처럼, 현재 제기되는 서비스 시장개방 문제 역시 이들이 새로운 시장을 찾으면서 전세계적 금융화 전략을 확대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연금기금, 증권 포트폴리오 투자 및 관리를 위한 뮤추얼펀드, 생명보험 및 그것을 보충하는 퇴직보험 등의 각종 기금들이 금융적 팽창의 강력한 행위자로 부상한 후, 월스트리트와 제3세계의 주식시장 등을 중심으로 금융적 팽창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보건의료부문을 비롯한 공공부문의 시장 개방을 더욱 확대하고 이를 자신의 이윤추구의 장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의료시장 개방을 중심으로, 의료기관 영리법인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폐지,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등은 서로 강력하게 맞물리면서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를 뿌리까지 흔들고 있고, 이는 결국 즉각적인 전민중의 건강권, 생존권 파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임박한 의료시장 개방에 맞서 의료체계의 상업화 반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금융화 반대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절실하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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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보건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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