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7-8.27호

6.13 지방선거 평가와 정치지형 분석

정책국 |
노동자․민중 운동의 예정된 침묵

우리는 현 정세를 인식하면서, ①지방자치제도가 실은 ‘지방분권화’의 명목 하에 중앙정부의 책임을 회피, 전가하여 지방정부의 생존을 ‘시장의 논리’에 종속시키는 것이고 ②이에 따라 초래되는 지방자치단체의 부패비리, 이권과 특혜 남발이 결국은 (지역) 민중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에서 그 기만성과 반민중성이 여실히 드러났으며 ③따라서 진보진영이 이번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단체를 장악하여 이미 파탄 난 지방자치제도와 이미 불가능해진 ‘지역정치’를 활성화, 실현시키겠다는 발상은 ‘정당하지만 불가능한’ 작전이라는 점을 주장하였다. 이에 우리는 이번 613 지방자치동시선거가 “지난 4월 투쟁의 패배를 가늠하는 가운데 민생파탄, 민주압살, 부패비리로 얼룩진 김대중 정권을 규탄하고, 온 민중을 도탄에 빠뜨린 신자유주의 개혁과 지역분할 정책에 대한 전국적 비판”의 장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6월 들어 대중투쟁 동력은 급격히 유실되었고 선거 공간 내외부를 가로지르는 전국적 쟁점 형성과 전선의 복구는 요원한 일이었다. 노동자․민중 운동 진영은 김대중 정권의 부정부패와 실정에 대해 전국적인 정치투쟁을 조직하지 못했고, 지방선거에서 역시 진보정당은 별다른 흐름을 창출하지 못한 채 ‘대중투쟁과 선거투쟁의 유기적 결합’과 ‘광범위한 선전선동’이라는 원칙을 이상(理想)으로 남겨두었다.
결과적으로 6월 정세-투쟁방향에 대한 인식의 불철저함과 지방선거에 대한 실용적 접근으로 인해 노동자․민중 운동은 상반기에 진행되었던 투쟁의 흐름을 조기에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중투쟁을 포기한 대가는 지배계급의 반동적 공세로 이어졌다. 한나라당의 보수적이고 퇴행적인 비판에 의해 김대중 정권에 대한 비판의 이니셔티브는 함몰되었고 지방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서해교전을 틈탄 반공․보수주의적 공격이 자행되었다. 노동자․민중의 최소한의 삶의 권리마저 보장하지 않겠다는 지배계급의 ‘합의’는 최저임금 현실화에 대한 요구를 기만했고 보험업법 개악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청계천 복원 사업’, ‘경제특구 외국기업 7년간 면세’,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 등이 연달아 제출되면서 금융세계화에 조응하는 세계도시의 청사진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진영 전반이 공유하듯 지방선거 평가를 자기중심적 해석으로 대체, 한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가 제출한 관점의 정당함을 사후적으로 재확인하면서 ‘6월 투쟁에서 드러난 노동자․민중 운동의 과오는 무엇이며 지방선거를 통하여 노동자․민중 운동 진영이 갈무리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방선거를 통해 일정하게 재편된 현 정세에 비추어 노동자․민중 운동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야말로 지방선거를 평가하는 올바른 관점이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모순의 심화와 김대중 정권의 몰락

‘아들 비리’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진 김대중 정권은 지방선거를 통해 그 최종적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금융비리와 부정부패의 만연은 김대중 정권의 최후의 보루였던 ‘개혁 세력으로서의 정치적 도덕성’마저 처절하게 파탄 냈고 김대중 정권의 몰락은 선거전에 이미 충분히 예고된 상태였다.
김대중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실상은 군부파쇼시절의 미완의 과제로서 ‘대마불사’의 신화를 낳았던 재벌개혁과 구조조정이다. 특히 새쳐 등의 신보수주의와는 달리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고용안정과 사회안전망 형성을 통한 사회보장의 평가절하를 두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코포러티즘(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자발적 일자리 나누기와 생산적 복지)은 얼마간 김대중 정권의 개혁의 성격을 미화하는 한편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를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DJP 연합이 상징하듯, 김대중 정권이 대변하는 자유주의의 허약한 토대 속에서 추진된 보수주의적인 타협이 가져올 수밖에 없는 정치적 불안정성은 김대중 정권의 발목을 줄곧 잡아끄는 요소(민주당의 정체성의 위기)였고 반면 한나라당을 위시로 한 보수주의 분파는 그 균열을 비집고 ―특별한 역전의 계기 없이도― 몇 가지 상징조작을 통해 반사이익을 공고화하는데 성공해왔다. 특히 미 패권주의의 노골화를 틈탄 보수주의 세력의 대북 강경 발언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클린턴 행정부의 접촉 및 확장 정책)을 무효화하는 한편 신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거나 지역주의를 은밀히 조장하며 김대중 정권에 대한 보수적․퇴행적 반대를 조직했다.
지난 413 총선 당시 자민련과 정치적으로 결별하고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꾀했던 김대중 정권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지만, 뒤이어 발생한 벤쳐 거품과 주가 폭락은 김대중 정권의 위기를 예고한다. 결국 금융세계화라는 격랑에 온몸을 던진 한국 자본주의호(號)의 불안정성은 항상적인 경제위기와 함께 민생파탄-부정부패로 현상하며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몰락으로 종착하였다.


민주당의 정치적 패배와 '개혁주의'의 쇠퇴

민주당의 정치적 패배가 김대중 정권 하에서 추진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민중들의 광범위한 분노와 불만의 표출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으며,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인 386세대와 호남지역 역시 김대중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특히 김대중 정권의 위기를 수습하는 한편 내적으로 발생한 개혁세력으로서 정체성의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제시된 ‘노무현 카드’ 역시 민주당의 정치적 패배를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이는 수치조작에 힘입어 일시적으로 ‘경기 부양’에 성공한 ‘거품경제’가 시장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양상인데, 정치인 개인의 이미지조작에 기댄 대중인기영합주의(popularism)가 가진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정확히 5년 전, 김영삼 정권의 위기를 방어하기 위해 등장한 이회창이 그러했고 이제 또다시 노무현이 강조, 반복하는 ‘3김 정치 청산, 지역주의 타파, 민주화의 완성’이라는 정치개혁의 기만성(불충분함)에 대해 대중들은 냉담하게 반응했다. 게다가 노무현은 자신에게 기대를 걸었던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노무현은 김대중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지 못했고, YS에게 표를 구걸하는 등 기존 정치인의 구태를 반복하였다. 결국 노무현 스스로 김대중 정권 하에서 초래된 민중 삶의 위기와 정치적 위기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만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소야대 국면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으로 인해 실질적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호남 지역에서만 가까스로 체면치레를 하였다. 이번 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민주당은 전국정당화는 고사하고 자칫 호남 지역당으로 전락할 위험마저 농후한 셈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영락을 곧바로 자민련, 박근혜, 정몽준 등 ‘지방 토호’들과 동급으로 취급할 수야 없겠지만, 개혁적 이념을 근간으로 한 민주당의 전국정당화 프로젝트는 실질적으로 좌절하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지방 토호’들과 이합집산-합종연횡하면서 반민중적 정계개편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정치개혁’이라는 최소한의 약속마저 저버린 행위라는 점에서 그들의 대타락을 시사한다.


정치의 위기와 위기를 관리하는 국가의 위기, 그 악순환

이번 지방선거는 48.1%라는 사상 유래 없는 저조한 투표율로 마무리되었다. 월드컵 열기를 투표 참여로 유도하겠다는 선관위의 순진무구한 발상은 좌절되었고 언론 역시도 투․개표 당일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사실상 지방선거장은 공동화(空洞化)되었다. 게다가 정치의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도입된 국민경선제는 정치개혁은커녕 정치의 미디어화와 정치의 희화화 경향을 도리어 부추겼다(난무하는 금품살포와 줄투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행된 지방선거는 이념적-정책적 대결이라는 취지를 무색하게 하였고 대중들을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켰다. 물론 월드컵 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선거에 대한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었고, 처음 실시된 정당명부제와 동시 선거에 대한 이해도가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라는 ‘현실적’ 분석도 간과할 수는 없다. 더욱이 지방선거의 특성상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선진국 역시 투표율이 점차 하락하고 있는 추세인 만큼 낮은 투표율은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낮은 투표율은 단지 일회적인 해프닝이 아니며 정당정치와 대의제를 근간으로 하는 지배 정치 자체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과정에서 파생되는 사회 모순의 심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 역대 정권은 예외 없이 집권 말기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다. 전두환 정권과 87년 6월 항쟁, 노태우 정권과 91년 5월 계투, 김영삼 정권과 97년 총파업 등을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5년 주기로 반복되는 정권의 위기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역대 정권마다 반복되는 권력 누수 현상(레임 덕)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위기관리 국가의 위기’라는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장기-구조적 위기와 궤를 함께 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착취 양식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항시적인 체제 불안정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정치권력은 이러한 위기를 관리,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조건을 끊임없이 창출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지배계급은 정치권력의 위기가 부르주아 국가권력 자체의 위기로 전화하기 전에 대중들의 정념을 가공하여 새로운 위기관리를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선거는 항상 (위기를 관리할) 새로운 지배분파를 선출, 형성하기 위한 중요한 기제로 위치 지워졌다. 그 결과 끊임없이 재발하는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와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정치적 누수 현상은 지배계급 내의 분파 갈등과 정권교체로 반복되고 봉합된다. 위기의 궁극적 요인이 소멸되지 않는 상황에서 위기가 ‘개혁의 실행조건’으로 설정되고 위기와 개혁의 주기가 대통령선거 같은 정치일정과 일치될 때, 대중들의 정치적 냉소주의는 심화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90년대 이후 군사정권에서 ‘문민화’로의 이행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건으로 밖에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반민주-반민중적인 문민정치’로 인해 민주화세대의 ‘개혁’이나 ‘진보’라는 담론은 스스로의 파탄을 예정한다. 다만 양대 문민 정권이 이전의 순사정권과 차별점이 있다면 정책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문민정권으로의 이행과 노사정 위원회나 각종 비정부기구들의 동원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점이고, 거기에 ‘외환위기’라는 강력한 촉진제가 부가되었을 뿐이다.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금융적 확장과 이에 부합하는 구조조정이 한국의 경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이며 동시에 노동의 불안정화를 지속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수준에서 예상되는 한국 사회 위기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고, 지배계급 분파간의 정권 교체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노동자․민중 운동의 독자적인 표상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적 냉소주의의 심화와 정치지형의 보수․퇴행화

한나라당은 ‘노풍’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휘청하다가 이내 지지율을 회복한다. 사상 최대 격차로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직후, 집계한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 의하면 정확히 한달 전과 반대의 양상을 보인다(심지어 이회창은 압도적인 승리가 불러올 역풍을 조심하며 승자로서의 패권성을 버릴 것을 강조하기조차 한다). 당권을 둘러싼 내홍(內訌)을 무마하고 ‘보수중의 보수’를 자처하며 충청지역을 볼모로 한 자민련의 지지세를 흡수, 규합함으로써 호남을 제외한 전국 정당으로서의 명실상부한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즉각 한국사회 정치-이데올로기 지형을 우선회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지방자치제 자체가 의미하는 중앙정부의 책임회피와 지방분권화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지역별 불균형 발전과 맞물리면서 대중들의 지역주의를 역으로 강화하는 현상을 낳았다. 턱없이 낮은 지방자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각종 특혜와 이권이 난무하는 가운데 지자체가 표방한 지역 풀뿌리 정치는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부정부패와 자기실리적 대응만이 투표행위의 유일한 기준이 된 경우도 많았다. 이런 상황은 향후 대선에서 지역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릴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이렇듯 해결되지 않는 삶의 위기 속에서 대중들은 기존의 지배정치에 대한 극단적인 환멸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정치적 냉소주의나 보수주의적 비판에 쉽게 경도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사민당(좌파)의 패배는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전향한 서구사민당의 정치적 패배를 상징하며 이에 반하여 득세하게된 중도 우파는 인종주의의 발호를 등에 업은 극우파적 비판에 대한 절충적 대안일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현재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드러난 한국사회 정치지형의 변화를 ‘신자유주의에 환멸을 느낀 대중들의 정치적 냉소주의의 심화와 보수․퇴행적 경도’라고 지칭할 수 있겠다. 이는 김대중 정권 하에서 추진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개혁주의가 일정하게 파탄 났으며 그 공백을 반동적으로 잠식하려 하는 보수주의 세력의 노골화된 역공세에 맞서 민중운동은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지방선거 결과만으로 한나라당이 대중들의 능동적인 행위를 조직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볼 수는 없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압승은 역설적이게도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의 실정에 대한 대중적 환멸을 부정적으로 조직했다는 점에서 이들과 쌍생아일 뿐이며 그래서 한나라당의 정치적 위험부담은 더욱 증가한 셈이다.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명확한 기치를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제 명확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여전히 ‘반김대중’이라는 일반적 정서에만 호소하는 양상이었다.(“이후보는 자신의 표를 확보해 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상대의 악재와 호재로 인해 표를 얻고 잃는 스타일입니다”, 2002. 월간조선 7월호) 결국 민중들의 정치적 냉소주의에 편승하여 소극적 지지를 획득한 한나라당이 자신의 정치적 전망과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포지티브 전략) 못한다면 다시금 민주당과 동일한 양상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진보진영, 선거대응의 문제점

우리는 6월 투쟁에 대한 전망 속에서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낳은 총체적 민생파탄-부정부패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분노를 지방선거와 월드컵을 통해 흡수, 무마, 치환하려는 지배계급의 반민중적 작태에 맞서 정치적 목표에 입각하여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확장할 것’을 투쟁방향으로 제출하였다. 그리고 상반기 투쟁을 5월말 총력투쟁(?)으로 제한하며 지방선거 대응을 중심으로 6월 투쟁을 사고하려는 편향을 경계하면서 오히려 6월을 지배계급의 총체적 실정에 대한 전민중적 저항을 조직하는 정세적 계기로 바라보아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고 이는 노동자․민중 운동의 현재 역량으로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로 취급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보인 선거 대응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정세에 기반한 전국적 쟁점 형성에 실패하였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지방선거 공간을 제한적으로 인식하고 지역적 의제 개발과 정책공약의 ‘실현가능성’을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김대중 정권과 지배계급에 대한 전면적인 정치폭로와 투쟁의 장(계기)으로서 지방선거를 운용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경우 5월말 총력투쟁을 서둘러 종결한 뒤 지방선거에 대한 조직적 지원을 6월의 주된 계획으로 확정함으로써 사실상 5말 6초 대중투쟁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계급투표’라는 미명 하에 조직된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지지는 역설적이게도 ‘보편적 계급’으로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는 거리가 먼 ‘실리적 조합주의’의 정치적 표현이었을 뿐이다. 발전노조 연대총파업을 철회하고 연이어 민주노총 지도력이 붕괴하는 상황 속에서 5말6초 투쟁 역량의 상당 부분을 지자체 선거로 치환시킨 결과, 노동자․민중 운동은 상반기 투쟁을 힘있게 갈무리하지 못한 채 하반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약 10% 내외의 득표율을 통해 한국사회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진보정당의 정치적 성과(!)에 대해서 그다지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전국 각지에 200명을 상회하는 후보를 고르게 출마시키고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등의) 조직적인 선거 대응을 통해 지역정치의 근간을 마련한 점이나 8.1%라는 무시 못할 득표를 통해 향후 정치세력화의 물질적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분명 민주노동당은 긍정적 평가를 얻고 있지만, 우리는 그 이면에 놓인 딜레마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대중투쟁의 자장(磁場) 속에서 형성되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8% 가량의 득표율을 과대평가해서는 곤란하며 특히 이러한 선거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보다 대중적인’ 결합을 강조할 경우 97년대선 당시 ‘일어나라 코리아’와 같은 역사적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선거에 직접 참여한 진보정당을 비롯해서 노동자․민중 운동 진영은 선거 공간 내외부를 가로지르며 (신자유주의와 김대중 정권에 반대하는) 한국 사회의 대안적 방향성을 논증하고 대중(투쟁)의 역능을 능동적으로 수렴하는 계기로 6월을 돌파하지는 못했다.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패배와는 대조적으로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방향에 대해 민중 운동은 발본적인 비판 및 그 전략적 표상을 수행, 수립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지방 선거는 김대중 정권에 대한 심판은 있으되, 그 판결의 내용은 사실상 부재한 재판이었다. 올 상반기 동안 김대중 정권에 대한 광범위한 민중들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조직하지 못한 채, 김대중 정권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 이니셔티브를 보수야당에게 고스란히 헌납하고 도리어 역공세에 처하게 된 것을 뼈아픈 교훈으로 간직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의 시효만료와 현재적 재해석

선거 결과가 시사하는 바, 기간 진행된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의 시효가 만료된 것은 분명하다. 즉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와 불만을 ‘김대중 정권’에 대한 정치적 반대의 입장으로 통일시킴으로써 그 계급적 성격과 본질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했던 전술로서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의 의의는 이제 새로이 해석될 시점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간 진행되어온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이 결과적으로 수구-반통일 세력의 득세로 연결되었으므로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는 주장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주어진 순간에서의 힘의 균형점과 사회세력들간의 관계(정세)가 객관적으로 변화하였으므로 그에 따라 우리의 전술 역시 능동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점한 한나라당은 (최근 유럽에서 우파들의 득세와 비슷하게) 신자유주의의 기본틀을 유지하면서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주류(main stream)의 ‘왕정복고’를 공고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공공근로 사업 등 신자유주의적 복지논리(생산적 복지)에 대한 보수주의적 반격(“노동에서 유래하는 소득에 과세하는 것은 강제노동과 같다”, R. Nozick)을 감행하는 한편 노사정위원회 철폐, 국공립대 사립화, 관치금융 철폐, 공기업의 완전한 민영화 등 한국사회에서 ‘완전한 선진자본주의’를 구현할 것을 주장한다. 아울러 미국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을 추종하며 반공․반북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노무현을 비롯한 민주당은 선거 패배에 대한 정치적 책임 공방을 벌이며 한동안 내우외환의 형국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 대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관리하고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권 및 민주당의 정치적 패배가 현재로선 거의 확정적(비가역적)이다.
결국 지방선거 이후 새로이 편재된 정세는 민중운동진영으로 하여금 보수주의 세력에 대한 타격을 확대할 것을 지시한다. 지방선거에서 맛본 정치적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김대중과 노무현은 반동적 정계개편과 각종 퇴행적 조치를 자행할 것이고,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역공세를 펼칠 것이다. 하기에 무엇보다 이에 대해 명확히 반대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민생파탄-민주압살-부정부패에 대해 정치적 대응력을 고양시켜 나가야 한다. 전술의 다각화와 함께 하반기 대선을 맞이하여 보다 중장기적인 수준에서 민중운동의 전략적 표상(정치적-조직적 구심의 형성)을 창출하는 것 역시 한 시도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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