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7-8.27호

정규직에 칼끝을 겨누는 노사정위의 비정규직 보호대책

정영섭 | 노동차장
비정규직 ‘보호’인가, 비정규직 ‘제도화’인가?

노사정위 비정규특위는 지난 2001년 7월 만들어진 이래로 1년 가까이 ‘비정규근로자 보호방안’을 논의해왔다. 두 개의 분과위에서는 각각 기간제근로, 파견근로 및 단시간 근로와 특수형태근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 활동의 결과로 ‘합의문’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지난 5월 6일 발표된 것은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에 관한 노사정 1차 합의문’이다. 비정규노동자의 규모와 통계산출 방식, 근로감독강화, 사회보험적용 확대 및 복지확충 등의 내용인데 이미 민주노조운동 진영에서 격렬한 비판을 가한 바, 통계산출 방식을 빌미로 비정규노동자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근로감독 강화를 한다는 것이며 부분적으로만 사회보험을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노사정위는 6월말까지 1주일 단위로 비정규특위를 개최하여 기간제, 파견, 단시간, 특수고용에 대한 최대한의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하나 이 역시 비정규 노동기본권과는 거리가 너무 먼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첫째, 기간제 노동은 1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루어지고 사측의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 계약해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간제 노동을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다. 그러나, 비정규특위는 사유를 제한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2~3년의 한도에서 기간제 노동 사용을 전면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사실상 정규직을 기간제 노동자로 만들 것이고, 사용자들은 1년 이하 단기계약직을 활용하면서 기존의 정규직을 2~3년 계약직으로 전환하여 주기적인 대량 계약해지를 발생시킬 것이다.
둘째, 노사정위 비정규특위는 개인사업자, 도급, 위탁 등 형식적으로만 계약관계이지 실질적으로는 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학습지노동자, 골프장도우미, 보험모집인, 레미콘노동자, 방송사구성작가 등 소위 특수고용에 대한 노동자성을 전면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특수고용 부문에 대해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산재보험과 같은)만을 적용하거나 준근로자 개념을 도입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에는 한참 미달하게 될 것이다. 준근로자 개념 도입은 기존의 특수고용노동자 외에도 다수의 노동자를 준근로자로 만들 것이며 또다시 준근로자에 해당하느냐 아니냐를 놓고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셋째, 파견노동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파견법에 따른 2년 단위의 주기적 해고는 물론이고, 파견대상업무 이외의 업무에 대해서도 파견을 하거나 도급, 사내하청 등의 불법파견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이다. 더구나 파견노동자의 생존권적 요구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나 파견사업주가 서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떠넘기며 외면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파견법을 폐지하는 것이 중간착취를 근절하고 파견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그러나 노사정위에서는 불법파견사업에 대한 인허가 취소, 과도한 중간수수료에 대한 적절한 제한, 파견허용 대상업무 재조정을 위한 별도의 기구 설치 등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파견기간을 현재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파견업무를 기존의 제한적 열거(positive list)에서 파견금지업무의 제한적 열거(negative list) 방식으로 바꾸는 방향을 준비하고 있다. 때문에 오히려 파견노동을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
애초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노사정위의 기본 전제는 비정규 보호와 함께 노동시장의 장기적 발전이라는 관점 하에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뒷받침하는 비정규직의 ‘제도화’, ‘활성화’에 대한 법․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 흐름은 다음과 같다. 정리해고,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유연화 -> 비정규직 대량 양산 ->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 증가 -> 노동유연화에 대한 제도적 완비, 사회적 불안요소 제거를 위한 비정규 관련 대책마련을 위해 노사정위 활용 -> 법제도 개악 -> 노동분할 가속화 및 비정규직 일반화, 노동운동 초토화. 노동운동 진영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노사정위의 외피를 뒤집어쓴 정권과 자본은 비정규 관련 쟁점을 선도하면서 전방위적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지금, 이것을 파탄내지 못한다면 이후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능가하는 일반적 고용형태가 될 것이며 노동운동의 미래는 암흑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오늘, 어느 누가 이 투쟁을 우회할 수 있을까.


비정규직 보호대책은 정규직 노동자를 겨냥한다.

노사정위의 비정규직 보호대책은 겉으로는 열악한 비정규직의 처지를 개선하겠다고 하는 것이지만 그 전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이다. 이 전제 위에서 비정규직의 합리적 사용이니,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니, 비정규직 불법적 사용에 대한 규제니 하는 논의가 되고 있다. 백 번 양보하여 낮은 수준에서 비정규직 관련 제도개선이 이루어진다 쳐도 그 효과는 곧바로 ‘고용형태로서 비정규직의 제도화, 보편화’가 될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마디로 기존의 정규직마저 기간제, 파견제, 단시간근로, 특수고용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게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대세다. 그리고 제도적으로도 비정규직 보호가 이뤄지고 있다. 굳이 정규직을 뭐하러 쓰나? 비정규직이 되든지 해고되든지 하라”는 것이 자본과 정권의 주문아닌가. 따라서 노사정위의 비정규직 보호대책의 진실은 남아있는 정규직마저 자본의 입맛대로 비정규직화하려는 ‘비정규직 전면화’의 출발점이다. 한손으로는 칼끝으로 정규직 노동자를 겨냥하고 있고 한손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달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노사정위의 비정규직 보호대책의 핵심은 비정규직의 제도화를 넘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비정규직 확산은 정규직 일자리를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고,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곧장 정규직에도 적용되고 있기에 공동으로 투쟁하지 못하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의 미래는 ‘이것저것 다 빼앗긴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다.

노사정위원회, 그 기만과 배신의 역사

199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간의 공정한 고통분담에 관한 노사정 공동선언문 채택, 정리해고제 및 근로자파견법을 주요골자로 하는 노사정 합의, 공기업 민영화 및 구조조정에 대한 건의문 채택, 1999년 노사협력적 고용관리 매뉴얼을 사업장에 배포,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 관한 중재안 채택, 복수노조의 단일협상 창구화 논의, 2000년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기본 합의, 철도 구조조정 관련 합의, 금융지주회사 및 합병에 관한 합의, 2001년 복수노조 및 전임자 문제 관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방안 합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추진에 관한 기본원칙 설정, 체신부문 인력감축 계획 합의, 한국통신산업개발(주) 및 한국통신기술(주) 민영화 관련 합의, 모성보호법 개악 합의, 2002년 주5일제 논의, 공무원 노조 대책 논의, 비정규 근로자대책 관련 노사정 합의문(제1차) 채택. 우리는 노사정위의 역사가 실리의 문제를 넘어 노동자대중 일부 이해관계를 전체 대중의 요구와 맞바꿈으로써 공동의 연대를 파괴하고 노동자 분할을 가속화시키는 반동의 역사임을 주장해왔다. 더구나, 최근 노사정위원회의 논의구도는 기본적으로 정규직의 이해를 제한적으로 보장하면서 전반적인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는 노동분할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사정위원회의 반노동자적 성격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을 일부 인정하는 이유도 비정규직 투쟁과 조직에 있어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투쟁대오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이처럼 노사정위원회 논의구도는 그 자체로 노-노갈등을 조장하는 노동자 분할전략이 깔려 있다. 따라서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사안별 대응 혹은 보이코트로서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오류를 넘어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싼 지난 몇 년간의 혼란을 넘어서야 한다. 2001년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유예와 복수노조금지를 맞바꿔 법안을 처리했던 그 당시에도, 모성보호법을 빌미로 여성노동권에 대한 개악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최근 주5일제를 빌미로 한 노동유연화에 대한 총공세에 대해서도 그리고, 지난 5월 6일 비정규직 관련 1차 합의가 이루어졌을 당시에도 제대로 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였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이 구조조정을 통한 비정규직화와 노동조건의 전반적 악화, 노동기본권의 후퇴라고 할때, 노사정위에 대한 투쟁을 매개로 한 노동유연화 분쇄투쟁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더불어 투쟁의 주체로 함께 설 때라야 본래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동안 정규직 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은 조직노동자의 고용유지에만 머물렀지만 지금부터라도 비정규직 문제를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받아 안고 노동대중 전반의 노동조건과 노동기본권을 지켜내는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실추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위상을 회복하고, 비정규직 철폐, 노동유연화 분쇄 공동투쟁전선을 만들어내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 노동유연화 분쇄 공동투쟁전선으로 나아가자!
IMF이후 순차적으로 강행된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의 흐름 속에서 각 부문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각개격파 당하게 되었고 이러한 일상적 구조조정의 흐름에 따라 급격하게 증가한 실업, 비정규직, 빈민 등 대다수의 노동자 대중은 저항을 표출하기에 정치적․조직적 토대가 취약해지는, 그야말로 전면적인 불안정노동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더욱이 생존의 벼랑끝에서 절박하고 처절하게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비정규 노동자들의 피맺힌 외침에 대한 노동부의 외면, 법원의 반노동자적 판결, 자본가단체의 저돌적 공격에는 눈을 감고 “현재 보호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니 조금 더 참아라”는 식으로 투쟁의 김을 빼고 제도개선에 매달리게 하는 극악한 역할을 노사정위는 해왔다. 또한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노동대중의 노동조건 및 노동기본권을 심각하게 후퇴시켰고,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오는 산업재해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동자들의 건강마저 갉아먹고 있으며 전방위적인 노동탄압으로 노동운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 모든 고통은 핵심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되었고 그 결과 지난 3년 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의 주체로 성장하면서 눈물겨운 투쟁을 수없이 만들어 왔다. 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 투쟁, 레미콘노동자 투쟁, 학습지 노동자 투쟁, 린나이서비스 노동자 투쟁, 방송사 노동자 투쟁,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 인사이트코리아 노동자 투쟁, 시설관리 노동자 투쟁, 상시위탁 집배원 노동자 투쟁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투쟁을 선도적으로 해왔지만, 투쟁 자체가 해고와 노조말살, 생계파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전체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공동투쟁 없이는 승리도 힘들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지금도 여성연맹 도시철도청소용역노조, 서비스연맹 캡스노조, 한진관광노조, 재능교육교사노조, 하나로테크놀로지노조, 시설노조 명호개발지부, 대성산소 용역기사노조, SK인사이트코리아노조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저들은 지금 ‘비정규직 보호’라는 입에 발린 말로 전체 노동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겨누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대해 정권과 자본의 구도대로 노사정 합의를 공론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별다른 저항없이 지속된다면 그 논의 자체가 사회적 기준이 되어 탄력을 받아 이후 비정규직 관련 쟁점을 규정할 것이다. 따라서 전체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노동유연화를 완성하기 위해 비정규직 활용을 법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노사정위 논의 자체를 파탄내야 한다. 나아가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의 불안정화, 유연화에 반대하는 전체 노동자의 투쟁을 일으켜야 한다. 비록 올 상반기 동안 이렇다할 비정규 노동자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그럴수록 긴장감을 가지고 투쟁동력을 조직하여 공세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하반기와 2003년의 투쟁도 준비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미래를 밝히는 투쟁이 여기에 있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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