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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9.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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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교육의 허상을 부셔라! -'Children in America's schools'를 보고

김예니 | 편집부장
미국 공교육의 허상을 부셔라!
-'Children in America's schools'를 보고

김예니(편집부장)

미국 교육의 환상이 불고 온 조기 유학 붐

'폭력교실', '죽은 시인의 사회', '불륨을 높여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여고괴담'.
나온 시대도 배경도 모두 다르고 영화장르도 모두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학교가 배경이 되어 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들은 학교를 무척 억압적인 공간으로 여기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공간이 다른데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학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다. 학교는 때론 권위적인 모습으로 아이들 위에 군림하고 때론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으로 학생들 인생의 목표를 정하게 하고 또 이를 위해 학생간에 그리고 선생님과의 우정을 가로막으면서 결국 학생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 현재 교육문제가 일국 차원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문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조기 유학 바람이 불면서 올 한 해 우리 국민이 해외로 송금하는 유학.연수비용이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유학.해외연수 송금액은 6억3천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3억9천만달러)보다 62%나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올 한 해 송금액은 12억달러를 넘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 들어가기 전인 1997년 기록했던 사상 최대치(11억6천만달러)를 경신할 전망이다. 유행병처럼 번지는 조기유학과 해외 유학의 근본 원인은 학벌·학력주의이다.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나오지 못하면 성공은 어렵고, 최소한 취업을 위해서 어학연수는 기본조건이 된 상황이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조기 유학을 택하고 있다. 조기유학을 택하는 사람들은 입시제도가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에 입시지도에 불안함을 느낀다거나 상급학교 진학이 어렵고 이에 도태되는 학생들의 탈출구로 조기유학을 선택하거나 교육환경이 열악하여 아이들의 교육을 한국의 공교육에 맡기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혹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조기유학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으로, 영국으로, 호주로 유학을 보낸다고 아이들의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다른 나라의 공교육 안에서 안전하고 교육에 필요한 시설을 마음껏 이용하면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유학을 택한 사람들도 유학을 보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질문을 바꿔서, 미국과 영국, 호주의 교육은 과연 교육 환경의 문제, 학력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다른 나라의 공교육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가. 본론에 앞서 단언컨대 우리에게 어느 순간 자리잡은 미국 교육에 대한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몇 몇 사람이 조기 유학 후,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여 성공한 사례들로 인해 우리에게 미국 교육에 대한 환상이 존재하지만 사실 미국 교육에 대한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금 소개하는 비디오를 보면 미국 공교육에 대한 환상이 허상임을, 그리고 현재 공교육의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얼마전 진보교육 연구소를 통해 비디오 하나를 입수하여 보게 되었다. 제목은 'Children in America's schools'. Bill Moeyers와 J. Kozol이 만든 것으로 오하이오주 안에 있는 두 학교를 비교하면서 재정상황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비디오의 제작자들은 오하이오주를 선택한 이유를 이 주의 상황이 미국의 상황을 대표할 수 있는 예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큰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도심지 주변의 수도권지역, 작은 지방도시, 가난한 도시의 복잡한 문제점을 한 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비디오는 도입부분에서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가고 석탄냄새로 가득 찬 학교를 보여준다. 천장이나 철조망이나 할 것 없이 떨어져 나가 있고, 학교에 있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비가 새기 때문에 체육관 안에서도 우산을 써야 한다.
도시 주변부의 학교들은 반 이상이 194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석탄난로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4년 동안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는 한번도 컴퓨터를 만져보지 못한 학생들도 있다. 1800명의 학생을 위해 마련된 컴퓨터는 단 12대 뿐 이고 그나마 매우 구식이다. 학교도서관은 지하에 있으며 예전에는 석탄창고로 썼던 곳인데, 물이 새고 있는 심각한 상태이다. 카페테리아에는 오븐이라든지, 식기세척기 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6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학교 밖으로 식사를 하러 나가고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음식이나 영양소를 갖춘 음식을 제공하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이런 학교의 경우 학생수가 너무 많은데 한 학년에 4개 반으로 편성하여 한 반에 30명 이상씩 공부하고 있는 상황이다.(우리 나라와는 대조적인데, 이 비디오에서는 한 반 평균 25명 이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차이를 크게 생각하고 있다.) 학생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학생을 제대로 지도해줄 수 없는 문제도 있고 학생들의 행동에 일일이 관심을 가지기도 어렵다.
이에 반해 지역주민의 보조뿐만 아니라 사업주의 보조를 받고 있는 수도권 학교는 극장, 음악실, 체육관 같은 시설을 갖추고 있고 이를 지역주민과 학생들이 같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도서관에 있는 첨단시스템은 학생들 스스로가 도서관을 활용해서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고 어린 학생의 학습에서부터 기술적인 단계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컴퓨터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취업을 위한 첨단장비 사용을 통한 학습은 학생들의 미래를 준비해주는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학생들은 충분한 기술적인 준비를 한 상황에서 진로를 결정한다.
결국 미국의 교육제도는 대부분 재정보조를 지방재산세, 지방소득세로 마련하고 있는데 이것은 각 지방의 물가에 따라 결정이 되기 때문에 양질의 교육을 고르게 제공한다는 것은 오하이오주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방재산세, 지방소득세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서 걷힐 리 만무하기 때문에 잘 사는 동네와 그렇지 못한 동네의 차이는 더욱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지방 학교의 한 교사는 이 비디오에서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다.
"만약 이런 조건에서 기업체 사장에게 매일 일하라고 한다면 아마 그는 기겁해서 도망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백화점이나 쇼핑하는 곳이 벽이 허물어지고 비가 새고 귀뚜라미 같은 큰 벌레가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어른들더러 쇼핑을 하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쇼핑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조건 속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기를 기대하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대해 학생들도 무척 짜증내 합니다. 이런 것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다닙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꽃은 핀다고 위로합니다."

학교보다 야구경기장이 중요한 부자나라 미국

오하이오주 도시 주변부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연필이나 종이 같은 기본적인 학습도구를 사는 것도 힘든 가정형편에서 자랐고 그런 아이들이 많아서 선생님들은 자비를 들여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사주고 있다고 한다. 대체로 선생님들은 평균 1년에 교육기관에서 받는 500불에서 1500불 가량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이 학교에서 실시한 '빈곤한 가정 형편이 학습 능력, 집중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를 살펴보면 80%의 학생이 빈곤수준 이하에서 살아왔고, 그 대부분이 한 부모와 같이 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가정이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가 가족이 풀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학교재정보조 시스템을 밀고 나간다면 많은 재정을 받는 학교는 더 많은 재정을 보조받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학교는 더 심각한 재정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주변부 학교의 열악한 시설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둔다는 것은 학생들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학생들은 안전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학교에 다니기를 원합니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고 학교를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있을 수 있는데 지역사회는 학교보다는 야구장과 박물관에 더욱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지만 교과서보다 비디오게임을 사는데 20배나 더 많은 돈을 들이고 있습니다. 만약 교육에서 돈이 중요하지 않다면 왜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이사를 가서 자기들이 세금으로 내는 돈이 제대로 교육에 쓰이는지 관심을 갖고, 900불에서 1100불 이상이 각 학교에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를 유지하려고 하겠습니까?"
초등이나 중등과정에서 한 반에 30명이 넘는 학생들과 공부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고등학교과정에서 더욱 뒤 처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는 점점 낙오자가 되면서 더 이상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은 의욕도 사라지고, 대학이라든지 고등교육이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가난한 지역에서 공부하던 부유한 지역에서 공부하던 상관없이 같은 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고, 취업을 위해 경쟁을 해야한다. 그럼 당연히 부유한 지역 학생들이 높은 시험 성적을 얻게 되고, 가난한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교육환경이 열악한 탓에 대체로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따라서 높은 성적을 얻고자 하는 부모들은 부유한 지역으로 이사가고 이런 악순환이 시간이 가면서 반복된다.
80년대 전에는 이런 교육이 없어도 충분히 직업을 가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학교에서 기술을 미리 배워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는 가난한 지역 학생들은 이미 경쟁에 들어서기 전에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가난한 지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부유한 수도권지역의 아이들이 어떠한 혜택을 받으면서 공부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서 화를 낼 수 조차 없다. 이렇게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시설에 대해서 아이들은 사회가 자신들에게 관심을 주고 있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있고, 자신들에게 투자하는 것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한 여학생의 인터뷰는 이 안타까운 현실을 가장 가슴 아프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임신을 해서 3학년 때부터 학교를 그만 뒀다. 미국에 있는 어떤 법률도 15세가 임신을 해서 출산하는 것을 규제하지 않기 때문에 난 출산을 할 수 있었다. 만약 학생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이 되고 싶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결코 14,15세에 임신을 해서 출산을 하겠다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이 아이들을 자유롭게 한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많은 미국 교육자들이 교육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졸업시험 등의 평가를 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우선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해주고 질을 높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지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는 시민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인으로서 미국인의 혜택을 다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지금 뉴욕주에서 가장 유력한 산업 중의 하나가 감옥을 건설하는 감옥건설업이다. 감옥을 짓고 죄수를 수용하고 이들을 재교육시키는데 많은 돈을 투자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흑인 1명을 1년 동안 수용하는데 6만 불이 든다면 우리는 왜 이 흑인이 어린 시절 2천불도 안 되는 돈으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물어야만 한다. 이 다큐멘타리는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제대로 된 공부를 하기 위해서 투자하는 돈은 감옥을 짓기 위해 투자하는 돈과 비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회의 가장 저소득층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나 고통을 느껴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당연히 범죄에 무감각해지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만약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환경과 제대로된 교육이 제공되었다면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수도 줄고 청소년 범죄도 줄었을 것이다.
'Children in America's school'을 통해 미국의 공교육이 어떤 지경으로 추락했는지, 미국 교육에 대한 환상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만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 이 상황을 보면서 한국의 미래가 오버랩 되는 기분이었다.
미국 공교육의 현실은 미국 교육을 많이 차용하는 한국의 미래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문제는 미국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교육환경 속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이 아니라 학교 각자가 알아서 살길을 마련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7차 교육과정, 귀족형 사립고등학교, 교육시장개방 등 이런 징후는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다.) 미국처럼 지역에 따른 편차, 입시율에 따른 학교별 편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교육의 권리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문제는 누구나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권리이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조건에 의해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늘어나는 청소년 성매매, 조직폭력 사건...미래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학교를 통해 다만 관리될 뿐 유예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황폐해져가고 있다.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노동시장으로의 편입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밝히기 위해서 교육을 넘어서는 다양한 문제가 함께 고민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최소한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적합한 인력으로 편입되도록 강제되는 교육구조조정에 의해 학생과 선생님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인간이 가져야할 보편적 권리로써 교육의 공공성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주제어
국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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