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9.28호

갈월동에서

편집실 |
편집실에서

1905년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토지를 돌려줄 것을 청원하던 러시아 민중에게 니콜라이 2세는 총을 겨누었다. 페테르스부르크의 겨울궁전 앞에서 벌어진 이 학살로 수많은 사람이 분노했고, 노동자 농민이 총파업과 봉기를 조직했다. 1차 러시아 혁명이다. 이들은 자체 대표기관을 조직했고, 각 공장의 동맹파업을 조정하고,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기관을 세웠다. 이들은 스스로 파업과 생산을 통제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토론을 벌였다. 노동자, 농민, 병사로 확대하면서, 서로 결속을 다졌다. 노동자에서 전체 인민으로, 지역에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너무도 예외적인 일이었던 터라 모두들 놀라고, 좌충우돌했다.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배계층의 분열과 혼란은 이전투구의 양상을 넘어 공도동망(共倒同亡)하려는 듯이 보인다. 물론 그렇게까지 철없으랴 만서도, 통치 곤란에 대안도 없으면서, 옥체(?) 보존하고 있는 것도 신기할 노릇이다. 올해 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 역시 그들의 욕된 생명줄을 연장시키려는 한판 굿이겠지만, 쉬이 볼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 선거와 하반기 투쟁을 특집으로 다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류주형은 부르주아 정치의 위기를 냉정히 진단한다. 민주당의 어정쩡한 책략이 시효를 다한 상황에서 이들이 퇴행적인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사정을 자세히 살펴본다. 더불어 주인 없는 자리에서 퇴행적인 쟁점으로 사태를 장악하려는 한나라당의 책략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꼬집는다. 정치 일반의 위기를 비판하는 것이 민중운동의 과제라고 맺으며, 홍석만에게 자리를 비켜준다. 홍석만은 이상이야말로 신자유주의 비판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지배계급과 민중운동진영의 한판 격돌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는 하반기 대선 투쟁에서 민중운동의 투쟁방향과 과제를 제안한다. 선거투쟁을 제한하며 진보정당을 앞세우는 흐름과 좌파독자후보-선거무대응을 비판하며, 범추를 넘어서 민중진영 단일후보를 내세우고 벌이는 선거투쟁을 제안하고 있다.
커버스토리에서 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자신의 출범에 부쳐 1990년대 이후 노동의 불안정화 양상과 이에 맞선 투쟁을 정리하고 있다. 객관적인 진술과 분석의 필체가 예리한 만큼 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모든 고민과 성과를 그대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정영섭은 불안정노동 층의 투쟁을 점검하면서,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선 투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오랜 기간 연재해온 백승욱 편집자문위원의 신자유주의 시대 중국이 '마오쩌뚱의 유령'을 끝으로 5회에 걸친 연재를 마감한다. 오늘날 중국의 의미에 대해 혜안을 가지고 오랜 기간 조목조목 짚어준 필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도 있는 법,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담는 꼭지를 마련하였다. 앞으로 노동국 집행위원들과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 내뿜는 소리를 귀담아 들을 일이다. 책 속의 책에 안토니오 까를로의 '당에 대한 레닌의 사상적 궤적'을 싣는다. 백이면 백이 다 레닌의 당 관념을 오해할 만큼, 왜곡된 채 일방적으로 전해졌다. 이 글은 많은 것을 반대로 구부릴 것이다. 진실은 우리의 자산을 풍부히 할 따름이다. 꼼꼼히 읽기를 간곡히 권한다.

1905년 많은 활동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을 지적했다고 한다. 몰락하는 짜르의 피고름을 그대로 놔두어서 세상을 썩게 만들 수 없다고 말이다. 개혁세력의 붕괴를 자연사로 놓아두면 세상을 오염케 할 뿐만 아니라, 우리도 악취에 시달린다. 죽어버린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살아 숨쉴 '신자유주의 비판'의 쟁점을 쫓아다니게 해서는 안될 노릇이다. 이 망령은 차선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퇴행하는 자신을 감출 뿐이다. 이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자유주의 비판은 여기서부터다. 내년부터 주인이라고 자임하는 것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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