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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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10.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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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한 이야기 가족-여성....

송강현주 | 노동차장
안타깝게도(?!) 시작부터 삼천포로 빠져야겠다. 나는 이십 몇 년 전 경상남도 삼천포시의 한 식당 집에서 5자매 중 4째 딸로 태어났다. 시간은 유수(流水)와 같아 나는 사회진보연대에서 상근 활동을 하고 있고, 나의 큰언니와 셋째 언니는 결혼을 했고 둘째 언니는 막 서른을 넘긴 이른바 '노처녀'가 되었다. 올 1월 셋째언니는 오랜 기다림 끝에 둘째 언니 때문에 밀렸던 결혼식을 치렀다. 그 날 둘째 언니는 아침 일찍 진주로 놀러 갔고, 끝내 셋째 언니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몇 어른들은 그게 오래된 관례라고도 했다.
또 식상한 가족 얘기다. 결혼, 여성, 나 뭐! 이런 것에 대한... 그 후로도 둘째 언니는 세상이 사람들이 말하는 짝을 만나지 못했다. (시집 못 보내 안달이 난 부모님들 속끓이며) 이젠 선보기도 싫어하고, 명절이면 친족(우리 7식구를 포함한)들의 말 한마디로 한번씩 집안을 뒤집어놓고, 또 사람들은 이를 노처녀 히스테리라 해석하는 것 같다. 이젠 나도 나이(첫째 언니와 셋째 언니가 결혼한 그 나이)를 좀 먹었다. 둘째 언니 덕분인지, 규칙은 언제나 3번째까지라는 우리 집 법칙이 통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나에게 결혼을 요구하지 않으니 고마운 노릇이다.

술을 퍼마시고 뻗어 있느라 결혼식도 못 갔던, 그래서 온갖 비난과 눈총, 구박을 받아야 했던 선배언니의 신혼집을 결혼식 있은 지 1년이 지나고야 방문했다. 그녀는 벌써 백일된 딸의 엄마가 되어있다. 역시 세월은 유수와 같다. 나의 방문'명'은 '결혼 인사와 육아의 보조로 예상되는 일 도와주기, 혼자 있어 무서운 밤 같이 있어주기'였다. (무관한 얘기를 좀 하자면, 이 사람은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갈월동 기행에 무려 3번이나 등장한다) 물론 난 인사말고는 어떤 방문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혼자선 아무것도 하지 못할뿐더러 조금만 못마땅하면 울어버리는 어린 인간을 돌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의 손길이 조금만 닿지 않아도, 낯선 사람을 보기만 해도 서러워하는 아이 때문에 그녀는 오랜 시간 외출하는 것을 꿈꿔본지 오래되었고, 참 오랜 기간 무지하게 펴대던 담배를 기적처럼 끊은 상태에다, 남편과 친정어머니와 함께 하고파 했다. 정말로 어머니는 강했다.

밤이 되면 집으로 가야만 하는 여성활동가의 활동은 참으로 고달프다. 내 동기들의 일부는 운동권이어서 엄마 아빠에게 무던히도 맞고 감금됐었단다-그녀들이 들려주는 탈출의 무용담은 화려하다. 내가 아는 어떤 친구는 철저히 숨기느라 꼬박꼬박 집에 들어갔고 이른 새벽 술자리에서의 소주한잔, 나누는 동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몰랐단다. 또 누구는 사수대가 되어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술자리에선 웬만한 남자들 다 보내버릴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한다.

100인위의 성폭력 사건 폭로가 있은 후 내가 활동하던 곳에서 처음으로 여성들만이 모였다. 당시로선 그 정치적 사건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던 가부장성에 대한 깨달음과 스스로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결의를 밝히는 일련의 시간동안 그녀들의 고통을 공유하며 많이도 울었고, 원활하지 않은 모임과 주변의 반격에 상처도 받았다.

불행하게도 난 내가 독립적 개인(너무 당연한 얘기인지)이라고 믿는 것 같다. 보기보다 힘이 세단 얘길, 술을 잘 마신단 얘길 들을 땐 가끔씩 뿌듯해지기도 한다. 사랑으로 극복되는, 동지로서 동반자적 결혼에 대한 환상은 아직도 맘속에 숨어서 튀어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난 이미 (내 바램과 상관없이) 진지하게 나의 삶에 대해 부모님과 이야기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여성억압의 장소와 이데올로기로서 가족이 있고, 아직도 운동사회는 가부장적이고 그 내의 가시적 혹은 비가시적인 성적 불평등과 성별분업이 존재한다. 죽지도 않는 마초들과 그나마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 오빠페미니스트들과 서로가 힘들어하는 여성의 관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 지속적인 변화와 전화의 과정을 위해… 이제 누구도 여성의 해방이 동시에 온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여성해방의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내가 늘어놓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여성이 스스로 종속되지 않으면서 그들의 감정을 제거하지 않고 어떻게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어설픈 답이라도 함께 찾아볼 수 있을까?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을 소유하지 못하는 여성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다고 했다.

신변잡기는 필요하다. 사적 감정과 경험이 공적장소에 나오는 순간 때로 참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너도 그랬구나', 혹은 '넌 왜 그러냐'에서 이미 답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사생활은 다만 사생활이 아니다.

결혼을 아직 안한 나는, 게다가 결혼 후 힘들어하는 여성의 힘겨운 실생활을 바로 옆에서 본적 없는 나는 그것이 여성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무엇이 우리네 인생에서 결혼을 이렇게 중요하게 만드는지조차도 잘 모르겠다.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둘째 언니가 자신이 먼저 해야 한다며 셋째 언니의 결혼을 막아서는 이유를. 비록 내 평생 그 마음들을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우리 다섯 자매와 우리 엄마, 독립적 개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이제 여성으로서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높고 푸른 하늘, 기분좋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가을이다. 결혼하기 좋은 계절이다.

ps. 중간 중간 사족이 많이도 붙였다. 괜스레 변명들을 늘어놓아야만 했다. 사회진보연대 내 여성 팀이 고민되고 있다. 아직 분명한 위상이나 목표와 계획을 세우진 못했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이 의미 있고 때론 많은 것을 실행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의미를 알고 있을 때, 모여서 수다 한번으로도 우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감동 받고 격양된다. 다만 너무 쉽게 들뜨고 너무 쉽게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간의 불평등한 권력이 혁명적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 내에서 기적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로보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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