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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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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수교와 신의주 경제특구 -한반도의 비극은 멈출 것인가?

박준도 | 편집실장
북·일 수교와 신의주 경제특구
- 한반도의 비극은 멈출 것인가 -

박 준 도 | 편집실장

9월 17일 북·일 정상회담, 9월 18일 경의선·동해선의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9월 19일 신의주 특별행정구 입법.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충분히 놀랐고, 그럴만한 일들이 한반도에서 벌어졌다. 2000년 당시 서로 입장차이만 확인하고 미뤄진 북·일 수교논의가 이번 북·일 정상회담에서는 확실히 가닥을 잡은 듯하다. 양국 정상은 일본 식민지 지배 청산, 일본인 납치의혹,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각각 사과와 경제적 배상으로, 유감스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국제합의를 준수하고 유관국(북·미)의 대화를 촉구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2년 만에 재개되는 경의선·동해선 착공은 이미 지난 8월 30일 남북경협추진위원회에서 합의한 것으로 경의선 연내 완공말고도 개성공단 재추진과 남북경협 4개 합의서 조속 발효에도 합의한 바 있다. 상당기간 준비한 듯한 신의주 특구 기본법은 신의주 특구가 독자적인 입법. 행정. 사법권과 토지 개발. 이용. 관리권을 가지도록 하였다. 이때 북·일 정상회담이 핵·미사일 의제를 다루었다는 사실과 북이 신의주 특구 초대 장관으로 네덜란드 국적을 가지고 있는 중국계 양빈을 내세운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그만큼 북·일 수교(더 나아가 북미협상까지)에 대해, 그리고 북한 경제 재건에 대해 북이 강한 의지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북·일 수교,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한 조건{{) 김석진은 북한 개혁의 초기조건을 분석하면서 북은 중국처럼 과감한 경제개혁을 선택할 만한 정치·사회적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왜곡에 따른 대가를 1990년대 부분적으로 치룬 덕에 소련이나 동유럽보다는 좋은 조건이나, 왜곡된 산업구조 등 과거의 유산이 잔존해 있고, 최근 경제 성장 실적이 없다는 것을 꼽아 중국, 베트남보다는 불리하다는 것이다. (김석진, '북한 경제개혁, 성공할 것인가', [LG 주간경제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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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붕괴로 대외 무역이 완전히 막히고, 1995 ~ 96년 자연재해 때문에 농업생산이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리면서 북의 공식경제는 거의 기능을 멈추었다. 인민들은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직장을 떠나 부업 생산에 뛰어들었고, 이로 인해 공식경제는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누구를 탓할 문제도 아니고, 공식경제의 정상화는 북한에게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이를 위해 북은 2002년 7월 일련의 경제개혁조치를 단행하고, 시장요소를 도입해서 비공식경제를 억제하고 공식 경제를 정상화하려 했다. 이에 더해 농업, 에너지, 사회간접자본 등에 막대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했다. 또한 경제 개혁 조치에 따른 각종 위험(초인플레이션 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교역대상을 확보해야 하고, 지속적인 자본유입(혹은 자본축적)을 유도해야 했다. 이때 북·일 수교에 뒤따르는 거대한 경제 지원금과 지원 조치는 매우 긴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대다수 언론은 북·일 수교에 따라 보상금 차원으로 지원될 원조규모가 50억 달러 전후에 이를 것으로 본다. 이만해도 북한 GDP(2001년 현재 157억 달러)의 32%에 이르는 데, 아무도 여기에 그치리라고 보지 않는다. 북이 일본에 진 빚이 1,000억 엔 상당인데 많은 채무들이 정리될 것이고, 그동안 개발도상국이 특히, 일본으로부터 상당한 '공적 개발원조'를 받아온 것을 감안하면 북은 수교협상과정에서 추가 경제원조마저 약속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우수한 인적자원(높은 교육)에다 노동력 비교 우위 상품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게 일본시장은 다른 어느 곳보다 매우 유력한 곳이어서 일본은 그 자체로 북한의 안정적인 교역 대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북·일 수교에 따라 북·일간 무역과 투자가 활성화될 경우 북은 상당한 경제적 효과와 부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미 협상에 종속된 북·일 수교

그러나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의 정치적 안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미국은 올해가 제네바 협정 최종기한임에도 불구하고 관계정상화는커녕, 경수로 건설마저 고의로 지연시켜놓고는, 적반하장이라고 핵 비확산 만을 외치며 2단계 핵사찰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북의 경제난을 기회 삼아, 자신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에너지 지원 문제를 경제협력이라는 명분으로 남한에게 떠넘겼다. 게다가 의제에도 없던 미사일도 문제삼더니, 북·일 수교의 교환 대상으로 삼아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재래식 군사력마저 새로운 협상의제로 제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북·미 협상은 난항에 난항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북으로 자본 유입은 아예 곤란해질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줄면서 북은 군사적 경쟁을 벌여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만큼 경제 개발의 여력은 더더욱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로써 (어떤 방식으로든) 북의 경제 재건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이는 그 자체로 비극일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긴장으로 결국 한반도 전체를 비극으로 몰아 넣고 말 것이다.
지난 서해교전사태로 북한 특사 파견이 취소된 이후 북미 대화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렇다고 미국이 마냥 협상을 미룰 수는 없었다. 제네바 협상 준수 기한은 다가오고 있고, 북은 서해교전에 유감을 표명한 뒤, 북·러 회담, 이산가족 상봉, 아시안게임 참가 등등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 대미 협상창구를 열려고 했다. 이 지점이 바로, 미국의 입장에서 유력한 중개국으로 자임할 수 있는, 미국의 우산 아래 안주하려는, 그리고 중국에 비해 홀대받는 것에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남문희의 '북·일 정상회담 보이지 않는 손이 성사시켰다'(시사저널, 9.12)는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북·일 국장급 실무회담에서 북한의 대미 담당인 강석주 부상이 나온 점과 미국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방일한 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들어, 미국의 전언과 조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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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 경제 특구와 북한 경제의 재건

북은 신의주 경제 특구 입법안으로 입법·사법권과 행정권의 독립을 보장해 적어도 50년 간 이곳에서 자본 활동을 가능하게 하겠다는(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중국의 개방도 화교자본 유치에서 시작했고, 오래 전부터 화교자본이 신의주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특구 초대 장관이 양빈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나진·선봉 때와 달리) 북은 화교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였을 것이다. 만일 올해 안에 경의선 철도가 복원되고, 북·일 수교가 상당히 진전된다면 신의주 경제 특구는 안정궤도에 오를 수도 있다. 지난 8월 남북경협추진위에서 북은 개성공단 재개에도 합의한 바 있어, 북이 이에 대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면 남한자본 유치에도 적지 않은 성과를 얻을 것이다. 북의 본격적인 자본유치에 화교자본과 남한자본이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개혁이 농가생산청부제(가정경영책임제)로 실질적인 소유구조를 개편하고, 국유기업(집체기업) 개혁을 단행해 개별 경영권을 보장하였다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지난 8월 북한이 단행한 개혁조치는 (거꾸로 보면) 계획경제의 회복이 아니냐는 평가가 오고갈 만큼 중국의 개혁조치와 거리가 있다. 이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신의주 특구가 북한 지역과 담장을 쌓을 것이며, 재외국인은 비자없이 출입이 가능한데 북한 거주민에 대해 엄격히 통제할 것이라는 말은 이곳에서 자본투자는 확실히 보증하겠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거꾸로 보면) 북한 경제 전체를 변하게 할 위험에 대해서는 조심하겠다는 말일 수도 있다. 급격한 개혁이 야기할 지도 모를 인플레 압력을 감당하기에는 북의 경제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또한 급작스런 변화는 그동안 계획경제에 익숙한 인민들의 생활양식마저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북으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더구나, 살얼음을 걷고 있는 북·미 협상과 이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은 신의주 경제 특구의 미래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끔 한다.

북·일수교의 전망과 북한 사회주의 개혁의 미래

납북자 문제에 대한 일본의 여론이 강경해 북·일 수교 협상이 상당한 난항을 걷게 될 지도 모르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이미 '납치 문제를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교섭에 들어간다'고 공언한 바 있고, '북·일 수교 없이, 경제협력 없다'고 호언하며 여론 진화에 나서고 있는데, 이 점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국제정치 여건상 북·일 수교 방식은 선수교 후협상 방식이 될 것이고 이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같은 말을 놓고 강경한 뉘앙스로 바꿔 주장한 것이다. 전과 달리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납북문제가 과거처럼 북·일 수교의 중대한 장애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북·일 정삼회담 당시 일본 외무성은 북한에게서 납치 사망자의 명단을 건네 받을 때, 일본에 납치 사망자의 사망 일시를 숨겼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피납자 가족이 충격을 받을까봐 그랬다는 변명을 하며 여론진화에 나섰다. 여하튼, 납치 피해자 가족에 대한 보상과 해명 문제는 북-일 회담에 대한 ASEM 정상회담의지지 이후가 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애초부터 고이즈미 정부는 납치문제와 일본여론 악화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고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피납 가족은 생사확인과 진상조사를 위한 방북을 요구하고 있고, 납치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삼겠다는 일본 가을 임시 국회, 그리고 추가될 일본의 요구에 북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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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모두 미국에 북·미 협상 재개를 요청했고, 부시행정부는 다음날 마지못해 협상에 응한다는 듯이 대북 특사파견을 약속했다. 북·일 수교는 북·미 협상의 진척에 따라 진행될 것이고, 지금과 같다면 북·일 수교는 상당히 좋은 조건이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북·일 정상회담은 (북에게나 미국에게나) 교차승인의 마무리 즉, 북·미 협상을 향한 중대한 시도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의 연장선에서 신의주 경제 특구 또한 북한 사회주의 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상은 매우 큰 변화다. 즉, 이제까지 미국은 북의 안정성(stability)만을 잣대로 대북 접촉을 시도해왔다면, 지금은 개혁(reform)으로 이끌려는 몇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는 의미고, 북도 이에 조심스럽게 응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이를 관측하기에도 여전히 불안정한 요소들이 있다. 미국의 불분명한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북도 아직 역시 사회주의 개혁의 미래를 확정한 것이 아니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은 불분명한 태도만으로 많은 이익을 얻으며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는 데다, 북도 실험적인 조치 차원을 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런 시도는 성공 여부를 가리기도 전에 멈출 수도 있다.(그래서, 한반도의 비극은 계속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성공하든 못하든 이런 과정이 반복될 것이고, 이럴수록 북의 세계 자본주의 편입은 더더욱 기정사실이 될 것이라는 데 있다. 세계 자본주의는 지금 그 자체로 예측 불가능한 상태고, 중심국의 경제 위기를 주변국으로 떠넘기거나 주변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기생하고 있다. 북이 이처럼 불안정한 자본주의 세계로 편입되어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세계경제에 노출된다면, 중심국의 위기는 손쉽게 북으로 전가될 것이다. 미처 안정되기도 전에 북한 경제는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1970년대 동유럽 국가들은 외자도입에 의한 경제성장 정책을 꾀하게 되는데,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세계자본주의가 장기적 경제 불황에 빠지자 동유럽 국가 대부분은 외채위기를 겪게 된다. 1980년대 외채상환은 가중되고,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따라 내핍생활이 강요되었다. 이것이 199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연쇄붕괴의 원인이 된다. 한편, 당시 북한도 유사한 길을 걸었는데, 오일쇼크 이후 외채위기에 빠지게 되고, 결국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며 서방(특히, 일본)과 경제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다.
}} 그렇다면 도대체 한반도의 비극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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