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720964.html

[가신이의 발자취]
노동운동 고민하던 ‘걱정국장’ 이제 그만 쉬렴
-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송민영씨를 보내며

지난 7일 서른둘밖에 안 된 젊의 여성의 장례식이었지만 무척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화물트럭 운전 노동자, 전자제품 수리 노동자, 자동차 부품공장 노동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학교비정규직의 현실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가 선전물을 만들어준 얘기, 야간노동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힘을 실어주려고 희망커피 사업을 기획한 일, 여성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교육하던 모습, 추운 겨울 농성하는 노동자들과 함께한 기억을 나눴다. 모두들 ‘민영’에게 고마워하고 안타까워했다. 비좁은 테이블 사이로 육개장을 정신없이 나르다가 ‘우리 민영이가 참 대단하고 잘 살았구나’ 싶어 코끝이 시큰거렸다.
군홧발의 시대가 끝나 ‘운동’이 필요없다고 취급되던 2000년대 초반, 서울대 총학생회 활동을 하던 민영이와 처음 만났다. 우린 학생운동 막차를 탔다고 투덜대곤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함께 노동운동으로 갈아탔다. 노동운동도 내리막길이라고들 했고 운동권은 외부세력이나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로 여겨졌다. 그래서 고령화된 운동판에서 우리는 보기 드문 젊은이였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우린 왜 맨날 레드오션만 따라다니고 있냐’고 했다. 그러자 쿨한 민영이가 그랬다. “우리가 언제 잘되는 판이라서 뛰어 들었냐 필요하니까 하는 거지.”
민영이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졸업 뒤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에서 일 할 때에도,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할 때에도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충북지역 노조에 있을 때는 모두들 ‘성실하고 재주도 많다’고 입모아 칭찬했다. 사회진보연대에서는 ‘조직국장’이 아니라 ‘걱정국장’이라 할 정도로 네일 내일 가리지 않았다. 운동이 어려울수록 갈등은 늘어가고, 앞이 보이지 않는 지난한 싸움 속에 지쳐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도 민영이는 같은 자리에서 필요한 일을 했다.
편한 길이나 가로질러가는 길을 모르는 사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자신이 나서는 사람이던 민영이는 걱정국장답게 지난 2일 여행길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직전까지도 노동운동을 고민했다. 노동자들 사이 격차가 커져, 공동의 요구로 단결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노동운동이 더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할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이제라도 민영이를 안심시키려면 좀 더 분주해지자고 다짐하게 된다. 우리가 슬픔으로 비틀거린다면 민영이는 또 걱정하느라 쉬지 못할 게 뻔하니까. 민영이가 늘 하던 것처럼 필요한 일을 해야겠다.
민영아,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걱정하느라 고생 많았어. 그동안 우리가 니 덕을 많이 봤으니, 이제는 네가 우리 덕 좀 보게 해줘야겠다. 잘 할게 편히 쉬렴.

이유미/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