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86호 | 2010.09.07

금속노조의 공세적 공동 투쟁이 필요하다

불법파견 판결 이후 현대차 사내하청 투쟁의 방향

정책위원회
7.22 대법 판결 이후 비정규직 조직화와 자본의 탄압

지난 7월 22일 대법 판결 이후 한 달 반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에 대한 기대감과 운동 주체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숫자는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9월 3일 현재 사측의 지속적 탄압으로 연초 820명까지 줄었던 비정규직지회의 조합원은 2,485명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일같이 조합 가입 문의가 들어온다 하니 투쟁 경과에 따라 조만간 7천 5백 생산직 (1차) 사내 하청 노동자 중 절반 이상의 조직화도 가능할 것 같다.
7월 22일 대법 판결은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요지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판결은 파견법 개정이 있기 전인 2005년 7월1일 이전에 입사하여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 근로를 한 것이기 때문에 입사 2년 이후부터는 정규직으로 일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4년 9월 12월에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는 약 40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판결의 1차적인 대상자다. 파견법 개정 이후에 입사하여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판결의 1차적 대상은 아니지만 현대차 사측이 정규직 고용의무를 지니는 사법적 효력이 미친다. 정말 오래 간만에 찾아온 비정규직 투쟁의 기회다.
물론 사측이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눈뜨고 구경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달 29일에는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하청업체 관리자가 노조 조직화를 위해 순회 중이던 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을 맥주병으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회 간담회를 막기 위해 노동자들이 있는 사무실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는 감금부터, 입사추천인을 해고하겠다는 협박, 노조원이 나오면 업체를 폐업하겠다는 공갈까지 갖가지 방법으로 조합 가입을 막고 있다. 울산, 아산, 전주의 현장은 노조 조직화를 둘러싼 전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5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태가 있었다.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을 판정하자 대규모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조합 가입 운동을 벌였었다. 당시도 순식간에 2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조합에 가입했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며 노동부의 판정을 무시하고 노조 파괴에 열을 올렸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사수하고 고용안정을 쟁취하기 위해 해고와 구속을 감당하며 싸워야 했었다. 이 과정에서 류기혁 열사가 자결해 현대차의 부당함을 사회에 알리기도 했다.
물론 상황은 당시보다 유리하다. 당시 노동부 판정이 시정 권고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대법 판결로 법적 구속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지 사내하청 노동자 운동이 법적 판결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의 단호한 투쟁이 없다면 현대차 자본은 예전처럼 법적 다툼으로 시간을 벌며 비정규직 노조 파괴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대법원 판결을 왜곡하여 4천여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으로 재고용하며 시간을 벌 가능성도 있다. 2005년 7월 1일 이후 입사자에 대해서는 기간제 노동자로 고용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릴 여지도 다분하다. 2년 이하 사내하청 노동자는 해고 후 현 도급체계를 법적 허점을 이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하여 재취업시킬 수도 있다.
대법원 판결을 현실화하는 데는 너무나 많은 제약들이 있다. 2005년 GM대우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지만 회사가 폐업으로 대응하며 조합원들을 해고했었던 사례, 2008년 대법원이 현대미포조선의 원청사용자성을 인정했지만 원직복직을 반년 넘게 연기하다 복직 이후 중징계로 노동자들을 해고한 사례 등은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노동탄압으로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한 대표적 사례들이다.

금속 정규직-비정규직 단결 투쟁, 비정규직노조 강화가 함께 진행되어야

결국 문제는 대법 판결이 숨통을 틔어준 사내하청 문제를 어떻게 금속노조가 노동자 대중운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다.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낸 것이 2003년 사내하청지회 결성부터 근 8년간 수십 명의 노동자가 해고와 구속을 불사하고 만든 투쟁이었듯이 판결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 역시 금속 노동자들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는 7월 27일부터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위한 금속노조 중앙 특별대책팀’을 꾸리고 완성차 지부, 지역지부, 법률원 등을 모두 참여시켜 투쟁, 교섭, 집단 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비정규직지회는 사내하청 노동자 전원 정규직화, 투쟁과정에서 부당해고된 조합원 전원 정규직 복직, 정규직 전환에 따른 미지급 임금 지급, 비정규직 구조조정 중단 등을 내용으로 한 특별교섭 요구안을 9월 16일 사측에 발송할 예정이다.
그런데 부족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신규 조합원들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의 기둥으로 세워내기 위한 중단기적 계획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정규직 전환, 미지급임금지급 등을 내용으로 한 특별교섭, 집단소송은 일정대로 진행한다 하더라도 새로 조직된 노동자들을 금속노조 비정규직 운동의 진성 조합원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사측의 대응 정도에 따라 노조 자체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2005년의 경험도 그러하고, 법적 다툼이라는 것이 항시 시간을 끌면서 지루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사측의 다양한 노조 파괴 공작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합원 교육과 사회운동 참여의 경험을 통해 금속 노동자로 주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 투쟁을 위한 금속노조 차원의 노력이다. 현대차는 이미 세 차례나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노조를 꾸리는 1사1노조 방침을 부결한 경험이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정규직 고용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감이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지회 투쟁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작용이 있을 가능성도 크다.
이미 현대차지부 이경훈 집행부는 금속노조의 이후 투쟁 계획에 대해 이러 저러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경훈 집행부는 비정규직지회 특별교섭안을 현대차 지부 대의원 선거가 끝나는 11월에나 진행하자며 투쟁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나섰고, 지난 4일 류기혁 열사 5주기 추모 문화제에 대해서도 자신들과 논의가 부족했다며 공개적으로 불평을 표하기도 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직까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사실 지금 자본이 노리는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다. 대법원 판결이 미치는 영향은 정규직 노동자에게도 크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최근 논평은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강력한 노조에 의해 보호되는 대공장 근로자들의 경직적 고용관행을 개혁해야 할 당위성은 더욱 커졌다. 열린 노동시장이 구축되는 상황에서 법에 의존하는 비정규직 보호는 또 다른 형태의 편법적 고용관행을 가져오고, 비록 일부이지만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가져 올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 한 명을 줄여 비정규직 일자리 두 개를 만들자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재 사내하청노동자를 정규직화하며,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더 확산해나가지 않으면 결국 자본의 다음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금속노조는 현대차 관련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 의제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며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 투쟁을 모색해야 한다. 금속노조가 현대차지부와 비정규직지회 사이에서 투쟁 조율하는 소극적 역할에만 머무른다면 정규직 비정규직 단결 투쟁은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금속노조는 수직적 하청계열화, 비정규직 고용 등으로 수탈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차와 같은 재벌 대기업 문제를 사회적 쟁점화하며 사내하청 문제를 사내하청 노동자와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보다 근본적 문제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1998년, 2009년 경제 위기 과정에서도 보았듯이 재벌 대기업들은 부품사 노동자들,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비용 전가로 자신의 배를 불려왔다. 이들은 노동자와 하청기업을 쥐어짜서 이윤을 축적했다. 금속노조가 보다 힘있게 사회적 여론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적극적인 공동 투쟁 의제로 단결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현대차 사내하청 투쟁은 불황을 준비하는 자본과 대안세계를 준비하는 노동자의 한판 대결

7.22 대법 판결 이후 활기 있기 진행되고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은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금속노조 운동이 향후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지를 보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이다. 이번 투쟁은 현대차를 매개로 자본의 불황기 전략과 금속노조의 산별 전략이 정면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자본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사활을 걸고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고, 특히 2009년 경제 위기 이후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더욱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북미와 유럽 침체 속에서 소위 중국, 인도 등 성장세가 큰 시장에서 생산을 확대하고 있고, 경기 변동이 큰 불황기 경제 특성에 대비하기 위해 국내에서 설비 투자보다는 현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2009년에 현대차 생산량은 해외 비중이 50%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현금성 자산 역시 경제 위기 이전에 비해 22% 가까이 늘었다. 불황에 대비하는 현대차가 대법 판결 하나로 고분고분 정규직화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2009년 쌍용차 투쟁 패배, 완성차 정규직이 중심인 기업지부 해소 실패 등으로 산별노조로서의 존재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 금속노조의 가장 적극적인 사태 해결 방식은 다시 계급 대표성을 세워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고, 이번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을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공동 투쟁, 사내하청 노동자 대규모 조직화로 이끄는 것이다. 자본만큼이나 금속노조 역시 벼랑 끝에서 이번 7.22 대법 판결을 맞이한 셈이다.
지난 십여 년간 비정규직 투쟁이 있었고, 대법 판결 이후 새로운 국면 속에서 사내하청 투쟁이 진행 중이다. 재벌 문제의 범사회적 의제화와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화, 광범위한 연대 투쟁으로 이번 싸움을 반드시 승리로 만들자. 불황을 준비하는 자본과 노동해방의 대안세계를 준비하는 금속노조의 제대로 된 싸움을 만들어 보자. 현대차에서의 승리가 이후 자동차업종 사내하청 노동자의 투쟁으로, 그리고 한국 사회 비정규직 전체의 투쟁으로 발전하도록 만들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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