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87호 | 2010.09.16

이란에 대한 제재는 악순환을 강화시킬 뿐이다

미국의 대이란 정책에 동참한 이명박 정부

정책위원회
한국 정부의 이란 제재 동참

한국 정부는 9월 8일 ‘대이란 유엔 안보리 결의 1929호 이행 관련 조처’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란혁명수비대를 포함 이란의 단체와 기관 102곳과 개인 24명을 금융제재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 조처로 한국의 모든 기관과 개인은 한국은행의 허가 없이는 금융제재 대상자와 어떤 금융거래도 할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조처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것일 뿐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조처의 제재 수준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29호를 훨씬 상회한다.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영업정지 조치를 받게 된 멜라트은행은 유엔의 제재 대상이 아니다. 또한 이란과 거래 시 4만 유로 이상은 한국은행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1만 유로 이상은 한국은행에 사전신고를 해야 하는 부분 역시 안보리 결의안을 초과한 제재 조치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폐쇄로 가는 수순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넘어 미국의 대이란 정책에 동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의 포괄적 이란제재법

지난 7월 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포괄적 이란제재법이 발효되었으며, 미국 재무부는 8월 16일에 동법의 시행규칙을 발표했다. 포괄적 이란제재법은 1996년 발효된 ‘이란제재법’을 확대, 강화한 것이다. 기존의 이란제재법은 ①이란 석유자원 개발에 연간 2,000만 달러 이상 투자한 외국기업, ②이란의 대량살상무기 및 재래식 무기 증강에 기여를 한 외국 개인 및 기관에 대해 △미국 은행의 대출 제한 △미 정부 조달 금지 △대미 수출 금지와 같은 제재 조치를 부과했다. 이번 포괄적 이란제재법은 여기에 더해 ①물품, 서비스, 기술 등을 제공하여 이란의 정제유 국내 생산에 기여한 경우, ②이란에 정제유를 제공하거나 이란의 정제유 수입 능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에 관여한 경우를 제재 대상에 추가하여 △미국 내 외환시장 접근 금지 △미국 은행 시스템 접근 금지 △미국 내 자산거래 금지를 추가했다.
이번 제재의 주요 내용은 이란의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거나 정유제품 및 정제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이 미국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동안 추진된 미국의 이란 제재로 현재 이란과 거래하는 미국 기업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번 제재의 목표는 이란의 주요 재정 수입원인 에너지 부문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기업을 미국 금융시장에서 배제하여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 이란 제재의 효과

미국은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첫 번째 이란 경제제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란의 테러 및 핵확산을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다양한 제재 조치(미국기업과 개인에 대한 대이란 무역/투자 금지, 제3국의 대이란 교역 및 투자제재, 금융제재 등)를 시행했다. 그러나 이런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무역 규모는 지속적으로 커졌고, 이란의 핵 개발 의혹 역시 해소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1987년 수입금지 조치를 비롯하여 1997년까지 이란과의 모든 교역 및 투자를 금지하는 등 포괄적인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교역은 크게 축소되었다. 하지만 유럽 국가와의 교역이 크게 증가하면서 이란 교역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더불어 2003년 이후 본격화된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란의 교역규모는 매년 급증했다. 2008년 이란의 수출규모는 1,070억 달러로 2003년 320억 달러에 비해 200% 이상 증가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이 이란 전체 수출의 8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란의 실질 GDP 성장률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각각 5.1%, 4.7%, 5.8%, 7.8%, 6.5%로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이란의 교역선이 아시아 국가 중심으로 옮겨졌다. 2009년 이란에 대한 제재 조치 이행으로 프랑스의 Total이 철회를 결정한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개발 계약을 중국 국영석유기업인 CNPC가 체결한 바 있다. 이란의 총수출에서 EU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21.8%에서 2008년 17.9%로 축소되었다. 반면 대중국 수출은 2002년 9.6%에서 2008년 18.6%로 확대되었고, 수출금액은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2008년 현재 이란 전체 수출에서 중국(18.6%), 일본(15.4%), 한국(7.0%) 3개국의 비중이 40%를 넘을 만큼 아시아 국가와의 교역이 확대되었다. 즉 국제유가의 고공 행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의 교역 증가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의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이번 이란 제재의 배경

따라서 이란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제3국 기업의 이란 거래, 특히 에너지 생산과 관련된 부분의 투자를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번 이란 제재에 앞서 미국의 아인혼 대북ㆍ대이란 제재조정관이 한국-일본-중국 등을 방문하고, 한국과 일본이 적극적인 제재 조치에 착수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까지 미국이 이란에 매달리는 것은 첫째 미국의 중동 전략 때문이고, 둘째는 미국 내 정치 상황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2010 국방계획 4개년 검토’에서는 이란을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지역’으로 평가하며 ‘지속적으로 분쟁을 방지하고 억제해야한다’고 적시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중동 지역을 포섭과 배제의 원칙에 따라 관리해왔다. 1979년 혁명 이후 이란은 대표적인 반미 국가가 되었고, 1984년부터 미국은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해왔다. 즉 이란은 미국의 관리 정책에서 포섭의 대상이 아닌 배제시켜야 할 국가다. (이외에도 이라크, 시리아 등이 배제 대상으로, 미국은 이들을 ‘악의 축’으로 지정한 바 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곤란이 증명하듯 미국의 개입은 중동 지역에서 반미 운동의 성장을 가져왔을 뿐이다. 따라서 반미 세력의 확산을 차단하고 중동 지역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란을 ‘억제’하는 것이 중대한 과제가 된다. 여기에 에너지 문제도 포함된다. 이란은 현재 원유 확인 매장량이 세계3위(전 세계 매장량의 10%)이고,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2위(전 세계 매장량의 16%)에 달한다. 페르시아만과 카스피해 모두에 접해 있는 이란에 대한 관리는 미국의 에너지 패권 전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더불어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내 정치상황도 크게 작용했다. 오바마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8천억 달러가 넘는 재정 지출을 했지만 경기회복의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공화당을 비롯 여론의 맹공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는 중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란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와 같이 강경한 대외정책을 표방하고,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적인 재정지출을 하면서도 기업투자에 대한 감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 종전을 선언하고 철군 일정을 서두르는 것이나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는 것도 흐트러진 지지 기반을 회복하고 보수파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재는 문제를 악화시킨다

기존의 이란 제재가 이란의 교역 규모 확대에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란의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란은 현재 세계3위의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지만, 정제 능력 부족으로 원유를 수출하면서도 국내 가솔린 소비의 절반가량을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투자와 기술 유치가 힘든 상황이다.
미국의 진보적 씽크탱크인 ‘정책연구소’는 9월 초 이란 제재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다. 논평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990년대까지 세계적인 제재 조치의 2/3는 미국이 시행한 것’이라면서,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무력 개입의 위험이나 비용이 들지 않는 제재 조치가 외교적 노력에 비해 더 강력하다고 믿어왔다”고 밝혔다. 경제적, 사회적 제재가 군사력 사용의 대안이라는 믿음은 미국의 정책입안자들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폭넓게 퍼져 있다. 비군사적 처벌을 가함으로써 전쟁에 따른 대중의 고통과 희생 없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제재가 민중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을 낳는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1991년 쿠웨이트 침공 이후 이라크에 가해진 제재 조치는 미국의 폭격으로 피폐해진 이라크의 공공 서비스를 복구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수년 간 지속되었고, 영양실조가 만연했다. 1991-2001년 사이의 이라크 제재 동안 수십만 명의 아이가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재는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가해지기 마련이고, 사회적 부와 사회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민중들에게 그 피해가 집중된다. 제재 대상 국가의 지도자들이나 대량살상무기 관련 기관을 한정하여 제재한다는 이른바 ‘스마트 제재’ 역시 강대국의 위압적 수단이며, 더욱 강력한 제재 조치를 위한 예비 단계라는 면에서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러한 파괴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지속적으로 가해진 미국의 제재는 이란의 핵개발 시도도, 반미 세력의 성장도 막지 못했다. 제재 조치는 모든 문제를 외부의 제재에 대한 불만으로 전환시켜 지배 집단이 국내의 민주적, 민중적 요구를 쉽게 억압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가를 향한 집결’, 즉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촉발시킬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하게 한다. 이는 결국 폭력의 악순환을 부채질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현재 중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군사적 개입이 아닌 조치라 하더라도 폭력의 악순환을 부채질하여 그 자체가 전쟁 유발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 정부를 포함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적인 이란 제재는 중동 지역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 뿐이라는 점에서 이란 제재는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더불어 미국의 패권 전략으로 인해 반복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 ‘더 큰 국익’이라는 미명 아래 그 더러운 전쟁과 폭력에 참가하고 있는 한미동맹을 끝장내기 위해 사회운동은 강고한 투쟁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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