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14호 | 2011.04.13

구제금융은 포르투갈을 구원할 수 없다

재정위기와 구제금융의 악순환에서 증폭되는 유럽연합의 위기

정책위원회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유럽연합(EU)에 지원을 신청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재정위기를 겪어오던 포르투갈이 결국 2011년 4월 6일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7-9일 헝가리에서 개최된 비공식 EU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포르투갈에 약 800억 유로(약 125조 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작년 5월 그리스(1,100억 유로)와 11월 아일랜드(850억 유로)에 이어 구제금융을 받는 세 번째 유로존 국가가 되었다.


포르투갈 재정위기의 전개

사실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신청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포르투갈은 2008-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경기침체로 세수가 감소한 반면 경기부양을 위해 세출이 증가하면서 재정적자 비율이 2008년 GDP 대비 -2.9%에서 2009년 -9.3%로 확대됐다. 정부부채 비율도 같은 기간 GDP 대비 65.3%에서 76.1%로 상승했다. 2010년 재정적자 비율이 -7.3%로 다소 개선되었으나 정부부채 비율은 82.1%로 악화됐다. 2010년 말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11%를 기록했다. 그 결과 2011년 경제성장률이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 포르투갈의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확산됐다. 11월 말부터 포르투갈 국채 신용등급은 아일랜드와 동일한 '요주의 대상'으로 떨어졌다. 올해 2월에는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한계치(그리스와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수치)인 7%를 넘어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포르투갈의 자금조달비용을 낮추기 위해 그 동안 일시 중단했던 회원국 국채 매입을 2월 중순부터 재개하였으나 국채금리 상승세는 지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23일 포르투갈 소크라테스 내각이 재정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마련한 긴축안이 의회에서 부결되자 국채금리가 또다시 급등했다. 그 직후 개최된 3월 24-25일 EU 정상회의에서도 유럽 금융안정화기구(EFSF) 개혁에 대해 실효성 있는 구체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 안에 총 200억 유로에 달하는 부채를 갚아야 하는 포르투갈은 결국 가중되는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었다. 구제금융안은 다음 달 EU 경제ㆍ재무장관이사회(ECOFIN)에서 승인될 예정이다. 안이 확정되면 작년 그리스 위기 이후 조성된 7,500억 유로 규모의 유럽금융안정기금(EFSF)에서 2/3를, IMF가 1/3을 지원하게 된다.

포르투갈 재정위기의 원인

포르투갈의 경우 2010년 긴축재정에도 불구하고 재정위기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은 2010년 공공부문 임금 삭감(5%)과 민영화, 신규채용 및 연금 동결, 부가세율 인상, 국민연금 축소, 공기업 및 지방정부 재정지원 축소 등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했지만 결국 재정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포르투갈 경제의 취약성을 반영한다. EU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포르투갈의 노동생산성은 EU 27개국 평균치의 70%에 불과하다. 그 원인으로는 미흡한 인적자본 축적, 낮은 연구개발 투자, 임금의 하방경직성 등이 거론된다. 또 포르투갈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계속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2000년대 들어 경상수지 적자는 GDP 대비 10%에 달하고 있다. 장기에 걸친 경상수지 적자를 대외차입으로 보전함으로써 외채가 급증한 결과, 민간부문을 포함한 2010년 총외채는 그리스나 스페인보다 높은 GDP 대비 213%에 달한다.

유로존의 모순

그러나 이러한 진단은 사태의 현상을 열거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일랜드와 남부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는 유로 단일 체제에 내재한 구조적 모순이 세계 금융위기라는 정세적 요인과 결합, 폭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유로존 탄생 이후 이들 주변국의 국채금리는 독일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수렴했고, 그 결과 금융자본이 대거 유입되어 산업의 금융화와 서비스화를 촉진했다. 독일 등 유럽연합 중심국에 비해 기술력과 생산력이 열위에 놓인 이들 주변국의 제조업은 붕괴했다. 그 결과 무역적자가 누적되고 성장잠재력이 고갈됐다. 반대로 중심국은 주변국에 대한 무역흑자와 자본수출로 막대한 수익을 누렸다. 단적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독일인과 프랑스인은 전체 부채 증권의 약 50%를 보유하고 있다. 구제금융이라는 것도 실은 자국 금융자본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방안이다.

다음은 스페인?

이제 초점은 스페인으로 모아지고 있다. EU의 2010년 말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의 재정적자는 2009년 -11.1%, 2010년 -9.3%, 2011년 -6.4%로, 정부부채는 같은 기간 53.2%, 64.4%, 69.7%로 예상된다. 이는 지금까지 구제금융을 신청한 3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치이지만,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스페인의 경우 무역적자가 만성화되어 그 규모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특히 금융위기로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저축은행이 대거 부실화된 것이 커다란 위험요소다. 스페인의 공식 실업률은 20%를 상회하며 청년 실업률은 무려 40%를 상회한다. 물론 둘 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재정위기에 처한 국가를 공략 대상으로 삼는 금융자본의 투기행태도 위기를 촉진할 수 있다. 최근 ECB가 중심부 국가의 통화긴축 압력에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도 스페인의 자금조달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구제금융 금리가 ECB의 기준금리에 연동되므로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등 구제금융국의 디폴트 위험이 커질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유럽의 비민주성

유럽 5위 경제국인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할 경우 그 규모는 포르투갈보다 4배 많은 3,000억 유로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만에 하나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현재 EU가 조성한 재원으로는 구제금융을 제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작년 말부터 EU 차원의 공동국채(E-Bond) 발행이 일종의 대안으로 제기되었지만, 엄격한 재정규율을 주장하는 독일의 반대로 의제로 채택되지 않고 있다. 중심국 우파들은 '살찐 돼지들(PIGGS)'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우리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부을 수 없다는 여론을 조장하기도 한다.
분명, 재정위기와 구제금융의 악순환이 경제적 이유에서든 정치적 이유에서든 지속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재정동맹 없는 화폐동맹'으로서 EU가 진정한 '연방국가'로 거듭나는 것도 요원하다. 현재 유럽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해법은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중요한 사실은 EU와 각국의 지배계급이 유럽 민중을 자신의 삶과 직결된 정치적 논의로부터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유럽 민중의 삶과 미래와 직결된 EU의 화폐·재정 정책은 유럽의회의 현안이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스ㆍ아일랜드ㆍ포르투갈 구제금융 지원 계획도 유럽 민중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 결정이었다. 지배 엘리트에 의한 민주주의의 부정, 또는 혹자의 표현대로 '국가 없는 국가주의'야말로 EU의 근본적 결함이다.

또 다른 세계를 위한 투쟁만이 대안이다

2010년 이후 유럽 각국의 노동자들은 긴축재정이 경제위기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술책이라며 자국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또한 구제금융이 중심부 국가와 금융자본의 이해를 위해 (주변부)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안이라며 EU와 IMF를 비판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양대 노총인 노동자전국연맹(CGTP-Intersindical)과 노동자총연합(UGT)도 작년 11월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며 사상 최대 동맹 총파업을 전개한 바 있다.
EU가 구제금융 제공 조건으로 포르투갈에 더욱 강력한 긴축정책을 부과한 다음 날, 헝가리에서는 유럽노조연맹(ETUC) 소속 노동자 5만여 명이 연대시위를 벌였다. 소중한 성과다. 관건은 이런 흐름을 '신자유주의적 유럽'을 변혁하기 위한 국제적 대안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유럽 통합 프로젝트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역으로 EU의 해체는 필연적으로 유럽 민중들을 세계화의 위험에 더 큰 강도로 노출시켜 상호 파괴적 경쟁을 야기할 것이다.
지금 당장 확실한 답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유럽 민중의 발의를 발판으로 삼아 '또 다른 유럽'을 건설하기 위한 국제적 대안을 구체화하는 것은 조금도 지체할 수 없는 과제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와 정면으로 대결해야 할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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