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20호 | 2011.06.02

무상의료 운동의 길은 무엇인가

국고지원 우선 확대와 의료자본 통제로 가야한다

정책위원회
지난 5월 28일, '무상의료 시민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건강보험 대개혁을 위한 연석회의'가 '무상의료 시민의 날 행사위원회'를 조직해서 준비했다. 행사위원회에는 민주노총, 전농, 전국여성연대 등 노동사회단체들과 더불어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도 참여했다.


무상의료는 그냥 좋은 것?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통합적 연대체 건설의 계기로 준비되었다는 이번 행사는, 그러나 무상의료가 무엇인지,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메시지 전달도 없었다. 막연하게 '무상의료는 좋은 것'이라는 이미지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무상의료운동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개그맨이 사회를 보고, 인디밴드와 가수의 공연, 콩트를 중심으로 진행된 당일 행사는 실천운동을 위한 자리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이 무상의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기 보다는 단순히 무상의료 정책에 대한 지지를 동원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무대에 오른 민주당 원내대표는 무상의료를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그간 민주당이 보여 온 모순적 행동에 대해서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무상의료는 '막연하게 좋고', '몇 가지 정책을 지지하면 되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 재정 확충을 저지하는 기획재정부와 증세에 저항하는 부자들과 기업들이 버티고 있다. 또한 보건의료부문에서 어떻게든 시장을 넓히려는 자본들이 공세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정확한 상황판단과 제대로 된 대중운동을 통해서 저항하는 세력들을 이겨내야만 무상의료가 가능하다. 낭만적인 염원으로는 결코 무상의료를 달성할 수 없다.

건강보험 재정 확충은 국가 책임으로부터

건강보험 재정 확충은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2004년에서 2008년까지 총 보험료는 15.6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60% 증가했다. 반면 국고지원은 3.5조 원에서 4조 원으로, 단지 16% 증가했을 뿐이다. 현재 건강보험법은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예상수입은 매년 실제보다 적게 추산되었고, 결과적으로 2002년부터 현재까지 5조 원이 미지급되었다. 기획재정부는 절대 사후정산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보건복지부는 위법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고 있다. 설상가상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규정'은 올해로 시효가 만료되는데, 기획재정부는 추후 개정 법안에서는 현재 20%인 국고지원 비율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을 지속적으로 줄이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을 역전시키지 않는다면, 건강보험 재정 확충은 요원한 일이 된다. 정부가 미지급한 5조 원을 지급하고, 국고지원을 현재보다 대폭 늘릴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 추가할 수 있는 재원이 제한적이더라도, 국고지원의 비중을 올림으로써 향후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부담 비율을 줄일 수 있다.(물론 의료자본에 대한 통제 없이 국고지원만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의료민영화 저지는 무상의료의 핵심

의료민영화는 무상의료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의료민영화는 병원, 제약, 의료기기, 민간보험 등 이윤 창출에만 목을 매는 의료자본이 마음껏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시장을 열어준다. 따라서 의료민영화는 의료비를 급격히 증가시키는데, 그 의료비는 모두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들에게서 나온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기 위해 공적 재정을 확충해도 의료기관의 이윤추구가 제어되지 않는다면, 공적재정은 다시 의료자본의 확장에 들어가고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무상의료는 불가능해진다. 무상의료는 돈이 있건 없건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을 모두에게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민영화를 통해 자본은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공급하고자 한다. 이 둘은 경제적으로 양립 불가할 뿐 아니라 가치적으로도 모순된다. 따라서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은 무상의료 운동의 핵심적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의료자본 통제와 공공의료 확충이 중요하다

노골적인 의료민영화 협정인 한EU FTA는 이미 통과되었고, 그보다 더한 한미 FTA는 비준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번 6월 국회에서는 영리병원을 본격적으로 허용하는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과 건강관리를 시장화하는 <건강관리서비스법>이 논의될 예정이다. 삼성, SK, LG와 같은 재벌기업들은 원격진료 산업에 이미 몇 년 전부터 투자를 해오고 있으며, 이미 컨소시엄도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대형병원들도 참여하고 있다. 병원은 이윤 추구에 몰두하고, 민간보험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초국적 제약기업이 특허권으로 독점을 유지하며 폭리를 취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건강보험에 투입한 공적재원은 대부분 자본을 키워주는 역할만을 하게 된다.
자본이 의료민영화를 통해 시장을 확보하고 나면 돈이 안 되는 필수 진료과목들은 부차화 될 것이다. 투자는 돈이 되는 성형의료나 고가의 장비를 활용한 시술 부문이나, 의료 행위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부대시설에 집중될 것이다. 의료비는 증가하나 그 서비스가 국민들의 건강을 보편적으로 증진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진다. 따라서 의료비가 증가하는 메커니즘은 그대로 둔 채 증가하는 의료비를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부담하자는 것이 무상의료의 내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공공의료를 해치려는 자본에 공적재원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기관 설립과 같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쓰여야 한다. 무상의료의 핵심은 공적재원 확충과 공공의료기관 확대인 것이다.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데 점점 더 자본의 역할이 커지는 문제, 이로 인해 건강불평등이 심화되는 문제에 대한 대중적 환기를 하는 것이 무상의료 운동의 중요한 의무다. 병원의 과잉진료를 제어할 수 있는 몇몇 정책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윤 추구에 눈이 먼 병원들 때문에 이런 정책을 도입하는 것 자체도 지극히 어렵고, 도입되더라도 병원들이 교묘히 피해가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낭비적 지출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이윤추구 경향을 제어할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도 도입의 정치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상의료 운동의 노선 정립이 필요하다

무상의료 운동은 이미 민주당과 어깨를 걸고 나란히 가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올해 4월 국회에서 제주영리병원을 통과시키려다 사회단체 등 여론에 밀려 6월 국회로 미룬 바 있다. 그리고 약값 상승, 민영의료보험의 무분별한 확대, 영리병원 허용을 촉진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 한EU FTA 비준 동의안에 사실상 합의했다. 한미 FTA에 대한 입장도 문제다. 참여정부 시절 자신들이 체결한 협정은 별 문제가 없고, 작년 이명박 정부가 타결한 재협상안은 '굴욕ㆍ퍼주기 협상'이라는 것인데, 2007년 민주당이 체결한 협정은 의료민영화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민주당이 생각하는 무상의료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이런 태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의료민영화나 의료자본 통제에 대한 무상의료 운동 진영의 안이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와 내년에 집중될 무상의료 운동은 국고지원 확대 요구에서부터 대중들의 실천을 이끌어내고, 의료자본 통제의 필요성에 대해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좋은 이미지'만 강조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무상의료를 쟁취할 수 없다. 특히 그것이 총대선 용의 '먹음직스러운 선거 공약'에 불과하다면 더욱 문제다.
하루빨리 노선을 바로 잡고 무상의료를 위한 정치를 제대로 말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책임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의료자본에 대한 한 판 싸움을 하기 위한 정치이다. 그것은 노동자ㆍ시민을 '무상의료 정책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로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무상의료 쟁취를 위해 국가와 자본에 대항해 싸우는 주체로 조직하는 아래로부터의 정치이다.
주제어
보건의료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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