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61호 | 2012.04.19

빈곤의 연좌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하라!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기초법 전면개정 투쟁의 계기로

정책위원회
지난 4월 18일, <기초법개정공동행동>과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 공동투쟁단>은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 총선, 대부분 정당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해 폐지 혹은 큰 폭의 개선(민주통합당)을 내놓았지만, 과반 의석수를 차지한 새누리당은 이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새누리당은 부양의무자기준에 대해 ‘현행 유지’의 의사를 밝힌 것인데 ‘맞춤형 복지국가’를 슬로건으로 삼는 정당으로서 기만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모든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공적부조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권리’로서 보장한다?

김대중 정부와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전의 생활보호와 다르게 ‘권리’를 강조하며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제도 시행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라한 규모이기만 하다. 2011년 현재 수급자수는 전국 147만 명으로 전 국민의 2.9%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에도 불구하고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410만 명(2009년 기준)에 달해 제도 포괄범위보다 두 배 이상 넓은 사각지대를 낳고 있다. 월 가처분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인 가구의 비율을 나타낸 ‘절대 빈곤율’은 2007년 10.2%, 2008년 10.4%, 2009년 11.1% 로 계속 높아지고 있고, 생계형 자살, 특히 노인자살률이 OECD국가 1위를 달리고 있는 현재도 아무런 대책을 못 내놓고 있는 누더기 같은 제도, 이것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현 주소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해야 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점을 가지는 것은 바로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낳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곤궁하고 뼈아프게 만드는 핵심적 요소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수급대상자의 1촌 이내 직계 혈족이나 배우자의 재산 및 소득이 기준을 초과할 경우 수급을 제한하는 제도다. 즉, 가난한 사람은 우선 가족이 책임지다가 가족도 가난해지면 그제야 국가가 어떻게 해보겠노라는 ‘빈곤 연좌제’라 부를 수 있는 제도다.

어떤 비참함을 선택할 것인가?

2010년 10월, 일용직노동을 하던 한 아버지가 목숨을 끊었다. 장애판정을 받은 아들이 치료라도 받으려면 수급을 받아야하는데, 노동능력이 있는 자신 때문에 아들이 수급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일자리를 못 구해 힘들다"며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 내가 죽으면 동사무소 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2011년 4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수급을 받지 못하던 김모 할머니는 영양실조와 폐결핵에 시달리며 보건소와 시립병원을 오가다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사망했다. 2011년 7월, 청주의 한 노인은 아들의 소득증가로 인한 수급 박탈 통보를 듣고 생활하던 시설에서 투신했다.
2012년 4월, 고아원에서 자란 20대 청년은 수급을 받으며 대출을 받아 대학에 들어갔지만 십여 년 간 만나지 못한 아버지의 일용소득이 잡혔다며 수급권을 박탈당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안타까운 사정에 놓여있는지 수차례 읍소해야 했고, 연락이 되지 않던 아버지는 동사무소에 들러 부양의무포기 각서를 쓰고 가야 했다. 청년은 ‘두 번 버림받은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수급권을 선택하기 위해 가족을 버려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과 자식을 위해 부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비극은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권리’로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정확한 증거다.

현행 기초법의 문제점

이러한 상황은 국가가 가난한 이들에게 권리로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보장한다던 훌륭한 선언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가족 부양의 책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현행 기준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인 경우를 기준으로 삼아, 최저임금만큼도 못 벌어도 부모나 자식을 부양하고 있다고 간주해버리기 때문이다. (최저생계비는 가구수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 1인 가구 기준은 월 553,354 원이다.)
또한 2012년부터 장애인, 노인, 한부모가구에 한해 완전히 부양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소득 구간이 최저생계비의 185% 수준으로 상향조정되었지만, 이 역시 정부의 선전처럼 혜택의 폭이 커졌다고 보기 어렵다. 185% 이하 소득가구를 부양능력 없음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130%에서 150%까지를 부양능력미약(부양비책정)으로 판단하던 기존 기준을 130%~185%로 늘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더 넓은 구간에 간주부양비가 책정되어 따로 사는 부모-자녀의 소득, 재산 변동에 따라 수급자의 삶은 더욱 불안정해지는 효과를 낳는다. 실제로 가족으로부터 부양비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간주부양비가 책정되어 자녀, 부모의 자산변동에 따라 수급비가 들쑥날쑥해지는 상황은 수급자의 자존감과 안정적인 생활을 가로막는다.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자!

최근 빈곤에 대한 부양의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빈곤한 사람은 ‘정부’에서 일차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74%가 넘고, 선 지원 후 보장비용을 청구하는 구상권의 행사에 대해서도 찬성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빈곤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넘기는 것이 부당하다는 여론이다.
빈곤으로 인해 가족 관계가 취약해져 있는 조건에서 부양 의무자 기준은 가족관계의 파탄까지 야기하는 요소로 빈곤층에게 이중삼중의 고통의 요소가 되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며,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으로서 기초법이 기능할 수 있도록 변화하여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시행령 개정을 비롯 그동안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화 조치들이 꾸준히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완화조치 이후에도 수급자 추이에는 별 변동이 없고 오히려 과도한 조사가 일상화되어 수급자의 지위가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는 조건을 볼 때, 소폭의 완화조치가 아니라 부양의무자 완전 폐지가 필요하다는 점이 확인된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선거철을 의식한 복지공약들이 줄을 이어 나타나고 있지만, 기초법 개정에 관해서는 많은 정당들이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누구나 가난해질 수 있는 현 사회에 대한 우리 모두의 책임일 뿐만 아니라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후의, 최선의 보루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뿐만 아니라 최저생계비 현실화, 상대빈곤선 도입 등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적 개정이 시급하다. 기초법 개정은 2010년 보건복지위 의원들의 과반 찬성에도 불구하고 법안상정조차 좌절되었었다. 2011년, 국민의 복지를 책임진다던 보건복지부는 국회의 기초법 개정안 상정 자체를 반대했다. 더 이상은 가난한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야만을 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의 삶을 지키기 위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함께 쟁취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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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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