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65호 | 2012.05.10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과 결별해야 한다

뼈를 깎는 자기비판으로 정치방침을 새롭게 수립해야

정책위원회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논란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도대체가 진흙탕 싸움에서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논란의 일차적인 책임은 소위 당권파에 있다. 이들은 ‘정치적 압박에 사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부정선거’ 프레임을 ‘부실조사’ 프레임으로 전환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은 ‘총체적 관리부실·부정선거라는 입장에 추호도 변함이 없다’는 진상조사위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본질을 ‘마녀사냥’ 또는 ‘정치공작’으로 규정하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하지만 진실공방으로 논점을 흐리며 일정한 정치적 명분을 확보한 뒤 당원총투표로 대의기구 결정을 무력화하며 시간을 벌려는 당권파의 출구전략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의 처지처럼 통합진보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에 처해있다. 그러는 사이 민중운동의 사기는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당권파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는 민주주의의 기초와 진보의 상식을 저버린 행태에 대해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의 사태를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 다 흐린다’는 식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많은 부분 당권파의 책임이 걸쳐있긴 하지만 오늘의 사태는 통합진보당 전반이 처한 오류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부정경선 말고도 이정희 대표의 야권단일화 경선 여론조작, 성폭력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의 비례대표 공천, 성추행 전력 후보에 대한 부실 검증, 현직 지방의원의 사퇴 후 총선 출마 등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으로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치부를 드러냈다.
이는 표면적으로 후보자 개인의 출세주의나 특정 정파의 사리사욕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당 내부에서 적절한 검증이나 조정 절차를 갖췄다면 많은 부분 해결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출세주의나 정파적 이해가 반복적으로 출현하고 그 정도가 계속해서 심화하는 역사적·구조적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당직·공직 선거과정에서의 부정 시비는 당권파가 떳떳이 밝히듯이 실로 오래된 관행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현 당권파를 포함하여 과거 민주노동당을 수권했던 범 민족해방 계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만큼 파장이 컸던 것은 아니지만,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세팅선거’나 위장 전입, 당비 대납 사건은 정파 갈등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2000년 울산 북구, 2001-2002년 서울 용산, 2003년 경기도 의정부갑, 2004년 광주 북구, 2005년 인천 남구갑 등에서 위장 전입이나 당비 대납 사건이 빈번히 발생했다. 또 2004년 이후 다수를 점한 범 민족해방 계열은 당내 선거에서 1인 다표제를 도입하여 그 안의 정파별 안배를 통해 당직·공직을 독식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파 갈등은 결국 2007-2008년 대선 패배에 이은 소수파의 탈당으로 귀결되었다.

통합진보당 노선 자체가 문제다

이러한 과정은 민주노동당이 원내정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의회주의와 수권정당 노선이 강화된 과정에 병행했다. 원내진출을 계기로 당의 인력 및 재정 배치는 의정지원에 편중되었다. 또 당의 정치이념을 급진화하고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이러한 노선 변화와 함께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당직·공직을 둘러싼 정파 간 경쟁도 격화되었다. 정파 활동의 초점 역시 정당의 이념과 운동이 아니라 당권 장악과 공직 진출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생존의 위기에 처한 정파들이 선거공학에 따라 무원칙한 합종연횡과 권력분점을 시도한 산물이 바로 오늘의 통합진보당이라는 점에서 모순이 더욱 심화하였다. 이념과 역사를 초월한 정파연합당인 통합진보당 안에서 정파들 간의 지분 안배와 당직·공직 진출은 처음부터 첨예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통합 이후 대의기구 지분 분할과 비례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지난한 논쟁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야권연대 역시 정책연합보다는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민주통합당과 후보를 조정하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
현재 비당권파는 강기갑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비상대책위 체계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권파는 비대위 체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양자가 사태 수습 방안을 둘러싸고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당권파든 비당권파든 사태가 분당과 같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극심한 내홍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5-6석과 원내 3당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공통의 이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노동당 비주류나 새진보통합연대 등 비당권파들은 당권파가 당직·공직에서 한 발 물러나게끔 함으로써 사태를 최대한 원만하고 신속하게 수습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당권파의 패권성과 비민주성을 비난할지언정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추진한 통합진보당의 노선, 즉 자신들의 정치노선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할 때 당권파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한들 그 빈자리를 채울 비당권파에게 쇄신된 진보정당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통합진보당으로서는 ‘도마뱀 꼬리 자르는 격’으로 당권파에게 사태의 책임을 묻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간편한 길일 수 있다.

민주노총은 총선방침의 오류를 자기비판해야 한다

누구나 직감하듯이, 이번 사태가 진보진영에 끼치는 악영향은 지대할 것이다.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보수언론은 ‘당권파는 부정 없었으면 자청해서 검찰 수사받으라’(조선일보)거나 ‘민주주의 DNA 없는 당권파, 북한 닮았다’(동아일보)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검찰이 개입할 빌미도 주어진 상태다. 여론 악화로 통합진보당 지지율이 빠르게 추락한 것은 물론 이를 지지했던 민중운동의 사기도 크게 저하하고 있다. 당 내부의 논란은 어찌됐든 간에 12일에 열릴 중앙위원회에서 일단락되겠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직 내부의 만만치 않은 반론을 묵살하고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 민주노총은 다시 한 번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실 민주노총은 이번 부정경선 논란의 당사자다. 문제로 지적된 현장투표의 상당 부분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짐작하기란 크게 어렵지 않다.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집중 투표 정당’으로 정하기 위해 실시한 조합원 ARS 여론조사 역시 부정·부실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조사를 대행한 업체 대표가 바로 이석기 당선자였으며 민주노총은 이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회계 지침마저 위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합원 1명당 3통씩 전화가 오는 과정에서 중복투표가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애초 여론조사 방식을 반대했던 다수의 산별노조/연맹과 지역본부가 제외되어 ‘조사에 응하고 싶은 조직과 조합원’만이 표본으로 취합된 결과 여론조사 방식 자체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의문시되었다. 공식 대의기구를 무력화하면서 여론조사로, 그것도 전체 조합원의 5%에 불과한 응답률로 조직의 중요한 방침을 결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노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였다. 더욱이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며 따라서 민주노총의 지지 정당이 될 수 없다’는 현장의 문제제기에 따라 소집된 임시대의원대회는 집행부의 대회 무산 의도 속에 성원미달로 또다시 유회되었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못지않게 부정경선 논란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민주노총 집행부는 조직 내부의 문제제기를 철저히 묵살하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민주노총 집행부가 문제투성이 총선방침, 즉 국민참여당과 합당한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투표에서 배타적으로 지지하고, 또 그 통합진보당이 전면적인 야권연대를 통해 단일화한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역구 투표에서 연대후보로 지지하는 총선방침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오였다.

뼈를 깎는 반성으로 통합진보당과 결별해야 한다

일단 민주노총은 3일 산별대표자회의 결과를 반영하여 ‘통합진보당 부실·부정선거, 재창당 수준의 고강도 쇄신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한 상태다. 여기서 산별 대표자들은 ‘미봉책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았다. 같은 날 열린 16개 산별 공동 주최 ‘총선평가 토론회’에서도 여러 산별 대표자들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 논란과 민주노총 총선방침의 문제점을 강하게 성토했다. 민주노총은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를 앞두고 조직적 입장을 결정하기 위해 11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한 상황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집행부는 아직 총선 평가안을 정식으로 제출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에 대한 조직 내 이견이 해소되지 못한 속에서 총선을 치러 방침 결정 및 집행에 난항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 역량과 주체 역량이 취약한 상태에서 진보진영 단일화와 야권연대 방침에 기초한 선거방침을 결정한 것은 불가피한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원내교섭단체 진출과 여소야대를 목표로 수립된 총선방침의 오류를 전혀 반성하지 않은 평가다. 심지어 민주노총 한 주요 간부는 성명 발표 이후에 개최된 통합진보당 운영위원회에서 당권파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반조직적 언행을 일삼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민주노총 성명은 산별 대표자들의 비판을 의식하여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집중투표 전술에 대한 유감을 표한 것일 뿐, 집행부 스스로 총선방침 전반에 대한 자기비판을 수행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동시에 산별 대표자들 역시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지만, 이를 통합진보당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집행부는 11일 중집에서 총선방침의 오류를 시정하지도, 통합진보당에 대해 선언 이상의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면 민주노총 중집의 총선평가는 단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비판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엄정히 비판하고 야권연대와 같은 우경화된 실용주의와 단절해야 한다. 무엇보다 총선방침과 정치방침을 둘러싼 지난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통합진보당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통합진보당에 대한 조합원들의 냉소와 불신을 씻고 현장과 지역의 투쟁을 엄호, 확산하면서 흔들림 없이 총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정치세력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민주노총의 태도에 따라 정치방침을 올바로 수립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자세로 정치세력화의 원칙과 방향에 관해 전조직적인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정치세력화는 노동자계급이 이념적·조직적으로 정립하여 사회변혁의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 전반을 의미한다.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을 바로 세우고 노동조합의 조직적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 정치세력화의 기초다. ‘집권’을 위해 노조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 매몰되는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노조의 민주성·연대성·투쟁성을 바탕으로 계급적 단결과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이번 사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값비싼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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