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78호 | 2012.08.16

이주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

8월 19일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에 함께하자

정책위원회

사업장의 임금, 노동시간, 노동강도, 안전, 휴가 등 각종 근로조건이 열악할 때,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을 때, 노동자가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사표를 내고 사업장을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2012년 8월 1일부터 한국에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은 사실상 자신이 일할 사업장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고용허가제 초기부터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변경 횟수를 제한하고 업종간 변경을 금지하는 등의 조항으로 인하여 기본적 권리조차 침해받아왔다. 그나마 지난달까지는 사업장을 변경할 때 고용센터에서 새로운 사업장 명단이 담긴 알선장을 받아, 그 중에서 제한적이나마 이주노동자 스스로 사업장을 비교해보고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6월 4일 고용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 방지 대책>을 발표하여 8월 1일부터 이주노동자에게 어떠한 사업장명단도 제공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8월 1일부터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선택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고용노동부 내부지침이 시행되었다. 그나마 보장되던 최소한의 제한적 선택권마저 빼앗아간 것이다.
이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변경을 하기 위해서 자신을 추천하는 회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를 24시간동안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 외에는 어떠한 구직노력도 할 수가 없다. 이주노동자를 흡사 노예와 같은 신분으로 전락시키는 정책이다.

고용노동부가 줄이고 싶은 것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횟수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시 받는 알선장이 브로커에게 넘어가 이주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지침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고용노동부가 정말로 브로커에 의한 이주노동자 피해를 걱정하며 정책을 마련했다면, 기본적으로 브로커들의 규모와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구체적 근거자료를 요구하는 공식적인 공개질의서에 대해 자체조사 결과가 아닌 한 언론의 신문기사를 제시하며 답변했을 뿐이다. 그 신문기사 역시 구체적인 수치와 내용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브로커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주노동자가 있었다는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한 것에 불과했다.
백보 양보하여 브로커로 인한 피해를 입는 이주노동자를 구제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고용노동부 정책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속셈은 브로커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을 억제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내부지침을 발표하면서 ‘잦은 사업장 변경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영세업체의 인력난을 심화시키며, 성실한 다른 근로자까지 근로의욕 저하문제를 유발한다’고 이번 대책의 배경을 설명했다.

고용노동부가 원하는 것은 노예처럼 일하는 이주노동자

더욱 어이없는 논리는 기존에 시행되던 구인업체 명단 제공이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을 통한 근로조건 향상의 기대를 주고 있기 때문에 고용허가제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 실무자는 이번 대책이 고용허가제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사업장을 이동할 때 근로조건이 나은 곳이 아닌 더 악화된 곳으로 가려고 하는가? 게다가 고용허가제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특정한 사유를 제외하고 총3회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사업장을 변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오로지 한 사업장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노예처럼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 본래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고용노동부의 저열한 의식수준은 여러 정책들에서 확인된다.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된 ‘성실근로자 재입국 제도’ 역시 그렇다. 이 제도는 최초 고용계약이 만료된 이주노동자의 경우 사업주가 원한다면 3개월 간의 출국기간 이후에 다시 4년 10개월 간 재고용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 성실근로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최초 고용계약 중에 본인의 자발적인 의사로 한번도 사업장을 옮기지 않은 이주노동자만이 재입국을 할 수 있다. 사업주의 책임(사업주의 폭행, 임금체불, 사업장의 휴폐업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사업장을 바꾼 경우만 성실근로자재입국제도에 의해 재고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이주노동자가 자유로운 계약해지나 자발적인 의사로 사업장을 옮겼다면, 그가 아무리 성실히 일했다고 해도 또 사업주가 이 노동자의 재고용을 원한다고 해도 재입국을 할 수 없다.

고용허가제 8년=이주노동자탄압 8년,
가열찬 고용허가제 폐지 투쟁을 시작하자!


고용노동부의 반인권적, 반노동적 지침에 맞서 전국의 이주노동자 운동 단체들이 함께 ‘이주노동자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7월부터 전국적인 투쟁을 벌여나가고 있다. 이미 투쟁의 성과로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전화를 거부할 경우 2주간 알선이 중단된다’는 조항이 폐지되었다. 또 어떠한 명단도 주지 않겠다던 기존의 입장을 수정하여 이주노동자에게 추천된 사업장 명단을 문자로 보내주겠다는 내용도 쟁취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투쟁을 더욱 확대해나가야 할 때이다. 지난 8월 12일에 열린 ‘고용노동부내부지침에 대응하기 위한 이주공동체 연대회의’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투쟁의 결의를 다진바 있다. 또한 이번 내부지침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도 이미 천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동참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들도 이주노동자 권리촉구 1천인 선언에 1,548명이 그 뜻을 함께 모았다. 8월 19일에는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가 힘을 모아 지난 8년간 이주노동자를 억압해온 고용허가제 폐지와 사업장이동의 자유보장, 그리고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힘차게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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