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613호 | 2013.05.16

정의로운 ‘을’의 반란,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파업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로 부당한 ‘갑의 횡포’에 맞서자

정책위원회
지난 5월 4일 인천과 부천에서 시작된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의 파업이 전주, 광주, 창원, 서울, 청주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파업에 참가한 차량의 규모가 이미 1,000대를 넘어섰다. 2020년까지 매출액 25조원의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통합 CJ대한통운이 출범한지 한 달만의 일이다. CJ대한통운은 파업에 나선 택배노동자들과 일체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고, 5월 14일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는 “부당한 ‘갑’의 횡포에 힘없는 ‘을’로만 살 수는 없다”며 즉각 교섭에 나설 것을 CJ대한통운 사측에 요구했다.


CJ대한통운의 막무가내 운영과 뻔뻔한 약속 뒤집기

CJ는 2012년 대한통운을 인수한 후 1년간 통합운영을 준비해왔고, 2013년 3월 구역정리와 배송수수료 인하, 패널티 제도 적용 등 택배노동자를 쥐어짜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전에 택배노동자와 어떠한 논의 및 합의, 정보공개도 하지 않은 채 마련한 통합운영 계획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CJ대한통운 사측이 보여준 행태는 업계 1위 기업의 그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치졸했다. 운영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를 구하는 대신 대리점주 및 택배기사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해 동의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했다. 당연히 노동조건의 급격한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동의서에 대해 노동자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그러자 사측은 해당 대리점주 및 택배기사와 친분이 있는 지점·본사 직원을 보내 회유·협박하여 서명을 받아냈다.
급지조정에서 가장 직접적 피해를 입은 광주지역 택배노동자들이 먼저 저항을 시작했고, 파업 하루만인 3월 31일 사측과 패널티 제도 및 수수료 인하 문제 해결에 대한 합의를 체결했다. 이어 4월 1일 성남, 전주, 구미지역 노동자들 역시 관련 내용에 대한 합의를 체결하거나 구두 약속을 받아냈다.
문제를 악화시킨 것은 CJ대한통운 사측의 갑작스런 약속 파기였다. 합의 체결 2주 만인 4월 중순 CJ대한통운 사측은 ‘택배노동자와의 합의는 그룹 차원에서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대며 합의 무효를 주장하고, 합의 체결에 관여된 임원들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며 약속을 파기했다. 약속 파기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택배노동자들이 배송차량에 현수막을 부착하자 하루만에 270여 대의 차량에 대해 업무를 중단시키고 회차 조치를 취하면서 전면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파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금, CJ대한통운은 이번 사태에 사측의 책임은 없다고 발뺌하며, 예치금 및 인보증제도 등 불공정한 계약에 묶여 파업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대리점주 및 택배기사를 동원하여 ‘외부세력의 간섭’으로 인해 파업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누가 택배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는가.

폭압적인 갑을관계의 결정판, CJ대한통운의 횡포

이번 파업의 가장 큰 쟁점은 CJ대한통운의 일방적인 수수료 인하 방침이다. 통합운영 이전 880~900원이었던 건당 배송수수료가 통합 후 810~820원으로 인하되었다. 수수료가 일거에 8% 이상 하락한 것으로, 특수고용이라는 지위로 인해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류대, 통신비, 지입료 등 제반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하는 택배노동자의 상황을 고려하면 실제 수입은 10% 이상 감소하게 된다.
택배노동자들은 주 6일 상시적으로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하여 오후 9시에 퇴근하며 명절 등 택배 물량이 급증하는 때나, 거래처에서 대량으로 물량을 보내는 때에는 밤 11시 이후에 퇴근하는 일도 다반사다. 주 단위로 환산하면 노동시간이 87시간에 달하는데 이는 노동법상 규정된 최대노동시간의 1.7배에 이른다. 사측의 업무지시 하에서 오로지 CJ대한통운의 물량만을 배송하는 등 실질적인 고용관계에 묶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사업자로 규정된 불합리한 법제도 때문에 극단적인 장시간노동을 감내해야함은 물론, 초과근무수당 등 노동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급여는 월 200만 원 정도로,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윤 극대화를 위해 택배노동자의 고혈을 쥐어짜려는 CJ대한통운의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인해 택배노동자의 임금은 2013년 4월을 기점으로 급감하게 되었다. 게다가 지입제를 통해 사측과의 직접 계약 하에 일하던 택배기사들을 강제로 대리점으로 편입시키고 제반 비용을 모두 떠넘기는 CJ대한통운의 정책으로 인해 실제 수입은 40만 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7~8년간 계속적인 배송수수료의 동결·인하로 인해 실질소득의 감소를 겪어온 택배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이번 조치는 실제로 생존권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CJ대한통운은 패널티 제도라는 합법적인 소득 갈취 수단을 택배노동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고객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미명하에 마련된 패널티 제도는 자의적 기준으로 인해 택배노동자의 잘못이 없더라고 사측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벌금 액수도 서비스 개선이라는 목적이라고 보기에 지나치게 과도하다.
대표적인 것이 허위등록, 욕설, 불친절, 임의반송/임의배송 등의 항목으로, 패널티를 부과하는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없이 포괄적으로 규정하여 결과적으로 고객의 잘못이나 단순 불만으로 발생한 민원에 대해서도 패널티를 부과할 수 있다. 실제 사측은 고객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민원을 제기한 경우에도 ‘고객이 민원을 제기했다’는 사실만으로 패널티를 부과하고 있다.
배송수수료가 건당 800원 정도의 최소 수준으로 책정된데 비해 패널티 금액은 지나치게 과도하게 책정되어, 회사가 택배노동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상황 역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고객 대응 시 욕설을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10만원의 패널티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는 123개의 물량을 배송해고 받는 수수료와 비슷한 금액으로, 부가세와 제반비용 등을 제외하면 택배노동자의 하루 수입을 상회하는 금액이다.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욕설’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이렇게 과도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택배노동자의 수입을 갈취하고, 사측의 입맛에 맞지 않는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CJ대한통운 사측은 패널티 제도의 부당함이 문제가 되자 ‘통합 이후 택배기사에게 패널티를 부과한 사례가 없을 뿐 아니라 향후에도 금전적 패널티를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적용하지도 않을 패널티 제도의 유지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측의 주장과 달리 이미 3월 31일 광주지역 택배노동자들과의 합의 체결 과정에서 패널티 제도 운영에 대해 시인한 바 있다.

화물운송노동자의 폭넓은 조직화 계기로

이번 파업 투쟁은 택배업의 열악한 노동조건, 그리고 이를 더욱 악화시키려는 사측의 강압에 분노한 택배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이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등으로 ‘갑을 관계’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사실 택배업은 본래부터 ‘갑을 관계’의 폭력성이 극대화된 부문이다. 사측은 배송 차량의 구입에서부터 운행에 필요한 직·간접비용, 대리점의 시설 및 운영비, 심지어는 배송 차량의 도색비까지 포함한 모든 제반 비용을 대리점 및 택배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시스템의 미비로 인해 발생하는 배송 사고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택배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활한 간선 배송 및 분류, 배송추적 시스템의 개선, 대리점 운영에 대한 지원 등 사측의 책임은 외면하고 있다. 이는 CJ대한통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택배노동자를 최대한 착취하는 것을 주된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삼고 있는 택배업계 전반의 문제이며, 또한 갑의 횡포를 정당화시켜주는 특수고용제도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2009년에는 택배배송료 30원 인상 요구를 묵살하고 노동자 78명을 문자로 해고한 대한통운 사측에 맞서 박종태 열사가 대한통운 대전지사 건너편 동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당시 화물연대의 투쟁으로 해고자복직 등 일부 노동자들의 요구가 수용되기도 했다. 화물연대는 그간 화물운송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그리고 노동자에게 열악한 조건을 강제하면서 유지되는 화물운송산업의 문제에 대해 꾸준히 제기하고 집단적인 투쟁을 조직해왔다. 2012년 화물연대 총파업에서는 유류비 변동 등 산업의 위험요소를 모두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특수고용제도의 문제, 지입제를 중심으로 하는 불공정한 계약관행, 바닥으로의 경쟁을 강요하는 운임제의 모순 등에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는 이번 CJ대한통운 파업 사태의 쟁점과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번 투쟁은 화물연대를 중심으로 조직되어왔던 화물운송노동자의 투쟁의 정당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다.
한편 지난 화물연대 총파업에서 좀 더 폭넓은 부문에서 화물운송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라는 것이 드러났다. 전통적인 파업의 핵심 조직력으로 삼았던 컨테이너 거점들만으로 화물연대가 예전과 같은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수차례 화물연대 파업을 겪어오는 과정에서 정부와 자본의 대응력은 훨씬 더 높아졌고, 핵심 화물운송업체들의 화물연대의 조직적 행동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점점 다양화되고 있다. 택배노동자들의 이번 파업으로 택배‧유통부문노동자들의 화물연대 가입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 투쟁을 통한 화물연대의 조직 확대로, 화물운송노동자의 단결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화물운송노동자의 투쟁에 적극 연대하자

CJ대한통운 사측은 이번 사태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교섭에도 불응하고 있다. 배송수수료 인상 및 패널티 제도의 폐지 등 택배노동자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시간당 배송 생산성 향상으로 택배노동자의 수익성이 40% 이상 올라갈 것’이라는 공허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매 2분마다 배송을 완료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더 이상 시간당 배송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답은 하나다. 투쟁의 확대와 사회적 지지·연대를 통해 사측의 오만함을 응징하고 화물운송노동자의 단결을 확장하는 것이다. 지난 2009년 회사의 탄압에 죽음으로 저항했던 택배노동자, 박종태 열사의 뜻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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