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614호 | 2013.05.22

수급자 늘리고 혜택은 쪼갠다?

사각지대 해소 없는 개별급여 도입은 기만이다

정책위원회
우리나라의 공공부조 역사는 1961년 제정된 생활보호법으로부터 시작된다. 생활보호법은 근로능력이 없는 아동 및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보호받을 만한 빈민’만을 ‘보호’했다. 36년이 지나고 1997년, IMF가 있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로, 부도로 거리에 나왔고 서소문공원에는 수백동의 텐트촌이 만들어졌다. 공원의 사람들은 텐트에서 아이들을 씻겨 학교에 보내고, 양복을 갈아입고 면접을 보러 갔다. 이런 상황에서 1999년, 기초생활보장법은 근로능력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권리’로서 보장하겠다는 선언을 담고 공공부조의 진보를 선언하며 등장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수준, 근로능력 평가 등 다양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지난 14년간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복지제도로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2013년 5월 14일, 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교육부·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산업통상자원부·안전행정부는 제1차 사회보장위원회를 열고, <맞춤형복지를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개편방향>을 발표했다. 개정의 주요 내용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1)통합급여를 개별급여로 전환 2)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를 통한 사각지대 해소다. 개편방안 논의가 끝나고 하반기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내년 9월부터 개별급여를 시행하게 된다.

<기초생활보장 급여체계 전환 개념도>, 사회보장위원회, 2013년 5월

수급자를 늘리고 혜택은 쪼갠다?

이번 사회보장위원회는 자격선정 기준을 바꾸겠다는 회의결과를 발표했다. 생계급여는 중위소득 30%,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0~50%, 교육급여는 중위소득 50%로 그 기준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현행 최저생계비 기준은 중위소득의 38%(1인 가구 57만원, 4인 가구 154만원)이고 세금‧건강보험 감면 등을 제외한 현금급여(생계급여와 주거급여)는 중위소득의 31%(1인 가구 46만원, 4인 가구 126만원) 정도이다. 현재 최저생계비 기준에 따른 수급자는 140만 명 가량이고 비수급 빈곤층은 6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번 개편안에 따르면 수급자는 220만 명으로 확대되고, 예산은 내년 9천억, 후년 1조 5천억씩 5년간 6조 9천억을 추가 편성된다. 하지만 220만 명은 개별급여 중 하나의 급여라도 받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한 숫자일 뿐, ‘소득보장’으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개선한다는 목표를 찾아볼 수 없다. 또한 220만 명이라는 숫자는 600만 명이나 되는 광범위한 사각지대 규모에도 한참 미달하며, 보장수준 및 전달체계에 대한 언급이 없어 실제 시행여부도 불투명하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심사는 통합적으로 진행하지만 급여는 개별적으로 제공했다. ‘최저생계비’ 기준 이하의 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 최저생계비 만큼을 보장해준다는 면에서 통합적이지만, 교육급여나 의료급여는 학령기 자녀가 있거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때만 제공되었다. 자가 거주자나 무상임대 거주자의 경우에는 적은 주거급여가 책정되었고 이는 수급자들에게 낮은 생계급여를 보충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러한 개별급여 도입의 근거로 ‘수급자들이 모든 급여를 독점해왔다’는 것을 내세우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더불어 차상위 계층이 수급권층보다 소득이 낮은 ‘소득역전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낮은 최저생계비와 부양의무자기준 등 협소한 선정기준으로 사각지대를 만들어 온 기초생활보장제도 운영의 문제지 급여체계의 문제가 아니다.
개별급여의 개편안도 문제가 많다. 의료급여는 근로능력층을 배제하고 의료급여자의 본인부담금을 증가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주거급여의 경우 주택바우처를 도입해 주거비를 보조 할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큰데, 현재 주거급여(1인 가구 9만원, 4인 가구 24만원)의 수준을 생각할 때 개별급여로 시행되더라도 실제 주거비에 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한 주거비를 임대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데, 이는 수급권자가 아니라 임대인의 추가 소득으로 사고될 것이다. 따라서 임대료를 주거비 지원분만큼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으려 할 것이고, 이는 주거비 전반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정부는 현금급여 제공을 통해 소득을 보장하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등을 통해 생계급여는 10만 명, 주거급여는 20만 명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빈곤층의 규모를 생각할 때 생계급여를 겨우 10만 명 늘리면서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것은 완전한 기만이다. 게다가 그 시행 경로조차 불분명하다. 급여별 선정기준을 따로 마련하고 수급심사를 진행하는 데 발생하는 비용은 훨씬 커질 것이며 그 복잡성으로 인한 일선 행정의 갈등도 고조될 것이다. 또한 최저생계비 기준을 통해 모든 급여를 통합적으로 받을 권리가 있는 수급자를 일부 급여로부터 밀어낼 가능성이 있다. 이는 빈곤대책으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를 훼손할 것이다.


근로능력자 몰아내는 개별급여 도입의 꼼수

이에 따라 가장 크게 위협에 노출될 ‘가난한 사람’이 있다. 바로 근로능력을 가진 수급자다. 이번 개편방안은 ‘일할 수 있는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별도 논의를 예정한다고 밝힘으로서 전체 급여가 근로무능력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인수위 시절 보건복지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가 ‘탈수급 저해’, ‘근로유인체계 미흡’이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며 ‘근로능력평가’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이번 개편방안에서도 기초법 내 조건부수급조항에 기초한 자활사업을 별도 법으로 법제화하고 근로장려세제(EITC)등 근로인센티브를 강화할 것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현재 자활사업은 단기적이고 급여수준이 낮아 ‘일을 통한 빈곤탈출’에 기여하기 힘들지만 정작 이에 대한 개선점은 보이지 않는다. 즉, 일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는 것보다는 근로능력자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통한 ‘솎아내기’부터 추진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시민권에 기반을 둔 수급 권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근로능력을 가진 수급자에는 근로를 조건으로 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자활사업이나 직업훈련 등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존의 최소치인 최저생계비를 박탈하는 것은 사실상 노동을 강제하는 것이며, 근로능력 유무와 관계없이 수급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던 기초법의 취지와도 상반된다. 근로능력자를 공공부조로부터 배제하는 것은 빈곤의 책임을 개인의 무능과 게으름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개편안에서는 이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취지를 대폭 훼손하겠다는 뜻이다.
둘째, ‘근로능력을 가진 수급자’란 실제로 근로능력을 가졌다기보다 정부가 ‘근로능력을 가졌다고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부가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할지라도 이들의 취업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은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정부는 ‘일 할 수 있는 수급자’를 강조하면서 이들을 공공부조의 바깥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주장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 그들이 노동능력이 있다고 분류되더라도 저임금, 불안정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노동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일을 통한 빈곤탈출’이 가능할 것인가? 양극화된 일자리와 임금, 사회보장체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개선책도 내놓지 않으면서 근로능력을 통한 탈수급만을 강조하는 것은 근로능력을 근거로 한 수급권 박탈, 삭감의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탈수급자들을 탈빈곤이 아닌 ‘더 나쁜 빈곤’의 상태로 내몬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해체가 아니라 사각지대 해소가 필요하다

개별급여의 도입은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사항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안처럼 모든 급여를 해체하고 만드는 개별급여가 아니라 기초생활의 권리 위에 차상위계층 등에게 적용되는 개별급여를 요구했던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시급한 개선지점은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수준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진행되는 개별급여 도입은 복잡하고 다양한 선정기준으로 사회적 권리로서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무너뜨릴 뿐 빈곤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사회보장위원회의 결과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쪼개 몇 가지 공공부조를 만들고, 가장 중요한 생계보장은 생활보호법 시절로 회귀시킬 수 있는 위험한 개편안이다. 이는 충분한 예산확대 없이 복지수급 자격심사만을 강화해 빈곤문제를 관리하려는 신자유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를 전면에 내걸고 당선되었지만 이번 개편방안을 볼 때 빈곤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합의였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잘못된 개편을 막고, 가난한 이들의 권리 확대를 위한 연대와 투쟁을 조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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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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