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근로기준법만 지켰어도, 내 동생은 살아있을 것입니다.”
“근로감독만 제때 나갔어도, 우리 장민순님은 살아있을 것입니다.”
 
 
지난 1월 3일,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인 故장민순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년 8개월 동안 힘들게 버텼던 회사를, 그렇게 퇴사했습니다.
 
『공인단기』, 『스콜레』 웹디자이너로서 자부심을 가질 법도 했지만, 자부심만 갖기에 그녀는 너무 힘들게 일했습니다. 재직기간 중 거의 1년 가까운 시간을 법이 정한 연장근로 한도를 넘겨가며 일했습니다. 4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하면서도, 그녀는 ‘부끄러운 하루’, ‘저의 단점’을 되뇌며 자신이 한 일을 스스로 깎아내렸습니다. CEO도 참조하고 팀원도 함께 보는 <업무일지>엔 온통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말들로 가득했고, 그녀는 그렇게 회사 생활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존감은 무너졌습니다.
 
에스티유니타스는 정말로 잔혹했습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도, 휴직하고 돌아온 고인에게 11월 한 달간 혹독하게 일을 시켰습니다. 짧은 한 달 새, 2번이나 연장근로 한도를 넘겨 일을 시켰고, “하나라도 더 나은 거”를 요구하며 3~4일 중 하루(27.3%)는 12시간을 넘게 일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일을 시키면서도 직장상사는 “주말에는 책을 읽어오라,” (채식주의자인 고인에게) “뇌가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육식을 하라”며 핀잔을 주었고, “자기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강좌상세랜딩을 끝냈을 것”이라며 내일 할 일조차 오늘하게 만들었습니다.
 
고용노동부라고 다를 바 없었습니다. 탈진에 이른 동생을 보며, 언니가 다급하게 “이곳 야근 좀 없애 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근로감독관은 그걸 위험신호로 인지하지 않았습니다. 연장근로 제한한도를 넘기면 과로로 사망할 수 있다는 걸 가장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이, 시급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근로감독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울증만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습니다. 우울증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자살하는 겁니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 우울증을 악화시켰는지 그 선행원인을 따져야 합니다. 고인의 우울증이 악화된 것의 배경에는 걸핏하면 반복되는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 본인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비인간적인 근무환경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근무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비극을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신입직원들 야근 많이 하는 게 맘이 아프다. 내가 나서서 바꿀 수 있으면 바꾸겠다. 회사 떠날 각오하고 있다.” 하나뿐인 언니가 이걸 동생의 유언으로 기억하고 있듯, 우리 역시 고인의 유지를 따를 것입니다.
“신입들이 야근하지 않는 회사, 디자이너들이 야근하지 않는 회사, 청년들이 야근하지 않는 세상.”
 
“연장근로위반, 근로기준법 위반” 이것이 웹디자이너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바로 잡을 것입니다.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
 
 
“신입직원들 야근 많이 하는 게 맘이 아프다”
“내가 나서서 바꿀 수 있으면 바꾸겠다”
“회사 떠날 각오하고 있다”
 
언니로서 난, 동생의 유지를 이어갈 것입니다
 
제 동생의 이름은 장민순입니다. 동생은 웹디자이너였습니다. 디자인이 너무 좋아 웹디자이너가 되었고, 최종 꿈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며 자기방에 큼직하게 글자를 써 붙여둘 만큼 디자인을 사랑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더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항상 열심히였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하는 웹디자인일은 늘 야근이 많고 고됐습니다. IT회사의 야근은 일상과도 같은 관행이라지만, 에스티유니타스의 야근은 IT관행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한마디로 상상초월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동생의 회사 동료들은 모두 제 동생이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님과 저는 모두 입사직후부터 동생에게 회사를 그만두라며 수없이 말렸습니다. 그때마다 동생은 기왕 입사했으니 1년만 참고 다니겠다 했고, 1년 뒤에는 조금만 더 해서 팀장으로 승진한 다음 이직하겠다며 퇴사를 미뤘습니다. 당시 동생은 팀장대행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동생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었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부모님과 제가 걱정할까봐 죽을 만큼 힘들면서도 좀처럼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작년12월2일 처음으로 동생이 제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업무의 과중함과 상사의 문제를 토로했을 때, 너무 화가 나서 그날 바로 강남노동지청에 동생의 회사를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뒤에 담당자로부터 받은 답변은 “2017년 근로감독 나가는 물량이 이미 끝났고, 이 업체만 단독으로 근로감독을 나가면 이상하게 여길 테니, 2018년 2월 이후에 다른 신고업체와 묶어서 근로감독을 나가겠다.”였습니다. 그때 바로 근로감독을 나갔더라면, 제 동생은 살 수 있었습니다. 강남노동지청은 근로감독 업무태만으로 제 동생의 죽음을 방관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현재 게임회사 넷마블에 재직 중입니다. 넷마블은 “구로의 등대”라는 별명처럼 한때 야근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2016년 과로사 문제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았고, 이 때를 전후해 넷마블은 고질적인 관행처럼 이어지던 야근 근절을 약속했습니다. 넷마블 전체를 대표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제가 근무하고 있는 조직에서는 더 이상 야근을 하지 않습니다. 야근 없앨 수 있습니다! IT 기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야근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에스티유니타스에 대해 고용노동부에서 즉각적인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생전에 제 동생은 신입들을 위해 야근을 강요하는 지금의 불합리한 회사의 업무관행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똑똑하고 어린 신입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나서서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고 말을 했고 그로 인한 불이익으로 자신은 회사를 떠나는 것도 각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뒤 동생이 유서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죽기 전날에도 자신의 근무시간을 추정할 수 있는 출퇴근 교통카드사용기록을 뽑아서 저에게 전달했습니다. 저는 동생의 마지막 말이 곧 동생의 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동생의 유지를 이어나가기 위해 회사에 야근 문화 근절을 요구하는 것은 유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제 동생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동생의 사망원인이 회사의 부당한 업무지시나 과중한 업무부담, 업무 스트레스에 있다는 유족의 주장이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동생의 우울증이 원인이라는 공식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우울증은 잘 치료받고 관리하면 완치 가능한 질병입니다. 제 동생은 회사입사초기였던 2015년 6월 우울증이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담당 전문의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근무하는 2년8개월 동안, 비인간적인 근무환경 속에서 계속되는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동생의 우울증은 악화되고 오히려 과도한 업무로 인해 정기적인 병원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면서 우울증 악화는 더 심해졌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만나본 동생의 회사 동료들 중에서 평소 우울증이 없던 건강하셨던 분들도 이 회사를 다니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이곳 말고 다른 회사에 갈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잠이 들 때 마다 이대로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같이, 동생과 비슷한 우울증상을 겪었다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들면 퇴사를 하지 그랬냐라고 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으실 겁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을 보면서 제가 깨달은 사실은 사람이 장기간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그 상황에서 도망치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무력감에 빠지게 되고, 도망간다 혹은 직장을 그만둔다는 선택지를 보지 못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폭력사건에서 매맞는 아내가 스스로 남편의 가혹한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동생의 죽음은 명백한 회사의 책임입니다.
 
잘못된 시스템에서 비롯된 모순과 불합리한 문제가 있고, 그 안에 속한 개개인의 그릇된 욕망과 악한 마음이 만나서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제 동생이 그 속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저는 이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 동생이 아닌 누구라도 그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소중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더 이상 없도록, 저처럼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잘못된 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제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무언가 바꿀 수 있는 시발점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동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며 제가 바라는 모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