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일은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오늘은 4월 20일이다. 4월 20일 근처가 되면 우연히 달력에서 ‘장애인의 날’이라 표시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를 포함한 시민사회에서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 차별 및 억압을 은폐시키는 날로써 기능하는 취지를 단호히 거부하고, 모든 차별에 맞서 함께 싸워나가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규정한다.
매해 4월 20일 딱 하루 정도만 혹은 장애인 관련 시설에서 학대 소식이 들려와야만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인들의 권리를 생각하는 것 같아, 반성하면서 이 글을 남긴다. 이 글을 쓰면서, 장애인차별철폐 운동의 요구안이 어디까지 왔는지 놓쳤던 흐름을 다시 정리하고, 2021년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 대회 요구안을 소개하려 한다. 전장연은 장애인 3대 적폐 정책(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투쟁을 하고 있으며,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가 어디까지 왔는지, <시설사회>라는 책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가 왜 ‘시설사회’인지, 장애인들의 탈시설 요구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보자.
장애인 인권운동의 요구 3개 :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탈시설
전장연 홈페이지의 걸어온 길에 따르면, 장애인 운동의 요구로 2000년대 초반에는 이동권 투쟁 등이 주요 요구였으며, 2010년대부터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했다. 장애등급제란, 장애인의 의학적 손상에 따라 1~6급의 등급을 매기고 복지서비스를 차등 제공하는 제도이다. 이 등급에 따라 장애인이 받는 거의 모든 복지 영역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수많은 요구안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 의제이다. 부양의무제란, 기초생활 보장법에서 보장하는 급여를 부양 의무자 (직계혈족 및 배우자)가 있다면 받지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가족의 부양책임을 우선에 두고, 그것이 어려운 경우만을 선별해 제한적으로 수급권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부양의무제는 복지제도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가장 먼저 선별되는 문턱이다. 실질적인 부양 관계에 있지 않아도 부양의무자가 존재하면 잠재적 부양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급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장애등급제는 문재인 정부 3년 차인 2019년에서야 단계적으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는 발표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19년 장애 관련 예산은 거의 변동 없이 날치기로 통과되고, 우리가 '수용시설'이라 부르는 장애인 거주 시설에 대한 문제 제기도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등 31년 만의 장애등급제 폐지가 무색하게 가시적 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경우 2015년 교육급여, 2018년 주거급여에 이어 2020년 생계급여(22년까지 단계적 폐지)에서 폐지됐다. 하지만 가장 예산이 많이 드는 의료급여에서는 부양의무제가 남았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공약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는 실현된 듯 보이지만 미완이며 탈시설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2021년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결의 대회
2021년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결의 대회는 “비장애중심주의·장애인차별철폐!” “장애인탈시설지원법·권리보장법 즉각 제정하라!”를 주요 요구로 한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탈시설을 정의하고, 장애인의 탈시설 지원 및 지역사회 서비스 제공의 내용, 인권침해조사 및 시설 제재 방안, 장애인 거주 시설 10년 내 폐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작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발의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국회 내 논의안건으로 상정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술 더 떠 보건복지부는 탈시설이라는 용어의 사용까지 반대하고, 쥐꼬리만큼의 탈시설 예산을 반영하여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또 다른 요구는 장애인 권리보장법이다. 이 법은 장애 시민을 한낱 복지의 수혜자로 전락시키는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 정책의 현재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당당한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시혜와 동정에 기반한 장애인복지가 아닌 권리에 기반한 개인별 맞춤형 지원체계의 근거를 만드는 법이다. 권리에 기반한 개인별 맞춤형 지원을 계속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사실 장애등급제 폐지가 제대로 가능하게 예산확충을 하지 않은 정부 때문이다. 개인별 맞춤형 지원체계가 실현되도록 예산이 뒷받침되는 진짜 입법이 가능해야 한다.
탈시설은 가능하다!
장애인 운동에서 탈시설을 요구할 때마다, 장애인 혹은 시설에서 탈시설 하는 일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시달린다. 이런 질문을 하는 자신의 편견도 돌아봐야 하지만, 실제 한국 지역사회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시설 사회』의 「8장 대구시립희망원 중증, 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과 함께 살기」를 읽으면, 그것이 꽤 강력한 편견임을 알 수 있었다.
대구시립희망원은 거주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만연했던 곳으로, 보통 인권침해가 밝혀지고 시설이 폐쇄되면 거주인들은 다른 시설로 옮기게 된다. 영화 <도가니>의 피해자들 역시 기존 시설인 인화원이 폐쇄하자, 다른 임시시설로 옮겼다. 그러나 임시시설에서도 폭력과 학대 피해를 당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의 거주인들은 3년간의 장애인 인권단체들의 투쟁으로 폐쇄된 장애인 거주 시설의 80명 중 절반이 사회에 나올 수 있는 정책을 만들었다. 또한, 시설 이후 어디에서 살고 싶냐는 객관식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무응답층 역시 시설에 남는 것이 아니라 탈시설과 자립사업이 필요하다는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무응답층이라 하더라도, 시설 생활보다 지역 생활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시설에서 나온 중증 장애인들은 처음에는 개인의 의사나 욕구를 확인하기 어려워 기존 자립프로그램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움이 있었으나, 탈시설의 진정한 의미인 ‘무엇을 하지 않음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됨’을 알아갈 수 있었다. 시설에서는 고압적으로 시키는 것을 해야 했지만, 탈시설에선 오히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자율을 의미했다. 대구시립희망원 폐쇄 이후 투쟁 사례를 보아도, 지자체의 결정과 활동가들의 노력을 기반으로 지역사회에 장애인들이 탈시설 후 살아가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것은 활동가와 장애 당사자의 관계 맺기이다. 활동가와 장애 당사자의 관계 맺기는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더 규칙을 찾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대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꼭 자신과 연대대상을 동일시하는 구호로 ‘너는 나다“라고 하지 않더라도, 왜 연대해야 하는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고민에 도움이 되었다. 가까이할수록 경직된 당사자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당사자주의, 그냥 동료가 되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활동가들처럼, 꼭 나와 동일하지 않더라도 연대하는 연습이 우리 사회에는 더욱 필요하다.
이 책을 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 대회의 요구안에 비추어 장애인-탈시설 중심으로 『시설사회』를 읽었지만, 『시설 사회』는 더 다양한 주체의 시설 사회를 증언하는 책이다. 장애 여성, 빈민, 비혼모, 홈리스, 탈가정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난민, 에이즈 환자 등이 시설사회에서 어떻게 배제되는지를 다루고 있다.. 시설사회는 시설 바깥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시설에서 보호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탈시설 운동은 정상성 같은 기준으로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운동이다.
마지막으로 『시설사회』 「들어가며」에서 강조하는 시설화의 의미를 모두 같이 고민해볼 만한 영역이라 넣어둔다.
시설화를 차별과 지배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할 때, 낙인의 누적이 예외 없이 빈곤화로 이어지고, 삶의 장소에서 소외되거나 때로 박탈당하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손상되며,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교육에서 제외되고, 단지 소모되는 노동에 내몰리는 도미노를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다. 이러한 연결 고리를 재차 떠올리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탈시설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 지배 메커니즘에 계속 도전하지 않는다면 단지 권력의 변형과 새로운 착취의 기술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시설사회 : 시설화된 장소, 저항하는 몸들』, 장애여성공감 엮음, 와온
2021년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 보도자료
http://sadd.or.kr/data/15506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공약은 파기됐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82011412894278#0DKU
장애인의 날, '차별 철폐'의 관점을 요청한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부,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36172#0DKU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홈페이지 - 걸어온길
http://sadd.or.kr/introduce
4·20일은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오늘은 4월 20일이다. 4월 20일 근처가 되면 우연히 달력에서 ‘장애인의 날’이라 표시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를 포함한 시민사회에서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 차별 및 억압을 은폐시키는 날로써 기능하는 취지를 단호히 거부하고, 모든 차별에 맞서 함께 싸워나가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규정한다.
매해 4월 20일 딱 하루 정도만 혹은 장애인 관련 시설에서 학대 소식이 들려와야만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인들의 권리를 생각하는 것 같아, 반성하면서 이 글을 남긴다. 이 글을 쓰면서, 장애인차별철폐 운동의 요구안이 어디까지 왔는지 놓쳤던 흐름을 다시 정리하고, 2021년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 대회 요구안을 소개하려 한다. 전장연은 장애인 3대 적폐 정책(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투쟁을 하고 있으며,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가 어디까지 왔는지, <시설사회>라는 책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가 왜 ‘시설사회’인지, 장애인들의 탈시설 요구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보자.
장애인 인권운동의 요구 3개 :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탈시설
전장연 홈페이지의 걸어온 길에 따르면, 장애인 운동의 요구로 2000년대 초반에는 이동권 투쟁 등이 주요 요구였으며, 2010년대부터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했다. 장애등급제란, 장애인의 의학적 손상에 따라 1~6급의 등급을 매기고 복지서비스를 차등 제공하는 제도이다. 이 등급에 따라 장애인이 받는 거의 모든 복지 영역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수많은 요구안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 의제이다. 부양의무제란, 기초생활 보장법에서 보장하는 급여를 부양 의무자 (직계혈족 및 배우자)가 있다면 받지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가족의 부양책임을 우선에 두고, 그것이 어려운 경우만을 선별해 제한적으로 수급권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부양의무제는 복지제도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가장 먼저 선별되는 문턱이다. 실질적인 부양 관계에 있지 않아도 부양의무자가 존재하면 잠재적 부양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급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장애등급제는 문재인 정부 3년 차인 2019년에서야 단계적으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는 발표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19년 장애 관련 예산은 거의 변동 없이 날치기로 통과되고, 우리가 '수용시설'이라 부르는 장애인 거주 시설에 대한 문제 제기도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등 31년 만의 장애등급제 폐지가 무색하게 가시적 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경우 2015년 교육급여, 2018년 주거급여에 이어 2020년 생계급여(22년까지 단계적 폐지)에서 폐지됐다. 하지만 가장 예산이 많이 드는 의료급여에서는 부양의무제가 남았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공약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는 실현된 듯 보이지만 미완이며 탈시설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2021년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결의 대회
2021년 4·20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결의 대회는 “비장애중심주의·장애인차별철폐!” “장애인탈시설지원법·권리보장법 즉각 제정하라!”를 주요 요구로 한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탈시설을 정의하고, 장애인의 탈시설 지원 및 지역사회 서비스 제공의 내용, 인권침해조사 및 시설 제재 방안, 장애인 거주 시설 10년 내 폐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작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발의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국회 내 논의안건으로 상정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술 더 떠 보건복지부는 탈시설이라는 용어의 사용까지 반대하고, 쥐꼬리만큼의 탈시설 예산을 반영하여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또 다른 요구는 장애인 권리보장법이다. 이 법은 장애 시민을 한낱 복지의 수혜자로 전락시키는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 정책의 현재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당당한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시혜와 동정에 기반한 장애인복지가 아닌 권리에 기반한 개인별 맞춤형 지원체계의 근거를 만드는 법이다. 권리에 기반한 개인별 맞춤형 지원을 계속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사실 장애등급제 폐지가 제대로 가능하게 예산확충을 하지 않은 정부 때문이다. 개인별 맞춤형 지원체계가 실현되도록 예산이 뒷받침되는 진짜 입법이 가능해야 한다.
탈시설은 가능하다!
장애인 운동에서 탈시설을 요구할 때마다, 장애인 혹은 시설에서 탈시설 하는 일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시달린다. 이런 질문을 하는 자신의 편견도 돌아봐야 하지만, 실제 한국 지역사회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시설 사회』의 「8장 대구시립희망원 중증, 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과 함께 살기」를 읽으면, 그것이 꽤 강력한 편견임을 알 수 있었다.
대구시립희망원은 거주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만연했던 곳으로, 보통 인권침해가 밝혀지고 시설이 폐쇄되면 거주인들은 다른 시설로 옮기게 된다. 영화 <도가니>의 피해자들 역시 기존 시설인 인화원이 폐쇄하자, 다른 임시시설로 옮겼다. 그러나 임시시설에서도 폭력과 학대 피해를 당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의 거주인들은 3년간의 장애인 인권단체들의 투쟁으로 폐쇄된 장애인 거주 시설의 80명 중 절반이 사회에 나올 수 있는 정책을 만들었다. 또한, 시설 이후 어디에서 살고 싶냐는 객관식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무응답층 역시 시설에 남는 것이 아니라 탈시설과 자립사업이 필요하다는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무응답층이라 하더라도, 시설 생활보다 지역 생활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시설에서 나온 중증 장애인들은 처음에는 개인의 의사나 욕구를 확인하기 어려워 기존 자립프로그램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움이 있었으나, 탈시설의 진정한 의미인 ‘무엇을 하지 않음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됨’을 알아갈 수 있었다. 시설에서는 고압적으로 시키는 것을 해야 했지만, 탈시설에선 오히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자율을 의미했다. 대구시립희망원 폐쇄 이후 투쟁 사례를 보아도, 지자체의 결정과 활동가들의 노력을 기반으로 지역사회에 장애인들이 탈시설 후 살아가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것은 활동가와 장애 당사자의 관계 맺기이다. 활동가와 장애 당사자의 관계 맺기는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더 규칙을 찾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대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꼭 자신과 연대대상을 동일시하는 구호로 ‘너는 나다“라고 하지 않더라도, 왜 연대해야 하는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고민에 도움이 되었다. 가까이할수록 경직된 당사자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당사자주의, 그냥 동료가 되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활동가들처럼, 꼭 나와 동일하지 않더라도 연대하는 연습이 우리 사회에는 더욱 필요하다.
이 책을 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 대회의 요구안에 비추어 장애인-탈시설 중심으로 『시설사회』를 읽었지만, 『시설 사회』는 더 다양한 주체의 시설 사회를 증언하는 책이다. 장애 여성, 빈민, 비혼모, 홈리스, 탈가정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난민, 에이즈 환자 등이 시설사회에서 어떻게 배제되는지를 다루고 있다.. 시설사회는 시설 바깥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시설에서 보호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탈시설 운동은 정상성 같은 기준으로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운동이다.
마지막으로 『시설사회』 「들어가며」에서 강조하는 시설화의 의미를 모두 같이 고민해볼 만한 영역이라 넣어둔다.
시설화를 차별과 지배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할 때, 낙인의 누적이 예외 없이 빈곤화로 이어지고, 삶의 장소에서 소외되거나 때로 박탈당하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손상되며,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교육에서 제외되고, 단지 소모되는 노동에 내몰리는 도미노를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다. 이러한 연결 고리를 재차 떠올리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탈시설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 지배 메커니즘에 계속 도전하지 않는다면 단지 권력의 변형과 새로운 착취의 기술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시설사회 : 시설화된 장소, 저항하는 몸들』, 장애여성공감 엮음, 와온
2021년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 보도자료
http://sadd.or.kr/data/15506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공약은 파기됐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82011412894278#0DKU
장애인의 날, '차별 철폐'의 관점을 요청한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부,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36172#0DKU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홈페이지 - 걸어온길
http://sadd.or.kr/introdu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