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4/12 창간준비2호

세계경제의 리밸런싱? 계급투쟁의 리밸런싱!

  • 조은석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세계경제위기 끝? 양적완화 종료와 미국 자본주의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 중앙은행(연준)의 양적완화가 10월 말 종료되었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은 중앙은행이 민간금융기관의 모기지 채권을 사들여 시장에 돈을 푸는 것을 골자로 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민간은행들이 주택투기 하려고 만든 파생상품에 문제가 생겨 세계경제위기로 이어지자 중앙은행이 나서서 그걸 돈 주고 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민간은행은 부실채권을 현금으로 바꾼 셈이고, 중앙은행은 현금을 부실채권으로 바꾼 셈이다. 2008년 11월 25일 시작되어 6년간 2조 달러, 한화로 2200조 원의 돈을 이렇게 썼다. 한국 1년 국내총생산의 두 배 가까운 돈이다.

이렇게 돈을 퍼부은 명분은 경제에 돈이 돌려면 은행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 은행들은 살아났다. 부도 직전까지 갔던 씨티은행은 2013년에 14조 원 순익을 냈고, 2014년 3분기까지 12조 원 순익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경우 상황이 반대로 2009년부터 현재까지 임금이 사실상 동결 상태다. 연평균 실질임금 인상률이 0.5퍼센트가 되지 않는다. 실업률은 10퍼센트에서 6퍼센트까지 떨어졌다지만, 고용률도 73퍼센트에서 70퍼센트로 하락했다. 일자리가 늘어 실업률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구직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서 실업률이 준 것이다. 잠재적 실업자가 많다보니 당연히 임금도 오르지 않는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정책 종료로 경제위기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금융자본의 위기만 끝난 것이고, 노동자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부실채권을 인수한 중앙은행은 잠재적 위기를  끌어안았다.

미국 중앙은행은 2015년 하반기부터는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도 발표했다. 다른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하락시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세계시장의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향하고, 달러 가치는 상승한다. 달러가 강한 만큼 그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 중앙은행의 부실 위험도 상대적으로 줄고, 금융자본에게도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몰리는 만큼 자산 투기를 위한 최적의 조건이 된다. 미국 노동자들에게는 이 투기판에 동참해 다시 한번 부동산담보대출로 집 사고, 자동차도 사는 빚잔치를 하던지, 저임금과 고용불안 속에 생활고를 겪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아 있는 듯 보인다. 미국은 실물 경제가 아니라 금융 거품으로 성장했던 2000년대 초반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이렇게 금융 거품으로 계속 되돌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는 항상 금융 거품을 만들어 낼 위험을 내재한 시스템이다. 가치가 축적된 실제 자본과 미래 소득 흐름 예상을 자본으로 착각하는 가공자본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장이 계속될 때는 미래 소득이 실현되거나, 문제가 생겨도 더 미래로 실현을 미루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성장이 멈추면, 실제와 가공 사이 괴리 만큼 기존 자본을 파괴하는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 거품이 붕괴됐다고 흔히 표현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에서는 10억 원을 들여 지은 공장과 액면가 1억 원이지만 주식시장 열풍으로 10억 원이 된 금융자산을 똑같은 자본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에 따르면 10억 원의 공장은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실체인데 반해, 10억 원의 주식은 미래 배당 수익이 10억 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시장이 현재 가격에 반영한 가상에 불과하다. 그 예상이 틀릴 것 같으면 순식간에 10억 원이 10분의 1로 줄어들 수도 있단 것이다. 

실제 사례를 보자. 2008년 8월 파산해 세계경제위기의 신호탄이 된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는 2007년 말까지만 해도 회계장부에 순자산이 400조 원이라고 기록했다. 하지만 부동산가격이 하락하자 2008년 이 순자산 모두가 부채로 돌변해 파산했다. 들어간 노동, 즉 가치로는 얼마 되지 않았을 자산이 400조 원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자산이 부동산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제한 파생금융상품, 즉 미래의 부동산가격을 현재 자본으로 취급한 가공자본이었기 때문이었다. 들어간 노동으로 400조 원의 자본으로 나타났다 결국 그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단 것이다. 리먼브라더스가 극단적 사례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와 괴리된 자본은 아주 일반적으로 회계에 기록되고 거래된다. 

문제는 가공자본의 형성과 붕괴가 단지 그 자본 소유자의 피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하기 8개월 전 최고경영자에게 600억 원의 보너스를, 모든 직원에게 10조 원의 급여를 지급했다. 은행 파산 이후 발생하는 신용위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실제 존재하지 않는 자본을 가지고 잔치를 벌인 이 돈은 누군가 메워야만 한다. 그게 누구인가? 당연히 실제 가치를 만들어 내는 노동자들이다. 

미국 중앙은행 돈으로 자신들의 부실채권을 정리한 월스트리트의 금융기업들은 2013년 말에만 30조 원의 보너스 잔치를 했다. 월스트리트의 금융기업들이 지금 하고 있는 짓은 2008년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돈도 결국 노동자들이 메꿔놓아야 하는 돈이다.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 정체가 2015년 이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인 중국 성장 둔화

2008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경제가 그나마 이 정도라도 버틴 것은 중국을 빼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중국은 세계경제위기 와중에도 10퍼센트 내외의 성장을 기록했고, 세계의 공장이자 소비시장으로서 미국과 쌍벽을 이루며 세계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경제 역시 2013년 이후 성장률이 둔화되며 2015년에는 7퍼센트 성장률이 무너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 정책을 부채감소 정책으로 전환하기로 함에 따라 일부에서는 더 크게 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내놓고 있다. 
 

따져보면 중국의 부상은 긍정적 성장의 신호와는 거리가 멀었다. 중국이 세계자본주의를 구해낸 방식이 전혀 새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는 성장은 물론이고 성장을 멈추게 하는 힘을 만들어 내는 것도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이라고 분석했다. 자본주의의 성장은 기업들이 이윤 경쟁을 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를 늘려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경쟁이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경쟁의 승자에게 조금 더 높은 이윤을 남겨주지만 자본 전체로 보면 투자는 늘어나는데 반해 이윤은 비례해 늘지 않는 효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총투자 된 자본 대비 이윤의 비율이 낮아지는 이윤율 저하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향이라고 분석했다. 여러 실증 분석에 의하면 미국 자본주의는 1970년대부터 이윤율이 하락해 왔다. 

물론 그렇다고 이윤율이 무조건 낮아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생산과 관리의 신기술이 나타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19세기 말 공황 직후 20세기 초 미국의 포드가 만든 컨베이어시스템 자동차 생산은 생산성의 혁명적 발전을 가져왔다. 지엠(GM)과 같은 미국 대기업들은 경영관리 기술까지 발전시키며 생산성을 더했다. 미국 자본주의는 1960년대 말 그 기술이 한계에 부딪히기 전까지 새로운 성장을 만들며 세계경제를 이끌었다.

그렇다면 2008년 이후 중국은 이런 기술 발전에 기초한 새로운 성장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중국으로 인해 세계 자본주의의 이윤율 하락 경향이 다소 완화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기술 발전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과 가공자본 기반 소비를 통해서였다. 중국은 임금을 낮게 유지해 중국에 진출한 초국적 기업들이 투자를 덜 하고도 이윤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상하이를 비롯한 대도시의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해 상류층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반으로 과소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미국 사례와 마찬가지로 실현되지 않은 가치를 담보로 한 과소비는 결국 언젠가는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중국의 성장은 중국 노동자들의 현재를 초국적기업들이, 미래를 중국 상류층이 착취함으로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되면 초국적 기업들의 이윤이 줄 수밖에 없고, 상류층의 불로소득이 만들어 내는 부익부 빈익빈에 노동자들이 저항하면 이 균형은 무너진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것들은 이윤율 저하에 대한 잠깐의 반작용일 뿐, 새로운 성장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도 2015년 이후 중국 경제 전망은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 주를 이룬다. 부동산 시장 거품이 꺼짐에 따라 소비 증가세가 둔화되었고,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임금이 상승하며 기업들의 이윤도 많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를 그나마 떠받치던 중국의 힘도 길지 않은 시간만 지속될 반작용일 뿐이란 것이다.
 

글로벌 리밸런싱? 계급투쟁의 리밸런싱!

세계경제위기가 진정된 2010년부터 유행하던 글로벌 리밸런싱이란 말이었다. 무역, 환율, 유동성 등의 국제적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양적완화 종료로, 중국은 고성장 종료로 2015년은 리밸런싱이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한해가 될 전망이다.

숨겨진 쟁점은, 사실 세계적으로 현재 가장 불균형적인 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장기에 걸쳐 보면 전 지구적으로 자본의 큰 이동에 따라 노동자들의 투쟁도 이동했다. 

1920~30년대 미국의 발전기에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를 중심으로 미국 노동운동의 새흐름이 만들어졌고, 1950~60년대 유럽 자본주의 절정기에 유럽 노동운동이 연대임금을 발전시켰고, 1980년대 반주변부 국가들의 산업 성장 시기에 브라질, 남아공, 한국에서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노동운동이 탄생했다. 

하지만 현재 자본의 새로운 성장지인 중국에서 국지적 분쟁은 있지만 조직된 노동운동이 출현하고 있지는 못하다. 자본의 이동지에서 새롭게 타오른 노동운동들이 타국 노동자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며 세계 노동자 운동의 활력소가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상태는 말 그대로 자본과 투쟁의 불균형으로 인한 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중국의 성장 둔화와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가 세계 노동자 운동의 리밸런싱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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