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5/10 제9호

6개월 만에 사라진 회사

  • 이민영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8월 말 한국 인수합병 역사상 최대 금액인 7조 2000억 원에 홈플러스 매각이 결정됐다. 규모도 규모지만 더 큰 문제는 매각 이후다.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단기적인 이윤이 최대 목표다. 헐값으로 사들인 회사를 팔아 투자이익을 회수하면 사라진다. 최대한의 이익을 내기 위한 사모펀드의 기업사냥에 한국의 수많은 기업과 노동자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오리온전기, 위니아만도, 외환은행 모두 사모펀드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대표적 사례다.


6개월 만에 사라진 회사

대우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는 1999년 8월 대우 사태 여파로 워크아웃에 들어간다. 2003년까지 공적 자금만 3967억 원이 투입됐다. 워크아웃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2004년 7월 매각공고를 냈다. 이후 초국적 사모펀드인 매틀린패터슨이 인수 의향을 밝힌다.

당시 오리온전기는 OLED, PDP, CRT 세 개의 사업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매틀린패터슨은 핵심 사업부문인 CRT이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인수를 거부한다. 1차 매각 시도 실패 후, 매틀린패터슨은 전체 인수를 조건으로 인수 가격을 전체 자산가치의 절반인 500억 원으로 낮춰줄 것을 요구한다. 턱 없이 낮은 가격이었지만 정부의 적극적 중재, 채권단 대표의 양보로 2005년 4월 매각이 성사된다. 정부와 노동조합은 CRT 청산 금지를 보장받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노동조합과는 모든 종류의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합의서까지 작성했다. 

하지만 인수 일주일 뒤, 매틀린패터슨은 주식의 100퍼센트를 그들이 대주주인 엘렉트라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로 넘긴다. 이미 분사되어 있던 PDP사업부에 이어 OLED사업부가 분사된다. 5월 13일 엘렉트라인베스트먼트는 오리온CRT 주식을 오션링크라는 회사의 페이퍼컴퍼니로 전부 넘긴다.

그런데 10월 31일 오션링크는 오리온전기를 청산하기로 결정한다. 인수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직원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구조조정 금지 합의의 주체가 아니었던 오션링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1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분사된 사업부도 조업을 중단했다. 회사가 떠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쫓겨났고, 투기자본은 돈을 챙기고 떠났으며,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끊임없는 매각, 위니아만도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만도 역시 사모펀드가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든 대표적 사례다. 1999년 만도기계에서 분리된 위니아만도를 UBS캐피탈 컨소시엄이 인수한다. UBS컨소시엄은 위니아만도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금을 마련한다. 인수자금 2350억 원 중 1400억 원을 대출로 마련했다. 그런데 인수와 동시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매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대규모 해직, 임금동결, 상여금 반납이 이어졌다.  

2001년부터는 유상감자가 시작된다. 유상감자는 회사 유보 현금을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배당과 같은 효과를 낸다. 2001년 750억 원, 2002년 601억 원으로 총 1350여억 원의 유상감자가 실시된다. 또한 이들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총 722여억 원의 배당으로 이익을 회수한다. 이 자금들은 조세회피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로 들어가 단 한 푼의 세금도 한국에 환급되지 않았다. 

투자금액의 두 배 넘는 이익을 회수한 UBS컨소시엄은 2005년 위니아만도를 다시 매각한다. 매각대금은 원금의 세 배였다. CVC라는 회사가 말레이시아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위니아만도 자산가치를 담보로 인수자금을 마련, 같은 방식으로 회사를 인수한다. 그 뒤 2006년 전체 주식의 20퍼센트에 대해 유상감자가 실시된다. 계속 이어진 유상감자와 고배당으로 CVC는 약 2500억 원을 챙겼다. 돈 한 푼 안들이고 회사를 인수해 이익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의 연속이었다. 2009년 130여 명 희망퇴직, 100여 명이 정리해고 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투자이익을 회수한 CVC는 2014년 또다시 사모펀드인 KG이니시스를 대상으로 매각을 추진한다. 세 번째 사모펀드로의 매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노동조합은 격렬한 투쟁으로 대응한다. 결국 두 번의 매각 결렬 후, 한국 자동차부품사인 대유에이텍이 70퍼센트의 지분을 인수하며 매각이 마무리된다.
 
한라그룹 수난사를 통해 본 해외매각의 그림자
 
 

대규모 먹튀와 ISD 소송, 론스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정부는 국가부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기업에 투입된 공적자금 회수, 부실은행 정리를 실시한다. 당시 외환은행은 하이닉스, 현대건설 등 주로 부실기업에 대출을 해준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자산건전성이 악화되고, 외환카드 부실문제 등이 겹치며 부도위기를 맞는다. 이런 상황에서 2003년 10월, 론스타가 나타나 외환은행 지분 50.53퍼센트를 1조 3000억 원이라는 헐값에 인수한다. 인수과정에서도 비리가 의심되는 정황들이 존재했다. 2004년 외환카드와의 합병 과정에서는 대규모 정리해고가 발생했다. 핸드폰 문자라는 충격적 방법을 통해 해고가 이루어진다. 희망퇴직을 포함해 전체 직원의 40퍼센트가 정리해고 됐다.

불과 2년 뒤인 2007년, 론스타는 홍콩HSBC에 외환은행을 5조 9000억 원에 매각하려 한다. 하지만 정부가 매각승인을 유보한다. 매각이 실패로 돌아가자 론스타는 주식 매각, 고액 배당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한다. 

결국 외환은행은 2012년 하나금융에 3조 9000억 원에 매각된다. 론스타는 배당과 시세차익으로 총 4조 7000억 원 규모의 이익을 취했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곳이 형식적으로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LSF-KEB였기 때문에 과세도 불가능했다. 최근 론스타는 규제로 인해 손해를 봤다며 한국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ISD)까지 제기한 상황이다. 그 규모만 5조 원에 이른다. 
 

 

홈플러스노동조합의 투쟁 

노동자들에게 초국적 사모펀드로의 매각은 곧 구조조정과 국부유출을 의미한다. 투기자본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의 이윤이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다른 동인은 없다. 사모펀드에게 국경은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더 과감히, 공격적으로 이윤을 추구한다. 국가 간의 장벽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홈플러스 매각설이 흘러나왔다. 홈플러스는 140개 대형마트, 377개 SSM, 300여 개 편의점을 운영, 2만 60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국내 2위 규모의 대형마트다. 뿐만 아니라 2000여 개의 협력업체, 1만여 명의 중소자영업자와 입점계약을 맺고 있다. 홈플러스의 소유주였던 테스코는 2014년 분식회계로 투자부적격 등급 판정을 받았고 2015년 3월엔 10조 원의 적자를 발표했다. 자금압박에 시달렸던 테스코는 2012년부터 부동산 매각으로 투자금을 본격 회수하고, 로열티 금액 역시 2012년 38억 원에서 2013년 759억 원으로 대폭 늘렸다. 결국 테스코는 홈플러스를 7조 2000억 원에 매각한다. 8000억 원을 투자해 부채를 제외하고 약 5조 원의 수익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매각 이후다.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파트너스가 사모펀드이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기업의 장기적인 운영에는 관심이 없다. 구조조정을 통해 가치를 높이고, 빠르게 매각해 최대 차익을 챙기는 것이 목표다. 또한 MBK는 인수자금 중 60퍼센트를 은행 차입으로 조달했다. 이자로만 내야 할 돈이 매년 1000억 원 이상이다. MBK 스스로가 가져갈 투자수익까지 고려하면 이후 과정은 뻔하다. 이전 사례처럼 회사의 돈은 주주들에게 나눠주고, 자산들을 팔아치우며 수익을 올릴 것이다.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의 규모를 고려하면, 이는 200만 명이 일하고 있는 한국 도소매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 이상 오리온전기, 위니아만도, 외환은행의 사례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초국적 사모펀드들의 기업사냥에 언제까지 당할 수는 없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의 싸움에 함께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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