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5/12 제11호

왜 아직도 박정희인가

무능한 자유주의 세력이 재생산하는 논란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죽은 박정희가 아니라 살아있는 박정희가 문제

새정치연합을 비롯한 소위 범진보개혁진영은 국정교과서를 친일파, 군부독재 정권을 정당화하려는 역사 쿠데타로 규정하며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친일·독재만이 문제일까? 사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역사학적 평가 쟁점과 상관없이 현실 정치에서 박정희는 이미 충분히 긍정적으로 복권되었다. 박정희를 연상시키는 선거운동으로 대통령이 된 이명박이나 박정희의 딸로 대통령이 된 박근혜를 봐도 그렇다. 노무현 정권 이후 현실 정치의 여러 세력들은 박정희를 앞세운 세력에게 졌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1960~70년대 박정희에 대한 학술적 평가 이전에 오늘날 반복해 부활하는 ‘박정희 향수’이다. 
 

박정희의 중화학공업화 : 대마불사 재벌체제의 형성

박정희 시대의 성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현재의 경제적 실패다. 특히 이는 민주당 집권 시대에 도드라졌다. 자유주의 세력으로 통칭되는 민주당의 실패가 보수주의로 통칭되는 현 집권 세력에 대한 인정,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 할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박정희 시대의 성장과 박정희를 되살린 최근의 금융세계화 시대 성장을 비교해보자. 

박정희 시대 고도성장은 높은 수준의 투자를 통해 이뤄졌다.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자본집약적 중화학공업으로 변화시켰고,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도 늘렸다. 박정희 정권은 외자를 들여오기 위해 한일협정을 맺어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는가하면, 미국의 베트남전쟁에도 용병으로 참가했다. 기생관광이나 기지촌과 같은 성매매 산업도 적극 이용했다. 베트남전에서 8년 동안 번 외화가 9억 달러였는데, 1970년대 기생관광이 대부분인 관광업 외화수입이 30억 달러에 달했다. 내부적으로도 노동자의 소득 일부를 강제로 저축시켜 투자금을 모았다.

박정희 정권은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고 저임금을 강제해 기업이 이윤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정부 주도 중화학공업화는 실제로는 주먹구구식 투자가 많아,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1975년 당시 70퍼센트에 불과했다. 당시 정권과 기업들은 이런 손해를 노동자의 임금을 더 깎는 방식으로 메웠다.

박정희는 이렇게 노동자를 희생하고 그 성과는 모두 재벌에게 줬다. 정부가 중화학공업화를 위해 모집한 투자재원 대부분이 재벌들에게 분배되어 10대 재벌의 부가가치 생산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3년 5.1퍼센트에서 1978년 10.9퍼센트로 두 배 늘었다. 반면 노동자들의 소득은 1970년대 말까지도 크게 늘지 않아 노동소득분배율은 40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민주당의 금융세계화 : 개혁으로 치장된 재벌-먹튀 체제

한편, IMF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정리된 2001년부터 노무현 정부 임기 끝인 2007년까지 고정자산스톡 연평균 증가율은 7퍼센트로 1970년대의 절반 수준이었다. 재벌들은 외환위기 과정에서 국민세금으로 부채를 털어내 생긴 여력을 해외 투자에 집중해, 이들의 해외직접투자는 연평균 25퍼센트씩 증가했다. 이런 투자는 당연히 국내 고용과는 거리가 멀었고,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다수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체되었다. 

이 당시 한국에 유입된 해외 자본 대부분은 ‘먹튀’였다. 1998년 210억 달러였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액은 2007년 1220억 달러까지 늘어났고, 증권투자 역시 660억 달러에서 4600억 달러로 증가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대부분이 외환위기 직후 헐값에 매물로 나온 한국기업을 인수한 것이었다. 투자라기 보단 오히려 국부유출에 가깝다. 

증권투자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외국인투자에 따라 춤을 추는 국내 증권시장 덕에 외국인의 주식투자 수익률은 연 50퍼센트 이상이었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이 벌어들인 주식 매매 수익이 약 400조 원, 배당으로 챙겨간 돈이 4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재벌들과 외국자본이 막대한 이익을 가져갈 수 있었던 건 노동생산성 향상에 미달하는 임금인상과 국민적 투기 붐을 조성한 정부 정책 때문이었다. 1997년 국내총생산의 4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던 30대 재벌들의 매출액은 2007년에 국내총생산의 100퍼센트까지 증가했다. 반면, 노동자 임금은 상위소득자만 증가했을 뿐 대부분 10년 가까이 정체했다. 

또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세계 최고수준의 노동시장 유연화도 만들었다. 요컨대 박정희 시대의 성장만큼 2000년대 정권들의 개혁을 명분으로 한 금융세계화 성장도 노동자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민주당 주도 금융세계화 정책이 역설적으로 박정희 시대 발전에 대한 환상을 키운 것이다.
 

민주당식 비판의 문제 I : 구조적 제약에 대한 맹목

현실 경제에서의 실패가 박정희 복권의 물질적 기초라면 박정희 정권 시절 고도성장에 대한 잘못된 비판은 박정희 복권의 이론적 기초가 되고 있다. 교학서 교과서에서 박정희 독재를 옹호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물적·인적·금융 자원이 제한되고 내수시장이 협소한 조건에서 중화학공업화를 이루려면 자본 형성을 위해 높은 저축률을 강제할 수 있어야 하고, 수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그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국가 리더십이 필요한데, 박정희 정권이 이를 잘 수행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친화적인 역사학자들의 이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정치체제의 경제체제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관점으로 이뤄졌다. 발전에 대한 국민적 의지가 충만한 상태였기 때문에 높은 저축율과 투자는 굳이 박정희 정권이 아니어도 가능했고, 박정희의 개인적 특성이 아니라 해방 후 농지개혁과 냉전으로 인한 미국의 지원이 자본 축적의 중요한 원천이었으며, 또 그 시대 성장에 일부분 그의 공로가 있다하더라도 결국 그의 억압적 정치제도가 발전해 나가는 시장제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은 체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와 정치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런 자유주의적 박정희 비판은 몇 가지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먼저, 자유주의적 박정희 비판론은 세계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당시 한국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제약적이었다는 점을 쉽게 간과한다. 미국의 원조가 1960년대 확 줄어든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한일협정, 베트남전쟁 등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노동자를 초과착취하기 위해 권위적 통치를 이어간 건 자본주의 체제 내부 논리에서만 보면 ‘합리적 선택’ 중 하나다. 이런 구조적 폭력을 바탕으로 성장을 시작하는 게 오히려 자본주의의 일반적 역사였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자본주의 축적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가혹한 폭력이 있었다. 자본주의적 발전과 이런 폭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적 지향을 공유하는 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했으면 박정희와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별 근거가 없는 것이다. 
 
공사를 마친 포항제철 2고로에 불을 붙이는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1976년)
 

민주당식 비판의 문제 II : 스스로에게 면죄부 주기

다음으로, 자유주의적 박정희 비판론은 현재의 경제 문제 상당수를 박정희 정권의 유산 탓으로 돌린다. 대표적으로 재벌문제가 그렇다. 한국에서 재벌 주도 경제가 문제가 되는 건 외환위기 이전에는 저생산성·저수익성이었던 반면, 완전개방 경제로 바뀐 외환위기 이후에는 재벌만 생산성과 수익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외환위기 전후로 재벌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전혀 다른 것이다.

재벌들은 외환위기 이전에는 생산성이나 재무구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투자한 자본이 별로 없는 재벌 총수는 수익률보단 수익량에 집착했고, 국내시장에 대한 독점력과 정부 지원을 무기로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결국 재벌들의 비효율성과 과잉투자는 1997년 외환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상황은 전혀 다르다. 재벌들은 공적자금과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과잉투자 부분을 털어냈고, 유연화된 노동시장에서 착취율까지 높였다. 거기다 낮아진 원화가치로 수출경쟁력까지 향상시켜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현재 수출 재벌들의 문제점은 국민경제와 괴리되어 나 홀로 생산성과 수익을 높이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만든 건 박정희가 아니라 민주당 집권 시절 진행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다. 총수 중심 재벌체제는 이제 손실에 둔감한 경영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통한 공격적 경영방식으로 이해되기까지 한다.

요컨대, 자유주의적 박정희 비판은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과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으로 발생한 한국 경제의 문제 모조리 박정희 탓으로 돌린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세력이 저지른 지난 십여 년간의 잘못을 숨기는 일이다.
 

결정적 변수, 노동자운동의 성장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세계적 성장을 보면 정치형태나 주도기업 문제보다도 당시 노동자운동의 역할이 이후 분배 형태를 결정지은 변수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보통 1960-70년대 한국의 대기업 중심 발전과 비교대상이 되는 대만의 경우 중소기업 주도로 발전했음에도 한국 이상으로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반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보다 더 심하게 소수 대기업에 의해 경제성장을 이룬 스웨덴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국, 대만과 스웨덴의 차이는 기업이나 정치형태 차이보단 노동자운동의 사회적 영향력 차이다. 한국과 대만은 노동기본권 보장 수준도 낮고 노조 조직률도 낮다. 그에 반해 스웨덴은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가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는 것은 물론 국가 차원의 교섭, 산업별 차원의 교섭으로 임금이 상당부분 평준화되었다. 1970년대 한국과 대만이 반공주의에 묶여 노동자 계급 정치가 제약되어 있을 때, 스웨덴노총은 민주적 사회주의 건설을 표방하며, 20년 넘게 그들이 세운 정당으로 집권까지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박정희의 후손과 민주당 중 누가 대안이냐는 건 거짓 논쟁이다. 자본주의적 구조적 모순을 넘어설 대안세계 지향의 노동자운동이 부재해 발생한 오늘날의 사회문제들이 진짜 쟁점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상황은 자본주의적 성장을 공유한 정치세력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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